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베다드는 아시아 프로농구 리그에 관한 소식과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Basketballbuddha.com』의 편집장이다.

[루키] 편집부 = 1947년, 재키 로빈슨은 인종차별 장벽을 허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 같은 해 NBA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일본계 미국인 와타루 미사카가 최초의 非백인이자 아시아계 NBA 선수로‘빅 리그’를 밟은 것. 마사카 이후 11명의 아시아 선수가 NBA 무대를 누볐다.

야오밍은 NBA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제레미 린은 지금도 엄청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멩크 바티어와 순예는 2003년과 2009년 우승팀 멤버로 남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아시아 최고 선수와 감독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였다. NBA 섬머리그를 거쳐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벤치 멤버로 활약한 선수는 물론, NBA도 넘볼 수 있는 수준의 선수들이 메달을 놓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이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닉 베다드는?
캐나다 토론토 태생으로 나이아가라 대학 저널리즘 학과를 졸업했다. 2014 아시안게임 미주지역 크리에이터로 모든 농구 경기를 취재했으며 일본, 중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농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프로농구 리그에 관한 소식과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Basketballbuddha.com』편집장도 겸하고 있다. 본지 11월호부터 앞으로 매 달 양질의 칼럼을 제공할 예정이다.


 


하메드 하다디 | 이란

하메드 하다디 | 이란

아시아 최고의 센터라 불리는 하메드 하다디는 NBA에서 4년 이상을 머물렀다. 멤피스에서 대부분의 NBA 경력을 보낸 후 피닉스 선즈에도 잠시 몸 담았다. 2008년, NBA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은 자유계약선수로 멤피스와 계약을 맺은 하다디는 최초의 이란 출신 NBA 선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멤피스 시절엔 마크 가솔과 잭 랜돌프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다. 220cm의 큰 신장은 빅맨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농구와 꽤나 잘 어울렸다. 4년 넘게 NBA리거로 활약하며 7백만 달러(한화 약 43억 원)를 벌어들인 하다디는 2013년, 피닉스에서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러나 비자 문제가 불거지며 결국 방출 통보를 받고 말았다.

하다디의 다음 행선지는 중국. CBA 쓰촨 블루웨일즈로 이적해 2013-14시즌을 보냈다. 2014-15시즌 소속팀은 칭다오 스타 이글즈. 다음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만난 하다디 인터뷰다.


Q 지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당신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NBA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하다디 21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제 생애 첫 올림픽에 출전이었는데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많은 토너먼트 경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약 7달 동안 훈련만 했죠. 하지만 그 덕분에 여유를 갖고 준비할 수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무럭무럭 생겨났죠.

아시는 것처럼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NBA 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죠. 최초의 이란 출신 NBA 선수로도 남게 되었습니다.

NBA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취침 중이었어요. 감독님께서 황급히 저를 찾으시더니 “NBA에서 연락이 왔어! 팀은 멤피스!”라 말씀하셔서 알게 됐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꿈은 아니겠죠?”라 반응했던 기억이 납니다.


Q 꿈이 실현된 거네요.

하다디 맞아요. NBA에 진출하고 싶다는 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거죠.


Q NBA 첫 상대가 휴스턴 로케츠였습니다. 야오밍을 상대했는데 17분을 뛰며 4득점했죠. 그 경기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하다디 로케츠와의 경기를 앞두고 전 무척 긴장했어요. 야오밍과는 두세 번 맞붙은 적이 있었지만 NBA는 엄연히 다른 무대죠. 당시, 저는 루키에 불과했습니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었죠.

감독님이 제 이름을 부르며 코트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첫 경기부터 나를 기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많은 선수를 두루 기용하는 시범경기일 뿐이었죠.


Q NBA 생활은 어땠나요. 82경기를 뛰려면 이동하기도 바쁠 텐데 훈련 방식이나 시간도 다른 리그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하다디 7, 8개월은 엄청 바빠요. 매일 비행기를 타야하며 연습, 경기로 이어지는 바쁜 일정이 정신없이 이어지죠. 끊임없이 준비해야만 합니다. 보통 NBA 선수들은 아침 8시에 일어나지만 루키는 30분 먼저 기상합니다.


Q 왜죠?

