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대학리그는 고려대의 우승으로 끝났지만 결승까지 진출하며 저력을 뽐낸 건국대의 행보도 참 인상적이었다. 3년 동안 2번의 챔프전 진출을 기록하며 강호로서 맹위를 떨친 건국대. 코치로서 17년째 황소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문혁주 코치의 존재감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시즌이 완전히 끝난 뒤 문혁주 코치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본 기사는 루키 2025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건국대 코치로 17년
선수, 코치를 포함해 건국대와 2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문혁주 코치가 처음 건국대를 만난 것은 대경상고-건국대 선배이자 블루워커로 프로에서 장수한 변청운의 영향이 있었다. 그를 롤모델로 삼은 문 코치는 운명처럼 건국대 입학을 선택했다.
“제가 농구를 하면서 ‘이 선수를 따라해야겠다’고 싶었던 선배가 두 명 있었어요. 한 명은 현주엽 선수였고 한 명은 모교 선배인 변청운 선수였는데 어떻게 보면 제게 많은 모티브를 주셨어요. 키가 큰 편이 아닌데 힘도 좋고 슛도 좋고 프로에서도 장수하셨잖아요. 근데 제가 고등학교 때 그 선배님이 건국대에 계셨고 그래서 ‘내 갈 길은 건국대다’라고 마음을 먹었죠.”
대학 생활을 마치고 2002년 드래프트를 통해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입단한 가운데 문 코치의 프로 생활은 비운의 부상 여파 탓에 길어지지 못했다. 군복무 막바지에 큰 부상을 당한 문 코치는 현역 생활 연장 대신 모교의 코치직 제의를 수락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상무에 가서 농구의 길도 보이고 자신감을 얻었는데 하필 말년에 연습경기에서 무릎을 크게 다쳐버렸어요. 제가 한쪽 무릎 연골이 지금도 아예 없거든요. 재활하는 과정에서 모교인 건국대에서 코치직 제안이 와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건국대 코치라는 것도 모든 건국대 농구인 중에 한 명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당시 제가 나아가고 싶은 목표 중 하나가 모교 코치였고 그때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죠. 그래서 과감하게 은퇴하고 지도자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감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문혁주 코치는 건국대에서만 17년째 지도자 역할을 맡으며 오랜 시간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황준삼 감독과는 벌써 감독과 코치로 17년째 합을 맞추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라는 말이 딱 떠오르는 관계다.
“올해로 황준삼 감독님과는 17년째가 됐어요. 감독과 코치로서는 가장 오래됐을 것이고 황 감독님도 한 팀에서 최고로 오래 장수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대충 분위기만 봐도 뭘 원하시는지 파악할 수 있죠. 제가 성격상 미리 완벽하게 해서 지적받지 않으려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잘 맞는다고 많이들 말씀을 해주세요.”
”지금이야 감독님께서 저를 많이 믿으시니까 권한도 많이 주셨지만 과거에는 감독님께서 직접 다 하셨거든요. 아직도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 같은 건 부족해서 감독님께 많이 배우려고 해요.“
최근 건국대가 대학리그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는 역시 휘문고 출신 듀오 조환희와 프레디였다. 2024 대학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을 펼친 조환희는 드래프트를 통해 1라운더로 수원 KT 유니폼을 입었다.
”저는 선수들에게 항상 프로에 지명되서 왜 대학 시절 나와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느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프로에서는 진짜 운동에 더 집중하는 환경이고 레벨도 훨씬 높잖아요. (조)환희랑 트러블도 많았지만 대학 때보다 프로에 간 이후로 연락을 더 많이 해요.(웃음) 알게 모르게 서로 애정이 컸나봐요. 앞으로도 애증의 관계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콩고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프레디는 건국대 골밑의 기둥이자 대학 최고의 빅맨이다. 특히 KBL 규정의 변화로 드래프트 참가가 더욱 수월해지면서 그를 향한 농구 팬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가까이 지내면서 농구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프레디와 많이 호흡하고 있는 문 코치의 생각은 어떨까?
