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드림팀 2, 1996 드림팀 3 소속으로 미국을 우승시켰던 레지 밀러지만 그도 세월을 거스르진 못했다.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미미한 존재감으로 대표팀의 패배를 바라만 봐야 했다. ⓒ NBA 미디어 센트럴
 
[루키] 이승기 기자 = 세계대회에 NBA 스타들이 총출동하면 무조건 다 우승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원조 드림팀'이 출범한 후 벌써 24년이 흘렀다. 그간의 미국 대표팀이 겪은 영욕의 세월을 찬찬히 회상해봤다. 다섯 번째 시간에서는 2002년 드림팀 5를 소개한다.

2002 미국 세계선수권대회
드림팀 5
센터 벤 월라스, 안토니오 데이비스
파워포워드 저메인 오닐, 엘튼 브랜드, 라에프 라프렌츠
스몰포워드 폴 피어스, 숀 매리언
슈팅가드 마이클 핀리, 레지 밀러
포인트가드 안드레 밀러, 배런 데이비스, 제이 윌리엄스
예비선수 닉 칼리슨  (* 출전하지 않음)
감독 조지 칼

더 이상 드림팀은 없다?
‘드림팀 4’가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여곡절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잡음은 많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NBA의 커미셔너였던 데이비드 스턴은 뜬금없는 인터뷰를 남겼다. 호주 취재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서부터는 NBA 슈퍼스타들 대신 롤 플레이어들의 선발을 추진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스턴 총재는 “올림픽에 올스타팀을 파견하는 것보다, 팀플레이에 능한 롤 플레이어들을 스타들과 섞어 내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다음 올림픽부터는 슈퍼스타들을 총출동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시 스턴이 어떠한 생각으로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현재 알 길이 없다. 해당 발언으로부터 16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문맥상으로 볼 때, 스턴은 개인플레이보다는 유기적인 팀플레이를 원했던 것 같다.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팀은 아무래도 희생정신이 떨어지기 때문에, 로스터의 밸런스와 조직력에 더 신경 쓰겠다는 의미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드림팀 4’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인 것에 대한 반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는 결과적으로 큰 패착이 됐다. 세계농구의 발전 속도를 간과한 것이었다. 더 이상 세계농구는 미국이 2군, 3군을 데리고 나가도 우승할 만큼 약하지 않았다. 최정예 1군 멤버를 꾸려야만 이길 수 있는 레벨이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미국만 몰랐던 것 같다.

롤 플레이어 팀
스턴 총재의 발언 때문일까. 미국농구협회는 바로 ‘롤 플레이어 팀’을 만드는데 착수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릴 2002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명단이 발표됐을 때, 많은 이들은 우려를 표했다. 지금까지의 대표팀 중 가장 전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롤 플레이어가 즐비했다. 벤 월라스와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수비형 빅맨으로, 공격에서 크게 기대할 구석이 없다. 라에프 라프렌츠는 보드 장악력이 떨어지는 스트레치 빅맨이었다. 제이 윌리엄스와 닉 칼리슨(부상자 발생에 대비한 예비선수)은 대학생에 불과했다. 안드레 밀러와 숀 매리언, 배런 데이비스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3년차 선수들. 엘튼 브랜드는 단신 빅맨이었고, 레지 밀러는 이미 만 37세를 넘긴 노장이었다.
폴 피어스를 제외하면 슈퍼스타 레벨의 플레이어가 없었다. 당초 제이슨 키드와 레이 알렌을 선발했으나, 이들이 부상으로 하차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결국 피어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피어스는 대회 평균 19.8점 4.6리바운드 3.9어시스트 3점슛 3.7개(49.3%)를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미국 대표팀은 6승 3패를 기록, 6위에 그치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자국에서 열린 대회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드림팀 5’를 외치며 출발했지만, 대회가 끝났을 때는 아무도 이들을 ‘드림팀’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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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처 = NBA 미디어 센트럴, FIBA
| BOX | 미국 잡고 맴맴
미국은 2002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승 3패를 기록했다. 첫 패배는 2라운드 도중 나왔다. 아르헨티나에게 80-87로 덜미를 잡힌 것. 당시만 하더라도 이는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었다. 도저히 질 것 같지 않던 미국이 패했기 때문. 또, 미국의 국제대회 58연승 행진이 끝났으며, 드림팀 출범 이후 최초의 패배라는 점에서 더욱 파장이 컸다. (마이너리거들이 대신 참가했던 1998 세계선수권대회는 보통 논외로 친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고-투 가이’는 마누 지노빌리였다. 지노빌리는 이때의 활약을 발판 삼아 NBA에 입성, 2002-03시즌부터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긴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전설의 시작이었다.
미국은 8강전에서 또 한 번 패했다. 이번에는 유고슬라비아에게 78-81로 졌다. 미국을 꺾고 승승장구한 유고슬라비아는 내친김에 대회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했다. 당시 새크라멘토 킹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블라디 디박과 페야 스토야코비치가 바로 유고슬라비아 소속이었다.
미국의 마지막 패배는 5-6위전에서 나왔다. 미국은 스페인에게 76-81로 무릎을 꿇었다. 파우 가솔과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펠리페 레이예스 등 이른바 ‘황금세대’가 이끄는 스페인은 이제 막 전성기를 열어젖히고 있었다.
미국은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스페인에게 차례로 패했다. 이때 미국을 잡은 세 팀은 향후 세계농구계를 주름잡는 강호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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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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