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천재 가드’ 크리스 폴(32, 183cm)의 커리어가 큰 위기에 처했다. 어느덧 데뷔 12년차의 베테랑 선수가 됐지만, 폴은 아직 파이널 무대는커녕 지구 준결승 무대도 통과한 경험이 없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만 32살. 이제는 그에게도 시간이 없다. 과연 크리스 폴은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 것인가?

 

▶ 반복되는 실패, 위기에 처한 천재 가드

사실 크리스 폴은 커리어 전체를 ‘우승 도전기’로 요약해도 될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 폴이 속하는 팀이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단 세 번. 그나마 두 번은 데뷔 직후 첫 두 시즌이었고, 특히 LA 클리퍼스로 이적한 이후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사실 뉴올리언스 시절의 폴은 ‘소년 가장’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의 곁에는 데이비드 웨스트, 타이슨 챈들러, 페자 스토야코비치 등 좋은 선수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폴과 함께할 당시 이들의 기량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 만큼 탁월하지는 않았다. LA 레이커스가 코비 브라이언트와 파우 가솔,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팀 던컨 ‘빅 3’를 앞세워 서부지구를 장악하던 시절이었다. 폴 혼자의 힘으로 이들을 누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세 차례의 플레이오프 진출, 그리고 두 차례의 1라운드 탈락. 그나마 1라운드를 통과한 2008년에는 샌안토니오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7차전 승부 끝에 시즌을 마감했다. 2011년에는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를 넘지 못하고 2승 4패로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반복되는 실패에 지친 폴은 결국 결단을 내린다. 구단에 공식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과정이 순탄하지 못했다. 많은 팀들이 리그 최고급 포인트가드 폴에 관심을 보였고, ‘리그 3연패’ 도전에 실패한 뒤 로스터 변화를 꾀하던 레이커스가 2011년 12월 ‘폴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구단주가 없었던 뉴올리언스는 NBA 사무국이 임시 구단주 역할을 하던 상황이었다. 데이비드 스턴 前 총재는 구단주의 자격으로 트레이드를 거부했고, 결국 폴의 레이커스行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폴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흘 뒤, 폴은 새로운 행선지를 마침내 찾게 된다. 바로 레이커스의 연고지 라이벌 LA 클리퍼스였다. 블레이크 그리핀이라는 라이징 스타를 중심으로 만년 꼴찌 이미지를 탈피해가고 있던 클리퍼스는 폴과 그리핀, 디안드레 조던 3인방을 중심으로 우승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6년 동안 폴의 행보는 순탄치 못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사건이 터졌다. 2014년 플레이오프 중에는 당시 구단주였던 도널드 스털링의 인종 차별 발언 녹취 파일이 공개되면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2016년에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 시리즈 도중 폴 본인과 그리핀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탈락했고, 2017년에는 그리핀이 또 한 번 시즌-아웃되면서 다시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5년에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3승 1패로 휴스턴에 앞서며 생애 첫 지구 결승 무대를 눈앞에 뒀지만, 5차전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너무나 아쉽게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하다. 폴은 이미 올스타 선정 9회, 올-NBA 팀 선정 8회(퍼스트 4회),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선정 6회, 올스타 MVP, 어시스트 1위 4회, 스틸 1위 6회 등 거의 모든 개인 수상 부문을 휩쓸었지만, 정작 우승 문턱에는 다가서지도 못했다. NBA는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할 때 우승이 유난히 높은 가치를 가지는 리그다. 그런 폴에게 12년 동안 우승 반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인 동시에, 커리어의 큰 위기이다.

 

▶ 클리퍼스 잔류? 이적? 알 수 없는 폴의 마음

폴은 2017-18시즌까지 현 소속팀 LA 클리퍼스와 계약돼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 옵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선택에 따라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폴은 이미 올여름 FA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클리퍼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이 결정되자마자 폴의 거취 문제가 리그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폴은 올여름 FA를 선언한 뒤 어떤 팀과 계약하든 연간 3,000만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을 문제없이 따낼 전망이다. 데뷔 12년 차로 나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지만, 그의 개인 기량은 여전히 리그 최고 수준이다. 포인트가드의 시대에 폴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를 마다할 팀은 없다.

