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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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이승기 기자 = 세계대회에 NBA 스타들이 총출동하면 무조건 다 우승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원조 드림팀'이 출범한 후 벌써 24년이 흘렀다. 그간의 미국 대표팀이 겪은 영욕의 세월을 찬찬히 회상해봤다. 첫 번째 시간은 1992년 원조 드림팀 편이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원조' 드림팀


센터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파워포워드 찰스 바클리, 칼 말론, 크리스찬 레이트너

스몰포워드 래리 버드, 스카티 피펜, 크리스 멀린

슈팅가드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 존 스탁턴

감독 척 데일리


출범 배경

‘농구’하면 역시 미국이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올림픽에서 농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던 1936년부터 그랬다. 미국은 일단 참가했다 하면 맡겨놓은(?) 금메달을 가져갔다.

동메달에 그친 1988 서울 올림픽은 미국이 ‘정상적으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최초의 대회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우승을 도둑맞았고(※ 하단 박스기사 참조), 1980년에는 냉전으로 인해 모스크바 올림픽에 보이콧한 바 있다. 따라서 1988 올림픽 동메달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당시 미국은 준결승에서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이끄는 소련에게 76-82로 무릎을 꿇었다. 금메달 사냥 실패도 실패지만, 냉전으로 오래 대립해온 소련에게 졌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미국은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에 당시 NBA의 총재였던 데이비드 스턴이 나섰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대단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스턴과 NBA는 IOC와 FIBA 측에 접촉했다. 테니스나 육상 등 타 종목 선수들은 이미 상금을 벌어들이면서도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다는 점 등을 어필했다. 원래 올림픽은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불가능했는데, 실제로 당시 유럽과 한국 등의 실업농구선수들은 이미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순수 아마추어 대학선수들을 출전시키고 있었던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프로농구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승낙이 떨어졌다. 드디어 NBA 슈퍼스타들의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역대 최고의 단일 팀

미국은 1990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동메달에 그쳤다. 더 이상 아마추어 선수들로는 우승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었다. 미국농구협회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다. 그래서 사상 최고의 팀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드림팀’의 탄생이었다.

제일 먼저 미국농구의 상징인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가 포함됐다. 존슨과 버드는 이미 은퇴한 상태였는데, 이들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찰스 바클리, 패트릭 유잉, 칼 말론, 존 스탁턴, 클라이드 드렉슬러, 데이비드 로빈슨 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했다. (도미니크 윌킨스는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해 불참했다. 아이재아 토마스는 조던을 비롯한 선수들의 극심한 반대로 합류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은 올림픽 아마추어리즘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인 크리스찬 레이트너도 선발했다. 원래는 샤킬 오닐을 뽑으려 했으나, 대학무대에서의 위상이 레이트너가 더 높았기에 레이트너가 선정됐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NBA 슈퍼스타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녔고, 8전 전승으로 가볍게 금메달을 따냈다. 미국은 평균 43.8점차로 상대를 압도했으며, 대회 내내 단 한 번도 타임아웃을 요청하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타 국가 선수들은 이미 경기 승패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우상인 NBA 스타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기 바빴다. 당시 외신들은 “미국 대표팀은 마치 ‘락 스타’ 같았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992년 ‘원조 드림팀’은 농구 역사상 최고ㆍ최강의 단일팀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92년 미국 대표팀은 지난 2010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BOX | 도둑맞은 영광

1936년 처음 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낸 이후, 미국이 우승하지 못했던 첫 번째 대회는 1972년 뮌헨 올림픽이었다. 당시 미국은 결승전에서 소련에게 50-49로 분명히 승리했다. 하지만 심판진이 시간을 3초 전으로 되돌려 경기를 재개했다. 경기 막판 미국의 첫 자유투 이후, 소련 측에서 작전시간을 요청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국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가 재개됐다. 소련은 3초 내에 공격을 실패했고, 미국은 다시(?) 우승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FIBA 사무총장 윌리엄 존스가 “게임 클락에 문제가 있다”며 시계를 3초 전으로 돌렸다. 기사회생한 소련은 장거리 패스를 통해 극적으로 골밑 득점을 성공시켰다. 51-50, 소련의 역전 우승. 완전한 사기극이었다. 미국 선수들은 허탈감에 좌절했고, 아직까지도 은메달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대가 낳은 희대의 블랙코미디였다. 당시 심판진 5명 중 3명의 국적이 공산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세계농구계는 이 사건을 ‘도둑맞은 영광’이라 부른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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