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오 사리치의 짜릿한 '위닝 블록슛' = ⓒ FIBA
[루키] 이승기 기자 = 무적함대가 침몰했다.
8일(한국시간) 2016 리우올림픽 B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크로아티아가 스페인을 72-70으로 꺾고 이변을 일으켰다.
스페인은 세계랭킹 2위의 농구 강국. 지난 10년간, 미국을 제외하면 늘 최고의 팀으로 꼽혀왔다. 반면 크로아티아(12위)는 최근 전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원래는 이번 올림픽에 나오지 못할 뻔했으나, 최종예선에서 우승하며 간신히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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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은 둥근 법. 크로아티아가 스페인을 물리치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크로아티아는 과연 어떻게 스페인을 꺾을 수 있었을까.
★ 강력한 육탄방어
이날 크로아티아는 경기 내내 스페인에게 끌려다녔다. 젊음과 패기에서는 앞서지만, 스페인의 경험과 노련미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4쿼터 들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는 놀라운 수비 집중력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넘치는 체력을 바탕으로 스페인을 압박했다. 한 발씩 더 뛰며 스페인 선수들을 지치게 했다.
크로아티아는 예쁜 농구를 하는 팀은 아니다. 건장한 체격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나선다. 크로아티아는 스페인 선수들이 페인트존에 들어오면, 그들을 겹겹이 에워싸며 육탄방어했다. 이는 스페인의 노장 선수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4쿼터 중반 결국 경기가 뒤집혔다. 스페인은 달아날 수 있을 때 더 달아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후 양 팀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경기 최후의 순간, 골밑에서 공을 잡은 스페인의 파우 가솔이 회심의 훅슛을 시도했다. 크로아티아의 육탄방어는 이때도 빛났다. 다르코 플래니니치가 가솔을 막아섰다. 분명 신체접촉이 있었지만, 클러치 타임의 특성상 반칙이 불리지 않았다.
동시에 다리오 사리치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 가솔의 슛을 시원하게 블록했다. 의심의 여지 없는 클린 블록슛이었다.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고, 사리치의 명품 블록은 그대로 '위닝 블록슛'이 됐다.
크로아티아는 4쿼터 들어 스페인에게 단 네 개의 야투만 허용하는 질식수비를 펼쳤다. 그 중 세 개가 3점슛이었다. 스페인은 4쿼터에 페인트존에서 시도한 여섯 개의 야투 중 다섯 개를 놓쳤다. 크로아티아의 육탄방어에 완전히 당한 것이었다.
★ 페인트존 장악
크로아티아는 이날 골밑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스페인이 그간 세계 최강의 인사이드진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한때 스페인은 미국 이상의 골밑을 보유하고 있었다. 파우 가솔, 마크 가솔, 서지 이바카로 이어지는 빅맨진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마크 가솔과 이바카가 결장하면서, 스페인의 철옹성 같던 인사이드 수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만 36세의 노장 파우 가솔 혼자서는 스페인의 골밑을 지키기가 버겁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평균 나이 26세, 202cm의 신장을 자랑한다. 반면 스페인은 평균 29세, 200cm다. 체력과 사이즈에서 모두 크로아티아가 앞선다.
이는 리바운드의 차이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크로아티아는 41개의 리바운드를 따내며 30개에 그친 스페인을 압도했다. 또, 무려 다섯 명의 선수가 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다. 공격 리바운드도 10개나 됐는데, 그 중 5개가 4쿼터에 나왔다. 크로아티아가 25.0%(6/24)의 3점슛 성공률에 그치고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자유투 시도 또한 양 팀의 적극성을 잘 보여줬다. 크로아티아는 25개의 자유투를 얻어 20개(80.0%)를 넣었다. 반면 스페인은 12개를 얻어 9개를 성공(75.0%)시키는데 그쳤다. 페인트존에서 누가 더 전투적으로 임했는지는 명약관화다.

크로아티아의 '더 맨' 보얀 보그다노비치는 이날 폭발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 ⓒ FIBA
★ NBA 리거? 우리도 있다!
