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정상일 감독이 갑자기 사퇴하며 큰 변화를 맞아야 했다.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과연 시즌을 잘 치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 그러나 신한은행 사무국은 2년간 팀을 이끌었던 구나단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올리면서 차분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변이었다. 개막전에서 BNK를 꺾었고, 우승후보 KB스타즈와는 3점차로 아깝게 패하는 등 선전을 펼치며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 막판 팀을 강타한 코로나19 여파로 우리은행에게 챔프전 진출을 내줬지만 충분히 선전했고 잘 싸운 시즌이었다. 

정상일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

신한은행은 지난 2018-2019시즌 정규리그에서 6승 29패, 6위로 시즌을 마친 뒤 신기성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당시 OK저축은행을 지휘하던 정상일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한때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농구의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계속된 패배와 최하위까지 추락한 신한은행을 재건하는 데 그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정상일 감독은 부임 후 첫 시즌인 2019-2020시즌에 11승 17패를 거두며 4위로 팀을 끌어올렸다. 이듬해인 2020-2021시즌에는 17승 13패로 3위를 거두며 부임 2년 만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정상일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자진사퇴를 발표하면서 신한은행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선임해야 할지, 아니면 내부 승격으로 시즌을 치러야 할지에 대한 고심이 깊어졌다. 이와는 별개로 신한은행의 새로운 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농구인들의 작업(?)도 전방위적으로 다양하게 이뤄졌다. 

고심 끝에 신한은행 사무국은 새로운 지도자 선임보다는 내부 승격을 결정했다. 구나단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켜 이휘걸 코치와 함께 팀을 이끌도록 한 것이다. 

신한은행 김태경 사무국장은 “새로운 감독님을 모시는 것에 대한 고민도 했으나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었다. 2년간 해왔던 것도 있고 시즌 개막을 앞두고 새로운 사령탑을 모시게 되면 선수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었다. 고심 끝에 기존 코칭스태프를 유임시키게 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때만 해도 신한은행의 새로운 코칭스태프에 대한 농구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캐나다 출신에 국내에서 지도자 경험이 없는 풋내기 코치와 육상선수 출신의 체력 코치가 뭘 하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구나단-이휘걸 두 동갑내기 코칭스태프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이끌었다. 

영어가 가능한 구나단 대행은 훈련이 끝나면 밤마다 FIBA 주관 대회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해외의 농구 영상들을 닥치는 대로 보며 신한은행에 맞는 패턴을 연구했다. 이휘걸 코치 역시 해외팀들의 트레이닝 영상을 면밀히 분석하며 신한은행 선수들에게 어떻게 접목시킬까를 고민했다. 

술도 안 좋아하는 두 코칭스태프는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항상 응접실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각자 영상을 보며 연구한 뒤 서로 자신이 본 것과 생각한 것들을 공유하며 토론을 벌였다. 이렇게 농구에 대한 공부와 이야기, 분석으로 밤을 새기도 여러 차례. 이런 것들은 고스란히 신한은행 선수단의 훈련과 전술에 접목됐다. 

뚜껑을 연 구나단호, 연일 이변을 연출하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한 신한은행의 2021-2022시즌 첫 상대는 부산 BNK 썸이었다. BNK 역시 박정은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김한별과 강아정 등을 보강해 전력 강화가 이뤄졌던 팀. 반대로 신한은행은 에이스 김단비가 부상 여파로 뛰지 못하면서 전력 약화가 두드러졌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김단비의 부재라는 점 때문에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린 채 경기에 나선 BNK와 달리 신한은행은 팀원 전원이 똘똘 뭉쳐 경기에 임했다. 

김아름이 3점슛 7개 포함 26점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가드 김애나가 14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 유승희가 11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뒤를 받쳤다. 팀내 최고참 아니 WKBL 통틀어 최고참인 한채진은 무려 16개의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후배들을 뒷받침했다. 

경기 결과는 78-68로 신한은행의 10점차 대승. 이틀 뒤 박지수가 버티는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도 신한은행은 김단비 없이 71-74로 단 3점차로 패하는 등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러면서 신한은행은 1라운드에서만 4승 1패, 2위를 기록했고 이때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탔다. 

당시 구나단 감독대행은 자신의 농구 스타일에 선수를 맞추기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리는 농구를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볼 핸들링 능력이 좋고 개인기가 좋은 김애나를 주전 가드로 활용해 미스매치 상황을 만들어 필요할 때 1대1 돌파에 의한 득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수비수를 제친 김애나에게 헬프 수비가 붙으면 빈곳에 있는 동료(거의 김아름이었다)에게 패스를 줘 노마크 슈팅 찬스를 만들었다. 김애나가 시즌 초반 부상으로 나서지 못할 때는 강계리와 이경은 등을 번갈아가며 투입해 경기 리딩을 맡겼다. 

