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지난 2019-2020시즌, KBL 무대를 밟은 선수는 총 172명. 안양 KGC인삼공사 문성곤은 이 172명 중 수비를 가장 잘하는 선수였다. 오세근, 변준형이 빠지고 외국 선수들마저 부상에 허덕이며 난파 직전이었던 KGC가 지난 시즌을 26승 17패 6할 승률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최악의 1픽’이라 불리던 사나이, 문성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Q1. 본격적인 비시즌이 시작됐다. 근황은? 

작년에 많이 뛰었다. 전 경기를 다 뛰진 않았지만, 출전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잔부상도 많았다. 휴가 때부터 그냥 치료 기간이라 생각하고 쉬면서 재활했다. 그러다 한 6월부터 이제 서서히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8월부터 연습경기가 있어서 여기에 맞춰야 한다.

Q2. 지난 시즌,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지난 시즌 이맘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작년 7월에는 양쪽 발에 다 족저근막염이 있었다. 아파서 한 보름 정도 쉬었을 거다. 올해는 작년을 되풀이하기 싫어서 휴가 반납하고 운동만 했다. 그렇다고 너무 오버페이스는 하지 않게 트레이너형들과 얘기도 많이 하면서. 올해가 훨씬 낫다.

Q3. 연봉도 85%가 올라 2억 4천만 원이 됐다. 
연봉이 오르는 건 누구나 다 좋지 않을까.(웃음)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준이 되는 건데, 그만큼 실력도 좋아지고 보상도 받은 거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더 받으면 좋았겠지만. 하하.

Q4. 연봉이 오르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적금 들었다. 돈이 생기면 뭘 사고 그러는 것보다 통장에 찍혀 있는 걸 보는 게 더 좋다. 운동이 힘들 때마다 통장 열어 잔액 보는 게 취미다. 

Q5. 코로나19, 시즌 조기 종료, 올해의 수비수, 열애 보도 등 지난 시즌은 농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다사다난한 시즌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코로나였다. 전혀 겪어본 적도 없었고 시즌이 종료될 정도로 파급력도 컸었으니까. 열애 보도도 신경 많이 쓰였다. 혹시 경기력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이젠 저만 욕 먹는 게 아니니까. ‘농구할 시간에 연애해서 그런다’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올까 봐 더 죽자 살자 운동했던 것 같다.

Q6. 곽민정 씨와는 접촉사고를 통해 만났다고? 
맞다. 접촉사고. 제가 피해자로.(웃음) 사실 사고를 당하고도 처음엔 누군지 몰랐다. 사후 처리를 하다 보니 곽민정 선수라고 지인을 통해 들었다. 연락은 다리를 건너 제가 먼저했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다. 따로 뭐 데이트 신청을 한다거나 그런 건 없었고.

Q7. 사고 당시 누가 더 비싼 차였나? 
제가 좀 더 비싼 차였다.(웃음) 민정이가 우스갯소리로 만약 그때 제가 보험금을 받았으면 절대 안 만났을 거라고 하더라.

Q8. 곽민정은 2015년 은퇴를 하고 본인은 2015년 데뷔를 했다. 
맞다. 민정이가 많이 선배다. 민정이가 ‘아직 너는 한참 멀었다’고 놀리기에 나도 ‘난 대학교 때부터 국가대표였다’고 반박했더니, 민정이가 자긴 고등학교 때 올림픽 나갔다고 하더라. 더 할 말이 없었다.

Q9. 처음 열애가 보도됐을 때 느낌은? 
걱정 반, 설렘 반? 농구 팬이 아니더라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니 그거에 대해 기분이 좋아 설렜다. 그런데 또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는 만큼 싫어하는 분들도 생기더라. 특히 민정이가 걱정이 많았다. 제가 현역에 있다 보니까 더 피해가 클 거라고.

Q10. 코트에서는 공을 훔치고, 바깥에서는 여심을 훔쳤다는 비유가 있었다. 
하하하. 훔친 게 아니고 노력의 산물이다. 스틸도 다 연습의 결과물인 것처럼, 민정이 마음도 노력 끝에 훔쳐낸 결과물이다.

