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강하니 기자 = 또 하나의 전설이 코트를 떠난다. ‘늑대대장’ 케빈 가넷(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며칠 전부터 미네소타 구단과 바이아웃 협상을 펼친 가넷은 결국 늑대군단의 선수로 21년 간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오랜 시간 NBA 코트를 누빈 만큼, 그와 경쟁한 라이벌도 수없이 많았다. 케빈 가넷이 만난 라이벌들을 루키에서 살펴보았다.

# 양대산맥을 이룬 경쟁자, 팀 던컨
공교롭게도 올여름 둘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앞으로도 둘은 끊임없이 비교될 것이고, 함께 회자될 것이다. 케빈 가넷과 팀 던컨이다.
가넷은 1995년 드래프트, 팀 던컨은 1997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성했다. 드래프트 기수로는 가넷이 2년 선배이지만, 실제 나이는 동갑이다. 가넷이 고졸로 NBA에 입성한 반면, 던컨은 대학을 거쳐 NBA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둘은 데뷔와 동시에 수도 없이 부딪혔다. 함께 서부지구에 속했던 탓에 그만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슈팅가드와 파워포워드의 시대였던 2000년대 초반에도 가넷과 던컨의 대결은 늘 화제거리이자 관심사였다.
실제로 둘이 모두 은퇴한 지금도 개인 역량에서는 우위를 가리기 어렵다는 평이 많다. 둘 모두 공수에 약점이 거의 없는, ‘완전무결’에 가까운 빅맨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둘의 커리어는 다소 다르게 흘러갔다. 던컨은 NBA에서 훌륭한 프런트와 최고의 감독 그렉 포포비치를 만나면서 샌안토니오를 왕조로 이끌었다. 샌안토니오 왕조의 시작이 던컨의 입단이었다. 던컨이 은퇴를 선언한 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던컨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느 시골에서 여전히 농구 경기를 뛰고 싶은 배불뚝이 감독에 불과했을 것이다. 모든 구단 직원들이 던컨 덕분에 먹고 살고 있다”며 던컨의 존재감을 찬양했던 바 있다.
하지만 케빈 가넷은 던컨과 달리 미네소타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미네소타는 조 스미스와의 이면 계약 문제가 탄로나면서 드래프트 지명권이 박탈되고 스테판 마버리, 천시 빌럽스 등 가넷과 짝을 이룰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등 현명하지 못한 구단 운영을 했다. 가넷이 2004년에 정규시즌 MVP, 2008년에 올해의 수비수상과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지만, 커리어 동안 5개의 우승 반지를 거머쥔 던컨을 수상 실적에서 넘어서긴 힘들었다. 던컨이 NBA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꼽히는 이유다.

가넷과 던컨은 함께 아디다스 농구화의 모델로도 활동했던 바 있다.
던컨과 가넷은 농구선수로서의 캐릭터도 상반됐다. 가넷이 열정 넘치고 코트 안팎에서 거친 언행도 마다하지 않는 터프한 리더였다면, 던컨은 언제나 조용하고 부드럽고 위트 넘치는 리더였다. 그래서인지 인기도 던컨보다는 가넷이 많았다.
아쉬운 것은 던컨과 가넷이 플레이오프에 만난 적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던컨과 가넷이 플레이오프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은 1999년과 2001년뿐이다. 두 시리즈 모두 서부지구 1라운드였다. 이후 던컨과 가넷은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서 서로를 상대하지 못했다. 2012년에 파이널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가넷이 이끄는 보스턴이 동부지구 결승에서 3승 4패로, 던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가 서부지구 결승에서 2승 4패로 무너지면서 NBA 팬들이 그토록 바랐던 ‘던가 파이널 매치’는 성사되지 못했다.

