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승기 기자] NBA에 ‘우승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스스로 연봉을 깎는, 이른바 ‘페이컷(Pay-Cut)’을 감행하고 있다. 우승권 팀으로 가기 위해서다. 많은 팬들은 이러한 현상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페이컷은 과연 옳은 일인가? 만약 그른 것이라면 또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페이컷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거에도 페이컷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페이컷’이라 하면, 보통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미담 사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성기가 지난 나이 든 베테랑 슈퍼스타가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스스로 본인의 연봉을 깎아 계약하는 훈훈한 행보 말이다. 멀리는 매직 존슨과 존 스탁턴이 그랬고, 근래에는 팀 던컨이나 덕 노비츠키, 폴 피어스가 그랬다.

위 선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프랜차이즈 슈퍼스타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 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구단, 팬들과 동고동락했다. 자신이 곧 구단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팀 전력 보강, 나아가 우승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연봉을 낮춰 샐러리 유동성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타라고 해서 자존심만 내세우지 않았다. 따라서 재계약시 연봉을 대폭 낮춘다거나, 이미 보장된 거액을 포기하고서라도 새로운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행보는 얼마든지 이해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구단을 생각하는 마음이 보였고, 그 진정성이 팬들에게도 잘 전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촛불처럼, 스스로를 희생해 세상을 밝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베테랑 프랜차이즈 스타가 페이컷을 했을 때 모두가 박수를 보냈던 것은 그러한 까닭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페이컷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돈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번 선수들이, 아직 이루지 못한 우승이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해 담합하며 하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강해졌다. 리그 내 ‘우승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모든 선수가 우승만 바라보고 있다. 특히 본인 스스로 리그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슈퍼스타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페이컷은 슈퍼팀과 궤를 같이 한다

처음 ‘페이컷 논란’이 일어난 것은 지난 2010년 여름이었다. 모든 것은 르브론 제임스가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르브론은 절친한 친구이자 2003 드래프트 동기인 드웨인 웨이드와 크리스 보쉬를 클리블랜드에 초대한 뒤, 한 팀에서 뛰자고 설득했다. 이들은 우승을 위해 담합했고, 마이애미 히트에 둥지를 틀게 됐다.

이제 막 최전성기에 접어들었던 세 선수는 모두 맥시멈 계약이 확실한 슈퍼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더 이상의 선수 수급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들은 각자 연봉을 조금씩 낮추기로 한다.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는 연 평균 250만 달러 정도를 깎았고, 웨이드는 300만 달러가량을 덜 받기로 합의했다. 덕분에 마이애미는 여기서 발생한 여윳돈을 가지고 훌륭한 롤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었다. 

이에 리그 판도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마이애미는 ‘슈퍼팀’ 구축과 함께 리그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2010-11시즌부터 2013-14시즌까지 4시즌 내내 NBA 파이널 무대를 밟았으며, 2011-12시즌과 2012-13시즌에는 2년 연속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최전성기의 슈퍼스타 르브론과 웨이드, 보쉬의 페이컷 담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페이컷을 둘러싼 논란은 2017년 여름 절정에 달한다. 케빈 듀란트가 무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포기하면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재계약했기 때문이었다. 듀란트의 시장가치는 무조건 맥시멈 계약이다. 하지만 듀란트는 2017-18시즌 2,500만 달러만 받기로 합의했다. 원래 받을 수 있던 3,450만 달러보다 950만 달러나 적은 금액이었다.

듀란트는 “안드레 이궈달라, 숀 리빙스턴, 스테픈 커리 등이 모두 실력에 걸맞는 연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선수 모두 자신의 가치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대우 받길 원한다”며 파격적인 페이컷을 감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덕분에 골든스테이트는 약 3,000만 달러에 달하는 사치세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궈달라, 리빙스턴, 데이비드 웨스트 등 주요 전력을 고스란히 잡는 데 성공했고, 나아가 닉 영과 옴리 캐스피까지 영입했다. 그리고 2017-18시즌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며 ‘4년간 3회 우승’ 왕조를 건설했다.

게다가 2018년 여름 드마커스 커즌스가 워리어스와 530만 달러 단년계약에 합의하자,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뒤집어져 버렸다. 슈퍼스타들이 스스로 몸값을 낮춰 슈퍼팀을 결성하는 이 행태에 뿔이 난 것이었다.

