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2016년 11월 14일, 구리체육관에서 열린 부천 KEB하나은행과 구리 KDB생명과의 경기. 

경기 종료 약 2분 전, 하나은행의 어린 가드가 국가대표 출신 가드 이경은을 앞에 두고 유로스텝에 이은 더블클러치를 성공했다. 여자농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화려한 플레이가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인성여고를 졸업하고 2라운드 전체 9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던 당시 프로 2년차 172cm의 가드 김지영이 그 주인공. 김지영은 이 플레이 하나로 WKBL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루키 시즌, 단 4경기에 총 6분 41초를 뛰는 데 그쳤던 김지영은 이 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며 평균 24분 27초를 뛰었다. ‘역대급 신인’ 박지수(KB)가 아니었다면 프로 2년차까지 자격이 주어지는 신인상의 주인공은 김지영이었을 것이다.

적극성을 앞세워 저돌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김지영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이후로도 계속 높아졌다. 팀 내의 경쟁도 치열해졌지만 주눅들지 않았다. 2017년, 일본 전지훈련 중에 만난 김지영은 자신감이 넘쳤다.

“주전 경쟁이 심해져서, 출전 기회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미 제 또래나 동기들에 비해서 많은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아요, 언니들이 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훈련하고 보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김지영의 성장은 이어지지 의았다. 팀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출전 시간은 반토막 났고, 지난 시즌에는 더욱 출전 기회가 줄었다. 주전 가드 염윤아가 FA자격을 얻어 KB로 떠났지만, 부상을 털고 복귀한 김이슬, 신지현의 활약 속에 김지영의 자리는 더욱 위축됐다.

출전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부분을 충분히 준비했지만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기회가 줄어들면서 동요도 크게 일었다.

“경기에 나서도 실수하면 교체된다는 생각이 크다보니까 아무것도 못했어요. 제 장점이 적극적으로 하고, 과감하게 드라이브인을 하는 거였는데, 실수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옆으로 공을 돌리기만 하고 그러다가 자신감도 잃고, 제 색깔도 잃었어요. 정말,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팀이 원하는 플레이와 자신의 장점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김지영의 상징과도 같았던 적극성을 앗아갔고 자신감도 떨어뜨렸다. 김지영은 지난 두 시즌에 대해 ‘내가 잘하는 게 어떤 거였는지 잊을 정도’였다며 ‘잃어버린 2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절치부심 속에 다섯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김지영의 표정은 밝았다. 그 어느때보다 희망적으로, 또 즐겁게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하나은행의 지휘봉을 잡은 이훈재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코트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고, 아직 훈련 초반이지만 자신도 있어요. 감독님이 칭찬도 많이 해주세요. 프로에 온 후로 항상 수비 못한다는 소리만 들어서 부담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감독님한테 수비 잘한다는 칭찬도 받았어요. 자신감을 많이 찾은 것 같아요.”

야투에 대한 자신감도 찾아가고 있다. 

김지영은 지난 시즌 3점슛 25개를 시도해 단 1개를 성공하는 데 그쳤다. 외곽슛 성공률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3점슛도 곧잘 성공했던 김지영이다.

“슛도 자신감이 떨어졌던 부분이 가장 문제였던 거 같아요. 연습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경기에 나가면 오픈 찬스가 생겨도 스스로 불안하니까 더 안 들어갔던 것 같아요. 다음 시즌은 다를 거예요.”

김지영은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이시준 코치로부터 슛폼을 교정 받았고, 바뀐 자세도 많이 익숙해졌다고 밝혔다. 

이훈재 감독은 김지영에 대해 “긍정적이고 장점이 많은 선수”라며, “수비할 때 스텝도 좋고, 몸도 아주 좋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탄력도 좋고 힘도 좋은데 아직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쓸 줄 모른다며, 이 부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농구에 대한 김지영의 열정을 높이 샀다. 김지영은 휴가 기간이나 휴일에도 농구 경기장을 유독 많이 찾는 선수 중 하나다. 

“쉴 때도 농구를 보러 오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1년에 11개월은 선수로 농구를 하는 거고, 그 한 달은 팬으로 농구를 즐기는 거예요. 저는 진짜 농구가 재밌고 좋거든요. 농구 말고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휴가 때나 휴일에 농구를 보는 게 좋아요. 저는 진짜 마흔 살까지 선수를 하고 싶어요.”

이훈재 감독은 김지영의 농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며,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번 시즌은 김지영이 이러한 이훈재 감독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제대로 한 게 없어서 어떤 걸 더 잘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코트에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걸 더 잘하고 싶고, 제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