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충주의 한 음식점. 

이날은 건국대 OB들이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후배들에게 저녁 식사를 사주는 자리였다. 긴 정규리그 동안 수고했고 남은 플레이오프에서 잘하라는 격려의 자리였던 셈. 

자리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건국대의 문혁주 코치는 한국가스공사 김승환 코치의 옆자리에 와서 "선배님, 예전에 설악산에 걸어간 이야기를 애들이 지금도 믿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김 코치는 "아(애)들한테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참"이라며 혀를 찼다. 

무슨 이야기일까? 왠지 전설에 가까운 무용담 같아서 더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지금보다는 옛날 이야기가 더 재밌는 법이다. 그래서 묻고 물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때는 바야흐로 2004년. 당시 건국대 농구부 코칭스태프는 김승환 감독-황준삼 코치 체제였으며 당시 선수들도 3학년에 노경석, 2학년에 정영삼, 1학년에 오정현과 신윤하, 이상수 등이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 멤버를 구축했던 시기여서 내심 성적에 대한 기대도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2004년 경기도 안산의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MBC배 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것. 

당시 MBC배 대회는 지금과 달리 예선에서 떨어져도 한 차례의 패자 부활전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건국대는 전력이 좋지 않던 성균관대에게 박살이 나면서 2경기 만에 짐을 싸야 했다. 

뜻밖의 결과에 놀란 김승환 감독은 바닥까지 떨어진 건국대 농구부의 사기 진작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다. 바로 설악산까지 걸어서 가는, 군대 행군이 아닌 이른바 건대 행군이었다. 

2일 김승환 코치는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말도 안되는 계획을 왜 떠올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행에 옮겼는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같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뭔가 변화를 주기 위해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실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당시 건국대 농구부가 있던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설악산까지 거리는 대략 184km. 지금이야 국토대장정이나 국토종주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 관련 용품이나 지식이 많지만 그때는 그런 취미 자체가 드물던 시기였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가운데 김승환 감독은 이를 밀어붙였다. 

우선 황준삼 코치에게 청계천에 가서 침낭과 텐트 같은 캠핑 도구 및 라면 등을 구입하라고 지시한 뒤 당시 졸업생이던 문혁주 코치에게도 행군에 동참할 것을 권했다. 

문 코치는 "당시 감독님은 내가 아니라 내 차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 내 차가 SUV여서 캠핑도구들을 싣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너는 차에서 운전만 해주면 된다'는 말에 넘어갔는데 결국은 그러지도 않았다. 다리를 절뚝이는 김승환 코치님을 차에 태우고 내가 걸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도 안되는 기획은 결국 실천으로 옮겨졌다. 건대 행군은 중고교 수업처럼 50분을 걷고 10분을 쉬는 형태로 진행했는데 한창 때의 선수들도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왔다. 물론 서슬퍼런 감독의 눈치에 입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김승환 코치도 "첫날 한참을 가다 한강 둔치에서 잠깐 쉬는데 다시 일어나려니 행군을 하자고 말한 나도 힘들어서 일어나기 싫더라. 그러니 애들은 오죽했겠나? 그래도 일어나서 걸었다"라고 했다. 

당시 코치였던 황준삼 감독도 "하도 걷다보니 물집이 잡힌 곳에 다시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걸어야 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184km라는 거리를 하루만에 걸어갈 수 없다보니 중간중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했다. 양평의 한 휴게소에서는 저녁과 아침 두 끼를 먹을 테니 휴게소 한구석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4월이지만 산속에서의 밤은 겨울과도 같아서 얇은 텐트에서 자다 너무 추워 잠을 청하지 못하는 인원이 부지기수였다. 이에 한 생선구이 전문 식당에 도착해서는 역시 식사를 할테니 내부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식당 안에 생선 냄새가 가득했지만 바깥의 추위와 바람을 생각하면 견딜만 했다. 

설악산 도착 전날인가는 너무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삼겹살 파티를 시켜줬는데 선수들이 하나둘씩 훌쩍이면서 고기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김승환 코치는 "당시 노경석이 3학년이었는데 훌쩍이면서 후배들에게 '우리 돌아가면 열심히 농구하자'라고 말하더라"라고 했다.

옆에서 한참 식사를 하다가 이야기를 들은 노경석 전 오리온 매니저는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행군을 안하게끔 열심히 하자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말없이 고기를 굽던 SK 허일영은 "내가 입학하기 바로 1년전 이야기인데, 지금 들어도 다행이다. 내가 그걸 갔다고 생각하면, 아휴~ 아찔하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장장 4박 5일에 걸쳐 결국 건국대 선수들은 설악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복귀는 학교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왔다는 후문. 약 5일간 걸어서 온 길을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만에 돌아오면서 선수들은 돌아가면 농구를 열심히 해서 이런 행군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건국대는 그해 6월에 원주에서 열린 대학농구 1차 연맹전에서 5위를 차지했고, 12월에 열린 산업은행배 2004 농구대잔치에서는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때로는 충격요법이 통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진 = 박상혁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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