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만년 꼴찌’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가 된 아산 우리은행은 전무후무한 통합 6연패 이후 아주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박혜진과 김정은 등 과거 영광의 멤버들이 잦은 부상과 세월의 흐름에 흔들렸지만 박지현과 김소니아 등 새로운 시대를 열 주인공들이 성장함에 따라 4년 만에 다시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섰다.

물론 또 다른 왕조 건설을 노리는 청주 KB스타즈에 무너졌지만 단 한 번도 위닝 시리즈를 만들어내지 못한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신한은행을 잡아내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다. 이제는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우리은행의 2021-2022시즌은 아직 그들이 건재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또 다른 숙제를 얻은 시기였다.

 

잔인했던 여름, 우리은행도 흔들렸다

우리은행의 2021-2022시즌은 험난할 것으로 보였다. 올림픽 시즌이었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오프 시즌 소화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김정은과 박혜진, 박지현이 국가대표에 차출됐다. 박혜진, 박지현과 달리 김정은은 몸 상태가 좋지 못해 국가대표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우리은행의 브레인 전주원 코치가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며 위성우 감독의 지난해 여름은 너무도 외로웠다.

남아 있는 선수들 역시 아프거나 또는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들뿐이었다. 최이샘은 부상으로 긴 휴식을 취해야 했고 김소니아는 루마니아 3x3 국가대표 자격으로 도쿄로 떠났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아시아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에서 갓 회복된 최이샘은 김정은을 대신해 국가대표가 됐다. 사실상 우리은행의 오프 시즌은 정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위성우 감독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괜찮습니다. 있는 선수들로 준비해야죠”라고 말했지만 나름의 힘듦을 모두 감추지는 못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뜩이나 벤치 전력이 부실한 우리은행이었는데 노은서, 신민지, 유현이가 팀을 떠났다. BNK로부터 웨이버 공시된 빅맨 이주영을 영입했지만 즉시 전력은 아니었다. 가장 큰 타격은 장신 포워드 오승인의 무릎 부상이었다. 박신자컵에서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됐다. 빅맨이 절실한 우리은행의 희망이었으나 큰 부상으로 이탈하고 말았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던 우리은행이기에, 그리고 위성우 감독 역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수년간 부임했기에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제는 누적됐고 김정은과 박혜진 등 오랜 시간 오프 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선수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박지현 정도를 제외하면 크고 작은 부상들을 안은 채 한 달도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이이기에, 수년간 WKBL을 지배해왔던 위성우 감독과 푸른 유니폼을 입은 전사들이기에 우승 후보로 꼽혔다. 불안했던 준비 기간에도 그들의 명성에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만큼 부담감은 커졌다.

 

KB스타즈의 유일한 대항마?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나다

우리은행은 다사다난했던 여름을 보냈음에도 ‘1강’으로 꼽힌 KB스타즈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다. 지난 시즌 챔피언 삼성생명이 리툴링을 선언했고 신한은행 역시 정상일 감독이 이탈하는 등 악재가 발생하며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전력을 잘 유지한 우리은행이 강이슬을 품에 안으며 약점을 보완한 KB스타즈와 어떤 경쟁 구도를 가져갈지가 2021-2022시즌의 화두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 갑작스러운 수장 교체로 하위권 평가를 받았던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WKBL 최고의 지략대결로 불릴 정도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맞대결은 매번 명승부를 낳았다. KB스타즈가 탄탄대로를 걸을 때 신한은행에 잡히며 주춤한 우리은행은 1위 경쟁은커녕 2위도 보장받지 못했다.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소식 역시 가용 인원이 적은 우리은행에는 대형 악재였다. 김진희와 김소니아가 이탈했고 김정은과 최이샘의 컨디션은 바닥을 쳤다. 박혜진 역시 발바닥 부상을 안고 뛰고 있어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박지현이 홀로 활약했지만 KB스타즈, 신한은행이 구축한 1, 2위 라인을 좀처럼 뚫어내지 못했다.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연패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은행이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달랐다. 경기력 기복이 컸다. 7연승을 달리며 펄펄 날다가도 2연패로 금세 기세가 꺾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BNK와 하나원큐 등 상대적 약체에도 승리를 내준 적이 많았다.

KB스타즈의 조기 정규리그 1위 확정으로 어느 정도 부담을 덜어낸 우리은행은 신한은행과의 2위 경쟁에 온 힘을 쏟았다. 신한은행이 김단비에게 긴 휴식을 줌과 동시에 무너졌고 우리은행은 막판 9연승을 달리며 결국 2위를 확정했다.

플레이오프에선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단 한 번도 위닝 시리즈를 만들지 못했으나 코로나19로 휘청거린 신한은행을 잡았다. 그러나 짧은 휴식기, 객관적인 전력차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KB스타즈에 패배, 준우승에 그쳤다.

 

김소니아의 성장, 박지현의 기복

과거와 달리 기복이 컸던 우리은행의 2021-2022시즌 정규리그는 위태로웠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핵심은 김정은과 박혜진의 자리를 김소니아와 박지현이 채웠다는 것이다.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으며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의 눈에 100%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무게 중심을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수확이었다.

