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9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전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이하 AAC) 개장 후 맞는 600번째 정규시즌 경기였다. 재미있게도 댈러스는 2001년 10월 30일, 개장 후 첫 정규시즌 경기도 디트로이트와 가졌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스토리라인이 성립됐다. AAC의 역사는 마크 큐반 구단주, 덕 노비츠키의 역사와도 함께 한다. 노비츠키 데뷔 이래 AAC는 늘 팬들로 가득 찼고, 댈러스도 꾸준히 플레이오프의 역사를 써왔다. 2006년 파이널을 이곳에서 치렀으며, 2011년에는 우승의 기쁨도 함께 했다. 14시즌 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긴 이곳, AAC의 역사는 과연 어떠할까.
리유니언 아레나의 악몽을 잊자
댈러스가 애초 사용해온 홈구장은 리유니언 아레나였다. 1980년부터 AAC가 개장할 때까지 사용했고, 2008년에는 그 수명을 다 하고 폐장했다. 2009년 11월 17일에는 시(市)에 의해 공식적으로 ‘철거'됐다. 1980년 때만 해도 이 구장은 꽤 괜찮은 규모를 자랑했다. 처음 지어질 때 17,77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나 수익 증대를 위해 조금씩 규모를 늘려 18,000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장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는 현재 댈러스 매버릭스 운영팀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스티브 렛슨의 역할이 컸다. 1984년에 입사한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6년 연속으로 시즌티켓만 평균 12,500장을 판매하는 대성과를 거두었다. 생각해보라. 전체 17,000석에서 12,500석이 보장되었으니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댈러스는 그 정도로 ‘성적만 나면 관중은 보장되는' 스포츠에 헌신적인 고장이었던 것이다. 1990-91시즌에도 댈러스는 전체 좌석의 98%를 판매했다.
하지만 NBA가 고급 좌석을 늘리는 방향으로 마케팅 방법을 제시하면서 댈러스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구장 신축이었다. 사실 댈러스는 구장 신축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댈러스 팬들에게도 인정을 못 받는 하위팀 신세였다. 1980년대에는 앞서 말했듯 화려한 시대를 지냈지만, 1990년대에는 지금의 필라델피아 76ers 같은 동네북 신세였다. 필라델피아야 ‘리빌딩'이란 명분이라도 있지만, 그때 댈러스는 “댈러스에게 지는 건 1패 이상의 타격", ”비교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전력이 약했다. 1년 내내 20승도 못 하는 구단이니 말 다했다.
1994-95시즌에 제이슨 키드-저말 매쉬번-짐 잭슨 트리오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이면서 67만 명이 입장했다. NBA 1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1993-94시즌의 13승 69패, 관중동원 25위(52만 명)라는 처참한 성적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성장세였다. 관중은 1995-96시즌까지도 상승세였다. 그러나 댈러스 유망주 트리오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의 기대는 계속 식어갔다.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마크 큐반 구단주와 돈 넬슨 감독이었다. 둘은 댈러스 프랜차이즈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괴짜 구단주, 혁신을 가져오다
댈러스 매버릭스는 큐반 구단주 취임 후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돈 넬슨 감독이 전권을 잡은 가운데 그들은 덕 노비츠키-마이클 핀리-스티브 내쉬라는 새로운 트리오를 중심으로 팀을 성장시켰다. 또, 이들을 위한 지원도 든든했다. 다방면에서 코치와 전문가를 대동했다. 훈련 시설도 확 달라져 언제든 재활과 치료가 가능했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시설에서. 다들 댈러스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큐반 구단주는 전용기도 제공했다. 전용기 시설은 전 좌석이 1등석보다도 좋게 설계되어 있다. TV와 최고 수준의 음질을 자랑하는 스피커는 당연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홈구장 서비스도 화끈했다. 애초 AAC 건축은 큐반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으나, 그는 AAC를 첨단으로 바꿔놓기로 결심한다. AAC의 지분 50%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IT를 통해 재벌이 되었던 그였기에 무엇이 관중을 즐겁게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자산을 탕진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100점을 넘기면 관중들에게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등 화끈한 이벤트가 많았다. 팬들은 경기를 즐기고, 댈러스 매버릭스를 즐기기 시작했다. 14시즌 연속 매진행진의 발단이다.
선수들을 위해서도 서비스가 확실했다. 라커룸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紙가 선정한 NBA 구장 최고의 라커룸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화려하다. 덕 노비츠키는 “처음 사용한 날부터 이곳과 사랑에 빠졌다. 이곳에서 농구를 하는 것이 즐겁다"라고 말할 정도다.
원정길 숙소도 훌륭했다. 큐반 구단주는 무조건 오성급 호텔을 쓰도록 지시했다. 백만장자 선수들의 프라이드를 위해서다.
