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코치는 현역 시절 한국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지도자로서도 위성우 감독을 잘 보좌하며 우리은행 왕조 설립에 기여, 명품 농구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 속에 일본 선수들의 통역 역할까지 맡은 전 코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 우리은행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본 인터뷰는 11월 중순 이뤄졌으며, 루키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우리은행의 새로운 출발, 그리고 '통역' 전주원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우리은행. 하지만 기쁨의 순간도 잠시, 우승 멤버들이 이적 시장에서 대거 팀을 떠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팀이 됐다. 박지현은 해외 진출에 나섰고 박혜진, 최이샘, 나윤정 등은 FA로 이적했으며 고아라와 노현지는 은퇴했다.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로스터를 채웠지만 리그를 호령했던 이전보다 전력이 약해진 건 분명했고,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전반기를 마친 시점에서 단독 2위로 예상보다 순항하고 있다. 

위성우 감독, 임영희 코치와 함께 변화된 팀을 이끌고 있는 전주원 코치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승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가진 역량은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 구성이 확 바뀌면서 저조차도 새로운 팀에 온 것 같았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독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까지는 몸을 만들고 기본적으로 우리은행에 대한 분위기를 습득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가 훈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3~4개월 동안 많은 게 바뀌기는 힘들어요. 선수가 1~2명만 바뀐 것도 아니고 그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요.” 

“아직은 코칭스태프 입장에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시즌을 치르면서 고쳐나가야죠. 김단비와 이명관이 남아있지만 명관이는 이제 팀에 온 지 2년차고 기존에 있던 선수가 거의 없다는 뜻이에요. 감독님 농구를 한 번에 척하면 탁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아직은 없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쌓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도 멤버가 좋을 때는 우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셨을 거에요. 제가 볼 때도 지금의 멤버가 과거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고 저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전 코치는 코치 역할 외에도 새로운 직책이 생겼다. 바로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통역. 우리은행은 처음으로 도입된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스나가와 나츠키, 미야사카 모모나를 지명했고 일본어에 능통한 전 코치가 통역을 맡아 두 선수의 소통을 돕고 있다. 라이브로 진행된 중계방송 인터뷰에서도 찰떡 호흡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가 통역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왜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를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세요.(웃음) 일본 선수들이 감독님께서 본인에게 직접 하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다 알고 싶어 해서 그런 것들을 다 설명하니까 말이 많아져요. 선수 이후에 라이브 인터뷰도 14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버벅대느라 한국어도 떠오르지 않았죠. 그래도 좋게 봐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농구 스타일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 바로 피드백이 되는 건 선수들이 좋게 느끼고 있어요. 감독님께 여쭤보지 않아도 제가 고쳐줄 수 있는 건 바로 잡아주니까 좋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두 선수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요. 생활적인 면에서는 매니저나 선수들이 잘 챙겨주고 체육관에서나 다른 문제는 제가 봐주는데 굉장히 착해서 팀에 잘 녹아들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위성우 감독은 최근 공식 인터뷰에서 스나가와와 미야사카에 대해 “한국 선수들이 배워야 한다. 연습도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런 분위기가 팀이 강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지 않나 싶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 코치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의 순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기들이 잘 잡혀 있어요. 저희 팀의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키가 작아서 그런지 스피드가 좋아요. 그리고 연습할 때 100%를 다 쏟아내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아시아쿼터 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일본 선수들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하고 또 새로운 게 있잖아요. 같은 아시아 국가지만 한국이랑 일본이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선수들이 그런 부분을 배우고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일본과의 격차요? 이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야 해요.(웃음) 농구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운동을 하는 종목 자체가 적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본에 많이 밀릴 수밖에 없고 그래도 없는 인원에서는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냉정하게 일본과 중국이랑 비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고등학교 경기에서는 5반칙 퇴장으로 인원이 없어서 몰수패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잖아요. 운동을 할 수 있는 인원 자체가 부족한 본질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지도자로서 중요한 건 신뢰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코칭스태프로 합을 맞춘 지도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한은행에서 한 시즌을 같이 보낸 뒤 우리은행에서만 12년째 한솥밥을 먹으며 암흑기를 청산하고 왕조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내부에서 바라본 위성우 감독은 어떤 느낌일까?

