역사적인 창단 첫 우승을 안겨줬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고 올 시즌 성적이 부진한 것도 아니다. 주요 우승 멤버가 FA로 이탈하고 어린 선수들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팀을 결국 상위권으로 이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치고 있었고 정규시즌이 단 6일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구단은 감독을 갑자기 해고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9일(이하 한국시간) ESPN은 덴버 너게츠가 마이클 말론 감독을 경질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47승 32패를 기록하며 서부 4위에 올라 있는 덴버는 3위 레이커스에 불과 1.5경기 뒤져 있다. 무엇보다 반 경기 차로 클리퍼스, 골든스테이트, 미네소타, 멤피스가 뒤쫓아오고 있어 남은 3경기에서 자칫하면 플레이-인 토너먼트권인 서부 6위 밖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올 시즌 가장 긴박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감독 해고라니. 선수들도, 팬들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올 시즌 있었던 마이크 브라운 감독(새크라멘토), 테일러 젠킨스 감독(멤피스) 사례만큼이나 너무 갑작스럽고 이상한 해고다.

도대체 덴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핵심은 단장과의 냉전

현지 보도에 따르면 마이클 말론 감독은 오랜 시간 동안 칼빈 부스 덴버 단장과 갈등을 빚어왔다.

야후스포츠는 "마이클 말론 감독과 칼빈 부스 감독 사이의 갈등이 덴버의 '대청소'로 이어졌고, 덴버는 혼란에 빠졌다"며 이번 사건을 설명했다.

마이크 말론 감독은 지난 2015-2016시즌부터 덴버의 지휘봉을 잡아왔다. NBA 선수 출신의 칼빈 부스 단장이 덴버로 온 것은 2017년 8월이다. 

당시 부스는 덴버의 부단장으로 부임했고, 2020년 내부 승격을 통해 단장을 맡았다. 이후 5년 동안 말론과 부스는 함께 팀을 이끌며 2023년 덴버의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경험했다.

말론과 부스의 사이를 갈라놓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팀 운영에 대한 의견 차였다.

덴버는 2023년 첫 파이널 우승 이후 꾸준히 전력 누수를 경험해왔다.

2023년 여름 FA 시장에서 브루스 브라운을 놓쳤고, 2024년 여름 FA 시장에서는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가 팀을 떠났다. 우승에 공헌한 핵심 윙 2명이 잇달아 이적한 것이다.

덴버의 파이널 우승 멤버 연쇄 이탈
브루스 브라운: 2년 4,500만 달러 인디애나행(2023년)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 3년 6,600만 달러 올랜도행(2024년)
마이클 말론 감독: 경질(2025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칼빈 부스 단장이 내놓은 대안은 '유망주 키우기'였다.

부스 단장은 크리스찬 브라운, 페이튼 왓슨, 줄리안 스트로더, 헌터 타이슨, 제일럿 피켓 등 드래프트에서 직접 뽑은 유망주를 육성해 브라운과 칼드웰-포프를 대체하길 원했다.

문제는 부스 단장의 청사진(?)에 대해 말론 감독의 불만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리핏, 우승 탈환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서 경험치가 잔뜩 쌓인 우승 공신들을 내보내고 유망주를 키워 쓰라니. 어떤 감독이라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말론 감독은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직설'의 대상이 선수든 단장이든 가리지 않는다. 실제로 말론 감독은 종종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구단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곤 했다. 이로 인해 부스 단장과 말론 감독의 사이는 계속 멀어졌다.

'야후스포츠'의 케빈 오코너 기자는 말론 감독과 부스 단장의 관계가 이미 냉전(cold war) 상태에 있었으며, 대화조차도 거의 하지 않는 상황까지 치달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스 단장 입장에서도 억울한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덴버는 모든 샐러리캡을 핵심 우승 멤버인 '빅4'에 이미 쏟아붓고 있었다.

니콜라 요키치, 자말 머레이, 마이클 포터 주니어, 애런 고든을 모두 장기 계약으로 붙잡아 뒀고, 이로 인해 덴버의 팀 연봉 규모는 사치세 라인을 훌쩍 넘어 구단 운영에 제약이 걸리는 1차 에이프런 라인도 침범한 상태였다.

