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베스티’ 출신의 강혜연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장르인 트로트로 전향하며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스트롯2 도전에 나선 강혜연은 ‘트롯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 농구장에서 시투를 했던 경험도 있다는 그녀를 <루키>가 만나봤다.

농구장과의 인연

현재는 트로트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강혜연은 원래 ‘베스티’라는 그룹에서 활동하던 아이돌이었다. 농구장과의 인연은 아이돌 시절 맺은 적이 있다고. 당시 경기를 지켜보면서 농구의 매력을 확실하게 느꼈다는 강혜연이다. 

“예전에 시투를 하러 갔던 적이 있어요. 아쉽게 골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재밌게 했었던 기억이 나요. 시투를 하고 나서 경기도 봤었는데 확실히 매력이 있더라고요. 뭔가 남자들의 스포츠 같은 느낌이 들었었어요.”

“요즘 제 헤어를 해주시는 선생님께서 농구에 푹 빠지셨거든요. 정말 엄청 좋아하셔서 우리나라 경기뿐만 아니라 NBA까지 챙겨보시더라고요. 저한테도 농구장에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아직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갔어요. 언젠가 꼭 가보려고요. 또 요즘에 슬램덩크 영화가 엄청 인기잖아요. 그 영화도 다들 엄청 재밌다고 하셔서 꼭 볼 예정이에요.”

참고로 강혜연이 언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무려 400만 관객을 돌파한 상황이다. 3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너의 이름은’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처럼 농구와의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강혜연은 운동 실력 역시 남부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출발드림팀에 출연해 우승을 거머쥔 경력도 있을 정도다. 

“저는 운동 실력이 뛰어 났다기보다는 약간 악(?)으로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체력이나 능력은 다른 분들보다 떨어졌는데 진짜 뭐라도 하려고 악으로 했던 것 같아요. 분량이 조금이라도 나와야 하니까요.”(웃음)

“헬스를 굉장히 오래 하긴 했어요. 했다가 쉬었다가 하긴 했는데 10년 정도 한 것 같아요. 특히 아이돌 시절 때는 엄청 열심히 했어요. 스케줄을 하기 전에 오전에 공복 상태에서 유산소를 하고 스케줄을 마친 후에는 PT를 받았거든요. 다이어트 목적도 있고 몸을 단단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힘들어요.”(웃음)

 

이뤄진 꿈,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강혜연은 음악인이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오디션 공고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을 하면서 아이돌 연습생이 된 강혜연이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음악이 제 생활에 차지하는 부분이 컸어요. 그러다가 초등학생 때 인하대학교 축제 공연을 엄마랑 같이 보러 갔는데 거기서 마야 선배님이 무대를 하시는 것을 보니까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꿈을 꿨던 것 같아요.”

“대학을 음악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버스킹도 하고 하는 약간 음악인(?)이 되고 싶었는데 잘 풀리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무심코 온라인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는데 합격이 되더라고요. 심지어 저는 춤을 아예 못 췄거든요. 그런데 아이돌 연습생이 됐어요. 운명은 있는 것 같아요.”

춤을 전혀 추지 못했던 강혜연이었기에 연습생 시절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시기를 이겨낸 강혜연은 마침내 아이돌로 데뷔하게 된다. 특히 ‘베스티’라는 그룹으로 2013년부터 활동했는데, 당시 실력파 걸그룹으로 주목을 받으며 활동한 강혜연이다. 

“사실 막 데뷔를 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신나게 무대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군부대에서의 공연이었어요!(웃음) 군인분들이 저희 이름만 계속 외쳐주시니까 너무 많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고 기분 좋게  공연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으며 활동을 이어나간 ‘베스티’였지만 수익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면서 강혜연은 활동 기간 동안 정산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가는데 저는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도 돌아보면 그때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런 경험들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을 산 것 같아요.”

 

그룹의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카페 아르바이트로도 나섰던 강혜연이다. 또한 이전에도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갖춘 그는 ‘알바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주위에서 인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다이소가 처음 생겼을 때 일을 하기도 했고 애슐리나 편의점 등에서 일했어요. 축구장에서 관객들 입장을 도와드리는 일도 했었고 편의점에서도 일을 했었어요. 공백기 때는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고요. 사실 공백기 때는 여러 방면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서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고 했어요.”

“제가 제일 열심히 했던 아르바이트는 애슐리에요.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을 하다보면 한 번에 접시를 최대한 많이 들고 옮기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거에요. 제 가게도 아닌데(웃음)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곳에서 다들 저를 탐내하셔서 정규직으로 오라고 말씀도 많이 해주셨죠.”

