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추승균 칼럼니스트] 또 3경기 만에 끝냈다. KGC가 이겼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KT에게 3연승을 거뒀던 안양 KGC인삼공사가 정규리그 2위 팀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도 3경기 만에 끝냈다. 봄 농구 6연승의 파죽지세다.

베테랑의 운동량, 젊은 선수들의 경험
내용을 떠나, 3경기를 모두 내줬다는 점에서 현대모비스가 상대적으로 열세인 모습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주요 라인업의 선수들 중 젊은 선수들은 경험이 부족했고, 경험을 갖춘 선수들은 KGC의 활발한 운동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포워드 라인이 끝내 역할을 해주지 못한 점도 아쉽다. 김민구, 기승호, 전준범 등 포워드 라인, 즉 슈터들이 중요할 때 몇 개씩 슛을 넣어줘도 경기 흐름이 바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현대모비스는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서명진, 이우석 등 어린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자기 몫은 충분히 해줬다고 본다. 좋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더 큰 활약과 성장이 기대된다.

KGC는 내외곽의 밸런스가 좋은 팀이다. 균형을 잘 맞춰서 나오는 KGC를 상대로 약점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된 것 같다.

현대모비스는 상대의 공격에 발 빠르게 대응을 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준비한 기본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우직하게 맞서는 편이다. 양동근, 이대성이 버티고, 함지훈의 조금 더 젊었던 시절에는 그런 대응이 효과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상대보다 운동량과 경험에서 열세가 나타났다.

1차전에는 제러드 설린저에게 줄 것은 주고, 다른 국내 선수들의 수비를 최소화 하려 했지만, 설린저의 폭발력이 엄청났다. 2차전에는 비교적 설린저의 활약을 제어했지만 오세근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에게 당했다. 3차전도 1-2차전과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격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선택의 아쉬움이다. 슛, 돌파, 패스 중 언제 어떤 것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선택이 시리즈 내내 아쉬웠다.

또 다시 '어나더 레벨'을 증명한 설린저
현대모비스가 공격에서 선택의 아쉬움이 계속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을 수도 있다. 컨디션의 문제일 수도 있고, 준비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격이나 수비 모두, 현대모비스 선수들은 상대의 설린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설린저에게 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현대모비스의 외국 선수는 숀 롱이다. 이번 시즌, KBL에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외국 선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러한 숀 롱이 3경기 모두 설린저에게 완패를 당했다. 경기력에서도 밀렸고,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졌다. 훌륭한 선수인 숀 롱에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미안하지만, 설린저는 자신이 숀 롱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선수임을 보여줬다.

설린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슛이 워낙 좋다. 상대가 슛을 막기 위해 나오면 그 틈을 노려 뚫고 가고, 침착하게 볼을 줄 곳도 찾아낸다. 신체 조건이 압도적이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지만, 시야가 좋고, 놀랍도록 영리하다.

체격 조건이나 운동 능력에서 우월함을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농락을 당하니, 숀 롱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설린저는 서두르지 않는다. 볼을 잡고 상대 수비의 움직임을 읽는다. 설린저의 정확한 슈팅력을 의식해 수비가 붙으면 바로 틈을 파고든다. 날랜 민첩성으로 뚫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점을 노려 자신만의 리듬으로 여유 있게 파고든다. 상대가 떨어지면 여지 없이 슛을 꽂는다. 상황에 맞는 날카로운 패스도 할 줄 안다.

현대모비스 선수들과 달리, 설린저는 슛을 던져야 할 때와 돌파를 해야 할 때, 그리고 패스를 해야 할 때에 대한 선택이 놀랍도록 정확했고 위력적이었다.

그동안 KBL에서 선수로, 또 지도자로 활동하며 많은 외국 선수들을 봤다. 피트 마이클을 비롯해 기술적인 역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설린저처럼 놀라운 시야를 갖춘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레벨이 다르다는 것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드러난다. KBL을 방문했던 역대 외국 선수 중 최고의 선수가 아닐까?

공격뿐이 아니다. 수비에서도 맥을 짚을 줄 아는 것 같다.

사실, 정규리그 때는 수비 적극성을 크게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숀 롱은 3경기 내내 설린저를 상대로 정상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자기 플레이를 가져가면 되는데, 슛을 던질 때도 계속 피하면서 올라간다. 수비를 달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는 플레이다. 그러고는 심판의 판정에도 무척 예민했다.

기본적으로 피하면서 슛을 시도하는 선수에게 심판의 판정은 인색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접촉을 피하면서 도망가는 플레이기에 심판의 시야에는 수비의 파울로 보이지가 않을 것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심판의 판정이 맞았다고 본다.

좋은 기량을 갖춘 숀 롱이 꾸준히 그런 플레이를 한 이유는 뭘까? 설린저가 숀 롱 특유의 습관이나 스텝을 읽고, 그의 정상적인 플레이를 미묘하게 방해하며, 플레이의 밸런스를 무너뜨렸을 가능성이 높다.

구단에서도 상대에 대해 면밀히 분석을 하겠지만, 선수 개인도 자신의 매치업 상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준비를 한다. 설린저는 이러한 대비도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설린저 효과와 KGC의 시너지
KBL에서 외국 선수는 곧 팀의 에이스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외국 선수가 상대와의 매치업에서 완벽하게 압도하며 지배력을 과시하는 ‘슈퍼 에이스’라면 당연히 팀의 사기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대모비스도 자신들의 에이스가 상대의 에이스한테 압도당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공격 때나 수비 때나, 모든 선수들이 상대 에이스인 설린저한테 눈을 떼지 못했다. 숀 롱이 감당하지 못한 설린저에 대한 대응에 신경을 쓰다가 정작 내 매치업 상대를 놓치는 경우도 반복됐다.

반면 KGC는 시너지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외국 선수의 위력이 검증되면 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선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해결사가 있다는 것은 동료들의 자신감과 경기력을 함께 끌어 올린다.

게다가 KGC는 국내 선수의 구성도 좋은 팀이다. 앞서 말했던 내외곽의 조화도 좋고, 강력한 수비력도 있다.

승부처에서 수비 하나만 성공하면, 어떻게든 점수를 가져올 에이스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KGC는 1차전부터 정상적인 흐름을 가져가기 힘들었던 현대모비스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상대의 에이스에게 위축된 현대모비스는 승부처에서 쉬운 찬스도 놓치며 자신들답지 않는 미스 플레이가 많았다. 조급했고 쫓기는 모습이었다. 불안하기에 나타난 모습이 아니었을까?

양희종의 리더십, 오세근의 부활, 문성곤의 적극적인 리바운드, 외곽의 전성현, 앞 선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이재도와 변준형 등, KGC의 강점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내내 KGC의 위력은 ‘결국 설린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규리그를 통해 팀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던 설린저는 이제 KBL 자체를 알고 뛰는 모습이다.

많은 출전 시간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설린저는 자기가 해야 할 때와 코트에서 체력을 비축할 때를 스스로 구분한다.

설린저가 특별한 움직임 없이 동료 선수들을 부르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스스로 체력을 안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린저가 체력을 안배하고 있는 이 시간조차도 상대는 설린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설린저의 위력이다. 그리고 국내 선수들과 시너지 효과를 통해 설린저의 장점을 극대화 한 KGC의 힘이기도 하다.

일찍 시리즈를 마친 KGC는 챔피언 결정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선수들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고, 핵심 전력 모두가 건재하다. 이후의 챔프전도 기대가 된다.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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