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편집부 = 농구계의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가 2015-16시즌을 끝으로 코트에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코비 브라이언트는 마이클 조던에 이어 역대 가장 뛰어난 슈팅가드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이룩한 통산 기록만 훑어도 알 수 있다. 코비는 NBA 우승을 다섯 번이나 차지했다. 파이널 MVP 2회, 정규 시즌 MVP에 한 번 선정됐다. 올스타전 무대를 18번이나 밟은 ‘팬들이 사랑한 선수’였고 이 가운데 4번이나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1997년 올스타전에선 덩크슛 콘테스트 챔피언에 오르며 전 세계 농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올-NBA 퍼스트팀에 11회나 이름을 올렸다. 득점왕도 2번 거머쥐었다. 통산 33,643점을 올려 LA 레이커스 구단 역대 1위, 리그 역대 3위에 이름을 새겼다. 2006년 1월에는 한 경기 81점을 챙기기도 했다. 이 부문 윌트 체임벌린(100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책임졌다. 국제대회서도 펄펄 날았다. 미국 남자농구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두 차례 나섰다. 두 대회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위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커리어 정점은 조던의 통산 득점 기록을 넘어설 때였다. 2014년 12월 15일(이하 한국 시간)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코비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나폴리스 타겟 센터에서 열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원정 경기서 26점을 쓸어 담으며 팀의 100-94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서 조던을 제치고 통산 득점 부문 3위로 올라섰다. NBA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공격수의 최중요 평가 지표인 득점 기록에서 조던을 넘어선 건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데뷔 시즌부터 ‘조던 아류’라는 꼬리표를 지니고 있던 그에게 2014년 겨울은 특별했다. 코비는 통산 1,346경기에 나서 평균 25.0득점을 기록했다. 20년 동안 ‘원 클럽 맨’으로 뛰며 대기록을 세웠다. 코비보다 정규 시즌 득점이 많은 선수는 카림 압둘-자바, 칼 말론 밖에 없다. 넉넉히 NBA 연감 여러 페이지를 장식하는 ‘위대한 전설’로 프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 끊이지 않는 오마주
코비를 향한 끊이지 않는 찬사는 그가 세계 농구사(史)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듀란튤라’ 케빈 듀란트(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전설의 퇴장에 앞서 “코비는 우리 시대의 마이클 조던이었다”고 말했다. 레이커스의 등번호 24번 선수는 조던이 “최고”라고 인정한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조던은 과거 “전성기로 돌아간다 해도 코비를 이긴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그는 내 모든 농구 기술을 (매우 이른 시간 안에) 훔칠 수 있는 영리한 도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농구계 바깥에서도 코비를 향한 헌사는 이어졌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 ‘현대 축구 아이콘’ 리오넬 메시 등이 코트를 떠나는 서른여덟 노장에게 특별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코비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전설의 뒤안길을 배웅했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코비의 “맘바 아웃(Mamba out)” 코멘트를 패러디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지난 5월 1일 임기 중 마지막 기자단 만찬 연설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오바마 아웃”이라고 말해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겼다.
언론과 팬들은 여전히 코비를 추억하고 있다. 그가 스포츠 산업과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지난 9월 8일 “마이클 조던 이후 최고의 NBA 선수는 누구인가”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코비는 이 조사에서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팀 던컨(前 샌안토니오 스퍼스),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ESPN은 지난 8월에도 “코비의 등 번호였던 8번과 24번 가운데 어떤 숫자가 영구결번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란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팬들이 가장 많은 표를 던졌던 선택지는 ‘둘 다(Both)'였다.
그런가하면,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는 2016년부터 해마다 돌아오는 8월 24일을 ‘코비 데이’로 지정하기도 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은 “코비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얼마나 노력해야 최고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줬다. 농구로 LA 시민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인물이었다“며 기념일 제정 이유를 밝혔다.

◆ 코비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 ‘향상심‘
‘화살’과 같은 삶을 살았다. 코비에게 과녁은 없었다. 그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이었다. 오늘의 나를 뛰어넘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설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향상심(向上心)’이다. 코비는 향상심이라는 무기를 갖고 NBA라는 야전에서 자기만의 깃발을 꽂았다. 부드러운 슛 터치, 타이밍을 뺏는 스텝과 펌프 페이크, 정교한 풀업 점퍼는 수면 위 현상이다. 완벽한 기술 구사 너머에는 ‘영원한 농구 청년’ 코비의 향상심이 자리하고 있다.
코비는 10년 전 등번호를 8번에서 24번으로 바꿨다. 무기력한 패배가 원인이었다. 그는 2006년 피닉스 선즈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 쓴잔을 마셨다. 그해 5월 7일 피닉스와 1라운드 7차전에서 90-121, 31점 차 대패를 당했다. 코비는 당시 24점 4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50%로 분전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아메리카웨스트아레나(당시 피닉스의 홈구장 이름)를 빠져나가야 했다.
