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김혁 기자] 1970년 창단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1976-1977시즌 빌 월튼을 중심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포틀랜드는 지난 시즌까지 43시즌 동안 35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거듭났다. 해당 기간 포틀랜드보다 플레이오프에 많이 오른 팀은 LA 레이커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플레이오프의 단골손님이었을 뿐 주인은 되지 못했다. 35번의 플레이오프에서 포틀랜드가 받아든 성적표는 우승 없이 파이널 진출 2회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4회. 지독했던 포틀랜드의 플레이오프 잔혹사에 대해 알아보자.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첫 우승과 강호 도약

1976-1977시즌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포워드 모리스 루카스, 명장 잭 램지 감독의 가세와 더불어 UCLA 대학 출신 빅맨 빌 월튼이 3시즌 만에 만개하면서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기세를 탄 포틀랜드는 카림 압둘-자바의 LA 레이커스와 줄리어스 어빙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차례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하지만 월튼과 포틀랜드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7-1978시즌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던 월튼은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다리 부상으로 팀을 이탈한다. 구단 의료진을 믿지 못했던 월튼은 구단과 계속 마찰을 빚었고 1978-1979시즌을 통째로 결장한 뒤 FA로 팀을 떠난다.

월튼의 이적에도 포틀랜드는 1981-1982시즌을 제외하곤 꾸준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램지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선발한 짐 팩슨, 마이칼 탐슨 같은 선수들과 외부 영입 자원인 켈빈 넷 등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 ‘블레이저매니아’라는 별명을 가진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했던 포틀랜드는 1977년부터 1996년까지 814경기 연속 홈 경기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열기에도 포틀랜드는 플레이오프에서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팀의 간판으로 거듭난 팩슨이 활약했으나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끌기엔 무리가 있었다. 월튼의 이적 후 빅맨진이 약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플레이오프 부진은 사령탑 교체에도 계속 이어졌고 포틀랜드는 83년부터 89년까지 7년간 1라운드 탈락 5회, 2라운드 탈락 2회에 머물렀다. 

그래도 1983년 드래프트 전체 14순위로 선발한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성장은 돋보였다. 운동 능력과 다재다능함을 갖춘 슈팅 가드 드렉슬러는 올-NBA 팀과 올스타에 꾸준히 선정되며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이듬해 드래프트에서 샘 보위를 뽑느라 마이클 조던을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드렉슬러의 존재가 포틀랜드 팬들에게 큰 힘이 됐다.

 

드렉슬러의 시대

릭 아델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포틀랜드는 1989-1990시즌을 앞두고 부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보위를 내보내고 뉴저지 네츠의 파워 포워드 벅 윌리엄스를 영입한다. 베테랑 윌리엄스는 팀의 수비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여기에 드렉슬러를 중심으로 제롬 커시, 테리 포터까지 큰 공헌을 세우며 포틀랜드는 정규시즌을 59승 23패라는 호성적으로 마감한다.
 
기세를 이어간 포틀랜드는 1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3전 전승으로 제압했다. 이어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와 접전을 펼친 포틀랜드는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컨퍼런스 파이널 행 티켓을 거머쥔다. 흐름을 탄 포틀랜드는 톰 챔버스, 케빈 존슨, 제프 호나섹 등이 버틴 피닉스 선즈마저 무너뜨리고 13년 만에 파이널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파이널에서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만난 포틀랜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3년 연속으로 파이널에 올랐던 디트로이트는 큰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아는 팀이었고 아이재아 토마스는 시리즈 평균 27.6점을 쏟아내며 포틀랜드를 몰아붙였다. 결국 포틀랜드는 1승 4패로 물러나며 프랜차이즈 사상 첫 준우승을 기록했다.

포틀랜드의 2% 부족한 모습은 다음 시즌에도 이어졌다. 정규시즌에 63승을 수확한 포틀랜드는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유타 재즈를 차례로 꺾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른다. 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가 이끄는 레이커스를 만난 포틀랜드는 6차전에 1점 차 석패를 당하며 파이널 진출을 양보해야 했다.

절치부심한 포틀랜드는 1991-1992시즌 드렉슬러가 생애 첫 올-NBA 퍼스트 팀을 수상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만난 포틀랜드는 드렉슬러를 앞세워 직전 시즌 패배를 설욕했다. 여세를 몰아 포틀랜드는 피닉스와 유타를 연파하고 2년 만에 파이널 무대로 복귀한다.

포틀랜드의 파이널 상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두 팀의 맞대결은 조던과 드렉슬러라는 최정상급 슈팅 가드 맞대결로 관심이 쏠렸다. 최후에 웃은 쪽은 시리즈 평균 35.6점을 쏟아낸 조던이었다. 드렉슬러도 평균 24.8점을 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조던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스 싸움에서 밀린 포틀랜드는 다시 한 번 준우승에 머문다.

