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이 4강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웃었다. 원동력은 특정 스팟에서 시작하는 김단비의 '단비GO' 아이솔레이션이었다.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은 3일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청주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 58-52로 승리했다.
우리은행의 승리로 끝난 1차전의 전술적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포인트1. 김단비의 적극적인 네일(nail) 지역 아이솔레이션과 KB의 수비 대형
포인트2. 허예은의 2대2를 막는 우리은행의 수비법과 허예은의 경기 내 적응도
지금부터 우리은행-KB의 1차전을 판가름한 위 두 가지 포인트 중 첫 번째 포인트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 VS KB의 노골적 스위치+코너 헬프 수비 대형
올 시즌 정규리그 만장일치 MVP에 선정된 김단비는 압도적인 1대1 능력을 가진 선수다.
우리은행은 정규리그 내내 김단비의 아이솔레이션에서 나오는 직접 득점과 파생 득점을 통해 공격을 전개해왔다.
때문에 우리은행-KB의 4강 시리즈의 최대 전술적 격전지는 당연히 김단비의 아이솔레이션과 이에 대응하는 KB의 수비법이었다.
일단 1차전을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KB의 김단비 아이솔레이션 수비법은 매우 명확했다.
1) 김단비가 포함된 우리은행의 2대2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스위치를 한다.
2) 스위치로 인해 발생된 미스매치(가드 vs 김단비)를 김단비가 정면 아이솔레이션으로 공략할 경우 메인 수비수는 김단비의 왼쪽 돌파를 막는 스탠스로 대응한다.
3) 김단비가 돌파로 페인트존 안으로 진입하면 양쪽 코너맨을 막는 송윤하와 다른 선수 1명이 헬프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우리은행의 공격 역시 약속이 분명했다.
1) 상대 스위치 수비로 인해 미스매치가 발생할 경우, 김단비는 네일 지역(nail, 자유투 라인 부근의 반원 구역)에서 적극적으로 1대1 공격을 시도한다.
2) 송윤하가 막는 선수를 비롯해 2명의 선수가 양쪽 코너에 자리를 잡으며 코트를 넓게 벌린다.
3) 나머지 2명의 선수도 김단비의 위치에 따라 양쪽 윙 혹은 탑과 윙에 자리를 잡는다.
4) 김단비가 돌파로 진입할 경우 스트롱사이드(볼이 있는 사이드)의 코너맨은 그대로 기다리며 공간을 벌리고, 윙에 있는 선수는 탑으로 이동하며 로테이션 수비의 딜레마를 만든다.


경기 장면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
우리은행이 나츠키-김단비의 2대2로 사전작업을 시작한다.

KB가 스위치로 대응, 허예은이 김단비를 막게 된다.

나츠키가 김단비에게 볼을 즉시 투입, 김단비의 네일 지역 아이솔레이션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은행과 KB의 공수 대형을 주목하자.
우리은행은 네일 지역의 김단비를 제외한 4명이 나란히 양쪽 45도와 코너에 넓게 자리잡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KB는 우리은행의 양쪽 코너맨을 마크하는 송윤하와 강이슬이 코너맨과 거리를 두고 로우 포스트에 위치, 김단비의 돌파를 막기 위한 헬프를 준비한다.
우리은행과 KB는 1차전이 진행된 40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와 유사한 공수 대형으로 맞붙었다.
KB는 김단비가 포함된 2대2에 대해 적극적으로 스위치하고→우리은행은 이 스위치로 발생한 미스매치를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으로 공략+송윤하가 막는 선수를 포함한 2명의 선수는 코너를 채우며 스페이싱하고→이에 대해 KB는 양쪽 코너맨을 막는 수비수들이 페인트존과 3점 라인 사이에 깊게 위치, 헬프를 준비하는 식으로 격전을 펼친 것이다.






