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변연하 칼럼니스트] 중국을 잡았던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뉴질랜드에게 졌다. 하지만 동률팀 간의 득실점차에서 앞서, 올림픽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은 1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트러스트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프리-퀄리파잉 토너먼트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65-69로 졌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경기를 내줬다는 점은 분명 아쉽지만, 홈 텃세와 초반 열세를 딛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선수들의 컨디션과 김한별의 부상
경기 자체만 놓고 볼 때 패인을 찾자면, 초반 분위기를 내준 부분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경기 초반, 뉴질랜드에 기선을 제압당하면서 10점차 이상으로 점수가 벌어졌고, 이 부담이 경기 내내 발목을 잡았다.

일단, 선수들의 몸놀림 자체가 지난 경기들보다 무거워보였다. 대표팀은 16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배혜윤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20분 이하로 조절했다. 배혜윤도 20분 6초를 뛰었으니 많이 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전에 더 집중하고자 했다면 박지수, 김정은 같은 선수들은 굳이 경기를 뛰지 않았어도 됐을 것 같다. 경기 감각 유지가 목적이었어도 출전 시간을 더 줄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요 선수들의 필리핀전 출전 시간을 보면 충분히 안배한 것은 맞다. 

하지만 WKBL은 휴식 없이 치르는 연전경기가 없다. 최소 하루의 휴식은 있다. 국제 대회에 나가면 이틀 동안 2경기를 치르는 상황이 있다는 걸 선수들도 알고 대비는 하지만, 몸 자체가 그런 일정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조금 더 휴식을 주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물론 뉴질랜드도 중국과 경기를 갖고 휴식 없이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우리한테 뉴질랜드가 목표였듯이, 뉴질랜드에게도 중국보다 우리가 목표였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첫 날 중국을 이겼다고 해도, 뉴질랜드는 한국 전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과의 경기를 치렀을 것이다. 기본적인 피지컬 조건에서 앞서는 뉴질랜드보다 한국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경기 내용면에서는 김한별의 초반 부상이 가장 큰 변수였다. 

김한별은 경기 시작 1분 50초 만에 부상으로 인해 벤치로 물러났다. 초반 흐름을 찾지 못하던 한국은 김한별이 빠진 시간동안 더욱 경기를 정리하지 못했고, 박지수에게 볼을 투입한 후 움직임이 정체되는 모습이 단조롭게 반복됐다. 

김한별의 부상 이후, 선수들보다 벤치가 더 당황했던 것 같다. 분위기가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넘어갔고, 제대로 경기가 풀리지도 않는데 작전 타임도 없었다.

몸이 무거워서 뛰지 못하는 것, 슛 컨디션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흐름을 끊어주는 것은 벤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초반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포커스가 뉴질랜드전이었는데...
그간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뉴질랜드 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농구를 보는 나의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뉴질랜드 전을 보면서 이전 경기들과 달랐던 특별한 변화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뉴질랜드가 목표였으면, 적어도 뉴질랜드를 대비해서 준비한 플레이들을 앞선 중국이나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숨겼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가대표 시절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특정팀을 목표로 잡으면, 작전이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수들끼리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뉴질랜드 전을 보면서 지난 두 경기와 달랐던 특별한 전술이나 플레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뉴질랜드 역시 특별한 묘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박지수를 묶는 가운데 김정은을 견제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표팀의 이전 경기를 봤으면 어디나 준비했을 대비책이다. 골밑에서 박지수만 묶어둘 수 있다면 나머지 상황에서는 높이와 피지컬을 이용해서 승부를 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기 내내, 상황마다 뉴질랜드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나인틴(19)”을 외쳤다. 계속 박지수를 찾은 것이다. 박지수를 상대로 뉴질랜드가 시도하는 박스 아웃은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판의 판정은 지나치게 관대했다.

반대로 그런 뉴질랜드를 상대로 우리의 공격이나 수비도 다양한 변화를 가져가지는 못했다.

이 경기에서 우리는 김정은(40분), 박혜진(38분 13초), 김단비(36분 25초), 강이슬(34분 15초)이 많은 시간을 뛰었고, 부상으로 쓰러졌던 박지수도 28분 26초를 뛰었다. 부상이 아니었으면 박지수도 35분 정도는 뛰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경기에 주요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로 운영 폭이 좁다는 것은 아쉽다. 만약 주요 선수들이 더 많은 책임을 가져간다는 게 미리 준비된 상황이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필리핀 전에서는 조금 더 출전 시간의 안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인지 수비에서는 존과 맨투맨을 반복해서 쓰는 모습이었다. 

뉴질랜드는 선수 전원이 모두 고르게 득점을 가져가는 팀이 아니다. 공격에서도 집중이 되는 선수가 있고 주득점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들에 대한 특별한 수비 대책은 없었던 것 같다.
 

