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니콜라 요키치의 아성을 드디어 넘고 생애 첫 MVP 트로피를 손에 넣었던 조엘 엠비드. 그의 이번 시즌 역시 경이로움 그 자체다. 불의의 부상이 발생하기 전까지 MVP를 탔던 지난 시즌의 활약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엠비드다. 리그에 다시 센터의 시대를 불러오고 있는 엠비드의 모습을 조명해봤다. 

*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기사 작성 시점은 엠비드의 부상 발생 이전입니다. 내용은 현재 시점에 맞게 일부 수정했습니다. *

 

 

MR. 70 

2010년 6월 17일. 프로 배구 선수를 꿈꾸던 카메룬 출신의 한 소년의 눈길이 향한 TV 화면에서는 NBA 파이널 경기의 열기가 한창 전해지고 있었다. 

당시 레이커스의 홈구장이었던 스테이플스 센터에는 18,997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레이커스와 보스턴이 펼치는 운명의 파이널 7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6차전까지 3승 3패로 팽팽했던 시리즈 최종전의 승자가 된 쪽은 바로 레이커스. 83-79, 단 4점차의 승리였다. 

당시 레이커스를 이끌던 에이스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코비는 파이널 7경기에서 28.6점 8.0리바운드 3.9어시스트 2.1스틸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만들어내며 레이커스의 우승을 이끌었고 2년 연속 수상한 파이널 MVP 트로피를 스테이플스 센터 천장을 향해 번쩍 들어올렸다. 

코비의 이 시리즈는 배구 선수를 꿈꾸던 카메룬 소년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는 15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배구공이 아닌 농구공을 새롭게 잡게 된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당시 코비의 플레이를 보고 농구 선수의 꿈을 키우게 된 인물은 바로 조엘 엠비드다. 

자신이 농구를 시작했던 이유였던 만큼 엠비드에게 코비라는 존재는 우상 그 이상이었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 하나.

코비가 안타까운 헬리콥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직후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 나선 엠비드는 자신의 원래 등번호인 21번이 아닌 코비의 24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엠비드는 24점만을 기록한 채 더 이상 득점을 올리지 않았다. 당시 경기는 필라델피아의 115-104 승리. 이처럼 엠비드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영웅을 배웅했다. 

왜 이렇게 코비의 이야기를 길게 했냐고? 이유가 있다. 엠비드가 최근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자신의 우상을 다시 세상에 소환했기 때문이다. 

2024년 1월 22일에 열린 필라델피아와 샌안토니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는 필라델피아가 133-123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6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연승보다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조엘 엠비드의 놀라운 퍼포먼스다. 

이날 엠비드는 36분 38초 동안 코트를 밟았다. 그러면서 무려 41개의 야투를 시도했다. 1분 당 1개가 넘는 야투를 시도한 셈. 그 중에서 24개가 림을 가르면서 58.5%의 야투율을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자유투다. 이날 엠비드는 무려 23번이나 자유투 라인에 섰다. 그 중 림을 가른 슛은 21개.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이런 활약을 펼친 엠비드의 득점 부문에는 무려 7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오타가 아닌 실제로 엠비드가 이날 기록한 득점이다. 필라델피아가 기록한 팀 득점의 절반 이상이 엠비드의 손에서 나왔다. 

1쿼터부터 24점을 기록하면서 심상치 않은 활약을 예고한 엠비드다. 2쿼터에 10점을 더하며 전반에만 이미 34점을 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3쿼터. 엠비드는 무려 25점을 스코어보드에 추가하면서 놀라운 기록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이쯤 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엠비드의 손끝을 향해 집중됐다. 이어 엠비드는 4쿼터 중반 다시 코트를 밟았고 11점을 더 추가하면서 기어이 70점을 채운 채 퇴근했다. 

