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간 5번. 필라델피아는 빠짐없이 플레이오프를 밟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낸 해는 없었다. 그 의미란 곧 우승이다. 5번 중 4번은 동부 준결승에서 무릎을 꿇었다. 1번은 1라운드 탈락이었다. 우승 도전 실패에 지친 것은 제임스 하든과 매한가지다.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하든 역시 아직 우승 반지가 없다. 필라델피아와 제임스 하든 지금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우승 갈증과 트라우마

지금 필라델피아는 목이 마르다. 필라델피아가 마지막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83년이다. 올해 기준으로 무려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모제스 말론, 줄리어스 어빙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팀을 이끌던 시대였다.

안타깝게도 이후 식서스의 우승 도전은 항상 실패해왔다. 파이널 진출조차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필라델피아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Answer’ 앨런 아이버슨을 앞세워 2001년 파이널 무대를 밟은 것이 마지막이다. 1차전에서 나온 아이버슨의 수비수 뛰어넘기(그 수비수는 지금 클리퍼스의 수장 터런 루다.) 동작은 지금도 NBA 파이널 역대 최고의 명장명 중 하나로 회상된다. 하지만 이때도 우승 트로피는 필라델피아의 차지가 아니었다. 15승 1패로 플레이오프를 매듭지은 레이커스가 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때문에 당시 필라델피아에 대해서는 “레이커스의 사상 첫 플레이오프 무패 우승을 저지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이 나오곤 한다.

이후 필라델피아의 전력과 스탠스는 항상 어정쩡했다. 좋은 전력을 갖출 때도 우승에 가까운 팀은 결코 아니었다. 플레이오프는 갈 수 있는데 그 이상의 성적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필라델피가 처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시작된 필라델피아의 노골적인 탱킹은 필라델피아 프랜차이즈 역사는 물론 리그 규정까지 아예 바꿔놓았다.

승강제가 존재하지 않는 NBA에서 패배를 위해 싸우는 필라델피아는 사실 ‘꼴불견’에 가까웠다. 하지만 팬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 모든 스포츠 경기의 목적은 승리여야 한다는 대전제를 벗기고 보면, 필라델피아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제대로 된 패배야 말로 제대로 된 순위의 드래프트 지명권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제대로 된 대형 유망주 지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NBA는 몇 년 후 드래프트 규정에 손을 댄다. 리그 하위권 팀들의 1순위 추첨 확률을 조정해 노골적인 탱킹을 막은 것이다. 때문에 현재 분위기라면 필라델피아는 NBA 역사상 마지막 노골적 탱킹 팀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조엘 엠비드, 2016년 벤 시몬스의 입단으로 필라델피아의 운명은 달라졌다. 어느새 필라델피아는 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호화 로스터를 갖춘 팀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한계가 뚜렷했다. 부상, 불운, 혹은 결정적인 실수들에 발목을 잡혔다. 2021년 애틀랜타와의 동부 준결승 시리즈 7차전에서 나온 벤 시몬스의 ‘더 패스’는 1년 이후 동부 결승 진출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팬들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건드렸다. 북미에서 가장 난폭하고 노골적인 ‘필리건’은 비난을 퍼부었고, 그렇게 필라델피아는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벤 시몬스 사태

훗날 필라델피아 팬들은 2021-2022시즌을 어떻게 기억할까? 시간이 흘러봐야 알겠지만, 기분 좋은 시즌으로 기억할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다. 벤 시몬스와의 갈등으로 시즌 시작 전부터 팀이 안팎으로 시끄러웠고,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 당일에서야 그 갈등의 실마리를 푸는 움직임이 나왔기 때문이다.

벤 시몬스는 2021년 플레이오프 조기 탈락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선수였다. 이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기 위해 점프슛을 던져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시몬스의 슈팅력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는 곧 소극적인 플레이로 이어졌다. 형편없는 자유투 성공률 때문에 나온 ‘핵 어 밴’ 작전 역시 플레이오프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벤 시몬스는 2021년 우승 도전 실패의 책임을 져야 마땅했고, 시즌이 끝난 후에는 당연히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필라델피아 팬들과 닥 리버스 감독이 시몬스에게 책임을 돌리는 과정에서 시몬스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은 있었느냐는 것이다.

시즌 종료 후 인터뷰에서 나온 닥 리버스의 감독의 “잘 모르겠다(I don’t know)” 코멘트는 벤 시몬스와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시켰다. “벤 시몬스가 우승 팀에서 포인트가드로 뛸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의도야 어쨌든 오해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말이었다.

