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화제와 뜨거운 열기 속에 마감한 KBL의 2022-23시즌. 정규리그에서 챔피언 결정전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존재했지만 새롭게 마이크를 잡은 해설 위원들의 등장도 팬들에게는 이슈였다. 오랫동안 삼성에 몸담았던 이규섭 전 코치도 해설자로 변신해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선수, 지도자에 이어 해설위원으로 KBL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이규섭 해설 위원.

선수 시절에도 신인상을 차지했던 그는, 만약 해설에도 신인상이 있다면 올해 그 주인공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성과 재미, 그리고 사전 인터뷰에도 참여하는 열정과 적극성으로 해설자로서의 루키 시즌을 보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농구인
그는 엘리트의 정도를 걸어온 농구인이다. 학창시절부터 주목받았던 그는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삼성에 지명됐고, 신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2013년까지 삼성에서 활약한 그는 은퇴와 동시에 코치가 됐고, 2022년까지 코치, 수석코치, 감독 대행을 맡았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한 시간과 미국에서의 지도자 경험을 제외하면 21년간 명문 삼성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꾸준히 활약했다. 그리고 1년 전, 감독 대행으로의 시즌을 마친 후, 그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인이 됐다.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잘 챙기지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게 첫 번째였고, 그 다음은 다시 미국에서 농구를 보고 싶었어요.”

그는 선수 은퇴 후, 미국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산하의 NBA G리그 팀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서 1년간 코치 연수를 한 바 있다.

“그때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제가 갖고 있던 틀이 많이 깨졌거든요. 선수를 하면서 생각하던 게 미국을 다녀오면서 많이 전환도 되고, 틀도 깨지면서 공부가 됐어요. 그래서 작년에도 미국을 다녀왔어요. 코치들도 보고, 이현중이 참가한 쇼케이스, 그 외 다른 에이전트들이 여는 쇼케이스와 훈련을 참관했죠.”

가장 큰 목적은 미국의 유소년 시스템을 보는 것이었다. 미국에 동행한 자신의 둘째 아들을 캠프에 참가 시키기도 했고, 유소년 대회와 캠프를 어떻게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하는 지를 보고자 했다.

그리고 귀국 후 스포티비의 농구 해설위원을 맡았고,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또, 충북대학교에서 교양 과목과 전공 과목 하나씩을 지도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조금은 다른 시간표를 보내는 중이다.

“하루 일과는 간단해요. 아침 7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등교시킵니다. 첫째를 휘문중, 둘째를 용산중에 내려주고 돌아오면 9시 반쯤 돼요. 조금 늦은 식사를 하고 주 2-3회 정도는 운동도 합니다. 낮에는 코치를 하면서 갖고 있던 자료를 정리하고, 아내랑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아이들을 데려오고 같이 식사하면서 일과가 끝나는 거죠.”

오랫동안 프로에서 농구인으로 살았기에 아내와 보내는 시간은 지금이 신혼 때보다도 길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지난 1년간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제가 밥을 하루 세끼 다 집에서 먹는 스타일이거든요. 얼마나 귀찮겠어요? 지금도 되게 반기지는 않는데,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 해설자로서의 수입 자체는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점이 부담도 될 텐데, 지금까지는 고맙게도 잔소리를 하지는 않고 있네요.”

평생을 농구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심지어 ‘선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장남 승준(휘문중) 군과 차남 승민(용산중)군 모두 농구 선수로 활약 중이다. 유소년 농구로 시작해 이제 엘리트의 길로 들어섰다. 이규섭 위원이 미국의 유소년 시스템을 보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도 본인이 이제는 ‘선수의 아버지’로 살아야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가 농구를 몰라요. 관심도 없어요. 그냥 스포츠 보는 걸 안 좋아합니다. 처음 사귀던 때에 잘 보이려고 경기장에 오게 했고, 정말 미친 듯이 득점하고 멋있는 거 다 했거든요? 그런데도 시큰둥하더라고요. 그냥 관심이 없던 거죠. 제가 프로선수가 되고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경기장 자체도 자주 안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농구를 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가끔은 물어보기도 해요.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선수일 때도 그게 최고의 내조였고, 엄마로서도 그냥 모르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농구를 모를 수 없는 ‘아빠 이규섭’은 어떨까?

