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뒤, 누구도 포틀랜드를 전력이 약한 리빌딩 팀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 시즌 포틀랜드는 정규시즌에 44승을 챙겼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해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괴롭혔다. 엄연한 ‘강팀’인 셈이다. 올 시즌 리빌딩과 성적, 두 마리를 토끼를 모두 잡은 포틀랜드. 그들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알드리지 이적, ‘위기는 곧 기회’
스타급 선수의 이적은 단순히 로스터 자리가 하나 비는 것 이상의 타격이 있다. 물론 비슷한 수준의 대체자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긴다. 떠나는 선수의 기량이 뛰어날수록, 그 팀이 겪을 시스템의 변화도 커진다는 점이다.
알드리지가 떠난 포틀랜드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포틀랜드에서만 4번이나 올스타에 뽑힌 최고급 파워포워드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시즌을 앞두고 테리 스토츠는 큰 걱정이 없는 듯 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낙관적이었다.
“여기는 NBA입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알드리지가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팀을 떠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죠. 알드리지가 떠난 대신 다른 선수들이 그 기회를 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에 포틀랜드에 처음 왔을 때도 이 팀은 리빌딩 과정에 있었습니다. 어차피 지도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선수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성장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리빌딩 팀이라고 해서 지도자가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사실 2015년 여름에 포틀랜드를 떠난 것은 알드리지만이 아니었다. 주축 멤버 중 데미안 릴라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니콜라스 바툼, 웨슬리 매튜스, 로빈 로페즈, 애런 아프랄로 등이 트레이드 혹은 FA 자격으로 둥지를 옮겼다.
물론 이것은 포틀랜드의 선택이었다. 포틀랜드는 젊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세대 교체를 노렸다. 메이슨 플럼리, 에드 데이비스, 알-파룩 아미누, 노아 본레, 제럴드 핸더슨, 앨런 크랩, 모 하클리스 등이 포틀랜드 유니폼을 입고 새롭게 합류했다.

사실 이 정도면 로스터를 완전히 ‘갈아엎는’ 수준의 변화다. 당연히 포틀랜드의 농구도 달라져야 했다. 알드리지의 미드레인지 점프슛을, 니콜라스 바툼의 3점슛과 패스 능력을, 웨슬리 매튜스의 끈끈한 수비를 포기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가장 먼저 버린 이는 다름 아닌 스토츠 감독이었다.
“새로운 시즌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에 대해 팀 내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알드리지가 있었던 지난 2년과는 분명히 달라져야 했습니다. 주전 5명 중 4명을 내보냈으니까요. 물론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선수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불가피했죠. 하지만 지난 수년간 우리가 지켜온 방향성과 앞으로 가져야 할 방향성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방향성은 바로 더 많은 승리였습니다.”
스토츠 감독은 2015-16시즌 개막을 3개월 이상 앞둔 시점부터는 새로운 팀에 대한 구상으로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2015년 8월에 포틀랜드 구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스토츠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다.
“공격적인 면에서 팀 전체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팀은 변화와 성장을 겪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데미안) 릴라드가 있음에도 다른 팀에 비해 3점 슈터라고 부를 만한 선수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다만 시즌 시작 전부터 우리 팀은 3점슛이 약하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네요. 3점슛 능력은 저와 선수들이 올 시즌에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빠른 템포의 팀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로스터에 달릴 줄 아는 선수들이 많거든요. 새로 들어온 빅맨들이 기동성이 좋은 친구들이에요. 과거에 비해 빠른 팀이 될 것이고, 우리 시스템에서 속공 득점의 중요성이 커질 겁니다.” 그리고 스토츠 감독의 이 생각은 현실이 됐다.
공격 시스템의 재구성
시즌이 시작하자, 스토츠 감독이 걱정했던 3점슛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포틀랜드는 지난 시즌 3점슛 성공률 리그 4위(37.0%), 경기당 3점슛 성공 개수 리그 5위(10.5개)에 올랐다.