”프로에서 외국 선수들과만 같이 있어 봤지 가족처럼 지내는 건 처음이니까 프레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칭찬만 많이 해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적할 땐 지적해주고 방식을 많이 바꿨어요. 이젠 프레디가 거의 한국 사람이 됐어요. 한국말도 엄청 잘해요. 가끔 본인이 불리한 것만 모른다고 그러죠.(웃음) 듣는 건 다 알아듣고 성격도 우리나라 일반 대학생이랑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사실 다른 매체 기사로도 나갔는데 이번에 프레디가 발전이 더뎌서 엄청 많이 지적했어요. 근데 최근에 홍콩에서 열린 2024 아시아 대학농구 챌린지에 갔을 때는 제일 만족한 게 환희도 빠지고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프레디가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였어요. 1대1을 장신 상대로 계속 시켰는데 너무 만족했어요. 프레디는 주도적으로 연습하면 확실히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에요. 훈련할 때의 몰입도를 더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에 가서 대학보다 더 전문적으로 운동을 많이 시킨다면 충분히 급성장할 선수라고 생각해요. 슛도 쏠 줄 알고 스텝이나 포스트업도 나쁘지 않아요. 하라고 주문하면 다 해냅니다. 외국 선수가 아니라 국내 선수로 가는 거니까 누구보다도 활용 가치가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프로에서 원하는 건 몸싸움인데 프레디는 정말 힘도 좋고 그걸 잘하는 선수에요.“

”건국대 농구부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2024년 건국대는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뒤 플레이오프에서 경희대, 연세대를 꺾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2년 전 창단 후 처음으로 대학리그 챔프전 무대를 밟은 이후 또다시 이뤄낸 성과. 고려대와의 결승도 3쿼터까지 리드를 잡는 등 비록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건국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솔직히 8강 경희대 전이 더 고비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8강에서 경희대를 만났는데 정규리그에서 두 번 다 이겼었거든요. 환희가 없었을 때도 이겼으니까 선수들이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하는 거죠. 엄청 밀리니까 전반 끝나고 선수들에게 엄청 뭐라고 했어요.(웃음) 공든 탑이 무너지면 우리는 강팀이지만 이 경기로 약팀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서 팀 목표가 한 번에 끝날 수도 있다고 엄청 꾸짖었더니 다행히 후반에 역전하면서 이길 수 있었죠.“
”2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연세대랑 붙었던 거랑 이번에는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이번에는 정말 이기러 갔거든요. 그리고 고려대와의 결승도 이기려고 갔는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줬어요. 저의 부족함이 많이 나왔고 느낀 게 많은 대회였어요. 제일 크게 느낀 건 강팀이 되려면 부상자가 없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2024 드래프트의 가장 큰 화두는 얼리 참가였다. 9명이 얼리로 프로의 문을 두드린 가운데 고졸 얼리 선수들 또한 많이 나왔다.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지도자로서 문 코치도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을 터. 그러면서도 일단 학교에 입학하는 선수를 지도하는 데 집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타 종목은 고등학교에서 프로를 가잖아요. 그렇지만 농구는 유일하게 그게 쉽지 않은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경험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올해 1순위인 박정웅처럼 누가 봐도 능력이 있는 선수는 당연히 얼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서 적응하고 이겨내는 것도 자기의 미래니까 본인이 감당할 몫이죠. 실력이 충분한 선수들은 감당하고 나가도 괜찮다고 보는데 거기에 휩쓸려서 가는 건 반대입니다.“
”요새는 대학에서 1~2년을 뛰고 얼리로 나가겠다고 해도 지도자가 막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적극적으로 나가겠다는 뜻을 보여주면 소통해서 도움을 줘요. 선수가 나가면 프로 구단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부족한 게 무엇일지 이야기하면 도와주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죠. 대학에 와서 1~2년 정도 더 경험하고 좋은 모습으로 발전해서 프로에 갈 수도 있는데 갑자기 휩쓸려서 빠져버리는 선수가 많아질까 걱정도 있습니다. 사실 프로에서 대학 선수 3년 키우느니 고졸 3년 키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는 해요. 결국 프로 구단에서 선택할 일이고 저는 건국대에 오는 선수들을 열심히 지도해서 좋은 선수를 만드는 게 목적이죠.“
여러모로 쉽지는 않은 환경이다. 선수들은 운동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과 대학 생활을 병행한다. 일단 훈련을 진행할 체육관 사용부터 프로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많지 않은 시간에도 분명히 배움은 있다.
”학교 수업들이 있어서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운동할 수 없는 환경이에요. 소모임 클럽들도 월요일엔 체육관을 사용하니까 화, 수, 목, 금 저녁에만 운동할 수 있는 거죠. 변칙 수비나 팀 전술 연습하기도 시간이 빡빡한데 개인 역량까지 신경 쓰기는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래서 제가 정말 선수들에게 라떼 이야기하지 않는데 새벽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금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때가 하나의 개인적인 발전 시간이 된 거죠. 그리고 팀 훈련 시간에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지도하려고 노력하고요.“
2023년 드래프트에서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박상우는 소감을 말하던 중 문혁주 코치에게 절을 올리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해당 장면은 동영상으로 널리 퍼지며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문 코치는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인성과 소통을 꼽았다.
”(박)상우 소감보고 부끄러웠어요.(웃음) 드래프트만 하면 유튜브 쇼츠로 그게 많이 뜨더라고요. 드래프트 끝나고 뵙는 학부모님들마다 감동이라고 말씀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까 고마운 일이죠. 10명 중에 모든 선수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진 않지만 그래도 다 같이 고생하는데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면 정말 고맙고 제가 지도하면서 더 흥이 나는 거죠.“
”지도자로서의 철학이요? 무조건 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국대 농구부는 우리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어요. 건국대만의 끈끈함이 있고 어디 가서 인성이 나쁘다고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인성만 강조하지는 않아요. 인성만큼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선수들과 질릴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하고 소통을 많이 하려고 하거든요. 전술을 알려줄 때도 말을 잘하고 이해를 잘 시켜서 좋은 전술로 만들어야지, 아무리 좋은 전술도 소통이 안 되면 팀에 녹아들지 않거든요.“
”지도자로서의 첫 번째 꿈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모교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언젠가 사건, 사고가 없다면 그리고 황 감독님께서 자연스럽게 물러나시면 제가 감독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잖아요. 지금도 열심히 감독님 밑에서 노력하고 있고 팀이 잘 나가고 있지만 건국대 농구부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제 밑에 물려줄 친구한테 제가 가졌던 꿈을 똑같이 가질 수 있게 팀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팬들께는 너무 감사합니다. 매번 홈 경기를 할 때마다 팬들께서 체육관을 꽉 채워주세요. 서포터즈나 응원단에서 열심히 해주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홍콩에 다녀왔다고 공항에 마중 나오신 팬들이 열 분 이상 계시더라고요. 큰 관심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그 팬들께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선수들이 동기부여를 얻어서 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팬이 있기에 선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문혁주 코치 프로필 ///
생년월일 : 1979년 6월 15일
출신학교 : 송전초-잠신중-대경상고-건국대
프로 입단 : 2002년 드래프트 2라운드 7순위(대구 동양)
지도자 경력 : 건국대학교 코치 (2008~현재)
사진 = 최수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