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년 만이다. 전신 KDB생명, OK저축은행에 이어 BNK가 된 그들이 봄 농구에 초대받은 것이 무려 10년 만이다. 저평가 받았던 여성 지도자, 그리고 루징 멘탈리티로 가득했던 BNK가 기나긴 터널을 뚫고 올라섰다. 물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일찍 짐을 쌌지만 그들의 도전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BNK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켰던 박정은 감독을 선임한 것, 그리고 위닝 멘탈리티를 심기 위해 영입한 김한별 등 정말 오랜만에 틀린 선택을 피했다. 그리고 희망을 봤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BNK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BNK는 지난해 여름, 대단히 큰 변화를 꾀했다. 유영주 감독을 떠나보내고 박정은 감독을 선임했다. 또 여성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 그래도 박정은은 다를 것이란 기대 심리 등 다양한 반응이 존재했다. 필자 역시 부정적이었다. 여성 지도자가 가진 한계가 가능성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박정은 감독은 유영주 감독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즐겼지만 그 안에서 자율과 규율이라는 색이 다른 두 길을 적절히 활용했다. 무엇보다 소통 방식을 바꿨다. 유영주 감독이 구시대적인 소통 방식을 선택했다면 박정은 감독은 최대한 선수들을 자유롭게 놔두면서도 그 안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팀 분위기가 잡힌 순간부터는 확실한 베스트 전력을 구성했다. 안혜지와 진안이라는 핵심 코어에 이소희를 주득점원으로 성장시켰다. 궂은일과 리바운드, 그리고 허슬 플레이를 맡을 선수로 김진영을 선택했다. 강아정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김한별을 어떻게든 활용했다. 일단 과거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점점 줄었다. 여기에 승리하는 법까지 조금씩 터득하는 등 예전처럼 ‘꼴찌’의 그림자는 점점 지워졌다.

적극적인 FA 영입, 그리고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 변화도 플레이오프 진출의 기틀이 됐다. 김한별 영입은 신의 한 수였다. 부상으로 인해 몸 관리를 실패한 김한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대단했다. 특히 클러치 타임에서 매번 무너졌던 BNK에 승부사 김한별이 합류하니 접전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강아정은 다소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부상 전까지는 제 몫을 해냈다.

김한별에 대해선 추가 언급이 필요하다. 플레이오프 경쟁의 승부처였던 후반 라운드에서 그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특히 BNK는 3연패를 끝내고 다시 3연승의 초석이 된 5라운드 신한은행 전에서 제대로 된 영입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4쿼터 막판 김한별의 위닝 득점으로 간신히 역전승을 거둔 것. 만약 이때 패했다면 플레이오프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기에 의미가 깊었다. 단 한 경기만으로도 BNK가 왜 김한별을 영입했는지 알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기존 전력 강화, 그리고 FA 및 트레이드 영입을 통해 약점을 보완한 BNK는 시즌 막판까지 플레이오프 경쟁이 가능한 팀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시즌 중반만 되면 탈꼴찌를 신경 써야 할 정도로 패배 의식이 짙었던 BNK가 이제는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달리는 팀이 된 것이다.

박정은 감독도 “예전에는 선수들이 시즌 중반을 지났을 때 경쟁보다는 꼴찌는 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입장이 되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그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패배보다는 승리를 기대하는 그들의 표정에 나도 힘을 가지게 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BNK는 최종 4위를 지켰고 정말 오랜만에 봄 농구를 즐길 수 있었다.

 

새로운 에이스 이소희

그동안 BNK를 지탱해 온 건 안혜지와 진안이었다. 진안의 위력은 이번 시즌에도 여전했다. 박지수 다음으로 배혜윤과 함께 WKBL에서 가장 강력한 빅맨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박지수와 어느 정도 정면 승부가 가능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림 어택, 정확한 미드레인지 점퍼, 그리고 2대2 플레이에 능하다는 여러 장점은 진안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시즌 BNK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단연 이소희였다. 물론 그전부터 잘해왔던 선수이기는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이소희의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가장 크게 두드러진 건 바로 슈팅이었다. 신인 드래프트 때만 하더라도 이소희의 약점은 슈팅이었다. 심지어 어깨 부상으로 인해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슛을 던지던 시즌도 있었다. 밸런스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도 이소희는 리그 정상급 슈터로 성장했다.

이소희의 이번 시즌 3점슛 성공 개수는 77개로 90개를 성공한 강이슬에 이어 2위다. 성공률 역시 39.9%로 2위. 1위는 42.9%의 강이슬이다. 즉 WKBL 최고 슈터 강이슬에 이어 리그 내에서 가장 강력한 슈터임을 증명한 것이다.