파우 가솔은 26점 9리바운드로 일당백의 활약을 해냈다. 두 부문 모두 양 팀 선수들을 통틀어 최다 기록이었다. 심지어 3점슛도 세 개나 넣었다. 니콜라 미로티치 역시 19점 6리바운드 3점슛 4개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가솔과 미로티치는 NBA 리거다. 가솔은 샌안토니오 스퍼스, 미로티치는 시카고 불스 소속이다. 기량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두 선수는 몇 년 전부터 스페인 대표팀의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에도 NBA 선수들이 포진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리오 사리치와 보얀 보그다노비치, 마리오 헤조냐 역시 NBA 리거다. 사리치는 2016-17시즌 필라델피아 76ers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고, 보그다노비치는 이미 브루클린 네츠의 주요 로테이션 멤버로 자리잡았다. 헤조냐는 지난 시즌 올랜도 매직에서 데뷔한 신예 스타다.
이날 사리치는 33분 31초간 코트를 누비며 5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1블록을 기록했다. 야투성공률(FG 1/7)은 매우 형편없었지만, 수비에서는 제 몫을 해냈다. 또, 208cm의 장신 포워드임에도 불구하고 5개의 어시스트를 곁들이며 팀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해냈다.
보그다노비치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혼자 23점에 3점슛 3개를 터뜨리며 가솔과 미로티치에게 맞섰다. 고비 때마다 터진 보그다노비치의 득점이 아니었다면, 크로아티아는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했을 수도 있다. 보그다노비치 덕분에 점수차를 꾸준히 10점 내외로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이변을 일으켰다.

"아! 세월이여" 그 누가 알았겠는가. '농구귀신'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가 무득점을 기록하는 날이 올 줄이야! = ⓒ FIBA
★ 별들의 침묵
스페인 농구 역사상 이런 적이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날 NBA 출신 3인방,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와 루디 페르난데즈, 리키 루비오가 동시에 무득점에 그쳤다. 이들은 총 8개의 야투를 시도해 모두 실패했으며, 단 한 개의 자유투도 시도하지 못했다. 끔찍한 경기력이었다.
나바로가 누구인가. 전 세계에 '플로터' 열풍을 몰고 왔던, 유럽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던 바로 그 슈퍼스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근 몇 년 사이 부상과 노쇠화를 겪으며 기량이 많이 하락했다. 한때 파우 가솔과 함께 스페인 대표팀의 쌍두마차였던 나바로였지만, 이날 11분 35초 동안 무득점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페르난데즈는 스페인 대표팀의 살림꾼이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돌파와 외곽슛 등에 고루 능하다. 하지만 이날 세 개의 3점슛 시도를 모두 놓치는 등 무득점에 묶였다. 예전 같으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슛 기회를 노렸겠지만, 이날은 크로아티아의 퍼리미터 수비에 자주 막혔다.
루비오는 주전으로 나왔음에도 12분 출전에 그쳤다. 벤치에서 나온 세르지오 로드리게즈(28분)에게 출전시간을 다 빼앗겼다. 그만큼 루비오의 경기력이 형편없었다. 회심의 야투 시도 세 개는 모두 빗나갔다. 마치 컨디셔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바로와 페르난데즈, 루비오가 예전 기량의 절반만 보여줬더라도 스페인이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심각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스페인의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 절대강자는 없다!
2016 리우 올림픽 남자농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회 첫날부터 호주가 프랑스를 잡아내더니, 크로아티아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침몰시켰다. 브라질 역시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거의 이길 뻔했다.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는 것이 이번 대회의 판세다. (아, 미국은 빼고 얘기하자. 미국은 『바람의 검심』으로 치면 히코 세이쥬로 같은 존재다.)
농구의 인기가 축구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축구에 비해 이변이 적기 때문이다. 농구는 비교적 승패를 예측하기 쉽다. 사람이 손으로 공을 다루다 보니, 발로 하는 것보다 확실히 실수가 적다. 또, 코트 위에서 다섯 명이라는 소수 정예가 뛰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력과 승률이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력이 약한 팀도 얼마든지 상위팀을 괴롭힐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구 팬들의 흥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승패를 예측할 수 없으니 훨씬 재미있다. 확실히 공은 둥글다. 미국만 빼고.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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