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내가 없을 때도 우승을 했던 팀에 신인으로 와서 곧바로 기회를 받았다. 얼마나 소중한 출전 시간인지 알고 있었다."

청주 KB스타즈는 리그에서 가장 포인트가드에 목마른 팀이다. KB는 지난 07-08시즌 김지윤 이후 12년간 포인트가드가 팀 내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변연하라는 걸출한 포워드가 줄곧 1위를 차지했고, 변연하가 코트를 떠난 뒤에도 강아정, 염윤아 등 포워드 자리에서 최다 어시스트가 나왔다. 심지어 올 시즌 팀 내 어시스트 1위는 198cm 센터 박지수였다. KB의 1번 자리는 야전사령관이 아닌 보급반에 가까웠다.

그런 KB가 모처럼 정통 1번에 대한 갈증을 풀 기회를 잡았다. 지난 1월 9일,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4.8%의 기적으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며 상주여고 가드 허예은을 지명한 것이다.

 

고교 시절 “좋은 팀에 가서 신인상을 받는 것이 목표”라던 허예은은 데뷔 시즌 9경기에 나왔다. 평균 10분 52초를 뛰면서 3.3점 1.0리바운드 1.6어시스트. 기록과 상관 없이 출전 경기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경쟁자가 없어 신인상은 이변이 없는 한 확정적이다. 실제로 WKBL은 현재 정규리그 시상을 위해 기자단 투표를 받고 있는데, 신인선수상 후보란은 허예은의 이름만 적혀 있다. 

데뷔전을 치른 1월 18일부터 중단이 선언된 3월 8일까지, 프로 입단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을 텐데 때아닌 무관중 조치부터 사상 초유의 리그 종료 사태까지 겪으며 다사다난한 데뷔 시즌을 보낸 허예은은 올 시즌을 어떻게 돌아봤을까? 다음은 24일 진행한 허예은과 일문일답 인터뷰.

Q. 프로에서 첫 시즌이 끝났다. 어땠나?
A. 정말… 코로나때문에…(한숨) 중단이 되고 2주 동안 선수단이 열심히 훈련했다. 2위인 상태에서 중단됐으니 목표 의식이 더 컸다. 비시즌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비시즌 느낌이 나게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종료됐고, 이 모든 게 소용없어졌다는 걸 알고 참 허무했다.

Q. 최종 기록 3.3점 1.6어시스트로 시즌을 마쳤다.
A.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록이다. 사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코트에 들어갈 때마다 기록이나 활약을 생각하면서 들어가진 않았다. 잠깐을 뛰더라도 (심)성영 언니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하고, 제가 잘하는 것들로 팀에 도움이 되려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했던 것 같다. 

내가 없을 때도 우승을 했던 팀에 신인으로 와서 곧바로 기회를 받았다. 이게 감독님과 코치님에게 얼마나 큰 결심이며, 내가 뛰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출전 시간인지도 알고 있었다. 시즌 내내 스스로 ‘나는 더 잘해야 한다’,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채찍질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신인상 후보도 저밖에 없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랬으면 더 부끄럽지 않게 잘했어야 했다. 아쉽다. 

 

Q.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였나? 
A. 여러가지가 있는데,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산에서 치른 BNK전이다. 하나은행전에서 데뷔했다가 무득점하고 다음 경기였던 BNK전에서 3점슛으로 데뷔 첫 골을 넣었다. 첫 득점인 것도 있는데, 사실 그 슛에 사연이 있다. 보통 이영현 코치님과 슈팅 훈련을 하는데, 정말 그날 그 슛은 이 코치님한테 배운 폼이나 타이밍을 모두 틀렸다. 정말 ‘이건 코치님한테 한 대 맞아도 싸다’ 생각할 정도로 다 틀렸다.(웃음) 심지어 던지고 나서 볼줄도 완전히 빗나간 것 같았는데 그게 쏙 들어가더라. 첫 골이라 기분도 좋고, 고향인 마산이기도 하고, 코치님 생각도 나서 백코트할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또 데뷔하고 나서 가장 많이 뛰었던 신한은행전도 기억에 남고, 결승전 같았던 우리은행전도 기억에 남는다.

Q. 우리은행전은 어땠나?
A. 다르더라. 아무래도 직접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보니 팀이나 저나 다른 팀들과 경기보다 더 초점을 맞추고 준비했는데, 압박감이 정말 엄청 났다. 긴 시간을 뛰진 않았는데도 그 압박감에 드리블 한 번, 패스 한 번 모두 신중히 하게 되더라.

사실 프로에 입단하기 전이었던 작년에 KB와 우리은행의 경기를 보러간 적이 있었다. 그땐 (박)지현 언니가 웜업존(선수 대기 구역)에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한 시즌 만에 이제 풀타임을 뛰는 주축이 됐다. 나는 지금 웜업존에 있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Q. 짧은 시즌이었지만, 그래도 올 시즌 소득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
A. 프로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예를 들어 웨이트 훈련도 예전에는 막연하게 ‘내가 몸집이 작으니까 웨이트 훈련을 해야지’하다가 이제 언니들과 직접 부딪히면서 내가 얼마나 더 해야 할지 체감했다. 실제로 골격근량도 좀 늘기도 했고. (얼마나 늘었나?) 음, 우선 늘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Q. 휴가를 마치면 곧바로 비시즌 훈련이다. 처음 맞는 비시즌, 각오가 있다면?
A. 휴가 때는 가족과 시간을 좀 보내다가 부산을 오가면서 운동할 계획이다. 4월 말 팀 복귀인데, 복귀하면 정말 죽어보려 한다. 입단 후 팀에서 웨이트를 좀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비시즌 때 체계적으로 받는 훈련과는 다르지 않나. 이번 비시즌에는 정말 열심히 훈련해서 언니들이 말하는 ‘몸을 만들었다’는 게 뭔지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서 개막전에 나타나 팬분들께 ‘딱’하고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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