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지난 시즌 WKBL에 데뷔한 박지수가 2년차인 2017-18시즌을 맞아 착실한 성장 속에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신인왕의 2년차 징크스도 그에게는 없는 이야기다.

2017년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달 31일, 박지수의 활약은 눈부셨다. 주축 선수가 대거 결장한 KDB생명을 상대로 KB의 확실한 우세가 점쳐졌지만 경기는 예상과 달리 흘렀다. 

기선을 제압당한 KB는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박지수가 중심을 잡으며 꾸준히 점수차를 좁혀 역전에 성공했고, 결국 여유 있는 승리로 경기를 마쳤다. 23점 23리바운드를 기록한 박지수는 화려한 기록과 함께 2017년을 마감했다.

대관식 마친 ‘블록의 여왕’, ‘블록 전설’을 향해 전진
이날 박지수는 2개의 블록을 기록하며 통산 100블록을 달성했다. 역대 최연소 100블록 달성이다. 1998년 12월 6일 생인 박지수는 만 19년 25일 만에 100블록을 돌파했다. 

프로 39경기 만에 세운 기록이다. 경기당 2.56개의 블록을 기록하며, 역대 한 경기 평균 블록 국내 선수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블록과 관련한 박지수의 기록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22경기에서 2.23개의 블록을 기록했던 박지수는 올 시즌 경기당 3개의 블록(총 51개)을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박지수에 대해 “신장의 우위도 있지만 블록 타이밍은 타고 났다.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록도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지수 역시 블록에는 자신이 있다.

박지수는 지난 시즌 프로 데뷔를 앞두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블록과 리바운드에서는 첫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싶다.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에서도 이 두 부분은 좋은 기록을 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이 있어도 지고 싶지 않다”고 당찬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박지수의 이런 각오는 현실이 됐다. 박지수는 지난 해 경기당 10.3개의 리바운드(226개)와 2.2개의 블록(49개)을 기록했다. 두 부문 모두 국내 선수 1위의 기록이었지만 출전 경기수가 모자라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 경기에 출전중인 올 시즌은 리바운드와 블록에서 경쟁자가 없다. 경기당 13개의 리바운드로 전체 2위, 국내선수 중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고 블록은 국내외 선수를 통틀어 1위다. 2위인 샨테 블랙(KDB생명, 1.2개)보다 2배 이상 많다.

올 시즌 현재까지 WKBL에서 나온 블록은 총 337개. 박지수는 이중 15% 이상을 혼자 해냈다. 삼성생명, KEB하나은행, 신한은행은 팀 블록 수가 박지수보다 적고, 우리은행 역시 단 1개가 더 많다. 박지수의 블록 능력은 사실 상 한 팀 그 이상이라는 것.

특히 박지수는 외국인 선수도 가차 없이 블록으로 막아내고 있기에 그 위력이 더 절대적이다. 

통산 100번째 블록의 제물이 된 선수는 올 시즌 WKBL 최장신인 블랙이었다. 

WNBA에서도 주전 4번으로 시즌을 소화한 엘리사 토마스(삼성생명)는 지난 3라운드 경기에서 박지수가 골밑을 지키자 자신의 장점인 속공 상황에서도 볼을 돌리며 맞대결을 피했다. 인사이드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기피했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도 “토마스가 (박)지수를 상대로 골밑에서 승부하는 것에 부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수 또한 외국인 선수의 슛을 막아 내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박지수는 “외국인 선수라고 해서 특별히 블록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이사벨)해리슨(하나은행)은 포스트에서 스텝을 빼는 동작이 워낙 빨라서 고전하기는 했는데 경기를 거듭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박지수는 3라운드까지 상대적 우위를 보였던 신한은행의 두 외국인 선수와의 4번째 대결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박지수는 “초반에 파울을 많이 범한 부담 때문에 (카일라)쏜튼이나 (르샨다)그레이의 블록 타이밍이 눈에 보이는 데도 평소와 같이 점프를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여전히 블록과 관련해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역대 WKBL의 블록과 관련한 기록은 모두 이종애(전 삼성생명)가 갖고 있다. 

이종애는 프로 원년인 1998친선리그부터 양대 리그 시절 포함 총 22시즌을 뛰며 407경기(평균 34분 38초)에서 862개의 블록(2.11개)을 기록했다. 역대 2위인 신정자(전 신한은행, 473개)와는 약 400개의 차이가 난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다.

그러나 박지수의 등장으로 블록에서는 이미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이종애의 862블록은 물론 WKBL 최초의 1000블록 달성도 가능한 추세다.

리바운드 역시 마찬가지. 국내선수 중 통산 평균 리바운드에서 10개가 넘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박지수(11.5개)가 유일하다.

팀의 중심으로 우뚝 선 19살
KB는 31일 KDB생명과의 경기에서 어려운 출발을 보였다. 

경기 시작 후 3분 30초 동안 득점에 실패했고 이 사이 KDB생명은 10점을 쌓았다. 0-10으로 끌려가던 KB는 박지수의 자유투로 첫 득점을 올렸고 이후 서서히 반격을 펼칠 수 있었다. 1쿼터 KB의 득점은 13점. 이중 11점이 박지수의 손에서 나왔다.