175cm의 신장을 갖고 있고 운동 능력이 좋은 유승희는 전천후였다. 가드부터 포워드, 필요할 때는 센터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이렇듯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한 후 큰 틀에서 선수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부여하면서 신한은행만의 조직력 농구가 나올 수 있었다. 에이스 김단비가 시즌 초반 결장했지만 상승세를 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일타강사’라는 별명도 여기서 나왔다. 작전타임 중에 TV를 통해 보는 농구팬들조차 쉽게 이해가 가도록 설명을 하는 구나단 대행을 보고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기 때문. 같이 훈련을 하고 현장에서 직접 들은 선수들의 이해도는 오죽했을까? 

이러면서 신한은행은 시즌 초반 2위를 랭크하며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높였고, 정규리그를 16승 14패 3위로 마감하며 PO 진출을 확정했다. 이런 공로를 세운 구나단 대행에게 신한은행 구단은 시즌 중 감독 승격이라는 선물을 선사하며 확실하게 힘을 실어줬다. 

코로나 확진에 무릎 꿇은 플레이오프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우리은행과의 맞대결에서 여러 차례 명승부를 연출했다. 비슷한 선수 구성에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있어 물고 물리는 접전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KB스타즈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후 2위 다툼을 벌인 것도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다. 

하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대표팀 차출로 신한은행은 사실상 2위를 포기하고 3위 확정에 만족하며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 어차피 2위로 올라가도 우리은행과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순위 경쟁이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신한은행의 경계 대상은 WKBL 내 다른 팀이 아닌 바로 코로나였다. 대부분의 팀 선수들이 대표팀 브레이크 기간에 코로나에 걸린 뒤 복귀를 했지만 신한은행만큼은 단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코로나 확진이 감기에 걸리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충분히 감염이 될 수 있었고, 워낙 확진자가 많아 방역 당국에서 감염 경로에 대한 조사를 하지도 않을 때였다. 

지금에서야 밝히는 얘기지만 그때 신한은행은 숙소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확진 판정을 받아 식당을 폐쇄하고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훈련을 하던 상황이었다. 브레이크 기간이지만 구나단 감독 이하 선수들 모두 외박이나 외출 없이 숙소에 머물며 조심에 조심을 했었다. 

하지만 정규리그를 마친 3월 27일 오후에 한 선수가 코로나 증상을 호소했고 저녁에 모든 선수들이 모여 자가키트로 신속항원검사를 한 결과 4명의 선수가 양성 반응이 나왔다. 양성 판정을 받은 선수는 김단비와 이경은, 정유진, 최지선이었다. 

이러면서 결국 신한은행 선수단은 자가격리에 들어가 정규리그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일정도 4월 5일로 미뤄졌다. 일정이 미뤄지면서 신한은행 입장에서는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경기를 치러야 했고, 상대인 우리은행은 충분한 휴식기를 가진 뒤 경기를 치러야 했다. 

아산에서 열린 1차전에서 신한은행은 김단비 등 무려 10명의 선수가 결장을 한 후폭풍으로 65-90으로 완패했다. 홈인 인천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김단비와 한채진, 이경은 등 주전 멤버들이 총동원됐지만 컨디션 저하를 이겨내지 못하며 60-66으로 석패했다. 시리즈 전적 2패. 그렇게 신한은행의 2021-2022시즌은 플레이오프 진출 및 챔피언결정전 탈락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한은행의 지난 시즌은 분명 성공한 시즌이며 박수 받기에 충분한 결과물이다. 

팀 MVP | 김단비

신한은행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는 단연 김단비다. 초반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복귀 후에는 ‘역시 김단비’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24경기에서 35분 41초를 뛰며 19.3점 8.8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1경기에서 34분 5초를 뛰면서 14.0점 6.0리바운드 5.0스틸을 기록했다. 
가드와 포워드, 센터까지 전 포지션을 넘나들며 신한은행의 팀 플레이를 이끌었다. 지난 시즌 분업화된 농구로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한 신한은행이지만 만약 김단비가 없었다면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였을지 모를 일이다.

팀 RISING STAR | 변소정

2021년 WKBL 신입선수 선발회 전체 3순위로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특출난 경우가 아니면 신인이 바로 경기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은 곳이 여자농구지만 변소정은 이미 데뷔 시즌에 투입돼 언니들과 경기를 가졌다. 정규리그 11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8분 22초를 뛰면서 1.3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7분 47초를 뛰며 남다른 경험을 했다. 
180cm의 신장에 농구인 출신인 아버지를 닮아 탄탄한 체격을 갖춘 변소정은 미래가 기대되는 빅맨이다. 비시즌 동안 힘을 더 키우고 몸싸움 능력을 가미한다면 신한은행의 골밑을 지킬 든든한 인사이드 플레이가 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영상 제작 = 이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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