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김은혜 칼럼니스트] 친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다 보니, 미국을 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방문이었지만, 이번에는 W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수를 보러 라스베이거스에 들르기로 했다.

테네시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종종 미국 농구를 보러 갔었고, 농구 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인 WNBA에서 데뷔 첫 해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박지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행히 박지수와 연락이 닿았고, 경기 전날 잠깐 식사도 함께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동생도 만나고, WNBA 경기도 관람하고, 그 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수를 보는 것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루키 더 바스켓> 편집장에게 이 계획을 말하기 전까지는...

몇 년 전, 출국하던 날 공항으로 배웅을 나와 줬다는 이유로 나에게 거의 1년 간 일기를 써서 지면을 통해 공개하게 했던 그 편집장은 뜬금없이 밥을 사준다더니 대뜸 “(박)지수를 만나는 김에 글도 함께 써보라”고 협박 같은 권유를 했다. 어쩐지 전에 없이 밥을 사주고 박지수 연락처를 적극적으로 알려준다 했다...

농구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다녀오고자 했건만, 난데없이 일이 커져버렸다. 동생이 사는 뉴올리언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구글맵으로 찍어보니 무려 2700Km. 비행기로 3시간 반시간을 날아 환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비행기 티켓이 꽤 비쌌다. 호텔비? 역시 비쌌다. 환상의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그런 대가가 필요했다.

WNBA 플레이어, 박지수를 만나다
동생과 함께 박지수를 만난 곳은 라스베이거스의 노스 프리미엄 아웃렛에 있는 ‘치즈 케익팩토리’라는 식당이었다. 지수는 그 전날(7월 13일) 미네소타로 원정경기를 다녀왔기 때문에 우리를 만난 날은 완전히 자유 시간이라고 했다. 주로 비행기를 타고 원정을 다녀온 다음날은 휴식을 갖는다고 한다.

WKBL 해설을 하고는 있지만 박지수와는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뜬금없이 찾아와 만난다는 게 나로서도 조금은 어색했다. 사복을 입은 박지수를 사적인 자리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긴장 반, 설렘 반이랄까?

하지만 박지수의 활발한 성격 덕분에 우리는 어색함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또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특별히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긴 시간동안 나눈 박지수와의 대화를 문답형태로 정리해봤다.

Q. 드래프트에 뽑혀 미국행이 결정됐을 때 걱정도 있었겠지만 마냥 좋아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미국에 와 보니 어떤가? 
- WNBA의 드레프트 방식이 바뀌어 드레프트에 지원하지 않아도 세계 각국의 유망주나 관심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눈여겨보고 드레프트 픽을 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르다고 하는데 나도 한국 사람 아닌가? 영어가 익숙지 않아 트레이닝캠프 때도 감독님이 말하는 것을 눈치로 알아듣고 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감독님이 다른 선수들에게 “얘는 말도 못 알아듣고 18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네보다 낫다”고 칭찬하신 적도 있었다. 캠프 때는 정말 분위기가 살벌했고 무서웠다. 선수들은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몸싸움이 정말 심했는데 피지컬도 워낙 좋다보니 더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이 심한 몸싸움이었던 것 같다. 바디체크가 정말 심해서 처음에는 이 부분이 어려웠다.

Q. 해외에서 선수생활이 처음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다. 현재 WNBA에서 뛰는 선수 중 가장 어리다. 그런 입장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인가?
- 언어다. 나이를 떠나 그냥 말하고 듣는 게 가장 어렵다. 운동하는 것도 그렇지만 영어가 되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농구용어가 대부분 영어라서 운동을 할 때는 그나마 낫지만,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어렵다. 시간 날 때 틈틈이 영어 선생님이신 고모가 과제를 주시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지만 쉽게 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박지수가 영어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종업원들의 반응에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말투로 “I’m good!”이라고 대응하는 것을 보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Q. 많은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카지노와 여행,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라는 점을 떠올릴 것이다. ‘도박’이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이들도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살며 라스베이거스 팀에서 뛰는 선수로서 라스베이거스를 소개한다면?
- 특별히 다른 것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여기는 아이스하키 팀이 유명하다. 작년에 NHL에 처음 참가한 베이거스 골든 나이츠가 준우승까지 하면서 사람들이 스포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시즌부터는 우리 팀이 샌안토니오에서 넘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있다. 그 외에 별다른 것은 느끼지 못했다.

