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이문규 감독이 여자농구 대표팀 사령탑 연임에 성공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지난 22일 이사회를 통해, 오는 9월에 열리는 FIBA 여자농구 아시아컵 대회를 비롯한 도쿄 올림픽 예선을 이끌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이문규 전 감독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여론의 분위기는 회의적이다.

지난해 대표팀을 이끌며 실망스러운 내용과 결과를 보였던 이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이끌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 기사 댓글은 물론 각종 여자농구 커뮤니티의 반응 모두 맥을 같이 한다. 

일부 팬들은 최종 후보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 경기력향상위원들과 이사회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의 문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포포비치, 스티브 커가 지원했어도 못 이기는 구조
농구협회는 경기력향상위원회(이하 ‘경향위’)를 거쳐 최종 후보를 선출하여 이사회에서 이문규 감독을 적임자로 선임했다. 경향위는 추일승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감독을 위원장으로 하여, 현역 WKBL감독 2명과 전 WKBL 지도자, 전현 아마추어 지도자 등 남녀 3명씩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점프볼’에 따르면 농구협회 관계자는 “경향위에서 신중한 평가를 거쳤다”며, “경향위의 평가 결과에 따라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 농구계 관계자들과 일부 경향위원들의 반응은 협회와 달랐다. 경향위의 판단과 선택이 감독 선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경향위원들은 감독에 지원한 4명의 후보들의 면접을 본 후, 각자 자신들의 면접 접수만 제출했다. 경향위에서 최종 후보를 추천한 것이 아니라, 평가의 일부분인 면접 점수만 각자 채점한 것. 특히 일부 관계자들은 “면접 점수를 통해 정량평가로 이미 올라와 있는 경력 점수를 뒤집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향위에 배정된 점수가 60%, 경력 평가가 40%로 경향위에 할당된 점수가 높지만, 경향위원들이 사전에 담합을 하지 않는 한, 면접 결과로 경력 점수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다수의 경향위원들은 이사회에 오른 최종 후보에 대해, 실제 면접 결과와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며 당혹스러워 했다.

한 농구 관계자는 “경험과 관록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계 농구의 흐름에 적응하고 변화를 가져갈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이 대표팀을 맡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현행 제도에서는 방열 회장이나 신선우 전 WKBL 총재 같은 분들이 감독에 지원하면 경력에서 넘어설 수가 없어,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국제대회를 이끈 경험은 물론 현역 시절 국가대표 경력까지 정량평가에 포함된다. 가능성 없는 가정이지만,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이 이번 공모에 지원했어도, 현행 기준에서는 결과가 바뀔 수 없다.

경향위원도 지적하는 시스템의 문제
경력이 참고 사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락을 결정하는 절대 요소가 되는 구조가 문제다. 

대표팀 운영 계획과 현재 대표 선수 후보군에 대한 파악, 세계 농구의 흐름과 상대 분석 등이 감독 선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보다 경력이 감독 후보들의 평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협회는 그나마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 예년보다 경력 점수를 줄이고 경향위 평가 점수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농구계는 물론 경향위 내부에서도 “감독 선임과 관련해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경향위에 참여한 위원 중 대부분이 면접을 마친 후, 대표팀 감독 선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디른 관계자는 “경력 중에서도 플러스가 있고, 마이너스가 있다. 예를 들어 2006년의 도하 참사나, 지난해 세계선수권 대회의 실패 등은 당연히 감점 대상이어야 하는데, 전부 다 가산점이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후보들의 경력에 대해서도 경향위원들이 평가를 해서 냉정하게 가산점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

사실 감독 선임과 관련한 평가 기준의 문제점을 제기하기 이전에, 국제 대회 성적이 절실한 상황에서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는 능력 있는 감독을 직접 임명해서 선임하지 못하고, 공모를 통해 감독 후보를 모집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개선 의지 없이는 발전도 없다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된 시스템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전부터 있었고, 대표팀 감독에 대한 협회의 평가가 농구 현장 및 팬들의 여론과 엇박자를 내고 있음이 수차례 나타났지만 결국 적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농구협회는 남자대표팀 감독 선임 때도 실수를 범한데 이어, 이번 여자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해서는 감독 공모에 관한 보도자료도 내지 않았고, 지원자들조차 “공모 사실을 몰랐다”고 할 만큼 미숙한 행정력의 치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협회의 적법한 과정을 거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문규 감독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 지난해에 있었던 대표 소집, 선수와의 소통 문제 등 아쉬웠던 부분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로 지적된 협회의 '적법한 과정'에 대한 오류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시정과 보완에 나서는 노력도 필수다. ‘한국 농구 발전은 농구 협회가 막고 있다’는 팬들의 비난에 면역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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