서부지구만 놓고 보자면 포틀랜드의 3점슛 성공률은 골든스테이트 다음이었다. 3점슛 성공 개수에서도 포틀랜드를 앞서는 서부 팀은 골든스테이트와 휴스턴 로케츠 밖에 없었다. 니콜라스 바툼, 웨슬리 매튜스 같은 훌륭한 3점 슈터들이 있었던 2014-15시즌(3점슛 성공률 리그 8위, 3점슛 성공 개수 리그 6위)보다 3점슛 지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물론 그 중심에는 데미안 릴라드라는 걸출한 3점 슈터의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포틀랜드를 탄탄한 3점슛 팀으로 만든 기반은 따로 있었다. 바로 메이슨 플럼리를 컨트롤타워로 활용한 패싱 게임이었다.
플럼리는 2014년 미국 대표팀에 선발돼 스페인 농구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경험이 있는 건실한 센터다. 브루클린 소속이었던 플럼리는 한 때 브룩 로페즈의 입지를 위협할 정도로 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젊은 빅맨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브루클린은 한 때 플럼리를 믿고 브룩 로페즈를 트레이드 대상자로 분류했었다. 그러나 로페즈가 건강을 되찾고 보다 다양한 득점 루트로 경기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브루클린의 센터 자리의 주인공은 결국 로페즈가 됐다.)
그러나 플럼리의 가치가 인정받던 부분은 공격보다는 수비와 보드 장악력이었다. 스토츠 감독은 그런 플럼리에게 팀의 패싱 게임을 주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기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현대 NBA는 센터의 패스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포인트가드가 담당하던 패서의 역할이 센터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시즌 골든스테이트의 앤드류 보거트, 몇 년 전 시카고 불스의 조아팀 노아가 하던 일을 플럼리가 맡았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거트, 노아처럼 패스하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는 물론 빠른 판단력과 상대 수비의 움직임을 한 수 먼저 읽는 영리함이 필요했다. 단시간이 이게 가능해질 리 없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가 거듭되면서 플럼리는 이 역할에 적응했다. 결국 올 시즌 플럼리는 총 2.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 부문 팀 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플레이오프에서 플럼리의 역할은 더욱 빛났다. 그는 백코트 콤비인 CJ 맥컬럼(40.2회)과 릴라드(39.8회)에 이어 팀에서 3번째로 많은 경기당 패스 횟수(25.8회)를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어시스트 개수는 4.8개로 팀 내 2위였다.
스토츠 감독은 3점슛이 강한 릴라드에게 상대 수비수들이 강한 압박 수비를 펼친다는 점을 역이용했다. 플럼리에게 정확한 스크린을 활용한 픽-앤-롤보다는, 스크린을 거는 척하고 페인트존으로 재빠르게 진입하는 픽-앤-슬립 방식의 공격을 주문했다. 이 같은 스토츠 감독의 판단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물론 플럼리가 이런 방식으로 공격을 하려면 볼 핸들링을 담당하는 릴라드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다. 알드리지가 있던 시절, 2대2 공격을 펼칠 때 릴라드의 역할은 보다 깊숙한 침투 혹은 긴 드리블 동선으로 수비수를 몬 뒤, 오픈 상태인 알드리지에게 질 좋은 패스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플럼리에게 패스를 주는 과정은 달라야 했다. 짧은 드리블로 3점슛 라인 바깥 위치를 지키면서, 강하게 압박을 해오는 자신의 수비수와 플럼리의 수비수 사이로 플럼리에게 패스를 연결해야 했다. 스테픈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이 자주 활용하는 2대2 방식이다. (다만 스크린 동작 이후 플럼리가 주로 자유투 라인 부근 혹은 엘보우 지역으로 이동한다면, 드레이먼드 그린은 정면 3점슛 라인 근처로 이동할 때도 많다. 수준급 3점슛 능력과 볼 핸들링 능력을 갖춘 그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릴라드 역시 처음엔 플럼리를 향한 이런 패스 방식이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호흡이 좋아졌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아무리 강한 압박 수비를 당해도 플럼리에게 정확한 패스가 연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 시즌 포틀랜드 공격의 첫 번째 옵션은 릴라드와 맥컬럼이었다. 하지만 플럼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패싱 게임이 자리를 잡으면서, 포틀랜드는 보다 넓게 코트를 쓰며 다양한 방식으로 3점슛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릴라드와 맥컬럼의 풀업 점프슛에 의존하지 않게 된 것이다.