절정에 올랐던 드렉슬러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1992-1993시즌 무릎 부상으로 49경기 출전에 그치며 고전했고, 포틀랜드는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에 패하며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무대와 작별한다.

드렉슬러가 내려오기 시작한 포틀랜드는 다시 1라운드를 넘지 못하는 팀으로 돌아갔다. 결국 우승 반지에 대한 갈망이 컸던 드렉슬러는 1994-1995시즌 도중 오티스 소프와 지명권을 대가로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된다. 포틀랜드로선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스타와 결별하며 한 시대를 마감한 셈이다.

 

'Jail 블레이저스'의 도전

그래도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나서던 포틀랜드는 1996년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다. 그 중심엔 ‘트레이더 밥’으로 불렸던 밥 윗시트 단장이 있었다. 멘탈에 문제가 있었지만 재능은 확실했던 2년 차 빅맨 라쉬드 월러스가 포틀랜드 유니폼을 입었고, 역시 사건·사고에 자주 휘말렸으나 득점력은 뛰어났던 아이재이아 라이더와 슈팅력을 갖춘 포인트가드 케니 앤더슨도 입단했다. 드래프트에선 고졸 빅맨 저메인 오닐을 지명했다. 

새롭게 재편된 포틀랜드 선수단은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다. 1997-1998시즌 중반엔 데이먼 스타더마이어까지 데려왔다. 다만 여전히 플레이오프의 벽은 높았다. 2년 연속 샤킬 오닐의 레이커스를 만난 포틀랜드는 오닐에게 평균 28.0점 이상을 내주며 무너졌다. 

직장 폐쇄로 단축 시즌이 치러진 1998-1999시즌, 윗시트 단장은 짐 잭슨과 그렉 앤써니를 영입하며 가드진에 풍미를 더했다. 문제아들이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며 jail 블레이저스라는 별명이 생기긴 했지만, 이 시기의 포틀랜드는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정규시즌을 35승 15패로 마친 포틀랜드는 피닉스와 유타를 연파하고 컨퍼런스 파이널로 향한다.

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난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는 강했다. 노련한 로빈슨과 젊은 던컨의 트윈타워는 상대를 압도했고 결국 포틀랜드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4연패를 당한다.

비시즌을 맞은 윗시트 단장은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간 주득점원으로 활약한 라이더를 내주고 스티브 스미스를 데려온 윗시트는 시애틀을 지탱했던 노장 슈렘프까지 영입했다. 이어 시카고에서 황금기를 보낸 후 휴스턴을 거친 스카티 피펜의 영입으로 방점을 찍었다. 6번의 우승을 경험했던 베테랑 피펜에 대한 기대는 컸다.

1999-2000시즌 포틀랜드는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정규시즌 59승을 수확하며 2번 시드를 따낸다. 1라운드에서 케빈 가넷의 미네소타를 3승 1패로 물리친 포틀랜드는 2라운드에서 만난 유타도 4승 1패로 가볍게 제압한다.

오닐의 레이커스를 다시 만난 컨퍼런스 파이널은 NBA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 남을 시리즈였다. 1승 3패로 몰리던 포틀랜드는 5, 6차전을 차례로 따내며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여기에 7차전에도 13점 차를 앞선 채 3쿼터를 마치며 파이널 진출을 목전에 뒀다.

그러나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정규시즌 67승을 따냈던 레이커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의 추격에 당황한 포틀랜드는 공황 상태에 빠지며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경험 많은 피펜은 전혀 팀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다. 레이커스가 31점을 올리는 사이 포틀랜드는 13점에 그쳤고, 5점 차 패배로 7차전이 마무리됐다.

 

불운 뒤에 찾아온 에이스, 데미안 릴라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포틀랜드는 이후 2시즌 연속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연거푸 만나 좌절했다. 팀을 주도했던 윗시트 단장은 다음 시즌마저 댈러스에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 사표를 제출했다. 문제아들이 득실거렸던 블레이저스는 팀 케미스트리가 무너졌고, 간판스타였던 월러스는 2004년 애틀랜타로 팀을 옮겼다. 

2003-2004시즌 21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이 중단된 포틀랜드는 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승진의 소속팀으로도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이 시기의 포틀랜드는 엉망이었다. 팀을 이끌었던 악동 잭 랜돌프는 농구는 잘했지만 스포츠면보다 사회면이 더 익숙한 선수였고, 기대를 걸었던 선수들은 줄줄이 실패하며 암흑기가 찾아왔다.
 