박지수는 경기 후 “연습 때부터 슛 감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보니 나 뿐 아니라 언니들의 슛도 다 좋지 않았다. 확률 높은 공격을 시도해야 할 것 같아서 골밑에서 공을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후반에는 (심)성영 언니 3점이 터지면서 다른 선수들의 슛도 들어갔고 그래도 경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KB는 이날,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강아정이 결장했다. 박지수와 더블 포스트로 위력을 발휘 중인 다미리스 단타스도 상대 팔꿈치에 부딪혀 얼굴 뼈에 실금이 간 관계로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반 흐름을 놓치자 우왕좌왕했고 좀처럼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막내인 박지수가 중심을 잡으면서 일방적인 수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지수는 2쿼터 6분 30초, 김소담의 3점슛이 불발되자 리바운드를 건져내며 일찌감치 더블-더블을 달성했고 전반에만 15점 1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반 15리바운드’는 WKBL 역대 국내 선수 최다 기록이다. 

한때 10점 차로 끌려가던 KB는 박지수가 중심을 잡고 분전하며 전반을 27-30으로 마쳤고, 외국인 선수가 2명 뛴 3쿼터에도 ‘박지수 효과’를 앞세워 역전에 성공함과 동시에 52-37을 만들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박지수는 3쿼터에도 6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상대 외국인 선수인 아이샤 서덜랜드와 블랙의 골밑 공략을 블록으로 저지했다.

우리은행과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KB가 최하위 KDB생명에게 덜미를 잡혔다면 상당한 충격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지수가 공수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위기를 넘겼고 5연승을 이어갔다.

프로 2년차, 19살의 박지수는 이미 확실한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올 시즌 내내 이러한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꾸준함과 안정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MVP를 각각 3번씩이나 차지하고도 “항상 부족하다”며 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 박혜진(우리은행)처럼, 박지수 역시 자신에 대해 좀처럼 만족하는 법이 없다. 상대의 집중 견제에 어려움을 겪었던 박지수는 팀이 승리한 경기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팀 선배인 김보미는 “승부욕도 강하고,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다. 어려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자기가 용납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박지수를 평가했다.

학창 시절, 지는 법을 몰랐던 박지수는 프로 첫 해, 자신의 농구 인생 전체를 통틀어 당한 패배보다 더 많은 패배를 경험했다. 

1년 만에 다시 이기는 농구를 펼치고 있는 박지수는 “작년에 한 두 번 졌을 때는 속이 많이 상하고 잠도 안 왔는데, 지는 경기가 많아지니까 그런 것도 무뎌지더라. 지는 것도 익숙해지고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언니들과 함께 절대로 연패를 당하지 말자고 서로 다독이면서 이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경기 중에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며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지만 나이에 비해 충분히 성숙한 박지수다.

스스로 극복한 자유투 트라우마
박지수는 지난 달 28일,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22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승부처였던 4쿼터에 8점을 득점하며 팀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았다. 

저조했던 자유투 때문이다. 박지수는 이날 13개의 자유투를 시도해 7개를 놓쳤다. 성공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도 박지수는 자유투 성공률이 56.0%였다. 모든 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자유투에서 약점을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박지수는 자유투에서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라운드에는 52.4%로 저조했지만 3라운드에는 20개를 시도해 17개를 성공(85.0%)했다. 

그런데 4라운드 첫 경기에서 뜻밖의 난조를 보인 것이다.

박지수는 “연습 때는 잘 들어가는 데 경기가 박빙이다 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다. 정신적인 부분에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흘 만에 벌어진 KDB생명과의 경기에서는 15개 중 13개의 자유투를 성공(86.7%)했다. 박지수는 직접 림을 노리지 않고 백보드를 먼저 맞추는 방법으로 변화를 줬다. 그런데 이는 사전에 준비됐던 것이 아니었다.

“자유투나 미들슛 때 백보드를 노리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백보드를 먼저 맞추면 공이 멀리 튀어나갔다”는 박지수는 “성공률이 너무 저조해서 백보드를 먼저 노려봤다. 잘 들어가서 다행이다. 안 들어갔으면 벤치에서 ‘쟤가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자유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백보드를 먼저 노릴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뛰어난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 많이 나타나 환영을 받았던 ‘2017 신입선수 선발회’는 박지수로 인해 ‘박지수 드래프트’로 불렸다. 모든 팀이 박지수를 탐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드래프트 당시 ‘최소 10년의 약속’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지수의 활약에 안덕수 KB스타즈 감독은 “지도자로서 이런 선수를 데리고 있는 것은 행복”이라고 했고, 31일 KDB생명과의 경기를 마치고는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DB생명과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2번째, WKBL 통산 4번째로 국내 선수 20-20의 대기록을 작성했지만 “쉬운 슛을 너무 많이 놓쳤다. 연습해서 보완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힌 박지수의 새해 소원은 농구로는 ‘우승’, 농구 외적으로는 ‘남자친구 사귀기’다. 

‘여전히 성장 중인 천재’ 박지수가 스무살이 되는 새해에는 얼마나 위력을 더하며 진화할지, KB는 물론 한국 여자농구의 시선도 그를 향하고 있다.

박지수 시즌 성적
2016-17시즌 22G 28:29 10.4점 10.3리바운드 2.8어시스트 0.6스틸 2.2블록
2017-18시즌 17G 36:23 13.2점 13.0리바운드 3.3어시스트 1.2스틸 3.0블록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