“평생 농구를 했고, 또 봤는데, 아빠로 보는 농구는 완전히 다릅니다. 팀을 보지 않고 제 아이를 보게 되죠. 여느 부모랑 똑같아요. 코치나 해설위원일 때는 농구를 보면서 이 팀이 어떤 전술, 어떤 세트플레이를 할지, 약속된 수비가 어떤 걸지 추측하며 보는 재미가 있는데, 아들 경기는 그냥 아들만 봅니다.”

 

처음부터 두 아들을 선수로 키우고자 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서울 대치동에서 살았던 이유도 오롯이 아이들의 공부와 학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농구 선수 집안에서 자라온 환경은 무시할 수 없었다. 공부를 하면서 클럽 활동으로 축구를 하던 두 아들은 자연스럽게 고학년이 되며 농구를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DNA가 힘을 발휘했다. 취미반에서 선수반으로 넘어가게 됐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려고도 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자기 욕심에 그냥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객관적으로 선수를 할 수 있는 실력과 가능성이 있어야 된다고 봤는데,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 학교 두 곳에서 제안이 왔어요. 아이한테 의사를 물어봤는데 하고 싶다고 했고, 결국 큰 애는 물론 두 살 어린 둘째도 농구를 하게 됐네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달라진다.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확실히 아버지는 아버지다.

“큰 애는 공부도 잘해요. 어려서부터 잘했고, 농구를 하고 있는 지금도 본인이 그 부분을 잘 준비하고 있어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농구는 패스 센스가 좋은 편이라 그 부분에서 기대가 되고요. 패스는 본인이 여러가지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강점이죠. 키가 조금 작긴 한데 이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봐요.“

“둘째는 그래도 KBL 유소년 중에서는 조금 이름이 거론되는 아이에요.  용산중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데, 루카 돈치치(댈러스)를 좋아해요. 아빠인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플레이 스타일도 조금 비슷합니다. 하하. 공격력이 괜찮고 좋은 사이즈를 갖고 있는 가드인데, 이타적으로 플레이를 해요. 아마 둘 다 기자분들이 보시면 좋아하실 거 같네요.”

두 아이를 선수로 키우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아버지의 노력과 수고도 알게 됐다. 그의 아버지 또한 농구 선수 둘을 뒷바라지 했다. 이규섭의 형은 현재 원주 DB의 프런트로 재직 중인 이흥섭 사무국장이다. 대구 동양, 원주 나래-삼보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2001년부터는 한 팀의 프런트를 오랫동안 맡아오고 있다.

“아이들을 등하교 시키면서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힘드셨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형제도 운동을 위해 아버지가 아침마다 등교를 시켜주셨는데, 저희를 데려다주는 시간이랑 출근 시간이 맞지 않았거든요. 운동하신다고 테니스를 하셨는데, 결국 저희를 등교시키고 출근까시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으니까 그러셨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어요.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해설 첫 해, 큰 반향을 일으키다
‘해설 내용은 전문적이고 좋은데, 텐션이 너무 낮다’

처음 그의 해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목소리가 높아졌다. 활기 찬 그의 해설에 일부 선수들이 살을 붙이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등장했다. 팬들의 관심과 기대도 높아졌다. ‘우리 팀 경기에 이규섭 위원이 해설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경기는 선수가 빛나야 하고, 그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프로 선수로 오래 뛰었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말할 때도 별로 긴장하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역시 처음은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하나’라는 부분에서 고민을 좀 했는데, 우연치 않게 최준용, 이관희 같은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은 유쾌하게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들으실 때 ‘저런 멘트도 하네’ 정도의 여유가 약간은 생긴 것 같아요.”

정확한 해설을 위해 경기 전, 기자들의 양 팀 라커룸 사전 인터뷰에도 동참을 한 이 위원은 해설 중 전문 용어를 누구보다 많이 사용하면서 그와 관련해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야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던 것.

“저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에요. 사실 용어라는 게 정답이 없거든요. 기존 명칭은 존재하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부르면서 익숙하게 활용된 경우도 있고요. 다만 그런 용어를 팬들이 알게 되면, 외국 해설진이 중계하는 경기나 영상을 보시거나,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도 어느 정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또, PD 분들이 정말 많은 피드백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데, ‘호응도 괜찮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용어들을 설명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따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해설자로서의 첫 시즌. 그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라고 말하면서, 적어도 KBL 시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었다고 강조했다.

