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사람이 한 직장에서만 20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프로농구계에서 이와 같은 일은 더욱 힘들다. SK 김기만 수석코치는 한 구단에서 선수, 전력분석, 코치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팀에 기여하고 있는 공신이다. 2010년대 이후 KBL의 강호로 도약한 SK와 오랜 시간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김기만 코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본 인터뷰는 2024-2025시즌 정규리그 개막 전인 10월 중순에 진행했으며 루키 2024년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그게 제 천직이었어요
김기만 코치가 본격적으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다른 선수들과 조금 달랐다. 중학교 시절부터 농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됐고, 1년을 유급하면서 기본기를 쌓았다. 처음으로 실전 경기에 출전한 게 고등학교 3학년 때였지만 그는 명문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고 일찌감치 3&D 방면에 특화된 훈련을 받은 게 도움이 됐다. 고려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이는 김 코치가 추후에 지도자 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고려대학교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농구를 했고 지도자분들도 그쪽으로 연구를 많이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4~5번 포지션을 봤는데 지도자분들이 3번까지는 봐야 대학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당시 워낙 뛰어났던 멤버에 저는 처음부터 3&D 쪽으로 많이 특화되게 훈련을 했죠.”
“코치님들이 수비 쪽으로 재능을 보신 거죠. 패스 나오는 거 슛 쏘고 터프하게 수비해주고 리바운드 해주고 거기서 자라면서 하나씩 더 만들어보자는 콘셉트로 갔어요. 당시에 제가 2대2를 하거나 다른 포지션을 볼 능력도 안 됐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시는 역할대로 했죠. 그때 멤버가 워낙 좋았고 저는 터프하게 포지션에 맞춰서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던 거 같아요.”
프로에 입단한 뒤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팀에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해왔던 김 코치는 2005년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방성윤-조상현이 포함된 KTF와 SK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이후 김 코치는 SK에서만 20년 가까이 커리어를 쌓아오게 됐다.
당시 스타 플레이어가 많았던 SK에서 김 코치의 3&D 재능은 더욱 빛을 발했다. 득점보다는 수비 성공이나 리바운드 다툼에서 승리했을 때 큰 쾌감을 느꼈다.
“어느 선수나 통보를 받는 입장에서 서운함이 없지 않거든요. 근데 SK에 오니 워낙 반겨주셨고 당시 김태환 감독님이 저를 좋아해주셨어요. 그러면서 기대도 되고 반갑기도 했어요.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서운했지만 숙소가 있는 양지에 도착해서는 기분 좋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SK에 처음 왔을 때 멤버 구성이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각자 개성도 강했고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의 갭이 있었어요. 중간 가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고 농구에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도 필요한데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수비하면서 오는 찬스 받아서 쏘는 소위 말해서 3&D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희한하게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3&D 플레이를 제가 좋아했더라고요. 화려한 플레이가 아니라 스틸하고 공격 리바운드 하는 게 제게는 그렇게 희열이었어요. 그러니까 고충이라기보다는 이 포지션이 내겐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어요. 잘한다고 칭찬 들으면 더 수비하고 스크린 열심히 서려고 했죠.”
선수 생활을 더 할 수도 있었지만 김 코치는 2010년 현역 은퇴 후 전력분석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전력분석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현재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은퇴할 시점에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은퇴할 때 당시에는 사실 아쉬웠어요. 저는 말년에 부상도 있었고 일찍 은퇴한 케이스인데 트레이드로 SK에 와서 내년이면 이제 20년째가 되거든요. 그래도 은퇴를 일찍 하긴 했지만 구단의 배려 덕분에 문경은 전 감독님과 전희철 감독님 밑에서 전력분석도 하고 공부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은퇴하고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는 사실 ‘선수로 1년만 더’라는 마음이 커서 지도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전력분석을 하면서 농구를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그때 당시에는 카메라 들고 가서 찍으면서 보고, CD로 전환하면서 보고, 편집하면서 보면서 한 경기당 세 번씩 찾게 되니까 농구 보는 게 늘 수밖에 없더라고요.”

SK는 내 자랑
2010년대를 거치면서 SK는 리그의 강호 중 하나로 군림하게 됐지만 김 코치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은 달랐다. 화려한 멤버 구성에도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탓에 모래알 군단이라는 오명까지 있었다. 이를 바꾼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문경은 감독님과 전희철 감독님의 확실한 기조가 있으세요. 우리가 선수로 모래알 조직력을 만들었으니, 그래서 뭐가 잘못인지는 아니까 바꿔서 팀을 잘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개개인의 성향을 버리고 팀을 만들어보자는 방향이었어요. 무조건 협상이나 변명 없이 선수들에게 맞춰주지 않고 따라오도록 이끌었어요. 물론 지금은 이전처럼 강하게 하면 반감이 생기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유하게 바뀌기도 했지만 큰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하되 규율, 규칙은 정확하게 지키는 게 저희 팀에 내려오는 문화에요. 생활 백서? 쉽게 말하면 법전 같은 게 있어요. 하면 안 되는 걸 거기에 쭉 적어놓고 페널티도 있는데 예를 들면 2번 이상 지각했을 때 1분당 1만원 이런 식으로 하는데 선수들도 그걸 지키려고 하고 한 번도 그 규율을 거스른 적은 없어요.”