호사가들은 “샤킬 오닐 없는 ‘코비의 레이커스’로는 우승이 어렵다”며 비아냥댔다. 코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원점에서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첫 번째 대답이 등번호 변경이었다. 그는 “(등 번호 변경은) 하루 24시간 내내 훈련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다. 또 공격제한시간 24초를 단 한 순간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라고 힘줘 말했다.
코비는 2011-12시즌에 마스크를 쓰고 코트를 누빈 적이 있다. 그는 2012년 3월 5일 마이애미 히트와 경기서 코와 목을 다쳤다. 이후 의료진 권고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코비는 달랐다. 언제 다쳤냐는 듯 펄펄 날았다. 몸 상태는 그에게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다. 그해 3월 7일 디트로이트전부터 3월 16일 미네소타전까지 7경기 동안 평균 29.6득점을 쓸어 담았다. 이 기간 4.9리바운드 4.6어시스트 1.4가로채기 3점슛 성공률 36.0%(2.6개 성공)를 기록했다. 레이커스는 5연승을 달렸고 언론은 “마스크가 독침을 뱉는 블랙 맘바의 입을 가리지는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위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코비가 지닌 승리욕과 향상심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례는 이 밖에도 무궁무진하다.
많은 NBA 선수ㆍ지도자는 코비와 조던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움직임’을 꼽지 않는다. 두 선수의 교집합으로 ‘투쟁심’을 언급한다. 특히 코비와 조던을 두루 겪은 사람들은 “마인드가 꼭 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승부처에서의 집중력, 기량 유지를 위해 코트 밖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노력을 첫 손에 꼽는다.
‘트라이앵글 오펜스 창시자’ 텍스 윈터(前 시카고 불스, 레이커스 코치)도 이 같은 농구인 가운데 한 명이다. 윈터는 어시스턴트 코치로서 코비와 조던을 모두 지도한 바 있다. 그는 “어떤 상대,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은 절대 코비가 조던에 뒤지지 않는다. 마인드를 기준으로 한다면 두 선수는 동일선상에 있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2번으로 평가 받는 둘의 성공은 이러한 경쟁을 수용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코비는 2003년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조사를 받았다. 스포츠가 아닌 사회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호감도는 땅에 떨어졌고 후원하던 스폰서도 많이 잃었다. 부인 바네사 브라이언트와 관계도 금이 갔다. 부인은 유명 변호사에게 이혼을 의뢰했다. 집 바깥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훈련 시설과 경기장은 물론 집 밖에서도 장사진을 이루는 기자 탓에 도저히 농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등 돌린 팬들은 코비를 향해 조롱과 욕설을 뱉었다.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코비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결국 내가 생각해야 할 건 농구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지만) 내가 돌아가야 할 곳, 내가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는 농구 코트”라고 말했다. 주변 상황을 잊는 데 농구 선수로서 끝없는 성장 욕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역 은퇴 후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오프시즌 최대 화두였던 듀란트 이적에 관한 언급이 좋은 예다.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로 이적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를 비판했다. 고향 팀을 등졌다는 건 1차적이었다. (10년간 몸담은) 프랜차이즈를 저버렸다는 사실도 부차적이었다. 무엇보다 전년도 컨퍼런스 결승에서 접전을 펼쳤던 팀으로 이적했다는 ‘디시전’이 호불호를 갈리게 했다. 일부 사람들은 듀란트를 ‘맞수에게 백기를 든 장수’로 비유했다. 리그 내 전력 불균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코비만은 이 상황을 ‘다르게’ 봤다.
코비는 “진정한 승부사는 ‘슈퍼 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대가 얼마나 강해지든 내가 이겨버리겠다는 승리욕만 증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20년 프로 생활을 압축하는 인터뷰였다. 대부분 사람이 듀란트의 결정을 ‘판단’할 때 코비는 그러한 팀과 어떻게 싸워야 이길지를 먼저 떠올렸다. 범인과는 차원이 다른 코비의 집념은 러셀 웨스트브룩을 향한 찬사로 이어졌다. 코비는 지난 8월 27일 스포츠 라디오 방송 『더짐로마쇼』에 출연해 “나랑 가장 많이 닮은 현역 선수를 한 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웨스트브룩을 꼽겠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고난을 마주하든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110%를 쏟아 붓는 모습이 정말 닮았다”고 말했다.
코비는 지난해 11월 UFC 여성 파이터 론다 로우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로우지가 홀리 홈에게 충격적인 KO패를 당해 좌절했을 때였다. 1인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코비였기에 로우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코비는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지난 2월 14일 USA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로우지에게 여러 차례 문자를 보냈다. 경기에서 이기는 방법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진짜 챔피언은 한번 꺾이고 나서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선 가끔은 주저앉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좋은 약이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상승가도를 달리다 내려앉을 때 받는 대중의 비판은 최고의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격”이라고 말했다.
2편에서 계속...
사진 제공 = 나이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