 

Q11. 여심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그 유명한 짤방도 있지 않나. 많은 유명세를 타게 해준 공 쳐 내는 짤방. 

그게 대학교 4학년 때였다. SNS도 안 할 때라 그런 게 올라온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농구선수가 농구 외적인 걸로 주목받은 거니까. 관심 가져주시는 건 감사했는데 그렇게 신날 일은 아니었다.

Q12. ‘짤방 속 걔’에서 이제 KBL을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올해의 수비수. 어떤 기분인가? 
아직도 제가 ‘짤방 속 걔’인 걸 모르는 분들 많다.(웃음) 음, 무엇보다 생애 첫 타이틀이었다. 소식을 듣고 나서 사람이 너무 기쁘거나 너무 화나면 오히려 백지가 되지 않나. 그렇게 하얘졌다. 멍하니 ‘내가? 내가 정말? 내가 받아도 되나?’하면서. 제가 시작이 워낙 초라했기 때문에 그런지 그동안 내면에 울분 같은 게 좀 쌓여 있었던 거 같다.

Q13. 어느새 팀 수비의 핵심이 됐다. 본인만의 수비 노하우가 있다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대인방어는 정해진 로테이션이 있지만, 지역방어를 할 땐 제가 어디든 다 도와줘야 한다는 마인드로 뛴다. 그게 가드든 센터든 외국 선수든 누구든. 때론 오지랖이 될 수도 있다. 감독님도 ‘야. 방금 건 오버였다’라고 지적하실 때도 있다. 그래도 저는 뭔가 좀 강박관념이 좀 있다. 팀의 모든 실점이 내 책임 같은 그런 강박관념.

Q14. 리그를 대표하는 3&D가 됐는데, 김승기 감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KGC는 김승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리그 전체 팀 3점슛과 팀 스틸 부문에서 1위다)
처음 입단했을 땐 이게 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이해도 안 가고 힘들기만 했다.(웃음) 그러다 감독님이랑 소통이 좀 되면서, 하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되어 있더라. 이제는 이런 압박수비가 더 편하다.

Q15. 인삼공사 특유의 압박수비는 확실히 색깔이 있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하다. 일각에서는 인삼공사가 지난 시즌 막판, 1위에서 3위까지 내려온 이유도 체력적으로 퍼졌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뛰면서 그런 걸 체감하진 않았는지?  
우리 수비가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활동력을 앞세운 수비니까. 그런데 후반기 우리가 떨어진 이유가 체력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 한다. 전반기에 많이 당한 상대가 후반기 분석을 좀 하고 나왔을 것이다. 체력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었다면 다음 시즌에는 더 열심히 준비해서 꼭 1위를 하겠다. 그럼 그런 말도 없어질 테니.

Q16. 김승기 감독은 지난 시즌 말미부터 “우리가 1위로 시즌이 끝난다 면 MVP는 문성곤”이라고 기자들에게 강조했다. 
하하. 너무 감사한 말씀이긴 한데, 정말 MVP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Q17.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팀 내 MVP는?
지난 시즌 우리팀 MVP는 (양)희종이 형이었다. 희종이 형이 3번이지 않나. 그런데 (오)세근이 형이 부상으로 나간 상황에서 빅맨 자리도 메우고, 그렇게 본인도 힘든 와중에 라커룸 리더로 선수단을 통솔했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바깥에서는 기록을 많이 보지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면 기록만으로는 절대 평가할 수 없는 점도 많더라.

Q18. 김승기 감독이 여기저기 잘 뛰어다닌다고 ‘홍길동’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든다. 좀 옛날스럽긴 한데,(웃음) 원래 옛날 걸 좋아한다. 노래도 옛날 노래 많이 듣는다. 감독님 저 괜찮아요.

