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현지시간으로 2016년 6월 22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거리에는 무려 130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었다. 이날은 1964년 이후 야구, 축구, 농구, 풋볼 등 모든 메이저 스포츠에서 우승이 없었던 ‘패배의 도시’ 클리블랜드에서 52년 만에 우승 축하 퍼레이드가 열리는 축제의 날이었다.

"이 도시와 당신들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카고 불스의 72승을 넘어 73승을 달성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꺾고, 마침내 마이클 조던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르브론 제임스가 시가에 불을 붙이며 시민들에게 외쳤다.

 

클리블랜드에서 한창 카 퍼레이드가 벌어지던 시각, 마이클 조던은 샬럿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 한 남자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TV 속, 빨갛게 타들어 가는 르브론의 담뱃불을 보며 조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7차전의 처절한 혈투, 그가 불스의 72승을 깬 워리어스를 응원했을지 혹은 자신의 아성을 넘보는 르브론을 응원했을지 아니면 쪼잔하게 둘 다 저주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마이클 조던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고교 시절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를 택할 때도, 파이널 6차전에서 스티브 커에게 파이널 샷을 양보할 때도 그는 언제나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었으며, 좀처럼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신중한 그의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마이크 톨린이라는 프로듀서였다. 

조던의 오랜 사업 동반자인 커티스 폴크 샬럿 호네츠 부사장에 따르면, ‘쥬라기 월드’의 프랭크 마샬, ‘똑바로 살아라’의 스파이크 리, ‘쥬만지’의 대니 드비토 등 많은 프로듀서들이 조던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고 자처했으나, 조던과 직접 대면한 이는 톨린이 처음이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러닝타임은 80분 정도죠. 아마 그걸로는 마이클과 불스의 이야기, 아니 97-98시즌 한 시즌조차 담지 못할 겁니다.” 폴크 부사장이 ESPN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톨린은 앞서 실패한 프로듀서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달리 접근했다. 그는 조던의 다큐멘터리를 애초에 8부작으로 기획해 폴크 부사장 등 조던의 주변을 설득했다.

“6부작 혹은 8부작짜리 에피소드를 만드는 겁니다. 그 속에는 캐릭터가 있고, 줄거리가 있고, 지금껏 아무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습니다.”

 

톨린의 끈질긴 구애 끝에 조던은 마침내 대면을 허락했다. 다만, 공식적인 비즈니스 미팅은 아니었다. 당시 조던은 신인드래프트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그는 톨린에게 회의 사이에 있는 아주 짧은 시간만을 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힘겹게 성사된 만남. 톨린은 조던에게 8부작짜리 시놉시스가 포함된 제안서를 내밀었고, 그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마이클, 내 사무실에 오는 아이들은 매일 당신의 신발을 신고 있지만, 그들은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톨린의 멘트는 조던을 사로잡았다. 그는 곧바로 안경을 꺼내 들어 제안서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시놉시스와 사진, 그리고 썸네일 스케치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적막만이 흐르는 초조한 시간, 그리고 어느덧 제안서는 마지막 장. 이때 조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카림 압둘 자바’, ‘행크 애런’, ‘그들만의 계절’, ‘코치 카터’... 제안서의 마지막 장에는 톨린의 필모그래피가 나열돼 있었다. 하지만 조던이 응시한 것은 폴 워커 주연의 90년대 명화 ‘그들만의 계절’도, 농구 영화의 바이블 ‘코치 카터’도 아니었다. 그의 눈은 ‘아이버슨’을 향해 있었다.

“이것도 당신이 한 건가요?”

톨린은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2014년 앨런 아이버슨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력이 조던의 승낙을 구하는 데 득이 될지 혹은 독이 될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신이 했나요?” 조던이 다시 물었고, 톨린은 하는 수 없이 “네”라고 입속말했다.

“나는 이걸 세 번이나 봤어요.” 조던이 조용히 안경을 벗어 내려놓으며 말했다. “날 울게 만들었죠. 나는 이 작은 녀석을 사랑합니다.”

조던은 자리에서 일어나 톨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봅시다.”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The Last Dandce)’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ESP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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