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현의 삶은 곧 드라마와 같다. 학창시절 농구를 그만두기 위해 수없이 짐을 쌌던 오재현은 이제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를 누비는 국가대표 가드가 됐다. 오재현은 말한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써보고 싶다”고. 올 시즌 최고의 성장기를 보여주고 있는 SK 오재현을 만나보았다.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것을 추가, 각색했습니다.

기량발전상

올 시즌은 아마 프로농구 역사상 기량발전상(MIP)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즌으로 꼽힐 것이다. KT 한희원, 한국가스공사 샘조세프 벨란겔, DB 박인웅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유난히 많은 시즌이다. 그리고 SK 오재현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힌다.

숫자가 오재현의 달라진 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올 시즌 그는 42경기에서 11.3점 2.4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특히 득점은 지난 시즌(6.6점)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3점슛 성공률(33.1%) 역시 커리어-하이다. ‘오재현은 놔두라고’는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는 작전이 됐다.

특히 SK는 1월 중순을 전후로 김선형, 안영준, 고메즈 딜리아노 등 부상자가 쏟아지면서 코트에서 공격을 풀어갈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졌다. 공격에서 자밀 워니의 뒤를 받칠 선수가 아예 없어진 상황이었다.

이때 오재현이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전희철 감독을 미소 짓게 했다. 오재현은 4라운드(10경기 14.5점)와 5라운드(6경기 16.5점0에서 경이로운 득점 페이스를 보여주며 팀의 핵심 수비수에서 공수 겸장 카드로 발돋움하고 있다. SK가 연패에 빠질 때도 오재현의 활약만큼은 빛이 났다.

“최근에 다득점을 했지만 팀이 계속 졌었어요. 그때 느꼈던 것이 선수는 어쨌든 팀이 이겨야 하고 그래야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면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요. 경기에 지면 축하도 받을 수 없고 저 스스로에 대해 자랑할 수도 없어요. 누구보다도 경기에 이기고 싶었지만 요즘에 자꾸 지고 그게 안 되다 보니 많이 속상했던 것 같아요.”

“저는 1쿼터, 2쿼터에는 어떤 선수든 기회를 받으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는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다만 4쿼터가 중요한데, 거기서 스타인 선수와 아닌 선수의 차이가 갈리는 것 같아요. 4쿼터에는 다들 불안해하고 자신이 플레이를 하기 싫어하고, 숨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저는 4쿼터에 반대로 생각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고, 제가 4쿼터에 나서야 할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은 생각처럼 안 되다 보니 스스로 형들보다는 아직 부족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오재현의 최근 자신의 활약상을 돌이켜보며 남긴 말이다.

오재현의 성장의 기저에는 어떤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승부욕과 의지가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 대해 “내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덤비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요즘 정말 많은 생각이 들어요. 칭찬도 많이 듣고 욕도 많이 먹어요.” 오재현이 웃어보였다.

“재밌는 시즌이에요.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정말 기뻤지만, 그 이후에 부담감도 있었어요. 사람들도 색안경을 끼고 저를 볼 것이고, 제가 거기에 대해서 증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는 사실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게 농구적으로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비판이나 부담을 이겨내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내가 보여주겠다는 마인드예요. 내가 보여줬을 때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겠냐는 거죠. 그런 마인드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럴 때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에게는 너무 고맙고, 그래서 팬분들께 잘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오재현은 놔두라고

앞서 언급했듯 오재현은 데뷔 초반 공격에서는 슈팅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는 선수였다. ‘오재현은 놔두라고’라는 말이 퍼졌을 정도. 하지만 프로 생활 4년 차가 되는 올 시즌, 오재현의 약점은 점점 지워지고 있다. 그 원동력은 결국 엄청난 연습량이다.

“슛이 없으면 프로에서 못 살아남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프로에 와서 첫 시즌에는 특히 저 때문에 스페이싱이 안 되고 민폐가 된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한 3~4년째 꾸준히 슛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아직은 미완성의 선수이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단계에 있지만 이제 그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선수로서 보여드릴 게 더 많다고 생각하고, 더 잘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들었던 비판이 저에게는 결국 득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연습이죠. 연습 밖에 없었어요. 연습이 살 길이었고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시합에서도 나타날 게 없으니 연습을 해야 하고 연습을 통해서만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니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연습을 했어요. 눈 뜨면 농구하고, 밤늦게까지 농구하고, 집에서 쉴 때도 농구를 보면서 왼손잡이 가드들 플레이를 찾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농구에만 빠져 살다 보니까 욕심이 많이 생기고, 잘했을 때 저를 챙겨주는 주변의 반응을 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결국 선수는 역시 잘해야 한다는 걸 느끼다 보니 계속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농구에 빠져 지내는 거요? 지금이 제일 심한 것 같아요. 지금 팀 사정상 제가 2옵션 역할을 하고 있고 공격 비중이 생겼는데, 제가 4년 동안 공격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다른 형들이 계실 때는 제가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수비에서만 역할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제가 그동안 연습한 걸 보여드릴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보니 그 전에 훈련했던 걸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재현이 꼽는 가장 향상되어야 할 부분은 역시 슛이다.