Q19. 지난 시즌, 스틸(1.8개, 리그 1위)뿐만 아니라 리바운드도 출중했다. 공격리바운드 2.4개는 국내 선수 중 2위다. 
공이 뜨면 무조건 뛰어 들어간다. 기술적인 것보다도 ‘이걸 잡으면 우리 팀이 공격 한번 더하는 거다’라는 마음으로 그냥 뛰어든다.

Q20. 그래도 3번 포지션에서 리바운드를 그렇게 잘 잡는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선수들이 다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은 아닐 거고. 
하하. 글쎄. 뛰다 보니 이 공이 어디 떨어질지, 상대를 어떻게 만들고 뛰어야 할지 같은 노하우는 좀 생기더라. 

 

Q21. 아마추어 시절에는 공격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때까진 정말 골 넣는 게 제일 쉬웠다. 3점슛이든 뭐든 그냥 공 잡고 집어넣는 게 제일 쉬웠다. 

Q22. 본인은 공격과 수비 중 어느 게 더 자신 있었나? 
수비? 어린 시절 수비는 생각도 안 했다. 그냥 따라가면 따라가는 정도. ‘그래. 네가 20점 넣으면 나는 30점 넣는다’ 이런 생각으로 뛰었다.

Q23. 그러다 수비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교에 가면서 궂은일을 더 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혼도 많이 나고. 그리고 대학에서 슛폼 교정을 했는데, 교정이 좀 안 맞게 되는 바람에 밸런스가 갑자기 다 틀어졌다. 그렇게 자신 있던 공격력이 확 무너지면서 ‘경기에 뛰려면 수비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수비에 처음으로 신경 쓰기 시작했다.

Q24. 대학 시절, 유재학 감독으로부터 국가대표(2013 아시아선수권)에 호출됐다. 이때 느낌은? 
그땐 정말... 진짜 ‘이게 뭔가’했다. 평소처럼 운동 끝나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자기 누가 제가 24인 명단에 들어갔다고 하는 거다. 그때 제가 한창 폼이 안 좋았을 때였다. 평균 10득점? 3점슛도 21% 정도로 기억한다. 그야말로 완전 바닥이었다. 그래서 ‘뭔 소리야?’ 했는데 며칠 있다가 강화 훈련 멤버에 들어갔다더라. 또 ‘이거 진짜 뭐야’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주변에서는 경사가 났고.(웃음) 국가대표는 모든 선수의 꿈이고 목표니까. 얼떨떨했다.

Q25.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처음 뛴 경기는 기억나나?
물론 기억난다. 중국전이었다. 첫 득점 장면도 생생하다. 제가 스윙을 했고, (양)동근이 형이 바운드 패스로 공을 뿌렸다. 제 앞에 순예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페이더웨이로 슛을 던졌는데 깔끔하게 들어갔다. 기분 진짜 좋았는데 티도 못 내고 바로 백코트했다. 막내였으니까. 하하. 그때 가비지도 아니어서 긴장을 엄청 많이 하고 뛰었던 게 기억난다.

Q26. 유재학 감독에게는 프로 와서 또 인사를 드렸나?
그런 건 없다. 경기 때 그냥 ‘안녕하세요’하는 정도. 대표팀 때도 그렇게 길게 뵌 건 아니었으니까. 유재학 감독님도 그냥 ‘어, 그래’하고 가신다. 그게 감독님 스타일이지 않나.

Q27. 경복고 시절부터 슈터로 유명했다. 대표팀 부름을 받은 이유도 슛 때문이었고. 지금 슛과 그때 슛을 비교하면 어떨까? 
고등학교 땐 뭐랄까, 감이 있었다. 정말로. 3점슛 만큼은 정말 감이 있었다. 한 번 들어가면 다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감. 근데 안정적인 건 지금이 더 안정적이다. 고등학교 땐 워낙 많이 던졌던 거라. 지금은 많이 던지지 않으면서 성공시켜야 해서.