김단비의 아이솔레이션은 왜 네일에서 이뤄질까?+45도 슈터의 움직임이 가진 의미
위 장면들처럼 1차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 VS KB의 스위치+양쪽 코너 헬프 싸움이 펼쳐졌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에서 파생되는 3점 찬스를 KB가 거의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단비처럼 네일 지역에서 미스매치를 공략하는 아이솔레이션을 시도할 경우 크게 2가지 강점을 얻게 된다.
1) 미스매치 발생 지역(김단비 vs KB 가드)으로 볼을 투입하기 쉽다. 네일 지역은 딥 포스트(페인트존 한 가운데)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력 디나이 수비가 어려운 지역이다.
2. 아이솔레이션을 펼치는 공격수(김단비)가 양쪽 코너, 윙, 탑 등 코트 어느 곳으로든 킥아웃 패스를 뿌리기 용이하다. 다시 말해 패스 각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우리은행은 이날 경기 내내 네일 아이솔레이션의 위 2가지 강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미스매치를 맞이한 김단비의 손에 빠르게 볼이 투입됐으며, 김단비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양쪽 코너, 윙, 탑으로 패스를 빼주며 동료들의 3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경기내내 '스페이싱 한 큰술'을 더 떴다.
45도에 있는 슈터가 김단비의 돌파 타이밍에 맞춰 탑으로 이동하는 시프트(shift) 동작을 꾸준히 활용, KB의 윙 수비수들의 로테이션 수비 딜레마를 유발한 것이다.

위 장면을 보면 김단비가 아이솔레이션을 통해 왼쪽 돌파를 시도하는 순간, 왼쪽 45도에 있던 한엄지(3번)가 탑으로 이동해 KB의 로테이션 수비를 꼬이게 만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지 화면을 통해 다시 확인해보자. 김단비가 페인트존으로 돌파를 하게 되면 우리은행의 왼쪽 코너맨을 막는 송윤하는 당연히 페인트존 안으로 깊게 헬프를 들어오게 된다.
이 경우 송윤하가 막고 있던 왼쪽 코너맨이 오픈 상태가 되는데, 이 상황에서 KB의 수비 로테이션은 왼쪽 윙의 이윤미(6번)가 자신이 본래 막고 있던 한엄지(3번)와 우리은행의 왼쪽 코너맨 사이에서 겟 투(get two, 2명의 볼 없는 공격수를 동시에 체크하는 것) 수비를 펼치다가 코너로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왼쪽 윙의 한엄지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탑으로 이동, 자신과 왼쪽 코너맨 사이의 거리를 벌리면서 KB의 로테이션 수비를 더 확실하게 무너뜨린다.

결국 이윤미가 왼쪽 코너를 커버하기 위해 달려가고, 한엄지가 탑으로 이동, 김단비가 한엄지에게 볼을 주는 순간에는 한엄지가 어떤 수비수와도 가까이 있지 않는 완벽한 와이드 오픈 3점 찬스를 얻는다.
이날 우리은행은 1)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 2)양쪽 코너 슈터들의 코너 채우기, 3)김단비의 돌파가 이뤄지는 타이밍에 스트롱사이드에 있는 45도 슈터의 탑 방향 이동을 통해 끊임없이 좋은 3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KB가 이런 식으로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에 직접 돌파 득점을 허용하거나 다른 선수들에게 파생 3점을 주는 고집스럽게 와중에도 같은 수비를 고집한 것이다.
3쿼터 중반까지만 봤을 때 KB의 이런 운영은 리스크가 너무 큰 도박 같았으나, 이후부터 그 효과가 드러났다.
KB의 노골적인 스위치를 공략하기 위해 김단비가 아이솔레이션을 시도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김단비의 체력과 집중력이 조금씩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우리은행 슈터들이 김단비가 만들어준 3점 찬스를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KB의 공격이 살아나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묘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승부처였던 4쿼터 중반, KB는 김단비가 포함된 2대2에 대해 쉽게 스위치를 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블리츠 수비(2대2 수비에서 핸들러 수비수와 스크리너 수비가 핸들러를 강하게 압박하는 기습적인 트랩 수비)를 연달아 펼치며 우리은행의 턴오버를 유발했다.

