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BA여, 계속 패배하라
[루키] 이승기 기자 = 9일(이하 한국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4-15시즌 NBA 시범경기 도중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13-14시즌 NBA 챔피언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독일 프로 팀 알바 베를린에게 94-93으로 패한 것.

경기 종료 직전, 샌안토니오는 93-92로 앞서 승리가 유력했다. 그러나 베를린이 팀 던컨의 인바운드 패스를 극적으로 가로채 달아났다. 미국 출신의 자밀 맥클린(18점)은 러닝 버저비터를 작렬시키며 베를린에게 승리를 안겼다.


2014년 10월 9일 독일 베를린, 샌안토니오 스퍼스 93 @ 94 알바 베를린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파이널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무참히 박살내며 당당히 챔피언십을 차지했던 샌안토니오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설렁설렁 경기하지도 않았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주축 선수들을 30분 이상 뛰게 하는 등 승리를 향한 열망을 보였다.

하지만 승리는 베를린이 챙겼다. 베를린은 독일 프로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다. 하지만 유럽 전체에서의 성적은 별로 좋지 않다. 2010년 유로컵에서 준우승을 한 번 차지했을 뿐, 그 외에는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팀이다. 이런 팀이 전 세계 최고리그의 챔피언을 꺾은 것이다.

물론, 시범경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에서 미국과 세계농구의 격차를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패배는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2005년 10월 17일 캐나다 토론토, 마카비 텔 아비브 105 @ 103 토론토 랩터스

이날 경기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1988년 7월 31일 애틀랜타 호크스가 소련에 132-123으로 패한 이후, 미국 팀이 유럽 팀에 진 17년만의 첫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마카비 텔 아비브의 앤써니 파커는 경기 종료 0.8초 전, 풀업 점퍼로 깨끗한 위닝샷을 터뜨리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 경기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한 파커를 눈여겨본 토론토는 2006-07시즌 그를 스카웃했다.

원래 파커는 1997년 드래프트 전체 21순위로 NBA에 입성했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데뷔 이후 첫 3년 간 프로무대 적응에 실패했고, 결국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은 끝에 기회가 왔고, NBA에 재입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0년 10월 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LA 레이커스 88 @ 92 FC 바르셀로나

NBA 팀이 유럽에 패한 역사를 논할 때, 결코 이 경기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2008-09, 2009-10시즌 2년 연속 NBA 챔피언 LA 레이커스가 FC 바르셀로나에게 패한 경기였다. 물론 바르셀로나가 NBA를 제외하면 전 세계 최강의 팀이기는 했지만, 당시 챔피언이었던 레이커스 패배의 충격은 대단했다.

이 경기에서 피트 마이클은 코비 브라이언트를 상대로 26점, 13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수훈을 세웠다. 반면 브라이언트는 15개의 야투 중 13개를 실패하는 등 컨디션 난조로 15점에 그쳤다.

또, '미국 킬러'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역시 25점, 6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레이커스는 파우 가솔(25점, 10리바운드, 35분 출전), 라마 오덤(12점, 18리바운드, 41분 출전)이 사력을 다했으나 마이클과 나바로의 쌍포를 막지 못하고 무너졌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판다스 프렌드(The Pandas Friend, 당시에는 '론 아테스트'라는 이름을 썼다)는 경기 도중 마이클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 싸움 직전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특유의 성질머리는 유럽 팬들 앞에서도 여전했다.

재미있는 사실 둘, 당시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리키 루비오는 18분간 5개의 야투를 모두 실패하며 0점, 3어시스트에 그쳤다. 매치업 상대가 데릭 피셔였음을 감안하면 당시에도 슈팅력이 보잘 것 없었음을 알 수 있다.


♣ 패배가 늘어가는 세계최강 NBA?

NBA 팀은 교류가 시작된 1978년 이후 지금까지 유럽 팀 혹은 유럽국가를 통틀어 118번의 맞대결을 가졌다. 역대 통산전적은 NBA의 압도적인 우세다. NBA 팀은 103승 15패를 기록, 통산 87.3%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승률상으로만 보면 역시 NBA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최근의 전적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럽 팀에 패하는 NBA 팀이 많아졌다. 1990년대에는 NBA 팀은 유럽 팀에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벌써 11번이나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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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물러났지만 NBA의 세계화는 멈추지 않는다  = ⓒ NBA.com 동영상 캡처

1. 확률의 법칙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NBA 팀이 유럽 팀에 자꾸 패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맹점이 있다. 예전과는 교류하는 경기 수가 확연히 차이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턴 전임총재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과의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공표한 바 있다. 실제로 스턴의 임기 동안 NBA와 유럽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다음은 NBA 팀과 유럽 팀의 대결 경기의 수다.

1970년대 4경기

1980년대 27경기

1990년대 18경기

2000년대 41경기

2010년대 36경기

시대가 흐르며 교류전이 많이 늘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2010년대다. 아직 2014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36경기를 기록했다. 앞으로 남은 5년 동안 더 많은 경기가 펼쳐질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1990년대 NBA 팀이 한 경기도 패하지 않았지만 18경기로 표본이 적었다. 반면, 2000년대 이후에는 이미 70경기를 치렀고(2014-15시즌 시범경기 동안 7경기를 더 치를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11번을 패한 것이다. 