하다디 일찍 연습하러 나가야 하니까요. 베테랑들이 나오기 전에 훈련장에 가야 컨디셔닝 코치들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오프에 돌입하면 더 바빠져요. 지난 10년간 10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NBA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표팀에 가야 했으니까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10일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힘든 일이었죠.


Q 가솔과 랜돌프에게 어떤 것들을 배웠나요..

하다디 상당히 많죠. 특히 루디 게이, Z-BO(랜돌프)가 많이 알려줬어요. 멤피스 시절이 정말 좋았습니다. 농구는 물론, 영어도 늘었거든요. 코트 안팎의 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Q 멤피스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선수는 누구인가요.

하다디 전부 다죠!


Q 그래도 자주 어울린 선수가 있을 텐데요.

하다디 게이와 특히 친하게 지냈어요. 의형제 같았죠. 영어도 자세히 가르쳐줬습니다. 정말 잘 대해주었죠. 가솔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모든 선수들과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리즐리스는 가족 같은 팀이었어요. 덕분에 4년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Q 중국 팀과 새로운 계약을 맺었습니다. 2014-15시즌에는 칭다오 팀 소속으로 뛰게 되었는데요. 중국 리그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하다디 중국은 NBA와 많이 달랐어요. 4개월 조금 넘게 시즌이 진행되는데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 생활이 마음에 들어요. 지난 시즌 스촨에서 뛰었을 때 초반 20경기 정도는 정말 힘들었어요.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었죠. 어떻게 뛰는지도 잘 몰랐어요. 또, 다른 문제도..


Q 심판을 말하는 거군요.

하다디 맞아요. 심판의 성향을 전혀 알지 못했죠. 처음에는 심판들과 말을 섞는 것조차 싫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럼에도 중국에서 뛰기로 결정한 것은 NBA나 유럽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정규리그는 상대적으로 짧아요. 그래서 중국을 택했습니다(편집자 주_ 중국 리그는 2월에 막을 내린다).

 

 

마커스 다우잇 | 필리핀

마커스 다우잇 | 필리핀

필리핀의 귀화 선수로 활약 중인 마커스 다우잇은 뉴욕 시라큐스 출생으로 NCAA 프로비던스 대학을 졸업했다. 2004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LA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트레이닝 캠프도 버티지 못한 채 낙오하고 말았다. 당시, 같은 포지션엔 칼 말론이 버티고 있었다.

다우잇은 주로 D-리그에서 뛰었다. 몇몇 팀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NBA 로스터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그는 중국과 한국, 필리핀을 거치며 농구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Q 2004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다우잇 드래프트 전 한 달 동안 무려 18개 팀과 워크-아웃을 했어요. 30일 내내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죠. NBA 진입을 노리는 선수들과 경쟁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드래프트 후 로스엔젤리스에 도착하자마자 훈련에 돌입했어요.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하기도 전이었는데 말이죠. 최종 로스터에 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던 것 같아요. 당시의 경험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겁니다.


Q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함께 훈련했을 텐데요. 코비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선수인지 궁금합니다.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을 테고요.

다우잇 말 그대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입니다. 코비는 다른 선수가 적당히 훈련하는 꼴을 못 보는 선수에요.

아침 9시에 팀 연습을 시작한다고 해도 코비는 7시면 체육관에 도착합니다. 몸을 완벽히 푼 다음, 훈련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해내죠. 9시가 되면 벌써 세 번째 운동 과정에 돌입합니다. 아직도 코비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어요. 오프시즌에도 정말 악착같이 훈련하더군요.


Q 최종 로스터에 들지 못하면서 D-리그에 머물게 됐습니다. 당시, 클리퍼스가 당신을 콜-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다우잇 클리퍼스가 저를 호출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에요. 클리퍼스 로스터에 거의 들어갈 뻔했지만 가드 한 명이 다치면서 제 자리는 사라지고 말았죠. 가드 포지션을 보강해야 했으니까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쉽기도 했고요. 하지만 도전만 할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요.


Q KBL에서도 잠시 뛰었습니다.