“제가 선수로 13시즌을 뛰고, 코치 8년을 했잖아요. 그리고 해설까지 22년째 KBL을 보는데, 정말 역대급 시즌이었던 거 같아요. KGC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지만 마지막까지 예측이 되지 않는 순위 싸움이 벌어졌고, 우승 후보였던 KT와 한국가스공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혼전도 있었잖아요. 거기다가 캐롯은 KBL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스몰볼을 들고 나왔죠. 모든 팀들이 비슷한 색깔을 가져가는 KBL에서 그런 시도 자체도 놀라웠지만 결과까지 만들어 냈기에 정말 대단했다고 봐요. 그리고 플레이오프도 재미있었죠. 챔피언결정전은 말 할 것도 없을 거 같아요. 팬들의 성원도 대단했고, 7차전까지 가서, 그것도 연장전에 끝났잖아요. 6차전을 놓쳤던 SK는 두고두고 아쉽겠지만, 저는 챔프전을 뛴 두 팀 모두가 승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출이 부족했죠. 이런 최고의 시즌이 조금 더 팬들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아쉽지만, 충분히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FA까지 역대급이네요. 이번 시즌은 정말 대단합니다.”

 

발전 가능성은 충분

샐러리캡과 관련해 소프트캡을 적용하며 변동이 더욱 커진 FA 시장. 이규섭 위원은 농구 발전을 위해 조금 더 전향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면 한다는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럴 거면 제한이나 규제를 폐지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해요. 샐러리캡도 더 전향적으로 크게 볼 필요도 있고요. 사실 저는 프로에서는 평준화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투자하는 팀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게 맞죠.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하고 감당하지 못하면서 위기가 올 거라고 하는데, 결국 거기에서도 자정적인 선이 생기거든요. 한계가 존재한다고 봐요.”

그의 시선은 선수들에게서 그치지 않았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지만 코칭스태프나 지원 스태프들의 처우는 KBL 초창기와 크게 차이가 없어요. 물론 당시 기준으로는 고액 연봉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거의 25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특히 트레이너나 매니저, 전력분석원 같은 분들은 정말 열악한 급여와 환경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결국 20여 년 동안 리그가 커지지 못했다는 거죠.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 그 때문에 농구의 위상과 시장이 올라서지 못했기에 지출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반대로 그 틀을 넘기 위한 투자와 노력, 환경 개선이 있어야 프로로서 리그의 위상도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자로 1년을 보냈지만 궁극적으로 이 위원이 바라보는 곳은 다시 현장이다. 코치 생활 동안 기록했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미국의 지도자들과 꾸준히 연동하며, 틈틈이 NBA와 유럽 농구에서 활용하는 전술과 전략을 공부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소양을 더 갈고닦기 위함이다. 루틴처럼 보내는 하루 일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는 여전히 KBL에서 코치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회가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일이 이력서를 쓰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코치로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해설 위원으로 보는 경기와 각 팀의 모습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신인으로 KBL에 발을 디딘 2000년부터 그의 시선이 KBL을 떠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선수, 코치, 해설 위원으로 KBL의 역사와 함께한 이규섭 위원은 해설 위원은 물론, 지도자로서도 분명 블루칩이다.

다양한 위치에서 KBL과 한국 농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반등의 여지를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위기론’에 몰려있는 농구 인기에 대해서도 우려보다는 희망을 전했다.

“농구의 인기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 아이들 때문에 클럽 농구를 벌써 8년 정도 봤는데 3X3이나 유소년 대회에 대한 관심은 대단합니다. 직장인들 대회도 활성화가 되어 있고,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즐기는 인구는 상당해요. 보는 농구에서 직접 즐기는 시대가 된 거죠. 하지만 농구를 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눈높이의 차이죠. NBA를 보는 팬들은 상당하잖아요?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의 인지도가 급상승한 사례도 몇 차례 있었고요. 인기가 없는 건 KBL이지 농구가 아니에요. 이런 인기의 가능성과 요소들을 KBL로 끌고 와야죠. 분명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답은 나와 있지 않나 해요. 허웅과 허훈의 인기를 보면서 스타와 노출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더 노력하면 충분히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농구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고 계신 팬들이 앞으로 꾸준히 한국 농구와 KBL을 응원하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 기사는 루키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KBL 제공, 이규섭 위원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