경기의 수가 늘어나면, 당연히 패배의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간단히 예를 들면, 세 번 연속 가위바위보를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235,653번 연속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NBA 팀의 패배가 늘어나는 것은 그런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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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젊음과 패기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한 고려대 = ⓒ KBL

2. 동기부여의 결여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이 열리기 보름 전, 미국 대학농구의 강호 켄터키 대학은 푸에르토리코 국가대표팀과 두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결과는? 1차전 74-49, 2차전 93-57, 모두 켄터키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켄터키 대학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었지만 프로선수들로 이루어진 푸에르토리코의 국가대표를 꺾겠다는 동기부여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두 번이나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국농구의 프로아마 최강전 또한 같은 맥락이다. 2013년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고려대가 결승전에서 상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팀 선수들은 고려대를 당해내지 못했다. "이겨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에 동기부여가 안 생겨 사력을 다하지 않은 탓이다.

NBA 시범경기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시범경기는 그저 합을 맞춰보는 연습경기일뿐, 굳이 열심히 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처럼 NBA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결여되어 있다.

반면, 유럽 팀의 경우는 다르다. 프로 팀에게 도전하는 아마추어처럼, 푸에르토리코에 대항하는 켄터키 대학처럼 '언더독'의 입장에 있다. 반드시 무찌르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다. 이 경우에는 "패해도 본전"이라는 심리적 안전장치도 깔려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는 팀 vs 사력을 다하는 팀'의 대결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NBA 팀은 유럽 팀을 한 수 아래로 생각하다 큰 코 다치곤 한다. 지나친 방심으로 경기를 패한 뒤,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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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축구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사건. 
FC 바르셀로나는 호나우딩요, 라르손, 사비, 푸욜, 이니에스타까지 출전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 ⓒ 인터넷 캡처


3. 홈 코트 어드밴티지

잠시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4년 7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수원 삼성과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친선경기가 열렸다. 놀랍게도, 수원이 1-0으로 승리했다. 후반 32분 터진 우르모브의 결승골 덕분이었다.

얼마 전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객관적인 전력은 분명 이란이 한국보다 앞섰다. 하지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의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눈물 겨운 투혼을 선보이며 극적으로 우승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홈 팬들의 환호성과 에너지는 분명 선수들에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홈 코트 어드밴티지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홈팀 선수들은 홈 경기장에서 막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홈 팬들의 열렬하고 일방적인 응원이 모여 원기옥이 된다. 과학적으로는 명확히 설명될 수는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홈 코트 어드밴티지는 전 스포츠를 통틀어 분명 실제한다.

NBA 시범경기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NBA 팀은 지금까지 유럽과의 118경기 중 15번을 내줬다. 그런데 그 15패 중 12번이 유럽에서 열린 경기였다. 15번의 패배와 12차례의 유럽 원정경기.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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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02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만에 금메달을 되찾았다 = ⓒ KBL


4.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뿐

NBA의 시즌은 길다. 한 시즌에 팀당 82경기를 치른다. 이렇게 긴 일정을 소화하는 리그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많은 팀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한 시즌을 꾸려간다. 대부분 개막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린다. 전통적인 '슬로우 스타터' 샌안토니오처럼 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몸이 풀리는 팀들도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시범경기는 '컨디션 조절',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괜히 지나치게 열심히 뛰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선수와 팀 모두 막대한 손해를 피할 수 없다. 2014-15시즌 시범경기 도중 벌써 레이먼드 펠튼, 레지 잭슨, 카이리 어빙 등이 부상을 입었다. 심지어 브래들리 빌은 2달 가량 결장이 예상된다.

NBA 팀들은 시범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는 컨디션 점검 및 부상방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얘기다. 실제로 시범경기 성적과 시즌 성적이 전혀 관계없음은 숱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2013-14시즌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시범경기에서 5전 전패를 기록했지만 해당시즌 동부 컨퍼런스 1위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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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베를린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꺾고 세계농구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런 경기가 많아져야 한다 = ⓒ NBA.com 동영상 캡처

♣ NBA여, 계속 패배하라

스포츠의 최대 매력은 예측불허에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농구는 상대적으로 이변이 적다. 타 스포츠에 비해 유독 농구 관련 도박 배당금이 극도로 낮은 이유다.

얼마 전, 농구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농구월드컵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지인들이 더 많았다. "게임만 하지 말고 농구 좀 보라"고 권유하면 다들 이렇게 답했다. "농구? 그거 어차피 미국이 우승하는데 뭐가 재밌냐?"

맞다. 뻔한 승부는 재미가 없다. 스포츠는 역시 끝까지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제 맛이다. 축구월드컵이 세계적 축제로 자리잡은 것은 어느 나라가 우승할지 모르는 박진감 덕분이다. 따라서 미국농구의 독주를 견제할 대항마가 필요하다. 세계농구의 성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관성의 법칙에 의거, 앞으로도 NBA 팀이 패하는 일은 꾸준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미국농구도 언제든 유럽에 패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야 한다. 그것이 농구를 위한 길이다. 미국과 NBA 팀들이 앞으로도 계속 패했으면 좋겠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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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처 = NBA.com / youtube.com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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