 

페이컷이 시장질서를 파괴한다?

팬들은 슈퍼스타들의 페이컷을 두고 비판 및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리그 불균형 문제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페이컷으로 인한 슈퍼팀이 자꾸 생기고 유지되면서 리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어차피 우승은 골든스테이트’라는 유행어가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막말로 새크라멘토 킹스나 샬럿 호네츠 같은 스몰마켓 팀들은 우승 기회조차도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듀란트는 “이건 나와 골든스테이트이기 때문에 욕먹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든 다 싫어한다. 과거 팀 던컨이나 덕 노비츠키도 페이컷을 했고, 그게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다들 봤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하면 안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그런데 듀란트의 이야기는 팬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상황이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노비츠키나 던컨의 경우는 이미 전성기가 지났고, 더 이상 리그를 지배할 여력이 없어지자 팀을 위해 페이컷한 것이었다. 반면 르브론, 듀란트의 경우는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연봉을 깎아 팀 전력을 보강하고, 오로지 우승을 위해 슈퍼팀을 결성하고 유지하는 행태다. 

간단히 말하면 노비츠키와 던컨의 경우는 페이컷을 해도 리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르브론과 듀란트의 경우는 리그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최전성기 MVP 레벨 슈퍼스타들이 페이컷을 하고 담합하면,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대 NBA 우승권 팀들을 보면 대부분 그런 식이다. 나머지 구단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

팬들은 리그 균형을 위한 장치인 샐러리캡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성토한다. 스타들이 알아서 연봉을 맞추면서, 샐러리캡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무슨 소리! 선수의 자유의지일 뿐

반면, 페이컷은 어디까지나 선수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페이컷에 대한 어떤 제도적 제약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와 닿는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직원들이 연봉을 조금씩만 낮추면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회사를 위해 스스로 연봉을 삭감할 수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애초에 대규모의 페이컷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르브론이나 듀란트, 카멜로 앤써니 등 선택받은 자들만이 가능하다. 무슨 얘기냐고? 메가스타들은 연봉 외에도 스폰서십 계약, 각종 광고, 상품 판매 등으로 많은 부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더 넓은 운신의 폭을 가진다. ‘돈’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롤플레이어, 벤치 멤버들이 무슨 페이컷을 하겠는가. 연봉이 아니면 수입원이 없는데.

그래서 데이비드 웨스트의 사례는 더 놀랍게 느껴진다. 2015년 여름, 웨스트는 중대기로에 서게 된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1년간 1,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남아있었지만, 인디애나는 우승과 거리가 있었다. 결국 그는 우승을 위해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떠났다. 그런데 스퍼스와의 계약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고작 150만 달러 베테랑 미니멈에 사인한 것. 웨스트는 “난 그저 우승하고 싶을 뿐”이라며 이적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우승이 좋다고 해도, 우리 돈으로 110억 원 정도를 포기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슈퍼스타들처럼 후원 계약, 광고 등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에게는 그만큼 우승이 간절한 꿈이었던 것. 팬들은 웨스트의 결정에 지지를 보냈다.

2017년 루디 게이도 같은 케이스다. 새크라멘토 킹스와 1,430만 달러의 1년 계약이 남아있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샌안토니오와 2년간 1,700만 달러에 합의하고 이적했다. 역시 우승을 위해서였다.

웨스트와 게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승보다는 더 많은 돈을 원한다면 카멜로 앤써니처럼 뉴욕에 남는 거고, 우승이 더 좋다면 100억 원을 버리고서라도 우승후보 팀에 합류하면 되는 거다. 자유계약은 말 그대로 ‘자유’이기 때문에,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본인이 스스로 돈을 덜 받겠고 뛰겠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정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이처럼 페이컷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애초에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페이컷은 불법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선수들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재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사실 페이컷 자체만 놓고 보면 욕먹을 일이 아니다. 개인 의사니까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페이컷을 통해 자꾸 슈퍼팀을 결성하는 것이 문제다.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리그 전체에 바람직한 현상은 분명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팀들이 자생력을 갖춰야 할 것 같다.

 

사진 제공 = 나이키, 펜타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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