시계를 잠시 18년 전으로 돌려보자. 엠비드가 70점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정확히 18년 전인 2006년 1월 22일. 이 날은 레이커스와 코비의 팬이라면(혹은 토론토 팬들까지도)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다. 바로 코비가 토론토를 상대로 무려 81점을 폭격하면서 레이커스의 역전승을 이끈 날이었기 때문이다. 윌트 체임벌린의 위대한 100득점에 이은 역대 2위에 오른 코비의 놀라운 81득점 퍼포먼스는 엠비드가 정확하게 18년 후 70점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다시 한 번 조명될 수 있었다. 엠비드는 그렇게 신기한 우연과 함께 자신의 우상을 다시 세상에 소환했다. 

<코비, 그리고 엠비드>
코비 브라이언트(2006년 1월 22일 vs 토론토) : 81점 6리바운드 3스틸. 야투 : 28/46(60.9%), 자유투 : 18/20(90.0%)
조엘 엠비드(2024년 1월 22일 vs 샌안토니오) : 70점 18리바운드 5어시스트. 야투 : 24/41(58.5%), 자유투 : 21/23(91.3%)

엠비드는 이날 경기를 마친 후 70점을 기록한 소감을 전했다. 

“제가 팀원들에게 한 말은 ‘제발 억지로 하려고 하지마’ 였어요. 그냥 평소와 같은 농구를 하자고 했죠. 만약 제가 오픈이 되면 패스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올바른 플레이를 하라고요. 대니엘 하우스가 야유를 들은 것은 불행한 일이에요.(이날 경기에서 엠비드의 기록이 보고 싶었던 관중들은 하우스가 오픈 찬스에서 3점을 쏘자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플레이하려고 했고 올바른 플레이를 성공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분명히 제가 많은 슛을 쐈고 동료들이 저를 많이 찾으려고 한 것도 있었죠.”

이날 엠비드를 상대한 샌안토니오 선수들 역시 혀를 내둘렀다. 22점을 기록했던 데빈 바셀은 “엠비드는 막을 수 없었다”라며 “박스아웃을 하려고도 시도했고, 더블-팀도 붙어봤다. 계속 다른 선수로 막기도 해봤다. 그가 MVP가 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정말 너무나 어려운 매치업이었다”라며 엠비드의 실력을 인정했다. 

또한 엠비드는 이날 기록을 바탕으로 수 없이 많은 전설들을 소환했다. 우선 그는 윌트 체임벌린의 68득점을 넘어 필라델피아 프랜차이즈의 단일 경기 최다득점 기록을 새롭게 썼다. 이제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단일 경기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바로 엠비드가 됐다. 

참고로 체임벌린이 기록한 전설의 100득점 경기 역시 필라델피아에서 달성됐다. 그러나 당시 체임벌린이 유니폼을 입고 있던 팀의 이름은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이 팀은 1962-1963시즌에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겼고 이후 1971-1972시즌부터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팀명을 변경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엠비드의 필라델피아와는 명백히 다른 팀. 체임벌린은 1964년에 트레이드로 다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합류해 이후 68득점 기록을 세우게 된다. 

또한 엠비드는 단일 경기에서 70점 이상을 기록한 역대 9번째 선수에 이름을 남겼다. 한 경기 70득점은 마이클 조던도 달성해보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부상에 발목 잡히다

2년 연속 MVP는 역대 단 13명의 선수들만이 차지했을 정도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가장 최근 해당 기록을 달성했던 선수는 니콜라 요키치로 그는 2021년과 2022년에 MVP를 연이어 수상하면서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다. 

현재까지 34경기를 치른 엠비드는 평균 35.3점을 기록하고 있다. 3년 연속 평균 30점 이상의 득점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의 기록이 유지된다면 지난 시즌의 득점력 역시 뛰어넘게 되는 엠비드다. 

평균 35점 이상 기록은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1960년대를 수놓았던 체임벌린의 시대가 지난 후 처음으로 해당 고지를 정복했던 선수는 마이클 조던. 조던은 1986-1987시즌과 1987-1988시즌에 각각 평균 37.1점 35.0점을 기록하면서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평균 35점 이상 득점왕은 한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005-2006시즌 코비가 평균 35.4점을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해당 기록을 달성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해당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제임스 하든이다. 휴스턴 유니폼을 입고 엄청난 득점 퍼포먼스를 뽐냈던 하든은 2018-2019시즌 36.1점을 기록하면서 조던과 코비의 뒤를 이었다. 