Q28. 고교 시절에는 공격력 때문에 오히려 수비를 안 시키기도 했다고? 
맞다. 코치님이 일부러 공격이 약한 친구한테 붙였다. 수비하지 말고 체력 아끼라고. 공격만 하라고.
Q29. 그때 문성곤에게 ‘너는 10년 뒤 KBL 최고의 수비수가 된다’라고 말하면 뭐라 답할까? 
아마 듣지도 않을 거다. 그땐 무서울 게 없었던 나이라. 대꾸도 안 하고 공격하러 가지 않을까.(웃음)

Q30. 지금은 공격과 수비 중 어떤 게 더 재밌나?
지금은 수비가 더 재밌다. 가장 기분 좋을 때가 정말 멀리부터 뛰어가서 공격 리바운드를 잡는다거나, 아니면 승패를 가를 중요한 리바운드를 잡거나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해서 스틸을 한다거나. 공격보다 이게 더 기분 좋더라.

 

Q31. 그런 아마시절을 거쳐, 2015년 안양 KGC인삼공사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됐다. 이때 느낌은 어땠나? 
‘아, 이제 내가 뭘 했구나.’ 결실을 본 느낌? 그때만 해도 아주 자신이 있었다. 입단하고서 감독님이 첫 경기 뛰기 전에 ‘성곤아. 바로 뛸래? 아니면 몸 좀 만들고 두 달  정도 더 있다 뛸래?’ 하셨는데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뛴다고 했다.

Q32. 그렇게 치른 데뷔전은 어땠나?
바로 뛰었다가 박살이 났다. 슛도 못 쏘고 패스 미스만 하다가 들어왔다. 3분 정도 뛰었던 거 같은데 최악이었다. 그 3분 동안 프로 오기전 쌓여있었던 내 자신감, 자존감 다 바닥을 쳤다.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다.

Q33. 그러면서 1순위임에도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동안 동기들이 나서는 모습을 보며 벤치에서 어떤 생각을 했나? 
많이 부러웠다. (한)희원이나 (이)동엽이나 (최)창진이, (정)성우는 게임을 많이 뛰었다. 특히 애들이 경기를 뛰다가 와서 벤치에서 팀의 형들이랑 얘기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럽더라. 뭔가 팀의 일원처럼 느껴져서. 

Q34. 실제로 타 팀에서 트레이드 문의가 오기도 했다고.
저한테 직접 온 건 아니니까. 저도 얘기는 많이 들었다.

Q35. 이때 만약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면 어땠을까?
지금 문성곤은 없을 거다. 지금도 운동하면 워낙 힘들다 보니 그냥 놓고 싶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그 시절 생각을 많이 한다. 그때 못 뛴 거, 그때 못 한 거, 신인상 놓친 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채찍질한다. 그러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

Q36. 하이라이트는 2016년 여름 프로아마 최강전이었다. 이때 정말 크게 부진하며 땅을 팠다. 
아 이땐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팬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때 팀에서 1번으로 포지션 전환을 실험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경기를 망치고 나니까 스스로도 ‘내 농구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Q37. ‘최악의 1픽’이라는 오명도 있었다. 지금이야 추억이 됐지만, 그 땐 정말 듣기 싫었겠다. 
많이 힘들었다. 신인 때부터 농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대학 때 워낙 편하게 농구를 하다 와서 그런 거 같다.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주전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프로 와서 보니 주전은커녕 엔트리조차 못 드니까. 처음 겪은 좌절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다.

Q38. 2년 차였던 16-17시즌에는 상대에게 새깅을 당하기도 했다. 아마 시절부터 슈터로 날린 선수에게 새깅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텐데. 
사람들은 ‘오픈인데 못 넣으면 정말 심각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원래 선수는 새깅 당하면 더 못 넣는다. 심리적으로 ‘이건 못 넣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땐 정말 참담했다.

Q39. 여러모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가장 의지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오로지 훈련만 했다. 죽도록 연습만. 