# 동부지구의 숙적, 르브론 VS 케빈 가넷
2007년 케빈 가넷은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된다. 7명의 선수와 1장의 드래프트 지명권이 미네소타로 건너간 NBA 역사에 손꼽히는 초대형 트레이드였다. 현재까지 이 트레이드는 1명의 선수의 대가로 가장 많은 선수와 지명권이 넘어간 사례로 남아 있다.
가넷이 동부지구로 건너간 후 중요한 길목에서 가장 많이 만난 선수는 다름 아닌 르브론 제임스였다. 당시 르브론은 클리블랜드를 이끄는 만 23살의 어린 에이스였다.
레이 알렌, 폴피어스와 빅3를 결성하며 의기투합한 가넷은 르브론을 끊임없이 가로막았다. 2008년 동부지구 준결승에서 르브론의 클리브랜드를 4승 3패로 눌렀던 보스턴은 2010년에도 우승에 도전하는 르브론을 지구 준결승에서 눌러버렸다.
2년 연속 MVP 수상과 정규시즌 1위를 달성했음에도 가넷이 이끄는 보스턴에 막혀 우승 도전에 실패한 르브론은 결국 2010년 여름 마이애미 히트로의 이적을 선언했다. 어찌 보면 르브론의 ‘더 디시젼 쇼’는 가넷의 보스턴 이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만큼 가넷이 합류한 보스턴은 르브론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운 벽이었다.
마이애미로 이적한 후에도 르브론 제임스는 보스턴을 계속 상대해야 했다. 2011년 지구 준결승, 2012년 지구 결승에서 르브론은 또 다시 보스턴을 만났다. 그러나 이번엔 르브론이 복수할 차례였다.
2011년에는 르브론의 마이애미가 보스턴을 4승 1패로 가볍게 누르며 2010년의 패배를 설욕했다. 그리고 2012년 르브론의 마이애미는 2승 3패로 시리즈를 뒤진 위기 상황에서 2연승을 거두며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르브론의 우승 도전기는 곧 가넷이 이끄는 보스턴과의 전쟁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어쩌면 동료가 될 수도 있었던’ 코비와 케빈 가넷
올여름 케빈 가넷과 팀 던컨에 앞서 먼저 은퇴한 선수가 있다.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다. 시즌 중에 은퇴를 선언한 코비는 팬들의 응원 속에 화려하게 코트를 떠났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0득점을 올리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펼친 코비는, NBA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은퇴 경기를 치르고 유니폼을 벗을 수 있었다.
코비는 케빈 가넷과 닮은 점이 많다. 코트 안팎에서 열정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엄청난 경쟁심을 가진 선수였다. 팀을 이끄는 리더십의 성격도 비슷했다. 코비와 가넷은 대화를 통해 동료들을 이끄는 선수들이 아니었다. 많은 대화보다는 코트에서 직접 플레이를 보여줌으로써 동료들을 이끄는 카리스마형 리더였다.
거칠고 경쟁심이 강한 성격 때문에 많은 이들은 코비와 가넷이 은퇴 후 지도자로 활약하기엔 힘들다는 예측을 했었다. 코비는 실제로 은퇴 후 지도자로 생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케빈 가넷 역시 지도자로 활약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오히려 가넷의 경우 미네소타 구단의 일부 지분을 사들여 미네소타의 마이너리티 구단주(적은 구단 지분을 보유한 구단주)가 될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수 시절 코비와 가넷은 한 팀에서 동료로 만날 뻔한 적도 있었다. 샤킬 오닐이 마이애미로 떠난 후 레이커스는 코비의 파트너로 가넷을 영입하려고 했었고, 실제로 미네소타 구단과 트레이드 논의도 했었다. 하지만 가넷이 당시 ‘더운 도시에서 뛰고 싶지 않다’며 피닉스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했다는 소문이 나왔었고, 레이커스와 미네소타의 트레이드 협상도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코비와 가넷이 만났다면 아마 우리는 NBA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승부욕이 강한 콤비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이 한 팀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코비와 가넷의 성격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코비-가넷 콤비를 실제 코트에서 보지 못한 것은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에겐 아쉬운 일일 것이다.
*가넷의 또 다른 라이벌들*
드와이트 하워드 – 하워드는 가넷을 롤모델로 삼으며 NBA에 입성한 선수였다. 하지만 실제 NBA에서 만난 뒤 하워드와 가넷은 둘도 없는 앙숙이 됐다. 코트에서 싸운 적만 여러번. 하워드는 경기 중 가넷의 거친 언행에 굉장히 실망해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고 얘기했던 바 있다. 조아킴 노아 역시 가넷을 존경했다가 굉장히 싫어하게 된 선수다.
크리스 웨버 – 지금은 TNT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 웨버는 새크라멘토 시절 케빈 가넷과 더불어 서부지구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군림했던 선수다. 2004년 파이널에서는 가넷과 직접 맞대결을 펼쳤지만, 7차전에서 던진 회삼의 3점슛이 림을 돌아나오며 결국 가넷이 웨버의 새크라멘토를 꺾고 생애 첫 서부지구 결승 무대를 밟았던 바 있다.
월러스 형제 – 디트로이트의 라쉬드 월러스, 벤 월러스 형제(실제 형제는 아니다) 역시 케빈 가넷과 인연이 있었던 선수들이다. 라쉬드 월러스도 2000년대 손꼽히는 기량을 가진 파워포워드였는데 서부지구에서는 가넷과 각각 미네소타, 포틀랜드 소속으로, 동부지구에서는 각각 보스턴, 디트로이트 소속을 맞대결을 펼쳤었다. 자주 맞대결을 펼쳤던 것과 달리 라쉬드 월러스와 가넷은 상당히 친한 사이였다. 실제로 둘은 2009-10 시즌에 보스턴에서 함께 뛰기도 했었다. 반면 벤 월러스는 가넷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선수였다. 특히 2008년 있었던 보스턴과 클리블랜드의 동부지구 준결승 7차전에서 가넷과 벤 월러스는 굉장히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샤킬 오닐 – 가넷이 2000년대를 누볐던 선수인 만큼, 샤킬 오닐의 이름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레이커스에서 오닐은 가넷을 끊임없이 가로막았던 선수였다. 오닐은 센터였고 가넷은 파워포워드였던 탓에 실제 둘의 매치업이 자주 펼쳐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3년과 2004년에 가넷이 이끄는 미네소타가 샤킬 오닐의 레이커스에게 연이어 플레이오프에서 무릎을 꿇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2004년 가넷은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미네소타를 지구 1위로 이끌며 우승에 도전하던 상황이었기에 서부지구 결승에서 오닐의 레이커스에 패한 것은 너무나 뼈아픈 일이었다. 오닐과 가넷은 2010-11 시즌에 보스턴에서 함께 선수 생황을 하기도 했다. 가넷과 보스턴에서 보낸 시즌을 끝으로 오닐은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하고 지금은 TNT에서 방송 패널로 활동 중이다.
일러스트레이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 제공 = 아디다스, NBA 미디어 센트럴, 조현일, SLAM MAGAZINE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