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신한은행과 인도네시아의 연습경기가 벌어진 7일 인천 도원체육관. 낯선 선수 한 명이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얼굴은 낯설었지만 이름은 국내 여자농구계에 종종 알려졌던 애나 킴(Anna Kim). 미국 롱비치주립대를 졸업한 가드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인 애나 킴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줄곧 자라왔다.

고교시절 캘리포니아 지역 가드 탑 10에 뽑히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해, NCAA 빅웨스트 컨퍼런스 디비전 1에 속한 롱비치주립대학에 입학했고, 4년간 100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프로 농구선수를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WNBA의 벽은 높았고, 학창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한 후 WKBL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애나 킴이 WKBL에서 뛸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상 없다.

조손까지 인정됐던 동포선수 제도가 ‘첼시 리 사태’로 말미암아 지난 해 갑자기 폐지됐기 때문. 

김한별은 물론 마리아 브라운, 김 소니아 등 여러 선수들이 이 제도를 통해 기회를 얻었지만 '첼시 리 사태'로 인해 여론이 좋지 않자 연맹은 제도 자체를 없애버렸다. 애나 킴에게 관심을 보였던 국내 팀들도 제도의 폐지로 인해 생각을 바꿔야했다.

애나 킴이 WKBL에서 뛸 수 있는 방법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를 통하는 것뿐이지만 163cm의 단신 가드이자 WNBA의 문턱을 넘지 못한 그에게 이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나 킴은 이번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 지원을 했지만 구단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몇몇 감독들은 이 당시에도 애나 킴에 대해 "첼시 리 사태만 아니었어도 WKBL에 들어와서 충분히 통할 수 있었을텐데 외국인선수 드래프트로 나오니 뽑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는 직접 한국에 오는 것을 택했다.

입국과 동시에 신한은행에 합류한 애나 킴은 8일까지 신한은행과 훈련을 진행하고, 이어 KDB생명을 비롯한 다른 구단의 훈련에도 참가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예정이다.

이날 시차적응이 완벽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인도네시아 국가대표와의 연습경기에 투입된 애나 킴은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3쿼터에 투입되어 총 20분을 소화한 애나 킴은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 적극성을 보여줬고, 볼을 지키는 능력과 패스도 돋보였다. 미국에서 온 한국계 선수들이 공격에 비해 수비에서 약점을 보인 것과 달리 애나 킴은 수비에서도 강한 압박을 선보였고 몸을 던지며 공을 살려내는 모습도 여러 번 보여줬다.

신한은행 선수들과 손발을 맞춘 것이 처음이었음에도 비교적 유기적인 모습을 보였고 과감한 드라이브인과 빠른 타이밍의 정확한 패스로 동료들에게 오픈 찬스를 여러 차례 만들어줬다.

상대팀이 약체였던만큼 상대적으로 돋보인 부분도 있었지만 현장을 찾았던 농구인들은 "WKBL에 지명된다면 올 시즌부터 당장 주전 선수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기성 신한은행 감독은 “스피드가 있고 신체 밸런스와 힘이 좋다. 기본기 자체가 국내 선수들보다 낫다. 한 경기만 보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WKBL 어느 팀에 가더라도 주전급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재활을 진행하며 경기를 지켜본 김단비(신한은행) 역시 “멘탈이 어떤 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WKBL에서 뛰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애나 킴과 동행하고 있는 이민우 전 신한은행 코치는 “WNBA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뛰기에 손색없는 선수”라고 애나 팀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애나 (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수들이 미국에 꽤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본지 박건연 회장은 “키가 작다는 단점이 분명하지만 스피드와 힘을 갖추고 있고 적극성도 있는 만큼 WKBL에 적응을 잘 할 것 같다. 이런 선수들에게도 한국에서 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첼시 리 사태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연맹은 동포선수 제도 자체를 폐지해버렸다. 법을 어기며 제도를 악용한 선수가 나쁘지 제도가 잘못된 건 아니다. 김한별도 이런 제도가 있으니 발탁된 것 아닌가? 구단마다 선수 가용 인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애나 킴은 물론 그런 선수들이 더 있다면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현행 제도에 대한 재고를 촉구했다.

실제로 WKBL은 동포 선수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다시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거와 같은 형태로 부활시킬지, 국내선수 드래프트에 포함시킬지 여부 등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애나 킴과의 일문일답이다.

▲ 한국에서 첫 경기를 뛰어 본 소감이 어떤가?
농구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왔다. 기회를 얻어서 기쁘고 굉장히 흥분됐다. 어려서부터 프로 무대에서 농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이 나에게는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어떤 것인가?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능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코치들에게 농구 지능이 높다는 평가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힘이 좋은 것도 장점인 것 같다.

▲ 한국에 있는 기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나?
내가 한국에서 뛰기에 부족함이 없는 포인트가드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함께 뛰는 선수들을 도울 수 있고 좋은 공격 찬스도 많이 만들어 주는 선수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 WKBL의 현재 규정상으로는 리그에서 뛰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번에 각 팀들과 훈련을 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WKBL에서 뛸 수 있기를 바라나?
한국에서 농구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은 100%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 온 거다. 규정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한국에서 뛸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사진 = 루키더바스켓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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