폴은 지금 ‘우승 반지’가 간절하다. 때문에 폴이 선택할 팀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폴에게 대형 계약을 안길 수 있으면서도, 그가 합류할 경우 당장 우승권 팀으로 도약할 수 있는 팀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폴의 선택지는 많이 좁혀지게 된다.

헌데 문제는 선택지가 좁아도 너무 좁다는 것이다. 원소속팀 클리퍼스 정도를 제외하면 폴이 원하는 요건을 충족할 만한 팀이 없다. 샌안토니오는 폴을 영입하기 위해 샐러리캡 정리가 필요하고, 앤써니 데이비스와 드마커스 커즌스를 보유한 폴의 친정 팀 뉴올리언스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팀들은 폴 영입을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포인트가드 포지션이 탄탄하거나, 폴이 합류하더라도 당장 우승권 도약이 어려운 팀들이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폴의 클리퍼스 잔류설이 뒤늦게 힘을 받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폴은 정말 클리퍼스 잔류를 선택할까? 이를 위해서는 일단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지난 2-3년 동안 폴과의 시너지 효과가 눈에 띄게 줄어든 그리핀과의 공존 문제, 클리퍼스의 고질적인 스윙맨 자원 부족 등이 그것이다.

폴 합류 당시 완벽한 파트너가 될 줄 알았던 그리핀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폴과 어울리지 않는 선수로 변신하고 있다. 저돌적으로 림을 향해 돌진하고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던 모습은 사라지고, 볼 소유를 좋아하고 미드레인지 점프슛 시도를 즐기는 유형의 빅맨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리핀은 여전히 올스타급 파워포워드다. 경기당 20점 10리바운드를 꾸준히 해낼 수 있고, 때로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폴의 대권 도전에 제대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인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그리핀은 최근 2년 동안 부상으로 일찍 전력에서 이탈하며 클리퍼스의 연이은 1라운드 탈락에 크게 원인 제공을 했다.

그리핀 역시 폴과 마찬가지로 올여름에 플레이어 옵션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폴과 그리핀 중 한 명이 팀을 떠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클리퍼스는 폴과 그리핀을 모두 잔류시키고 현재의 로스터를 유지하길 바라지만, 둘의 의사도 그러할지는 알 수 없다.

스윙맨 자원 보강도 걱정거리다. 클리퍼스는 폴이 팀에 합류한 이래 늘 스몰포워드 포지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랜트 힐, 맷 반스 등 베테랑들도 있었고 이번 시즌에는 룩 음바무테가 주전 스몰포워드로 뛰었다. 하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기여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심지어 올여름에는 주전 슈팅가드 JJ 레딕마저 FA 자격을 얻는다. 클리퍼스의 스윙맨 포지션에 비상이 걸린 것만큼은 확실하다.

클리퍼스의 카멜로 앤써니 영입설이 흘러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앤써니는 현재 뉴욕 닉스 구단과의 결별이 유력한 상황이다. 관건은 언제, 어디로 트레이드 되느냐다. 그런데 이미 올 시즌 중에 트레이드 상대로 꾸준히 거론됐던 클리퍼스가 다시 한 번 앤써니의 행선지로 언급되고 있다. 시즌 중에 앤써니 트레이드 협상에 실패했던 클리퍼스가 이번에는 트레이드 카드를 바꿔서 앤써니 영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만약 클리퍼스가 합리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앤써니를 영입할 경우, 폴은 클리퍼스 잔류를 선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앤써니, 그리핀, 조던이 폴과 ‘빅 4’를 이룬다면 전에 비해 우승 도전이 수월해질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폴은 1985년 5월생으로 어느덧 만 32살의 베테랑이 됐다. 현실적으로는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향후 3~4년 정도로 보인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는 우승 반지도 기왕이면 본인의 힘으로 얻으면 좋다. 기량이 하락한 후 말년에 조력자로 우승을 차지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 우승하는 것이 폴 본인도 만족하고, 커리어 평가도 끌어올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폴이 올여름에 내릴 선택은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폴은 현재 클리퍼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덴버 너게츠, 휴스턴 로케츠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다. ‘비운의 천재 가드’ 크리스 폴은 과연 가장 앞에 있는 수식어를 떼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향후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 폴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코리아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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