Q.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빌 레임비어 감독은 현역시절 NBA 역사에 손꼽히는 블루워커였다. 승리를 위해 더티한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선수로 꼽힌다. 실제로 함께해보니 어떤가? 현역시절의 그런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나?
- 일단 나는 감독님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다. 가끔 화났을 때 무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시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친절하고 잘 해주신다. 감독님은 감독이면서 단장이기도 한데, 이 나라 사람들은 팬들이나 젊은 사람들까지도 감독님한테 대놓고 ‘배드 보이’라고 한다. 그래서 감독님이 ‘배드 보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사람들이 감독님을 볼 때 마다 “곱게 늙으셨다”고 하더라.

Q. WNBA에서 첫 시즌인데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특별히 친한 선수가 있나?
켈시 플럼, 니아 코피와 친하다. 같이 네일도 받으러 갔고, 동료들이 영화도 보여줬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자막이 없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보긴 했다. 자주 말도 걸어 주고, 올스타 브레이크때 같이 놀러 가자고도 했다. 원정 때는 켈시 본과 같은 방을 쓴다. 우리나라와 달리 WNBA는 밥도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한다. 시즌 초 워싱턴 원정 때 모(니크 커리) 언니가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원정 경기 후, 다 같이 이동하고 팀 일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가서 먹어도 되더라. 그냥 버스에 나가서 먹겠다고 의견만 전달하면 됐다.

Q. 한국에 있었다면 이제 한창 비시즌 훈련 중일 거다. 지금 이 시간 KB선수들은 태백에서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얼마 전 선수들이랑 연락했는데, 체력 훈련기간이라 힘든 것 같더라. 시차가 다르다보니 아주 자주 연락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Q. SNS를 보면 BTS를 너무 좋아하는 거 같더라. 국민은행에서 BTS 체크카드도 나왔고, BTS 적금통장도 나왔다. 설마 벌써 발급받고 가입했나?
- 정말 좋아한다. 지금까지 연예인을 특별히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BTS는 정말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도 BTS의 영상이나 SNS를 많이 본다. BTS 통장과 카드는 미국에 오고 난 뒤에 나와서 만들지 못했다. 라스베이거스에 BTS가 왔었는데 그때 하필 원정을 가서 보지 못했다. MGM그랜드에서 공연을 했더라. 우리 팀 스폰서가 MGM이다. 원정 일정만 아니었으면 공연도 갈 수 있었을 것 같고, 충분히 마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필 그때 원정 일정이라니... 

Q. WNBA 팀에서 뛰면서 한국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 선수들과 같이 뛰어보면 내가 느리다는 생각이 정말 크게 든다. 다른 장신 선수들이 너무 잘 뛴다. 작은 선수들, 그러니까 1~3번 포지션은 경쟁이 정말 심하다. 지난 해 WKBL에서 주얼 로이드가 뛰는 걸 보며, 어떻게 1순위로 뽑혔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보니 정말 대단했다. 슛은 물론 운동 능력도 좋고 못하는 게 없는 선수였다. 정말 많이 놀랐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팀에 스태프가 정말 많다. 원정 때는 트레이너가 한 명만 동행하지만 홈에는 트레이너가 정말 많다. 기본적인 치료는 물론, 유니폼과 연습복을 챙기고 빨래와 다른 자질구레한 일 까지 전부 트레이너들이 해준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시간이 길다는 것도 큰 차이다. WNBA도 금액적으로 여유가 많은 편은 아니라 원정 경기 때 비행기를 타도 전부 이코노미를 탄다. 미네소타나 코네티컷 원정을 가면 비행기를 정말 오래 타는데, 엉덩이도 아프고 정말 힘들더라. 원정을 오래 가 있으면 외국인이라 어려운 점도 있다. 팀 스케줄을 보면서도 뭘 해야 하는 지, 밥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 등이 어려웠다. 원정 8일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음식도 힘들었다. 햄버거, 피자, 치킨으로만 삼시세끼를 챙기니까 힘들었다.

Q. 살짝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차별도 있을 것이다. 경기를 보면 몇몇 콜에서는 그런 상황이 보였다. 특히 에이스 선수에게 관대한 콜도 눈에 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또 나이 어린 루키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분일 텐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 경기에서는 종종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이겨나가야 할 부분이고, 내가 부족한 부분이다. 그리고 생활면에서는 잘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사실 일상 생활에서 그런 부분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많은 부분을 팀 언니들이 챙겨준다.  