필라델피아 팬들은 항상 그들의 방식대로 거칠고 단호하게 선수를 몰아부쳤다. 물론 NBA 레벨의 무대에서 뛰는 프로 선수라면 그런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견뎌내는 것도 하나의 일이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팬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시몬스의 인격을 모독하는 욕설이 경기장 밖과 SNS를 오갔고, 시몬스의 마음은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필리건’들의 거친 행동 역시 시몬스 사태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

결국 시몬스는 오프시즌 중 에이전트를 통해 필라델피아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시즌이 개막하는 가을이 될 때까지 시몬스는 트레이드되지 못했다. 그러자 시몬스는 트레이닝 캠프에 불참하고 팀 훈련에 불응하는 식으로 응수했다. 시몬스의 프로답지 못한 태도가 제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시몬스는 계속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필라델피아 구단과 소통을 사실상 중단했다. NBA 역사상 유례없는 노골적인 태업이었다.

대단했던 것은, 벤 시몬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가 상당히 좋은 시즌을 보냈다는 것이다.

조엘 엠비드의 MVP급 활약, 타이리스 맥시의 폭풍 성장으로 벤 시몬스의 공백이 메워졌다. 단기전에는 약하지만 정규시즌 레이스에서는 항상 강점을 발휘하는 닥 리버스 감독의 합리적인 경기 운영과 전략 설정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2월, 결국 필라델피아는 벤 시몬스를 트레이드하는 데 성공(?)한다. 브루클린과의 딜이었다. 세스 커리, 안드레 드러먼드를 시몬스와 함께 브루클린에 넘기고 제임스 하든을 영입했다. 트레이드가 확정된 후 누가 트레이드의 승자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의 승자에 대해서는 아직도 섣불리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벤 시몬스가 그 후에도 경기에 뛰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희생

제임스 하든도 앞선 1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다. 휴스턴에서 보낸 마지막 시기에는 태업 논란의 중심에 섰고, 브루클린 이적 후에는 카이리 어빙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케빈 듀란트의 부상으로 팀을 혼자 이끌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여기에 개인 퍼포먼스까지 눈에 띄게 하락하면서 노쇠화가 찾아왔다는 평가까지 이어졌다. 그런 하든에게 대릴 모리 사장이 있는 필라델피아는 매우 의미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데뷔 후 13년 동안 하든은 리그를 대표하는 가드로 올라섰다. 역사상 최고의 공격력을 가졌다는 평가까지 받았고, 2018년부터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 가드의 시대에 올-NBA 퍼스트 팀만 6번 차지하고 MVP까지 차지했다. 노골적은 파울 유도로 안티도 많이 모았지만, 어쨌든 하든은 부인할 수 없는 리그 최강의 공격 무기였다.

하지만 하든 역시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꼬리표가 아직 따라붙고 있다. 2018년 플레이오프에서 골든스테이트를 무너뜨릴 뻔 했지만, 크리스 폴의 갑작스러운 부상과 스테픈 커리의 괴물 같은 퍼포먼스에 시리즈 역전패를 당하면서 우승의 꿈과 다시 멀어졌다. 그런 하든에게 다가오는 2022-2023시즌은 매우 소중한 기회다.

마음가짐부터 이미 달라보인다.

일단 올여름 FA 계약을 맺으면서 이미 과감한 양보를 했다. 연봉을 구단에 일임하고, 남는 돈으로 전력을 보강해달라는 요청을 대릴 모리 사장에게 한 것이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하든의 양보(사실상 페이컷)로 만들어진 샐러리캡 여유분으로 PJ 터커와 대뉴얼 하우스 주니어를 영입했다. 여기에 대니 그린을 트레이드해 디앤써니 멜튼까지 데려오면서 퍼리미터 수비 라인을 폭발적으로 강화시켰다.