“앞으로 좋아져야 할 부분이요? 슛이에요. 슛이 더 좋아져야 해요. 무조건 슛이에요.” 오재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에 제가 3점슛 성공률이 35%에서 36% 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저는 사실 최근까지 노마크 3점만 던졌던 선수거든요. 그런데 저는 노마크 3점슛을 던지면 성공률이 40%는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오재현의 롤 모델은 NBA의 왼손잡이 가드들이다. 제일런 브런슨, 디애런 팍스 등이다. 특히 올 시즌 NBA 올스타에 뽑힌 뉴욕의 브런슨은 오재현이 가장 좋아하고 플레이를 참고하는 선수라고. 브런슨의 정확한 미드레인지 게임은 오재현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NBA가 오전에 하잖아요. 그때 저도 시간이 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제일런 브런슨이나 디애런 팍스, 고란 드라기치 같은 왼손잡이 가드들의 플레이를 가장 많이 보고, 최근에 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더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브런슨은 영상을 엄청 많이 봤어요. 저는 하이라이트는 잘 안 보고 경기 풀 영상을 늘 보거든요. 브런슨이 있는 뉴욕 경기는 미리 알람을 걸어놔요. 오전 9시나 7시에 뉴욕 경기가 있으면 무조건 알람을 걸어두고 브런슨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이 따라하려고 하거든요.”

“솔직히 브런슨이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잖아요. 스테픈 커리나 르브론 제임스만큼 유명하지는 않고 브런슨은 모르는 사람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브런슨 같은 선수가 잘 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농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절대 농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 브런슨 같은 사람을 보면서 많이 따라가려고 해요.”

농구 못하는 독종

오재현의 농구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농구공을 잡은 이래로 오재현은 항상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닌 못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농구를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어요. 어릴 때 야구, 축구 같은 것들은 동네에서 하면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하고 그냥 하루종일 하고 그랬어요. 밥도 안 먹고 운동만 할 정도로 너무 좋아하고 승부욕도 세다 보니까 운동선수로서의 성격이 너무 강했죠. 그래서 부모님도 제가 결국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는데, 그게 농구가 될 줄은 몰랐죠. 그러다가 스카우트를 받았어요. 스카우트를 받자마자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 성남 초등학교 코치님께서 제 모습을 보시고 농구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저도 생각이 있다고 해서 바로 농구부에 들어가게 됐어요.”

“저는 사실 많이 혼나면서 배웠어요. 그래서 서러울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저를 예뻐해 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배울 때는 정말 즐거웠고 농구가 잘 될 때의 희열을 느끼면 그걸 잊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얘기는 정말 많이 한 건데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농구를 잘한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하기만 했어요. 저는 재능은 없고 열심히 노력만 하는 선수였고 그래서 주변에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실 열심히 하는데도 안 되는 것 때문에 스스로 좌절도 많이 하고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프로에 오기 전까지는 농구를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매년 그만 둔다고 했었어요. 그만 두려고 한 게 7~8번은 되는 것 같고 농구부를 나갔다 들어오고 그랬죠. 아예 숙소에서 짐도 빼고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좌절감은 컸는데 또 한편으로는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왜 안 될까, 내가 더 부족한 걸까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될 때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지쳐서 농구가 꼴보기 싫을 때까지 농구를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연습을 했었어요.”

반전 드라마

무명에 가까웠던 오재현의 농구 인생에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었다. 당시 한양대 2학년이었던 오재현은 인생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1년 뒤에 열리는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 얼리 엔트리로 참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얼리로 프로에 간다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 했어요. 제가 얼리로 프로에 도전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무슨 소리냐, 미친 놈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게 뻔했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런 상황에서 나가면 '걔가 누군데 얼리로 나가냐'는 이야기를 들을 게 뻔했어요.”

“다만 제 스스로 생각했을 때는 그때가 타이밍이 맞다고 판단을 했었어요. 드래프트 1년 전에 결심했어요. 지금 실력으로 드래프트에 나가면 당연히 절대 뽑히지 않을 테니 1년 동안은 모든 걸 다 끊고 그냥 숙소에서 훈련만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그때는 진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슛 메이드 800개를 했고, 슛만 장착되면 프로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계속 농구만 했어요.”