덴버 '빅4'의 24-25시즌 연봉
니콜라 요키치: 5,141만 달러(리그 2위)
자말 머레이: 3,601만 달러(리그 28위)
마이클 포터 주니어: 3,585만 달러(리그 29위)
애런 고든: 2,284만 달러(리그 65위)

덴버의 심각한 샐러리 상황(4월 9일 기준)
24-25시즌 팀 연봉: 1억 8,257만 달러(리그 6위)
샐러리캡 상한선: 5,219만 달러 초과
사치세 라인: 1,176만 달러 초과
예상 사치세: 2,035만 달러
팀 연봉+예상 사치세 합계: 2억 293만 달러
1차 에이프런 라인: 564만 달러 초과

2차 에이프런 라인: 515만 달러 여유

이런 상황에서 타구단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브루스 브라운,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를 잔류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핵심 우승 멤버인 '빅4'를 잔류시킨 것만으로도 부스 단장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인 셈이다. 물론 이 선택이 자말 머레이, 마이클 포터 주니어의 불안한 내구성으로 인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말이다.

마이클 말론 감독과 칼빈 부스 단장의 갈등, 냉전 상태는 너무 오랜 시간 계속됐다.

여기에 최근 4연패에 빠지면서 팀 분위기가 침체되고, 공개적으로 선수들을 비판하는 말론 감독의 리더십 스타일에 젊은 선수들이 불만을 갖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더 이상 두고 보기 힘들었던 덴버 구단주 그룹은 정규시즌 종료를 불과 6일 남긴 상황에서 말론 감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켈빈 부스 단장과는 연장계약 포기를 결정했다.

팀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내부 갈등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덴버에 몰아치는 폭풍

앞서 언급했듯 덴버는 현재 치열한 정규시즌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부 4위에 올라 있고 3위와의 승차는 1.5경기, 5~8위 팀과의 승차는 단 0.5경기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을 해고하는 것은 평소 NBA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데이비드 아델만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지만, 구단 역대 최다승 감독이 갑자기 팀을 떠난 만큼 남은 시즌 동안 여파는 있을 수밖에 없다.

역대 덴버 감독 승수 순위
1. 마이클 말론(2015~2025): 471승(승률 59.0%)
2. 더그 모(1980~1990): 432승(승률 54.8%)
3. 조지 칼(2004~2013): 423승(승률 62.2%)

당장 남은 서부 순위 경쟁부터 문제다. 4연패에 빠져 있는 덴버는 남은 정규시즌 기간 동안 새크라멘토(원정), 멤피스(홈), 휴스턴(원정)을 만나는데 모두 플레이오프 혹은 플레이-인 토너먼트권에 있는 팀들이다.

자칫하면 연패가 더 길어질 수 있고, 순위도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치르는 7~8위까지 내려갈 수 있다. 미네소타, 클리퍼스, 골든스테이트 같은 경쟁자들의 분위기가 워낙 좋아 순위 레이스에서의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덴버가 올 시즌 우승 도전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모자라, 마이크 말론 감독과 가까운 사이였던 니콜라 요키치가 팀을 떠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말론 감독의 해고 소식을 미리 접한 요키치는 덴버 구단에 특별한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요키치는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임에도 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선수다. 하지만 자신을 유망주 시절부터 꾸준히 지지해온 감독이 갑자기 해고됐다면 요키치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요키치 시대'동안 꾸준히 서부 컨텐더로 군림해온 덴버의 미래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AND ONE: 바람 잘날 없는 감독들

올 시즌 NBA는 유난히 뜻밖의 감독 경질이 잦다.

지난 12월에는 새크라멘토가 마이크 브라운 감독을 깜짝 해고했다. 브라운은 2023년 새크라멘토의 17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명장이다.

이후 2000년대 황금기 멤버였던 덕 크리스티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고 있는데, 한때 반등하는 듯 했던 새크라멘토는 디애런 팍스 트레이드 이후 추락을 거듭하며 서부 9위에 머물고 있다.

멤피스는 지난 3월 테일러 젠킨스 감독을 경질했다. 멤피스 역시 덴버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서부 순위 레이스를 치르고 있었기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과 함께 코치로 일하며 지도력을 키워온 젠킨스는 2019년 멤피스에 부임, 팀의 '초고속 리빌딩'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멤피스를 서부 컨텐더로 발돋움시켰다.

올 시즌도 시즌 중반까지 멤피스를 서부 최상위권으로 이끌었으나, 후반기 들어 거듭된 부진 과정에서 어수선한 팀내 분위기를 수습하지 못했다. 특히 올 시즌 들어 도입한 2대2 없는 독특한 공격 전술이 슈퍼스타 자 모란트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는데, 무엇이 젠킨스를 경질하는 상황까지 이끌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멤피스는 핀란드 출신의 젊은 지도자 토마스 이살로 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기고 남은 시즌을 보내기로 한 상태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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