“가르치는 내용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감독님 자체가 굉장히 섬세하시고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도 있고 밀당을 굉장히 잘하세요. 줄 건 주고 당길 때 당기는 걸 잘하셔서 선수의 능력을 120% 끌어내시는 데 그런 걸 감명 깊게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게 시합 때 작전으로 나오는 것도 위 감독님께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대충은 알겠다?’ 정도는 되는데 사실 아직도 배울 게 더 많아요. 농구가 하면 할수록 참 어렵답니다.(웃음) 제가 부족하지만 감독님 옆에서 잘 보좌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전 코치는 우리은행 소속이 익숙하지만 현역 시절 한 구단에서만 활약했던 레전드다. 코치로서 우리은행으로 팀을 옮길 때만 해도 여자농구 팬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한 과감한 결정의 바탕에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통해 더 배우기 위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현역 시절에 한 번도 팀을 옮긴 적이 없어요. 코치로 신한은행에 계속 있었다면 프랜차이즈 선수로 받았던 대우를 그대로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우리은행으로 옮기면 코치로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실패하면 신한은행에 있어도 실패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때 당시 신한은행은 워낙 선수 구성이 좋았기 때문에 제가 굉장히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팀이었거든요. 오히려 더 많은 걸 코치로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심을 했는데 굉장히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저로서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선수에 이어 코치까지. 전 코치가 농구계에서 활약한 시간만 해도 상당하다.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 전 코치는 현역 시절 자녀 출산 이후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 리그 정상급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필자에게 농구 선수 전주원의 첫인상은 ‘엄마 농구 선수’이자 ‘MVP’였다.

“가족의 희생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저희는 시합이 있으면 집에 가지도 못하는 특수한 직업이잖아요.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셨고 남편도 도움을 많이 줬어요.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거라고 봐요.”

“사실 출산하고 복귀할 생각은 없었어요. 출산 이후에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선입견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고 대단한 커리어는 아니지만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망설였었죠. 회사에서 오래 설득을 하셨고 당시에 팀도 어려움이 있으면서 복귀를 결정했는데 다행히도 제가 6년을 더 뛰었어요. 어릴 때 우승을 많이 못했는데 6년 동안 트로피를 많이 들면서 보답받는 시간으로 다가왔어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복귀했는데 못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집중력이 너무 좋아져서 오히려 전투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어요. 복귀 첫해에는 제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의 정신력이었어요. 몸 관리만 잘하면 30대 초반에 출산하더라도 재능은 솔직히 쓰는 게 좋은 거잖아요. 출산 후 복귀, 저는 충분히 추천할 수 있어요. 엄마로서 가지는 책임감도 있거든요. ‘엄마가 이러려고 널 두고도 나왔어’라고 자신 있게 말도 할 수 있어요.”

전주원 코치가 지도자로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은 지도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의 신뢰였다. 아무리 대단한 지도자라도 선수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지금까지도 농구와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낸 전 코치는 가진 걸 나눠주면서 본인에게 배운 선수들이 잘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가르치면서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모든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신뢰에요. 인간적인 신뢰든 기술적인 신뢰든 그게 없다면 믿고 따라올 수 없잖아요. 농구에 대해 기술적 신뢰가 없다면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거고 인간적인 신뢰가 없다면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수들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큰 목표로 제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작지만 가진 걸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농구장에 계속 있는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했던 게 농구잖아요. 배워온 걸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그 선수들이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우리은행이 왕조 시절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즌 초반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은 분명히 희망적이다. 전 코치는 왕조를 다시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지만 팬들의 응원을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은행이 다시 왕조에 갈 때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어쨌든 계속 위로만 올라갈 수는 없잖아요. 올라가면 내려가는 길이 있듯이 지금은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려오는 게 길지 않을 거라고 보고 다시 올라가는 게 언제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올라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우리은행을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코트에서 굉장히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저희에게는 굉장히 큰 힘이 되니까 체육관을 직접 찾아주셔서 우리은행 농구단 선수들 열심히 응원해주시면 코트에서 열심히 보답하겠습니다!”

사진 = 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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