김소니아의 일취월장한 기량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 없다. 보통 프로 선수들의 경우 FA 계약 후 직전 시즌의 기량을 뽐내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김소니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좋은 운동 능력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전체적인 스탯은 좋지만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번 시즌만 보면 분명 지난 시즌보다 스탯은 조금씩 떨어졌다. 그러나 시즌 중반 부상 및 코로나19 확진에도 안정적인 골밑 마무리, 3점슛 정확도를 높이는 등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김소니아가 가장 돋보였던 건 공격 기술을 다양하게 가져감과 동시에 기존 자신의 역할이었던 궂은일을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은 그 누구보다 많은 활동량을 가져갔고 빅맨이 없는 팀 사정상 박지현과 함께 골밑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약점이었던 파울 관리 역시 확실히 보완했다. 지난 시즌 4번의 퇴장을 당했던 김소니아는 이번 시즌 단 1번만 기록했다. 그것도 시즌 종료 직전에 치른 삼성생명 전이었다. 김소니아가 오랜 시간 코트 위에 서 있었던 우리은행은 골밑 안정감을 비교적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박지현은 이번 시즌에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제대회 참가로 인해 시즌 초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한 자릿수 득점 경기가 늘어나며 스탯 역시 하락했다. 이미 국가대표 핵심 전력이 된 박지현이란 이름값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시기 우리은행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위성우 감독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안정감을 되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11월부터 12월까지 살아난 모습을 보이다가도 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 시즌 초반과 같이 부진했다. 좋은 기량, 그리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박지현도 나이가 어린 티를 감추지 못했다. 이미 김정은과 박혜진의 지배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박지현마저 흔들리자 우리은행의 성적도 파도처럼 출렁였다.

시즌 후반기 들어 박지현이 살아났다. 9연승을 달리는 과정에서 그 중심에 있었던 건 박지현이었다.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그리고 스틸이 늘어나자 굳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지 않아도 지배력은 줄지 않았다.

박지현의 이번 시즌은 정체기였다. 김정은과 박혜진이란 우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확실한 숙제를 얻었다. 우리은행 역시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그 중심에는 박지현이 서 있어야 한다. 박지현이 다음 시즌 역시 이번 시즌과 같이 정체된다면 우리은행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부실한 벤치, 내실 다져야 할 우리은행

우리은행이 왕조를 구축한 시절에도 고질적인 문제점은 바로 부실한 벤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 상위권을 유지한 탓에 신인 드래프트 때마다 좋은 자원을 얻지 못했다. 박지현과 같이 행운처럼 다가온 선수는 있었지만 이외에는 대부분 벤치를 지키거나 은퇴 또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이번 시즌에도 다르지 않았다. 급부상한 김진희가 주전으로 올라서자 벤치에서 대신 출전할 선수들이 더 적어졌다. 베스트 5 외 평균 10분 이상 출전한 선수는 나윤정과 홍보람 둘이 전부였다. 그나마 제 역할을 해낸 홍보람과 달리 나윤정은 존재감이 없었다.

기대했던 선수들의 미미한 성장, 그리고 오승인과 같이 장기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한 선수 등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다. 그나마 신인 김은선과 같이 깜짝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막판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부족했다.

한국 여자농구 인프라가 과거보다 더 악화한 상황에서 사실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후반부부터는 최소 4, 5년은 바라봐야 할 신인 선수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황금 드래프트로 불리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WKBL 신인 드래프트 규정 변화로 인해 과거 박지수, 박지현, 허예은 등과 같은 사례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결국 우리은행은 다음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트레이드가 아닌 이상 상위권 지명은 불가능하다.

당장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다. 김정은은 이미 은퇴를 바라봐야 할 시기가 됐고 박혜진도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 김소니아와 박지현이 있지만 최소 1~2명의 코어 자원을 지금부터 키워야 한다. 결국 우리은행과 위성우 감독, 그리고 전주원 코치가 고민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다.

 

팀 MVP | 박혜진

박혜진은 박혜진이었다. 부상이 있었고 또 김정은이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도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내 최고 존재감을 뽐냈다. 김소니아와 함께 가장 기복 없이 팀을 지탱한 핵심 자원이었다. 과거와 달리 40분 풀타임 출전은 조금씩 줄었지만 평균 출전시간 36분 18초를 보면 알 수 있듯 여전히 박혜진이 코트 위에 선 시간은 많았다.

박혜진은 이번 시즌 26경기에 출전 평균 16.1점 7.1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팀내 어시스트 1위, 득점과 리바운드는 김소니아에 이어 2위로 여전히 대단했다. 박혜진이 없었다면 우리은행은 신한은행과의 정규리그 2위 경쟁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팀 RISING STAR | 없음

아쉬운 말이지만 우리은행에 라이징 스타는 없다. 김진희와 박지현을 더 이상 라이징 스타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평균 출전시간이 10분도 채 안 되는 방보람과 김은선을 꼽을 수도 없었다. 평균 출전시간 10분은 넘겼지만 존재감은 없었던 나윤정도 라이징 스타는 아니다.

우리은행의 숙제다. 매 시즌 한 명씩은 새 얼굴을 발굴, 새 전력으로 얻어낸 우리은행이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아니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영상 제작 = 이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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