그런 강혜연이 처음으로 ‘음악’으로 돈을 번 것은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 이후다. 첫 정산을 받았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딱 10년 만에 정산을 받았거든요.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어요. 좋기도 한데 허무했던 감정도 들었어요. 여태까지의 생활들이 스쳐지나가면서 그 동안 고생했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돈은 바로 부모님께 드렸어요. 그 동안 등골브레이커(?)로 지냈기 때문에.(웃음) 가족들에게 보냈죠. 엄청 뿌듯해하시더라고요. 사실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많이 불안해하셨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걱정 없다고 항상 말씀하세요. 식당에 가면 제 자랑을 그렇게 하세요.”(웃음)

 

 

인생을 바꾼 트로트

현재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각종 트로트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대세 장르로 떠오른 트로트다. 

강혜연의 인생을 바꾼 것 역시 트로트였다. ‘베스티’가 해체된 후 강혜연은 2018년부터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 본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트로트 열풍이 불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아이돌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강혜연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존재했으나 마지막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강혜연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강혜연의 선택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은 ‘신의 한 수’였다. 

“원래 트로트를 되게 좋아하긴 했었어요. 아빠도 저한테 가요보다 트로트가 맞는 것 같다고 많이 말씀 하셨거든요. 또 아이돌 활동을 할 때 회사에서 성적이 좋으면 트로트 앨범을 내주시겠다고 하셔서 곡도 받았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서 곡을 내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베스티 계약이 끝나고 지금 대표님께 연락이 와서 미팅을 하게 됐어요. 저한테 트로트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려운 장르였어요. 여전히 어려움을 느껴가면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무시는 당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사실 그 때는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했죠. 그런데 저는 트로트를 하면서 너무 재밌었고 도전을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선택을 하면서도 망설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완전히 다른 장르를 소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창법을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곁들여야 했고, 첫 무대에서는 너무 긴장해 잊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트로트 창법을 배우면서 선생님들께 정말 많이 혼났어요.(웃음) 가요의 깨끗한 창법을 버려야 트로트의 매력이 살아난다고 하시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정말 그 때는 많이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어요. 성대 결절에 걸리기도 했고요.” 

“아이돌 활동을 할 때는 파트를 나눠서 하니까 제 파트만 잘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 됐잖아요. 처음에 부담감이 상당하더라고요. 그래서 첫 무대에서 실수를 엄청 했어요. 그 전까지 제가 가사를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 순간에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가사를 다 까먹었어요. 아직도 그게 너무 한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 활동을 이어가던 강혜연을 순식간에 스타로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 바로 ‘미스트롯2’다. 최고 시청률이 32.9%까지 나왔던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강혜연은 남다른 실력으로 눈도장을 받으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원래 미스트롯1에 지원을 해보라고 연락이 왔었거든요. 그런데 그 때는 제가 트로트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신만 당할 것 같더라고요. 만약 시즌 2를 하면 그 때 나가겠다고 말씀드리고 공부를 더 했죠. 그러다가 막상 2를 한다고 하니까 또 겁이 났어요. 제가 경쟁 같은 것을 잘 못해서 경연이 힘들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나가라고 조언을 해줘서 지원을 하게 됐는데 운이 좋아서 잘 됐던 것 같아요.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안 나갔으면 엄청 후회할 뻔 했어요.”(웃음)

당시 강혜연은 아쉽게 8위로 경연을 마무리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트로트 가수’ 강혜연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프로그램 출연 이후 ‘트롯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은 강혜연은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민 투표 순위가 높아서 잘하면 결승에 올라갈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어요. 결과 발표가 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마음도 들었어요. 8위도 충분히 높은 순위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있으니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픈 것은 한 이틀 정도 갔던 것 같아요.(웃음) 그 뒤로는 잠도 푹 자고 행복했어요!”

“어떻게 보면 미스트롯2는 제 수식어를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죠. 이제는 어르신들이 제 이름보다 다람쥐라고 더 많이 알고 계세요. 그 전에는 다들 제 이름을 헷갈려 하셨는데 다들 다람쥐 안다고 해주시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런 수식어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죠.”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린 강혜연은 다양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빠진 일정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업인 가수 활동이었다. 2021년에는 ‘선데이혜연’이라는 자신의 솔로 활동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저는 연차 수에 비하면 정규앨범을 빨리 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친한 언니랑 같이 디자인도 하고 아이템도 직접 구상했던 소중한 앨범이에요. 사진이나 곡 선택도 직접 했기 때문에 다른 앨범보다 더 정이 많이 가는 앨범이에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천치 바보야’라는 노래는 강혜연이 자신의 노래들 중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그 노래가 제 친할아버지께서 친할머니를 먼저 여의시고 쓰신 시에요. 그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발견했는데 언젠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좋은 작곡가 선생님을 만나서 말씀을 드렸더니 1~2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하셨는데 시를 보여드리니까 노래가 바로 술술 나왔어요. 그건 아무래도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신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르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 녹음하면서도 울었고 지금도 그 노래를 집중해서 부르면 울컥해요. 제 할아버지께서 쓰신 것이기 때문에 그 노래가 저한테는 제일 소중하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전하는 인사를 끝으로 강혜연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팬 분들께서 사실 지방까지도 응원을 많이 와주시고 정말 저를 많이 응원해주세요. 정말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저와 함께 좋은 음악을 같이 하면서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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