또한 홈구장에서 사용되는 선수들의 의자 역시 최고의 안락함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경기장에서 먹는 식사 역시 댈러스에서는 가장 우수한 레스토랑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식사가 원정팀에게도 제공된다. “언젠가는 우리 선수가 될 수 있다"라는 큐반의 프로다운 발상에서 나온 서비스다.
홈구장 명칭권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가 갖고 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항공사의 본거지가 댈러스-포츠워스에 있기 때문이다. 1999년 3월 18일 1억 9천 5백 달러를 투자했고, 덕분에 AAC 건립도 한결 수월했다는 후문이다.
큐반 구단주는 AAC가 돋보이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함께 기뻐했다. 2011년 우승 당시 축하 퍼레이드도 AAC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노출하고 싶다는 것이다. AAC의 사업권은 댈러스 시가 갖고 있다. 농구가 없는 날에는 아이스하키를 비롯하여 다양한 스포츠, 문화예술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차례 트러블도 있었다. 사실 큐반 구단주는 댈러스 매버릭를 100% 소유한 상태는 아니다. 몇몇 사업과 관련해서는 전 구단주 로스 페로트 주니어에게도 권리를 준 상태였다. 그래서 2011년에 경기장 주변 주차장 사업권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도 일어나기도 했다. 댈러스 언론들은 “댈러스 최고 부자들끼리 붙었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댈러스가 이처럼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코트 밖에서의 활동도 큰 연관이 있었다. 매버릭스는 유소년 팀뿐 아니라 10~18세를 위한 스킬 트레이닝 센터도 운영 중이다. 심지어 그들은 길거리농구 대회까지 개최하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 중이다.

루키 편집부(rookiemagaz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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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마크 큐반의 꿈
그런데 마크 큐반 구단주는 AAC에서 그치지 않고 ‘궁극의' 홈구장을 꿈꾼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는 AAC와의 계약이 끝나면 새로운 구장을 신축하고 싶다고 의지를 전했다. 더 많은 관중들이 편하게 주차를 하고, 더 편하게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텍사스 출신 디자이너들과 이러한 부지와 건물 설계를 돌입했다는 소식도 있다. 사업가이자 자수성가한 인물답게 추진력도 있고, 그러면서도 대단히 신중하게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구장은 트레이닝 센터와 팀 스토어, 카페, 농구 경기장, 식당, 전시관 등 마케팅과 스포츠가 어우러진, 그러면서도 농구단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복합 시설이었다. 큐반 구단주는 댈러스 모닝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심지어 그곳에는 MRI 촬영실도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당장 현실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아직 AAC와의 계약도 10년 넘게 남아있고 건축비용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댈러스 시와도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현재 AAC를 통해 댈러스가 벌어들이는 돈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팬들은 큐반 구단주가 벌이는(?)이 이벤트에 두 팔 들어 환영의 뜻을 보일 것이다. 그의 화끈한 투자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 노비츠키가 나이가 들고, 리빌딩 과정을 앞두고 있어 예년 같은 높은 성적은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은 ‘한 시대'를 누구보다도 여유 있게, 그리고 오랫동안 즐겨왔다. 2007년처럼 1위를 하고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맞은 때도 있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면서 다같이 우승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2011년에는 마이애미 히트까지 꺾고 우승을 하지 않았던가.
개개인의 추억도 많다. 노비츠키는 홈경기에서 2번이나 50+득점(2004년 53점, 2006년 51점)을 기록했고, 최근 KBL 외국선수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서를 냈던 조쉬 하워드 역시 47점을 퍼붓기도 했다. 제이슨 키드는 2009년 홈경기에서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20어시스트를, 이에 앞서 댈러스를 강팀으로 올려놨던 스티브 내쉬는 19어시스트를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홈경기에서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댈러스의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은 1위부터 20위까지 내쉬와 키드가 양분하고 있다.)
1999-2000시즌부터 댈러스는 한 번도 홈에서 5할 승률 아래로 떨어져 본적이 없는 팀이다. 그리고 노비츠키가 건재한 이상, 큐반 구단주와 릭 칼라일 감독의 의지가 살아있는 이상 ‘강팀' 댈러스의 이미지도 계속될 것이다. 타 구단 선수들마저 눈길 돌리게 만드는 AAC의 화끈한 서비스도 말이다. 때문에 필자는 국내 관계자들에게도 권유하고 싶다. ‘진짜 NBA 서비스'를 느끼고 싶다면 메디슨 스퀘어가든이나 스테이플스 센터가 아닌, AAC를 방문해보라고. 그리고 마크 큐반 구단주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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