최원혁, 최성원, 이현석, 오재현 등 SK는 유독 최근 들어 수비에 특화된 선수들이 본인의 장점을 살려 빛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는 현역 시절 수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김기만 코치의 공이 적지 않다. 그만의 특별한 선수 육성 비결이 궁금했다.
“다른 코치들도 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저는 보이더라고요. 얘를 들어 이 선수가 이 포지션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요.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방향을 잡아주죠. 날 믿고 따라오라고 하고 그 친구들도 제게 믿음을 줬어요. 예전에 지도자분들이 제게 방향을 잡아주셨던 것처럼 이렇게 해보자고 하고 영상을 많이 보여주면서 세세하게 짚어줬죠.”
“선수들이 주기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따라와 주고 저만의 또 특화된 훈련법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발이 빨라지는 훈련 같은 걸 선수들이 잘 이겨냈고 훈련에 대해 재미를 느끼면서 전파가 되더라고요. ‘야 이거 재밌는 것 같다, 같이 해보자’ 이런 식으로 케미스트리가 있었어요.”
선수부터 전력분석, 코치까지. 2025년이면 SK에서만 20년이 되는 김기만 코치에게 나이츠는 단순 직장 이상의 의미다. 대학 선후배 사이이자 팀에서도 장기간 합을 맞추고 있는 전희철 감독 또한 눈만 마주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SK는 제게 어떤 존재냐고요? 그건 말로 표현 못하죠. 제 자랑이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어쨌든 20년 가까이 버틴 거니까요. 오랜 시간 지켜봐주신 구단에도 감사하고 그저 제 몸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길거리에서 만나면 고려대학교 김기만 선수 아니냐고 하셨는데 이제는 SK 김기만 코치라고 하세요. SK에 몸담은 추억들은 제 자랑거리죠.”
“감독님도 이제 저를 보시면 행동 하나하나가 다 보이실 거예요. 네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겠다고 하시지만 저 또한 감독님 표정만 봐도 다 알거든요.(웃음) 그래서 너무 잘 아니까 미리 조심하는 것도 있죠. 대학 때부터 봐왔지만 머리 한 번 흐트러짐 없이 정말 철저하신 분이세요. 20년 동안 한 번은 흐트러질 수 있는데 훈련에 못 나오거나 지각하거나 그런 거 단 한 번도 없이 철저하신 분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지 못하면 거기 따라갈 수 없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죠.”
오랜 시간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온 김 코치의 지론에는 ‘코트에 나올 땐 행복하게’라는 모토가 깔려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수들에게 패기와 열정을 주입하는 것, 코치로서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강조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월요병이죠. 주말 쉬면 회사가기 싫고 그런 게 있잖아요. 저도 선수들과 훈련해왔지만 체육관에 나가는 게 싫으면 아무리 훈련을 해도 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체육관에 재밌게 나와야 한다는 그런 주의에요. 그러면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진취적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항상 코트에 나올 땐 행복하게. 안 좋은 일이 있는 선수가 있으면 미리 가서 커피 마시면서 기분도 풀어주고 에너지가 발산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한 번도 코트에 나와서 윽박을 질러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지도자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행복하고 즐겁게 코트에 나와서 훈련하자는 게 모토에요.”
“그러면서 또 좋은 분위기 속에 선수단에 패기와 열정을 주입하는 게 중요해요. 결국 경기에 이기고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필요한 것들이거든요. 그리고 또다른 중요 포인트는 메모인 것 같아요. 항상 중요한 사항들은 메모하면서 잊어버리지 않는 게 코치 생활하면서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전희철 감독 체제 첫 2년 동안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저력을 과시했던 SK는 지난 시즌 지독한 부상 악재와 빡빡한 일정 속에 다소 힘겨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준비 과정부터 조금 다르다. SK가 자랑하는 8주 지옥 훈련 시스템을 선수들이 잘 소화했고 충분히 장기 레이스를 치를 힘을 비축했다.
김 코치 또한 선수들이 흘린 땀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번 시즌에는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팬들을 향한 메시지도 전달했다.
“일단 부상들이 있었고 EASL에 다녀오니까 시즌 중후반에 확 떨어져 버리더라고요. 해외에 나가서 EASL 뛰고 오니까 몸이 무거운 게 보이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더 선수들의 케미스트리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EASL 병행과 부상을 겪으면서 힘든 시즌을 치른 것 같아요.”
“지난 시즌은 5월에 챔프전이 끝나고 휴식기를 갖고 7월에 몸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너무 짧았어요. 우리는 8주 체력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럼 충분히 두 달은 훈련을 하고 최소 2주는 농구를 하고 전지훈련을 가하는데 6주 밖에 못하고 가니까 재활, 보강이 약한 상태에서 시작한 탓에 초반에 삐거덕거리고 몸이 확실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올해는 8주 훈련 다 소화했고 잔부상자는 조금 있지만 선형이도 이미 시즌 한 달 전에 몸이 다 만들어졌고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이 뿜뿜 하죠.”
“이제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팬들이 만족할 만한 농구를 하기 위해서 여름 내내 엄청 노력했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부상 없이 올 시즌 잘 치를 수 있도록 응원 많이 부탁드리고 그런만큼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기만 코치 프로필
생년월일 : 1976년 3월 13일
포지션 : 포워드
출신 학교 : 상도초-명지중-명지고-고려대
프로 입단 :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골드뱅크 지명

사진 = 이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