위 장면을 보면 우리은행이 김단비의 스크린을 통해 미스매치를 유발하려고 하는데, 이에 대해 KB가 스위치를 하지 않고 나츠키에게 더블팀을 가는 블리츠 수비를 펼치고 허예은이 나츠키에서 나가는 패스를 끊어내며 실책을 유발한다.
KB의 이 스틸은 송윤하의 트레일러 3점으로 연결되며 경기를 순식간에 7점 차로 만들었고, 이후 KB의 추격 원동력이 됐다.
이 장면 후에도 KB는 계속 블리츠 수비를 시도했고, 당황한 우리은행의 턴오버를 유발했다.
정리하면 1차전에서 KB는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 공격을 상대로 당할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스위치 수비+코너 헬프 수비를 고집했다.(매치업이나 수비 대형 면에서 40분 내내 끌고 갈 만한 다른 수비법이 없었을 수도 있다. 김단비의 네일 아이솔레이션을 활용한 우리은행의 공격이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인내 끝에 승부처였던 4쿼터 중반에 기습적으로 전혀 다른 수비를 펼치며 우리은행의 턴오버를 유발, 추격에 제대로 불을 지필 수 있었다.
1차전이 끝난 후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KB스타즈가 4쿼터 추격에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2차전에 모든 사활을 걸 것이라 생각한다"고 괜히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2차전에서 KB가 김단비에 대해 동일한 수비(스위치+코너 헬프)를 활용하며 도박수를 계속 던질지, 혹은 4쿼터 중반부터 기습적으로 활용한 블리츠 수비와 같은 다른 수비법을 가져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AND ONE: 허예은은 어떻게 후반에 활약할 수 있었나
글 초반에 언급한 1차전의 두 가지 전술 포인트 중 두 번째 포인트에 대해 짧게만 언급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정규리그 막판 맞대결에서 우리은행은 허예은의 2대2 게임에 대해 블리츠 수비를 펼쳤던 바 있다. 그리고 허예은이 정규리그 내내 가장 많이 상대했던 수비는 스위치 수비였다.
하지만 이날 4강 1차전에서 우리은행은 허예은의 2대2를 막기 위해 전혀 다른 수비를 가져왔다. 하이 드랍(스크리너 수비수가 3점 라인 바로 안쪽 혹은 엘보우 같은 높은 위치에 처져 있는 수비) 혹은 쇼(show, 스크리너 수비수가 핸들러 수비수 앞에 나타나되 일정 위치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압박 역시 강하게 하지 않는 수비)가 수비였다.


우리은행이 위처럼 1차전에서 갑자기 스크리너 수비수의 위치를 아래 쪽에 두는 수비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허예은의 미드레인지 공간 진입을 막을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허예은의 주요 2대2 파트너인 송윤하가 페인트존으로 뛰어들어 갈때 패스를 줄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 들어 허예은은 우리은행의 이 같은 수비에 결국 적응했다.
과감한 풀업 3점과 리젝트 스크린 돌파(스크린 반대 방향으로 기습적으로 돌파하는 것. 1차전에서 우리은행이 펼친 드랍 수비는 스크리너 수비수가 핸들러의 예상 돌파 동선 아래 쪽에 미리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기습적으로 스크린 반대로 치고 들어가는 돌파에 취약하다.)로 득점을 쏟아냈다.
허예은에게 후반에 크게 당한 우리은행이 2차전에서도 같은 수비를 유지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1차전처럼 드랍백이나 쇼 수비를 그대로 가져가되 중요한 상황에서만 기습적으로 스위치를 하거나 블리츠로 허예은을 무너뜨리는 수비를 펼칠 수도 있고, 아예 수비 전략 전체를 뒤바꿀 수도 있다.
2차전이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경기인 이유가 여기 또 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WKBL 중계화면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