주춤하던 포틀랜드는 네이트 맥밀란 감독 선임과 유망주 브랜든 로이, 라마커스 알드리지의 활약으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다. 여기에 2007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오하이오 주립대의 특급 빅맨 그렉 오든을 지명하면서 포틀랜드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이 그들을 무너뜨렸다. 앞날이 창창해 보였던 로이는 무릎 부상으로 커리어가 이른 시점에 멈춰버렸고, 역대급 센터가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던 오든 또한 무릎, 발목 등에 끊임없이 이상이 생기며 날개를 펴지 못했다. 결국 포틀랜드는 알드리지가 분전했지만 3년 연속 1라운드에 머문 뒤 다시 정체를 겪게 된다.

흔들리던 포틀랜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데미안 릴라드의 등장이었다. 2012-2013시즌 신인왕을 차지하며 NBA 무대에 데뷔한 릴라드는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하고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릴라드는 첫 플레이오프 무대인 2013-2014시즌, 휴스턴 로케츠와 1라운드에서 시리즈 엔딩 버저비터를 성공하며 팀을 2라운드로 이끈다. 2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의 수비에 막히며 고전했지만 릴라드의 장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릴라드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2014-2015시즌 멤피스 그리즐리스에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한 포틀랜드는 시즌 종료 후 알드리지, 니콜라 바툼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적하는 풍파를 맞는다. 전문가들은 2015-2016시즌을 앞두고 포틀랜드에 쉽지 않은 시즌이 되리라 예측했다.

책임감이 막중해진 릴라드는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이끌었다. C.J. 맥컬럼이 혜성처럼 등장해 릴라드와 원투펀치를 이룬 포틀랜드는 놀라운 시즌을 보내며 플레이오프에 안착한다. 1라운드에서 LA 클리퍼스를 만난 포틀랜드는 상대 핵심인 크리스 폴과 블레이크 그리핀이 차례로 이탈하는 변수 끝에 업셋에 성공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라운드에서 만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당시 정규시즌 73승을 따냈던 최강의 팀. 전력 차를 극복하지 못한 포틀랜드는 시리즈 후반 믿었던 릴라드가 부진에 빠지며 1승 4패로 탈락한다.

이어진 2016-2017시즌은 실망스러웠다. 일단 에반 터너, 페스터스 에질리, 앨런 크랩, 메이어스 레너드 등 악성 계약이 속출했다. 이 계약들로 샐러리캡이 빡빡해지면서 후에 전력 보강의 폭이 크게 좁아지게 됐다. 정규시즌 41승 41패로 간신히 5할 승률에 턱걸이한 포틀랜드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골든스테이트에 스윕을 당하며 조기에 퇴장한다.

다음 시즌도 딱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정규시즌 성적은 49승으로 전 시즌보다 발전했지만 플레이오프 무대에선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에 내리 4연패를 당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충격의 2년 연속 1라운드 스윕패. 릴라드가 ‘에이스 저격수’ 즈루 할러데이에 막혀 시리즈 평균 야투율 35.2%에 그친 것이 치명적이었다.

2018-2019시즌엔 잘 나가다 빅맨 유서프 너키치가 다리 골절로 이탈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선전은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1라운드 상대는 러셀 웨스트브룩, 폴 조지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전력상 열세로 꼽혔다. 하지만 흥분을 제어하지 못한 웨스트브룩과 냉정한 릴라드가 차이를 만들었고 시리즈는 예상외로 일방적인 포틀랜드의 우위로 진행됐다. 결국 5차전에서 릴라드가 201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시리즈 엔딩 버저비터를 터트리며 웨스트브룩을 집에 보냈다.

덴버 너게츠와 맞선 2라운드는 역대급 혈투였다. 3차전에서 4차 연장까지 가는 대혼전이 펼쳐지는 등 양 팀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시리즈 승패는 7차전에 가서야 갈렸다. 운명의 7차전. 릴라드가 13점 야투율 17.6%에 그치며 부진했으나 맥컬럼이 37점을 쏟아낸 포틀랜드는 접전 끝에 승리를 쟁취했다. 이로써 그들은 19년 만에 컨퍼런스 파이널로 복귀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너무 많은 힘을 뺀 포틀랜드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무기력했다. 그들에게 다시 만난 골든스테이트는 저승사자와 같았고 방전된 릴라드가 스테픈 커리와 에이스 대결에서 밀리며 파이널 진출의 꿈을 다시 접어야 했다.

2019-2020시즌은 부상에 발목 잡힌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주축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줄부상에 시달렸고, 릴라드가 폭발하며 와일드카드전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만난 레이커스는 너무 강했다. 해당 시즌 챔피언이었던 레이커스는 포틀랜드를 수비의 힘으로 거세게 몰아쳤고, 릴라드가 부상으로 쓰러진 포틀랜드는 1승 4패로 시즌을 마감한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포틀랜드는 백코트진의 수비 약점을 메우기 위해 로버트 코빙턴 등을 영입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올시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대대적인 개편을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 과연 플레이오프에서 항상 조연 역할만 하던 그들이 잔혹사를 끊어내고 블레이저스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을까?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위키피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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