Q. 농구하면서 박지수는 지금까지 항상 팀의 중심이었다. 사실상 많은 플레이가 박지수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 것이다. 차이를 많이 느낄 텐데, 힘들지 않나?
- 주전으로 뛰지 않는 것은 운동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식스맨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처음에는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고, 눈에 띄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다보니 허둥지둥하게 되고 잘 안되더라. 그 마음을 좀 내려놓다보니 괜찮아지는 것 같다.

Q. 한국이 그립지 않나? 아무래도 힘이 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 여기저기 다니느라 전체적으로는 그럴 정신이 없다. 물론 힘들 때가 없는 건 아니다. 출전시간이 적거나, 내가 못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런 걸 같이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든 것 같다. 시차가 있어서 부모님과도 전화통화보다 메시지를 주로 주고 받는다. 전에 3분 정도 경기를 뛰고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날 안덕수 감독(KB)님과 통화를 했는데, 감독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 통화 내내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Q. 지금까지의 시즌을 보면 본인에게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나? 
- 60점? 사실 올 때만 해도 불안한 출발이었다. 에이전트는 된다고 했지만 나 스스로는 조금 불안했다. 그리고 트레이닝 캠프를 거치면서 솔직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았다. 캠프에서 선수틀 탈락시킬 때, 감독님이 일일이 불러서 “너는 안될 것 같다”고 통보를 하신다. 그런 걸 계속 보면서 운동을 했는데 어느 날 감독님이 얘기 좀 하자고 해서 엄청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잘 버텨서 조금씩 출전을 하고 있고, 잘 적응해가는 것에 대해 50점 정도 주고 싶다. 힘든 부분이 있을 때 잘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10점을 더 주고 싶다. 하지만 냉정하게 농구만 놓고는 더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Q. WNBA에서의 목표가 있다면?
- 글쎄... 밖에서 다른 분들이 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WNBA에서 몇 분을 뛰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팀과 함께 하고, WNBA 시즌을 치르면서 배우는 것도 상당하다. 한국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고 성장했지만, 여기서는 한국에서 배우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 다행히 감독님도 어느 정도 출전시간을 주고 계시다. 입단 동기인 같은 팀의 에이자 윌슨을 보면서도 많은 걸 느낀다. 빠르고 피봇도 좋다. 이런 선수와 함께 뛰고 같이 훈련하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고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기회에 감사하고, 더 배우고, 경험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스탯을 가져가는 게 우선의 목표다. 그러면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하게 되고 겨울에 KB에 돌아가서도, 그리고 국가대표로 뛸 때도 지금보다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지수를 만난 다음 날인 7월 15일. 

라스베이거스는 홈인 라스베가스 만달레이베이 이벤트 홀에서 미네소타 링스와 더불어 지난해까지 리그 정상을 양분해왔던 LA 스팍스와 정규리그 경기를 가졌다.

이날 박지수는 선발로 출전했지만 4분 39초만 뛰었고 득점과 리바운드는 없었다. 이전까지 꾸준히 출전시간이 늘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안타까운 경기였다. 팀도 78-99로 졌다. 하필 내가 방문했던 그 때에 라스베이거스는 미네소타, LA와 연전을 치렀다.

이날 경기 전의 팀 분위기는 SNS에서 확인할 수 있던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집중력도 높았다. 그 전날 만났을 때 마냥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19세의 소녀 또한 전혀 다른 모습으로 WNBA 선수 중 한명이 되어 있었다.

LA전에서 박지수가 상대해야 하는 4번-5번은 캔디스 파커, 은네카 오구미케다.

피지컬은 물론 스피드도 갖추고 있는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WNBA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다. 그렇다보니 이들을 상대로는 박지수가 많은 출장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벤치에 앉아 스스로의 롤을 찾으며 선수들이 벤치로 들어오고 나갈 때 마다 팀의 막내로서 응원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농구로만 말하면 WNBA의 대표적인 강팀과 스타플레이어를 상대로 더 많은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조금씩 빅 리그에 적응하며,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박지수 덕분에 코트 아래까지 내려갔고, 좋은 자리에 앉아 경기를 봤다. 지수가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을 만날 수 있는 티켓도 줬는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와 아쉬웠다.

어떤 이에게는 믿기지 않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도시,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박지수가 자신의 팀 이름처럼 에이스 카드를 당당히 뽑아 자신의 인생과 한국 농구에 새로운 잭팟을 터뜨려줬으면 한다!

사진, 영상 : 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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