오프시즌 준비도 착실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하든은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개인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 꼼짝없이 회복에 집중해야 했고, 이로 인해 체중이 불어나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는 곧 시즌 개막 후 코트에서의 공격 효율 및 폭발력 감소로 이어졌다. 우리가 알던 하든은 적어도 지난 시즌에는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하든은 시즌 종료 후 일찌감치 개인 훈련을 하며 여름을 매우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 부상 회복을 위해 막연히 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여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부상이 아닌 노쇠화로 인한 기량 하락이 아니냐는 외부 시선을 반박할 절호의 기회가 새 시즌에 찾아올 것이다. 하든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승 전력

냉정하게 봤을 때, 필라델피아는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힐 만한 팀은 아니다. 일단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를 비롯해 다른 강팀들의 전력이 심상치 않다. 보스턴, 피닉스, 밀워키, 멤피스, 클리퍼스 등 위협적인 경쟁자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필라델피아에게 버거운 상대인 것도 아니다. 필라델피아도 충분히 강한 전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하든, 조엘 엠비드로 이어지는 원투 펀치는 이름값만큼 경기력만 나오면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조합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또 한 번의 스텝 업이 기대되는 타이리스 맥시, 앞서 언급한 PJ 터커, 대뉴얼 하우스 주니어, 대인써니 멜튼 등 외곽에서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원들이 워낙 많다. 트레이드를 추가로 단행하지 않는다면 토바이스 해리스, 마티스 타이불, 퍼칸 코크마츠, 조지 니앙, 셰이크 밀튼 역시 팀에 우승 도전에 힘을 보탤 것이다. 9월 들어 저렴한 연봉에 깜짝 영입한 몬트레즐 역시 기대를 모은다. 해럴은 2019-2020시즌 올해의 식스맨에 선정됐을 정도로 기량이 이미 검증된 선수다.

특히 새 시즌 필라델피아에서 반드시 좋은 활약이 필요한 선수는 역시 토바이어스 해리스일 것이다.

다음 시즌에 3,763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해리스는 지난 몇 년 동안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먹튀’라는 비난에 시달렸던 선수다. 2019년에 맺은 5년 1억 8,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아직도 2년이나 남아 있고, 필라델피아는 이런 해리스의 연봉으로 인해 계속 샐러리캡에 압박을 받고 있다. 해리스의 반등은 곧 필라델피아라는 팀이 가진 역량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 분명하다.

제임스 하든의 부활, 조엘 엠비드의 MVP급 퍼포먼스 지속, 토바이어스 해리스의 반등, 타이리스 맥시의 계속되는 성장 등 다음 시즌 필라델피아에는 주목할 부분이 정말 많다.

만약 기대하는 조건들이 모두 긍정적으로 이뤄진다면, 필라델피아는 40년 만의 우승이라는 꿈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ONE MORE: 제임스 하든은 부활할 수 있을까

조엘 엠비드, 타이릭스 등 필라델피아는 좋은 자원들을 풍부하게 보유한 팀이다. 하지만 이 팀이 우승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임스 하든이라는 슈퍼스타의 부활이 반드시 절실하다.

하든의 가장 큰 강점은 공격 코트에서의 생산성이다. 아이솔레이션, 2대2 공격 시 기습적인 방향 전환과 볼 핸들링을 통한 풀업 점퍼 생산은 하든의 특기였다. 이때 나오는 3점, 드리블 돌파 득점은 물론이고 45도와 코너로 향하는 패스가 팀 전체의 공격 생산성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즌 하든은 이 카테고리에서 위력이 크게 약해진 모습이었다. 경기당 30점 이상을 거뜬히 폭격하던 모습이 일단 사라졌다.

점퍼의 감각이 좋지 않으면 그날은 난사만 하다 경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부상 여파, 나이의 여파 때문인지 드리블 돌파의 위력이 사라졌고 수비는 하든의 풀업 점퍼 효율만 낮추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든의 어시스트 파괴력은 본인의 득점이 바탕이 될 때 나온다. 어시스트에 너무 치중하는 하든은 수비 입장에서 그 위협도가 아주 높지는 않다.

때문에 새 시즌 하든은 풀업 3점, 드리블 돌파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특유의 풀업 점퍼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포커스를 둬야 한다. 상대가 2대2 수비에서 스위치를 하든, 드랍백을 하든 득점을 마구 폭격하는 하든의 본래 모습이 나온다면, 필라델피아는 당연히 우승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필라델피아는 조엘 엠비드의 팀이지만, 엠비드 한 명의 퍼포먼스로는 우승에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 년 동안 드러났다. 단기전에서 상대의 집중 견제 대상이 되는 엠비드를 밖에서 거드는 선수가 필요하고, 그래서 제임스 하든의 부활이 필라델피아 입장에서는 너무 중요하다. 휴스턴에서 최고의 시즌을 함께 했던 대릴 모리, PJ 터커, 대뉴얼 하우스 주니어가 옆에 있다는 점은 하든에게 상당히 든든한 부분이 될 것이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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