당연히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30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30분 50초 동안 14.4점 4.1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몰아치기에도 능했다. 팀은 패배해도 이소희만큼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11월부터 12월까지 7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 12월 말부터 1월까지는 11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26점)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분명했다. 핵심은 슈팅 기복이다. 이소희는 후반기 막판,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엄청난 슈팅 기복을 보였다. 상대의 집중 견제에 막혔을 때 동료를 살리는 것보다 일단 공격을 시도하는 성향을 보였다. 비효율적인 내용에 박정은 감독 역시 “분명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효율을 높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추가적으로 수비, 세부적으로는 파울 관리에 있다. 이소희는 이번 시즌 4번의 파울 아웃을 당했다. 파울 트러블도 잦았다. 물론 오랜 시간 출전하는 선수인 만큼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지만 파울 장면이 아쉬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파울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효율이 떨어졌다. 이는 박정은 감독도 지적한 부분이다.

결국 이소희의 새 시즌 숙제는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공격적인 모습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케 했다. 단, 효율만 높인다면 말이다.

 

앞으로 더 강해지려면

BNK는 봄 농구를 즐겼지만 그만큼 확실한 숙제를 남겼다. 4강 플레이오프에 만족한다면 그 순간 봄 농구 역시 ‘한 줌의 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BNK가 더 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최우선적으로 김한별에 대한 승부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김한별은 노장이다. 이번 시즌은 많은 부분을 기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 진안과 이소희가 있다. 그러나 클러치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마무리 역할을 맡겨야 한다. 박정은 감독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안혜지다. 이번 시즌 안혜지는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스탯은 나쁘지 않았다. 30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34분 13초 동안 8.2점 2.8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기록에 비해 존재감은 떨어졌다. 특히 어시스트 기록에는 거품이 있다. 진안 외 안혜지가 활용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포인트가드로서 경기를 조립하는 부분도 아쉬웠다. 김한별이 메인 볼 핸들러가 됐을 때 더욱 잘 풀렸던 것이 BNK다. 리그 최고 수준의 포인트가드로 평가받고 있지만 현실적인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안혜지의 활용도가 다양해지려면 본인 공격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혜지의 평균 득점은 10점을 넘지 않는다. 3점슛 성공률은 28.0%다. 철저히 새깅 디펜스를 당할 정도다. 패스만 잘하는 포인트가드는 현대농구에서 활용 가치가 없다. 라존 론도처럼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패스를 뿌릴 수 없다면 본인 공격도 적극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미드레인지 점퍼, 플로터 등 다양한 공격 기술은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안혜지가 더 다양한 공격 방법을 지니고 있다면 그가 가진 패스 역시 극대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확실한 백업 자원을 키워야 한다. BNK 역시 주전 의존도가 높은 팀이다. 벤치에서 출발하는 선수 중 평균 출전 시간을 10분 이상 기록한 건 강아정과 이민지뿐이다. 김한별의 출전 시간을 30분 이상 가져가기 힘든 사정상 벤치 전력이 탄탄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일단 기대감을 주는 선수들은 있다. 문지영과 최민주는 진안과 함께 프런트 코트를 지켜줘야 할 자원이다. 김시온과 김지은 등 외곽에서 안혜지와 이소희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선수들도 있다.

베테랑을 제외하면 주전 선수들의 평균 나이가 많지 않은 만큼, 또 WKBL 특성상 주전 의존도가 높은 만큼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안혜지와 이소희, 그리고 진안의 능력을 극대화하려면 적절한 로테이션이 필요하다. 많은 활동량을 추구하는 BNK이기에 뛸 수 있는 선수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진다는 건 플러스 요인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것이 BNK다. 그만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많고 또 어리다. 박정은 감독의 지도력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다만 보완이 됐을 때 KB스타즈를 위협할 가장 유력한 후보인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팀 MVP | 진안

BNK의 에이스가 진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박지수의 유일한 대항마였으며 또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시즌만큼은 배혜윤을 넘어섰다. 특히 전형적인 빅맨이 아닌 포워드임에도 좋은 보드 장악력을 뽐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진안은 이번 시즌 30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33분 58초 동안 17.1점 9.4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득점 5위, 리바운드 2위, 그리고 2점슛 성공 개수 1위다. 이번 시즌에만 개인 최다득점 기록을 3번이나 갈아치웠다. 커리어 하이 시즌과 함께 BNK의 봄 농구를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팀 RISING STAR | 이소희

이소희를 라이징 스타로 두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분명 과거와 달리 급부상한 건 사실이다. 이제는 진안과 함께 BNK를 상징하는 대표 선수가 됐다. 골밑에 진안이 있었다면 외곽에는 이소희가 있었다.

시즌 막판에 다소 부진했지만 BNK가 플레이오프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되어줬다. 특히 한 번 긁히는 날에는 KB스타즈, 우리은행도 이소희를 막을 수 없었다. 가장 무서운 건 이소희는 완성형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더 성장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가장 위협적인 주득점원이다. 그의 미래는 매우 밝다.

 

사진 = 이현수 기자

영상 제작 = 이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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