판정에서의 어려움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이날 경기의 판정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한국과 뉴질랜드에 불리는 휘슬의 기준이 전혀 달랐다. 

그러다보니 선수들 역시 경기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골밑에서 상대와 집중적인 몸싸움을 해야하는 박지수에게는 더욱 가혹한 상황이었다.

뉴질랜드에게 유리한 판정을 해놓고, 우리 쪽으로 의미 없는 파울을 불어주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파울 개수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막기 위해 일부러 맞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기에 초반에 상대에게 경기 흐름을 내준 것이 더욱 아쉬웠다. 

뉴질랜드의 홈이라는 점, 다음 라운드 진출 여부가 걸린 경기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판정 불이익은 충분히 예상된 상황이었다. 그런 경기에서 초반에 10점차 이상의 리드를 내주자, 휘슬도 뉴질랜드의 진출 가능성에 조금 더 적극성을 가져간 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 

결국 우리가 빌미를 줬다는 아쉬움이다.  
 

국가대표다웠던 선수들의 위기 극복
플레이 하나하나를 지적하자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 더 의의를 두고 싶다. 

4쿼터 한 때, 다시 12점차까지 벌어지며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점수차를 좁혀 최종 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패한 팀 쪽의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판정 기준이 적용됐다면 초반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질 경기는 결코 아니었다.

김정은이 어려움을 겪고, 김한별과 박지수가 부상으로 물러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단비가 고비 때 중요한 득점을 올려줬고, 강이슬이 필요할 때마다 3점슛을 성공했다. 특히 강이슬은 3점슛 5개를 모두 성공했고 21점으로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렸다.

사실, 이런 것이 대표팀의 일반적이고 당연한 모습이다. 

리그에서는 에이스가 잡히면 어려운 경기를 하게 되지만, 국가대표는 선수 대부분이 각 팀의 에이스들인 만큼, 주축이 부진해도 다른 선수들이 활로를 찾아줄 수 있다. 뉴질랜드 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내내 고전을 했던 김정은은 1초도 쉬지 않고 40분을 다 뛰었고, 그런 가운데 17점을 득점했다. 부상으로 다리를 절던 박지수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고, 마지막 순간에 골밑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11점 11리바운드 6어시스트 3블록을 기록했다.

준비된 상황이나 여건 면에서 큰 위기에 몰렸던 한국이지만, 결국 선수들이 해냈다. 

목표로 했던 최종 예선에 나서게 됐다. 투혼과 투지를 보여줬고, 위기를 극복하며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뉴질랜드 전 패배는 팀 전체적으로 볼 때는 반성이 필요하다. 만약 선수들이 중국전의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됐을 것이다.

내년 2월에 있는 최종 예선은 이번 라운드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뉴질랜드 전 패배를 좋은 약으로 삼아, 더욱 발전하는 대표팀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여 박지수에게...
부상 투혼을 발휘한 박지수가 경기가 끝난 후 김한별에 업혀 나가면서 우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가슴이 먹먹하다.

박지수와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책임감도 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이 때문에 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많이 안타까웠다.

박지수는 이제 22살이다. 하지만 짊어지고 있는 부담은 22살의 것이 아닐 것이다. 

국가대표로 뛴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거기서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가만히 있어도 양 쪽 어깨에 곰 한 마리씩은 올라 앉아있는 느낌이다. 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그런 부담을 항상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 거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빅맨 중에 이런 부담을 안고 살았던 것은 정은순, 정선민 시절 이후 박지수가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선배들은 자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플랜B를 해줄 같은 포지션, 혹은 전술 상의 동료라도 있었지만, 박지수는 훨씬 어린 나이부터 자기 혼자 그 부담을 다 떠안아야 하는 입장이다.

코트에 있으면 내가 좀 더 해줘야 할 것 같고, 아파서 벤치에 나와 있더라도 팀이 삐걱거거리면 다 나 때문인 거 같다. “나 때문에 잘 됐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항상 “나 때문에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 힘든 심정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위치가 주는 중압감이다. 농구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박지수는 이 부담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고 응원을 받으며 주목을 받던 때가 더 좋았던 시절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 부담과 중압감에 재미를 붙이는 수밖에 없다. 잔인한 조언이지만, 이 부담을 즐겨야 한다. 

어린 나이에 이미 국가대표에서 이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박지수인만큼 충분히 그런 선수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경기 초반 상대의 집중 견제에 고전하고 힘들어 했지만, 오늘 뉴질랜드 전의 박지수도 평소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훌륭했고, 여전히 자랑스러웠다. 고맙다.

사진 = 대한민국 농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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