엠비드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록을 뽑아내는 중이다. 조던과 코비, 그리고 하든까지 이들은 모두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슈팅가드 스코어러다. 엠비드는 센터 포지션에서 이러한 득점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는 특별함이 있다. 

데뷔 때부터 유효했던 수비력 역시 건재하다. 이번 시즌 엠비드는 평균 1.8개의 블록슛과 1.1개의 스틸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엠비드는 6피트 이내의 구역에서 상대의 야투율을 무려 10.7%나 떨어뜨리고 있다. 공격에서 리그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수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엠비드는 이를 해내고 있다. 

그러나 엠비드의 MVP 2년 연속 수상은 물거품이 됐다. 새롭게 만들어진 NBA의 규정을 엠비드가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 이유다. 

지난 4월 합의된 새로운 CBA 협상 결과 정규시즌 종료 후 각종 수상을 위한 후보에 등록되기 위해서는 최소 경기 출전 기록을 채워야 한다는 규정이 새롭게 도입됐다. 당시 합의된 경기 수는 65경기. 즉, 아무리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라도 65경기를 뛰지 못하면 수상 자격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는 물론 MVP에게도 적용되는 규정이다. 

NBA 팀들의 정규시즌은 총 82경기로 치러진다. 이 중 65경기를 뛰어야 하니, 수상 후보가 되기 위해 허용되는 최대 결장 경기 수는 단 17경기다. 18번째 경기에 결장하게 되는 순간, 평균 40점을 넣든 50점을 넣든 수상 자격은 사라지게 된다. 

이번 시즌 엠비드는 34경기에 출전했다. 최소 출전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31경기를 더 뛰어야 한다. 그러나 엠비드가 이 조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초 반월판 부상을 당한 엠비드가 수술을 결정하면서 상당 기간 결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칫 회복이 길어진다면 정규시즌 내에 복귀가 힘들 수도 있다. 

엠비드는 MVP 2연패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MVP는 이미 한 번 해봤다. 2번째 MVP를 탈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할 것이다. 굳이 그걸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이기는 것이다. 물론, MVP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릴 스탯을 기록한다면 좋다. 그러나 내가 MVP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경기수를 채우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엠비드에게는 이뤄야 할 목표가 남은 상황이다. 그것은 바로 파이널 우승이다. 지난 시즌 엠비드에게 정규시즌 MVP를 뺏겼으나 결국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면서 파이널 MVP를 손에 넣은 니콜라 요키치를 보면서 엠비드 역시 많은 생각을 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정규시즌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던 엠비드에게 이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어쨌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 엠비드다. 

 

SIDE STORY
다시, 센터의 시대? 

스테픈 커리의 등장 이후 NBA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단어는 바로 ‘스페이싱’이다. 누구나 3점슛을 던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골밑에서의 활동으로 반경이 국한됐던 센터들은 자연스럽게 중심에서 소외되어 갔다. 

‘센터에게 많은 연봉을 주면 우승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현대 농구에서 센터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우승을 위해서는 가드나 포워드 포지션에 많은 재능이 있어야 하고, 센터는 그저 스크린 혹은 리바운드 셔틀로만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리그에 불어온 스몰볼 트렌드는 그렇게 센터들의 설 자리를 지워갔다. 

그러나 최근 다시 센터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기존의 센터들에게 필요하던 역할은 물론 트렌드에 맞춰 슈팅 능력과 심지어 어시스트 능력까지 갖춘 센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리그 판도는 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조엘 엠비드와 니콜라 요키치다. 최근 MVP 트로피를 양분하고 있는 이들은 리그에 다시 센터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는 장본인이다. 지난 시즌 요키치가 덴버에 창단 첫 우승을 안기면서 센터들의 반격을 본격화했고, 엠비드 역시 연일 놀라운 득점 퍼포먼스로 필라델피아를 이끄는 중이다. 또한 1순위 신인 빅터 웸반야마 역시 이들의 뒤를 이을 자원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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