다우잇 한국은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많이 달라요. 경기 속도가 빠르고 선수들도 매우 똑똑하죠. 외곽슛 역시 상당히 정확합니다. 저 같은 경우, KBL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KBL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특히 속공 농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Q NBA와 아시아 팀의 훈련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다우잇 NBA는 개인 훈련이 주를 이룹니다. 많은 선수들이 개인 기술을 연마하려 노력하죠. 팀 훈련은 트레이닝 캠프서부터 시작됩니다. 트레이닝 캠프가 열린 후 2주 동안 코칭스태프가 공들여 준비한 패턴을 배우는 거죠. 대신, 시즌 중에는 철저히 개인 훈련에 열중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요. 시즌 중에도 운동량이 엄청나죠. 경기 수가 많은 NBA에서는 시즌 도중에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풍족하지 않습니다.


Q NCAA에서 뛴 이야기도 궁금하군요. 당신이 나온 프로비던스 대학에는 NBA에서 뛴 라이언 곰스도 있었어요.

다우잇 맞아요. 상당히 조용한 친구였죠. 프로비던스 대학의 초대를 받아 학교를 방문했을 때 곰스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저는 1학년, 라이언은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죠. 곰스는 늘 조용하고 겸손했어요. 대신, 연습은 독하게 했는데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대학 초창기 때만 해도 곰스가 NBA 선수가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바로 몇 주 전에 통화를 했는데 지금은 스페인에서 뛰고 있다고 했습니다. 곰스는 절대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에요. 맡은 역할을 해내고 마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죠. 여전히 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유키 토가시 | 일본

유키 토가시 | 일본

유키 토가시가 2014년 댈러스 매버릭스의 섬머리그 로스터에 진입하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167cm에 불과한 단신 선수가 NBA의 맛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14 NBA 섬머리그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에서 뜨거운 환호를 받은 토가시는 이제 겨우 21살에 불과한 영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만난 그는 나이만큼이나 밝고 명랑한 선수였다.


Q NBA 섬머리그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배웠을 텐데요.

토가시 로스터에 들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댈러스 소속으로 섬머리그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개인적으로도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Q 팀 동료들은 어떻던가요.

토가시 호주 출신의 크리스 골딩이 제 룸메이트였어요. 2014 농구 월드컵 대표로도 뽑힌 선수죠. 서로 아주 잘 지냈습니다.


Q 섬머리그의 경기 속도는 빠르기로 유명하죠.

토가시 맞아요. 모든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또, 대부분의 선수들이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더라고요. 매 경기가 힘들었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 정말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으니까요.

 

 

왕제린 | 중국

왕제린 | 중국

왕제린은 중국 남자농구의 미래를 이끌 주역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213cm의 큰 신장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슛 터치가 인상적인 그는 NBA 수준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 뛰어본 경험도 갖고 있다.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2011년, 듀크 대학의 플럼리 형제와 맞대결을 벌였고 2012년에는 나이키『HOOP SUMMIT』에서 너렌스 노엘과 치열한 몸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중국 CBA 3년차를 맞이하는 왕제린은 NBA에서 뛰었던 딜론테 웨스트와 호흡을 맞춘데 이어 올 시즌에는 알 해링턴과 한솥밥을 먹는다.


Q 듀크 대학과 맞붙었던 2011년 경기가 궁금합니다.

왕제린 미국 대학농구, 그것도 듀크 같은 상위 팀과 처음 맞붙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미 몇몇 선수는 NBA에서도 스타로 성장할 만한 자질을 보여주었죠. 듀크 대학과 경기하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지난 시즌 함께 뛴 딜론테 웨스트가 당신을 가리켜 ‘어린 하킴 올라주원’이라 칭했습니다. 과연 진심이었을까요? 아니면 팀 동료를 위한 립 서비스였을까요.

왕제린 농담이었겠죠. 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웨스트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Q 다음 시즌, 알 해링턴과 뛰게 되었습니다. NBA의 백전노장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기분이 어떤가요.

왕제린 해링턴 같은 영리한 선수와 뛰게 돼 무척 흥분됩니다. 그가 갖고 있는 풍부한 경험은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가장 큰 목표는 NBA 진출이겠죠?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왕제린 NBA리거가 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제 꿈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노력은 NBA 무대를 밟고야 말겠다는 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루키 편집부(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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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닉 베다드 / fiba.com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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