“사실 지금은 좀 체계적으로 연습을 한다면,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거든요. 그냥 미친 듯이 했던 것 같아요. 경기 전날에도 500개씩 던지고, 경기 끝나고 500개씩 던지고 그랬어요. 그냥 그렇게 농구에만 빠져 사니까 농구가 놀더라고요. 사실 그 1년 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끔찍할 정도로 힘들었어요.”(웃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단기 대회 형식으로 열린 대학리그에서 오재현은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준다. 여기에 2020년 여름에 진행된 프로 팀들과의 연습경기에서 역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프로 팀 지도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당시 한양대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슈터 이근휘(KCC)였다. 이근휘를 보기 위해 한양대와 연습경기를 치르던 프로 팀들은 오재현의 활약과 플레이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순식간에 오재현은 프로 지명이 가능한 유망주로 분류된다.

“그때 (이)근휘를 보려고 프로 팀들이 저희 학교랑 연습게임을 잡았었거든요. 그때 저는 프로 팀들에게 저라는 선수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과 코치님한테 프로 팀들이 너한테도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감독님께 저도 얼리로 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결국 오재현은 2020년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가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사실 1라운드에 뽑히지 못했을 때는 아쉬움도 있었죠. 제 목표는 1라운드였으니까요. 앞으로도 저는 2라운드 선수로 계속 남을 텐데 1라운드에 뽑히지 못한 건 솔직히 아쉽긴 했어요. 그래도 일단 뽑히자마자 스스로 '됐다'고 생각은 했었고요, 일단 첫 단추를 꿰었으니 프로에 가서 연습을 더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아요.”

이후 4년. 오재현은 SK의 핵심 수비 카드를 넘어 공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최근 오재현은 공격 비중이 늘어났음에도 수비에서도 이전 같은 에너지를 보여주며 공수가 모두 되는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오재현은 “죽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너무 힘들어요.(웃음) 너무 힘들고 진짜 죽을 것 같아요. 40분 경기를 하고 나면 매 경기 녹초가 돼 있고 3kg은 빠져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너무 간절해요. 사실 누구도 정확히는 모르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너무 힘들게 운동을 했거든요. 이런 기회가 다시는 제게 안 올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다칠까봐 걱정하시고 왜 저렇게까지 할까 하시는데 저는 그게 그냥 오재현이라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죽을 것 같이 뛰는 게 제 농구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국가대표 그리고 드라마

성장을 거듭하던 오재현에게 또 다른 경사가 찾아왔다. 2월 말에 열리는 FIBA 아시아컵 예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 12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오재현에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꿈같은 일이었다.

“솔직히 24인 엔트리는 예상을 했어요. 그런데 12인 최종 엔트리는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량이 늘긴 했지만 아직 국가대표는 아니라고 저 스스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반신반의한 것 같아요. 저처럼 수비까지 하는 가드가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해두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스스로에게 희망고문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뽑히자마자 너무 좋았고 제 농구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같아요.”

“그때가 EASL 경기 날이었어요. 수요일이었죠. 양지에서 잠실로 가는 버스에서 눈 감고 가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계속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전화인 줄 알고 봤는데 팬분들께서 태그를 해주시는 거예요. 드디어 됐다면서. 그때 같이 가던 (문)가온이나 (박)민우나 (김)형빈이 이런 친구들이 너무 축하해줬고 부모님도 전화 오시고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아버지는 축하한다고 해주셨고, 어머니는 울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너무 고맙다고 얘기해주셔서 죄송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농구하면서 국가대표 자체가 처음이에요. 어릴 때부터 예비 엔트리도 들어간 적이 없어요.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던 거죠. 그냥 국가대표는 남의 일인 줄 알았어요.”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와,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저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죠.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면 '우리 재현이 언젠가 국가대표 해야지' 이런 얘기를 듣거든요. 그러면 '언젠가 저 할 거예요' 이렇게 답은 했지만 진짜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국가대표라는 꿈을 달성한 오재현은 최근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사실 저는 그동안 목표가 국가대표였거든요. 농구 인생이 끝나기 전에 대표팀에 한 번은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국가대표는 모든 농구선수의 꿈이잖아요. 농구 인생의 끝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목표로 늘 국가대표를 얘기했는데 다만 그게 생각보다 빨리 이뤄지긴 했어요. 4년 만에 이뤄냈고 이제 다음 목표가 뭐냐는 얘기도 요즘에 많이 듣고 있거든요. 그러면 이제는 저는 KBL에서 베스트5나 MVP도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인 것 같아요. 다들 제가 국가대표가 될지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텐데, 이 드라마를 한 번 끝까지 써보고 싶어요.”

오재현 Profile

신장 : 186.4cm
체중 : 85kg
출신 : 한양대
드래프트 : 2020년 2라운드 1순위
소속 팀 : 서울 SK 나이츠
커리어 : 2020~현재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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