Q40. 그러다 선배 양희종의 부상으로 출전기회를 잡게 됐다.  
맞다. 맨 처음 나선 경기가 오리온이랑 할 때였다. 그땐 좋은 것보다 오히려 걱정이 더 앞섰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희종이 형의 백업이었으니까. 내가 바보짓 하면 팀이 지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그때가 반등의 기점이 됐다. 그때 감독님 눈에 들어서 믿음을 드린 것 같다.

 

Q41. 그렇게 한창 눈도장을 찍을 때 군대에 갔다.
많이 아쉬웠다. 자리를 못 잡은 상태에서 가는 거니까. 갔다 오면 제 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웠다. 그때도 희종이 형한테 의지했다. 구단에서 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희종이 형은 고민도 말고 무조건 빨리 갔다 오라고 하더라. 배고픔을 알아야 더 열심히 할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수였다. 원래 지금 제 나이 때 가는 건데, 저는 그 나이에 전역을 했으니. 일이 잘 풀려 팀에서 자리도 잡았고.

Q42. 양희종과 여러 모로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둘 다 수비를 한다는 면은 좀 비슷한 게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그 수비도 많이 다르다. 희종이 형은 힘이 좋아서 위에부터 밑에까지 다 커버할 수 있다. 저는 힘이 그렇게 없어서 위에만 커버한다.

Q43. ‘최고의 수비수’라는 말과 ‘최고의 슈터’라는 말 중 어느 게 더 듣기 좋나? 
저는 그냥 3&D라는 말이 좋다. 저랑 잘 어울린다.

Q44. 3&D는 NBA에서 유행이 시작됐다. NBA 선수 중 롤모델이 있나?
3&D는 아닌데, 카와이 레너드가 좋다. 레너드도 처음에는 수비로 주목을 받다가 점점 공격력이 늘어서 공수겸장이 된 케이스지 않나. 뭔가 우직하기도 하고. 그래서 올 시즌 미들슛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건 경기 때 좀 봐야 할 것 같다.(웃음)

 

Q45. 그렇다면 국내 선수 중에서 롤모델은?
당연히 희종이 형이다. 플레이스타일도 그렇지만 특히 리더십. 정말 멋있게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꼭 희종이 형 같은 주장이 되는 게 꿈이다.

Q46. 올해의 수비수 말고 다음 시즌 또 탐나는 타이틀이 있다면? 
그런 건 욕심 없다. 올해의 수비수는 제 첫 타이틀이라 기분이 좋긴 했는데, 지금 제일 탐나는 트로피는 통합 우승 트로피다.

Q47. 지난 시즌 3점슛을 넣고 손을 쳐다보는 ‘핫핸드세리머니’가 화제가 됐다. 
하하하. 너무 민망하다. 그때 KT랑 할 때였다. 첫 슛이 들어갔고, 두 번째 슛을 쐈는데 앞에 (양)홍석이가 있어서 좀 높게 쐈다. 좀 세게 던진 감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들어가서 놀라서 손을 봤다. 그런데 그게 하필 사진이 찍혀서 화제가 되더라. 민망했다. 슛을 한 열 개 정도 넣고 본 것도 아니고 두 개 넣고 그런 거였어서.(웃음)

Q48. 예비신부 곽민정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쑥스러운데...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동안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아왔겠지만, 이런 건 또 다른 느낌의 주목이었을 테니까. 또 제가 성격이 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맞추기 까다롭고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다. 결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잘 준비해서 앞으로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 내가 더 잘해야지.

Q49.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작년에 마무리가 아쉽게 돼서 저나 감독님이나 구단이나 모두 너무 아쉬워했다. 지난 시즌 남은 미련을 올해는 확실히 떨쳐버릴 수 있도록 준비 많이 하고 있다.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Q50. 앞으로 농구 인생에 목표가 있다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예전 농구대잔치 때처럼 농구의 황금기가 다시 온다면, 사람들이 ‘옛날에 문성곤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걔는 아주 죽기 살기로 뛰던 애였어’라고 회자하는 그런 선수로 남고 싶다. 은퇴하는 날까지 열심히 뛰겠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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