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승기 기자 = 우리는 오늘 노란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금메달리스트 스포츠 스타를 떠나보냈다. 한 명은 46억 년 지구 역사상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25), 다른 한 명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대니 그레인저(32)다.
 
김연아는 아름다웠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노란 유니폼을 입고, 프리 스케이팅에서 노란 메달을 노렸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은메달과 함께 은빛 무대에 "아디오스"를 고했다. 여왕에게 메달 색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본인 자체가 '김(金)메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인저는 다르다. 노란 유니폼을 더 입을 수 없게 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지난 2005년 데뷔 이후 9년간 줄곧 노란 유니폼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레인저다. 팀이 흥할 때나 망할 때나 성할 때나 쇠할 때나 그레인저는 언제나 페이서스의 곁을 지켰다. 그 사이 그레인저는 올스타가 됐고, 국가대표가 됐다.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고 2005년 NBA 드래프트에 뛰어든 그레인저는 1라운드 17순위로 인디애나의 부름을 받았다. 뉴멕시코 대학 시절부터 인정받은 수비력으로 인해 '넥스트 스카티 피펜'이 되리라는 기대도 많았다.
 
착실하게 기량을 갈고 닦은 그레인저는 2008-09시즌 평균 25.8점, 5.1리바운드, 2.7어시스트, 1.0스틸, 1.4블록, 3점슛 2.7개(40.4%)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시즌이 끝났을 때는 기량발전상을 거머쥐었다.
 
2010 세계선수권대회(현 농구월드컵)에서는 미국 대표로 참가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탄탄대로로 보였던 그레인저의 선수생활이 꼬인 것은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면서부터였다.
 
그레인저는 2009년 이후 갖은 잔부상에 시달려 왔다. 오른 발, 왼쪽 발목, 왼쪽 정강이 등에 골고루 부상을 입었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왼쪽 무릎이었다. 고질적 무릎 부상이 일어나면서 기량이 급격하게 쇠퇴했다.
 
2012-13시즌 그레인저는 무릎 때문에 무려 77경기에 결장했다. 2013-14시즌 초반에는 정강이 부상으로 25경기에서 벤치를 지켰다. 이 사이 후배 폴 조지가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조지는 이미 그레인저가 잘나가던 시절을 능가하는 인기와 실력을 갖췄다. 그레인저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결국 인디애나는 그레인저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21일 인디애나는 필라델피아 76ers로 그레인저와 2015년 2라운드 지명권 한 장을 보내며 에반 터너와 라보이 알렌을 받아들였다. 9년간 팀을 지켜온 리더는 그렇게 라커룸을 비우게 됐다.
 
물론, 비즈니스 측면으로 접근하자면 대단히 잘한 일이다. 그레인저의 시장 가치는 이미 폭락한 상태. 반면 에반 터너는 젊고 팔팔한 영건이다. 누가 봐도 남는 장사를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진하게 남는 것은 왜일까.
 
인디애나가 낳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레지 밀러는 지난 2005년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6차전, 27점을 기록지에 남긴 채 은퇴했다. 밀러 시대 이후는 그레인저가 이끌어 왔다. 인디애나가 방향을 잡지 못해 플레이오프도 리빌딩도 아닌 상태로 헤맬 때, 그레인저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다.
 
인디애나는 이제서야 다시 진지하게 우승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구단의 행보를 보면 이번 시즌에 우승하기 위해 올인(All-in)하는 모양새다. 길었던 암흑기는 끝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레인저의 우승 도전기도 끝났다. 그레인저는 이제 향후 몇 년간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리그 최약체 필라델피아로 유배를 가게 됐다.
 
NBA는 비즈니스다. 정에 얽매여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고생만 하다가 간 그레인저를 보면서 괜시리 우리네 삶의 누군가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아디오스! 안녕히 가세요, 그레인저 씨."
 
 
사진 제공 = Pacers.com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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