릴라드와 플럼리의 2대2와 패싱 게임을 통해 아미누, 크랩, 하클리스, 핸더슨 등이 공격에서 보다 많은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시즌 만에 새로운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속공에 대한 스토츠 감독의 구상은 현실화 되지 못했다. 포틀랜드의 올 시즌 경기 페이스는 지난 시즌에 비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경기 페이스 순위는 12위에서 13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경기당 속공 득점도 리그 25위에서 26위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포틀랜드 백코트 콤비인 릴라드와 맥컬럼은 속공 시에 빠르게 볼을 가지고 넘어오면서 림으로 돌진하는 능력이 약하다. 이것이 곧 속공에서의 한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좋은 속공 마무리 능력을 가진 니콜라스 바툼, 웨슬리 매튜스의 이적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들어 포틀랜드는 속공 부문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2라운드에서 골든스테이트를 만난 포틀랜드는 시리즈 평균 15.0점의 속공 득점을 기록했다. 이는 골든스테이트와 정확하게 같은 수치였다. 리그 최고의 속공 팀을 상대로 대등한 속공 싸움을 펼친 것이다.
이를 통해 포틀랜드가 다음 시즌에는 속공에서도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즌 포틀랜드는 현대 농구의 대표적 트렌드인 속공과 3점슛을 장착하는 데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포틀랜드의 공격 시스템 재구성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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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의 리더십
리빌딩 팀이라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리더십의 부재다. 포틀랜드의 스토츠 감독은 이 문제를 릴라드에게 맡겼다. 알드리지가 떠난 후 새로운 에이스가 될 릴라드가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구단 역시 릴라드에게 총액 1억 2천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안겨주며 릴라드의 책임감을 기대했다. 다음은 시즌 전에 있었던 스토츠 감독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제가 릴라드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바로 리더십입니다. 릴라드가 코트 안팎은 물론 라커룸에서도 동료들을 더 좋은 선수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릴라드 본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릴라드는 많은 득점을 하고 팀을 이끌 겁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그의 진짜 도전은 동료들을 더 나은 선수로 만드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 같은 스토츠 감독의 바람에 릴라드도 응답했다. NBA 새 시즌의 시작은 사실상 트레이닝 캠프다. 매년 9월 말이 되면, 각 구단은 공식 트레이닝 캠프를 열고 한 달 후에 시작될 정규시즌을 준비한다.
그런데 2015-16시즌 트레이닝 캠프를 한 달 앞둔 지난해 8월 말, 릴라드는 팀 동료들을 샌디에이고에 모아 개인 트레이닝 캠프를 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동고동락한 릴라드와 포틀랜드 선수들은 9월 말이 되자 곧바로 구단 공식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했다. 이처럼 솔선수범하는 릴라드에게, 동료들은 물론 스토츠 감독과 코치들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릴라드는 결코 동료들을 자신보다 아래로 여기거나 깔보는 리더가 아닙니다. 릴라드는 모든 선수들이 이 팀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고 여겼어요. 그는 동료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리더입니다.” 포틀랜드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밴터풀의 말이다.
릴라드의 이런 리더십이 포틀랜드의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토츠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야후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릴라드의 리더십에 대해 “특별하다”, “정말 훌륭하다”는 표현을 쓰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포틀랜드의 모든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릴라드의 리더십을 믿고 따른다.
리빌딩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 감독의 지도력, 에이스의 리더십까지. 이 세 가지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 포틀랜드는 결국 올 시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이뤘다. 이번 시즌을 통해 확인한 로스터의 약점을 보강하고, 젊은 선수들이 더 성장해준다면 포틀랜드는 분명히 훨씬 무서운 팀이 될 것이다. 서부지구의 다크호스가 아닌 강자로 발돋움할 포틀랜드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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