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와 구리 KDB생명 위너스의 신한은행 2017-18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4라운드 경기가 열린 지난 29일 용인실내체육관. 

3쿼터 시작 직후 KDB생명의 구슬이 쓰러졌다. 

3점슛을 던지고 착지하던 중 수비를 하던 김한별의 발을 밟고 발목이 돌아갔다. 결국 구슬은 동료의 부축을 받고 코트를 빠져나왔고, 다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KDB생명 측은 “발목이 심하게 꺾였다. 상황을 봐야겠지만 당분간은 운동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올 시즌은 유독 3점슛을 시도한 선수가 이후 과정에서 수비수의 발을 밟고 넘어지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개막전부터 논란이 됐다. 

박혜진(우리은행)이 3점슛을 던지고 내려오다가 상대 선수와 충돌했다. 그나마 수비수가 너무 깊게 들어왔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상대와 몸이 부딪히며 발에 체중이 실리지 않아 코트에 나뒹굴었지만 발목이 돌아가는 불상사는 피했다.

박혜진의 경우는 개막전부터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일 뿐, 이러한 모습은 이후로도 꾸준히 관찰됐다. 수비수들이 슛을 하고 착지하는 선수들의 발밑으로 너무 깊게 들어온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부상의 위험성이 높은 장면이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결국은 사단이 벌어졌다. 

11월 4일 청주 경기에서 KB스타즈의 심성영은 3점슛을 하고 내려오던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고 쓰러져 교체됐다. 

다행히 예후가 좋아 다음 경기부터 출전을 할 수 있었지만 KB로서는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개막전부터 지적된 우려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난 장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플레이에 심판의 휘슬이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비수의 발을 밟지 않더라도 슛을 던진 선수가 정상적으로 착지할 수 없도록 발이 아래로 들어오는 플레이는 명백한 파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테크니컬 파울도 줄 수 있다.

그런데 올 시즌 WKBL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파울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먼저 쓰러졌던 심성영도 그랬고, 지난 경기의 구슬도 마찬가지다. 해당 플레이가 파울이 아니라면 수비수들은 슈터를 방해하기 위해 멀리서도 더 적극적으로 몸을 던질 것이고 유사한 장면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한 감독은 “그런 플레이가 파울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상대가 슛할 때 수비수들에게 앞에서 앞구르기나 슬라이딩을 시키면 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은혜 KBSN 여자농구 해설위원은 “심판들이 슈터들의 팔로우 스로우에 집중하느라 내려오는 마지막까지 확인을 못해준 것 같다. 특히 여자선수들은 먼 거리에서 슛을 쏠 때 던지는 자리보다 조금 앞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착지하는 발밑으로 상대가 들어오면 큰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다. 수비의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슛을 던질 수도 없다”며 심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WKBL은 몸싸움에 대해 관대한 판정을 내리고 있다. 선수들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FIBA룰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전까지 파울로 지적되던 동작들이 정상적인 플레이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슛을 던진 선수가 이후의 동작에서 파울을 얻어내는 빈도수가 적어진 원인 중 하나도 이에 따른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심판이 ‘용인되는 치열한 몸싸움’과 ‘명백한 파울’ 사이에서 정확한 판정 기준을 잡지 못해 경기만 과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선수끼리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됐고, 부상을 당한 선수의 팀이 아웃 넘버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점을 한 후에야 쓰러져있던 선수에게 치료 시간이 주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유혈사태와 부상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더 큰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 현장에서 종종 들린다. 

그러나 WKBL 심판부의 입장은 다르다. 

김진수 WKBL 심판위원장은 “감독들과 미팅도 가졌고, 기술위원회도 열었다. WKBL은 과거 ‘공주 농구’라고 조롱을 당했다. 파울을 얻으려고 심판을 속이려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러나 몸싸움이 관대해지면서 이제는 선수들이 힘으로 버티는 장면이 나온다. 국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폭력사태를 막지 못한 것인 심판진의 책임이다. 심판부가 아직 부족하다. 심판의 가장 큰 역할은 선수들의 부상을 막는 것인데, 심판 개인마다 콜도 다르고, 사람이라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것이 심판부의 숙제”라고 밝혔다.

선수의 부상과 폭력사태는 아쉽지만 현재 적용되는 판정 기준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현장의 당사자들과 WKBL 심판부의 해석이 이렇게 다르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감독들은 “심판부가 시즌 전에 말한 가이드라인과 다른 적용을 하고 있다”며 불만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WKBL 판정 기준이 FIBA룰에 정확히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FIBA에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핸드체킹과 팔꿈치 사용, 부정 스크린 등이 WKBL에서는 빈번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한 감독은 “판정에 대해 물어봤더니 ‘수비자의 손이 닿았지만 공격자가 정상적으로 슛을 시도했으니 방해를 받지는 않은 것이다. 따라서 파울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스크린 동작에서 파울을 지적받은 한 외국인 선수는 “WKBL에서는 파울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 적도 있었고, ‘심판이 허용하는 선에서 상대가 하는 만큼 똑같이 하라’는 벤치의 주문에 “WNBA에서 그렇게 하면 파울이다. 잘못된 플레이가 버릇이 되면 안된다”고 반대 입장을 밝힌 선수도 있었다.

WKBL은 물론 해외 각국 리그와 FIBA주관 대회를 경험해 본 외국인 선수들 역시 WKBL의 현재 판정 기준이 FIBA룰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구슬의 부상과 같은 장면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FIBA룰과 로컬룰을 막론하고 슛 시도 후 착지하는 선수 아래로 발이 들어간 상황을 파울로 인정하지 않는 농구 규칙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위험한 건 물론이고 자칫하면 감정싸움으로 확대될 수 있는 플레이다. 정확하게 짚어줘야 하는데 심지어 파울도 불지 않은 것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만약 못 봤다고 한다면 심각한 자질 문제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규정집에 적혀있는 내용보다 현장에서 직접 울리는 심판의 휘슬이 더 확실한 판정의 가이드라인이다. 선을 넘어선 플레이에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는 것은 경기 과열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몸싸움과 반칙이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흥미와 싸움도 별개의 존재다. 국제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부상이 그 담보라면 차라리 ‘공주 농구’가 낫다. 

“선수들의 부상을 막는 것이 심판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말은 김 위원장이 직접 한 말이다. 몇 명이 더 다치고, 피 흘리며, 쓰러져야 심각성을 인식할 것인가?

명백한 상황에 대한 오심이 반복되고 이로 인해 부상자까지 속출하면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선수들은 정심에도 의심을 갖게 된다. 심판의 파울 판정에 실소를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부쩍 늘고 있다.

잘못된 상황에 대해서는 심판들도 징계를 받고, 자정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거친다고 하지만 선수들의 부상과 안전은 최대 10만원의 벌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명적인 오심과 그 여파로 인해 한 팀이 감내해야 하는 손실과 여자농구 자체가 입는 상처 또한 어느 한 명의 책임으로 대신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허슬 플레이도 농구의 매력 중 하나”라며 “휘슬이 최소로 나와야 심판이 경기에 개입하는 여지도 적다. 적어도 ‘심판 때문에 농구가 재미없어진다’는 얘기는 듣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지만, 이것이 명백한 파울에도 울리지 않은 휘슬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휘슬을 최소로 줄이고자 한다면 뜬금없이 주어지는 테크니컬 파울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심판 때문에 농구가 재미없어진다’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허슬 플레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다치지 않도록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지금의 WKBL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말 보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팬들은 물론 선수들과 감독들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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