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지난 4월 8일이었다. 감독 경험이 없던 김완수 하나원큐 코치를 감독으로 앉힌 KB의 선택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발표와 동시에 많은 풍설이 돌았다. “우승을 노리는 KB가 또 초보 감독을 선임했다”, “준우승 팀이 5위 팀 코치를 감독으로?, “너무 어리다”, “그래서 김완수가 누구야?” 같은 이야기들.

건국대를 나와 프로에서 1년 만에 은퇴, 일찌감치 지도자 길을 걸었던 김완수 감독은 이곳의 아웃사이더고, 마이너고, 비주류였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히 비주류였던 덕분에 김완수의 17년 지도자 외길 인생은 다행히도 주류를 좇는 아류가 아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얼굴 뒤에는 17년간 가다듬은 내공과 철학이 있었다. 

 

비주류

학창 시절부터 선수 김완수는 철저한 비주류였다. 시작은 농구가 아닌 육상이었다. 인천의 산곡북초등학교 시절 육상을 하다가 농구부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농구공도 곧잘 만져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는데, 그게 즐거웠단다. 송도에서 제대로 농구를 시작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등하교 시간이 왕복 3시간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출발해 전철을 탔다가 또 버스를 타야 학교가 나왔다. 그런데 그땐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첫차를 타고 갔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왔는데 그때만큼 재밌던 시절이 없었어요. 그때 같이 농구했던 사람들이 신기성 선배님, 김상우 선배님 그리고 (김)승현이도 있었고. 그리고 그때 송도중에 전규삼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틀에 박힌 농구가 아닌 정말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진 농구를 알려주셨죠.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나도 나중에 지도자가 되거든 전규삼 할아버지 같은, 선수들의 창의력과 개인의 기술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지도자가 되자고.”

그렇게 농구공을 잡은 선수 김완수는 고등학교 때까진 꽤 이름난 유망주였다. 비록 주류대가 아닌 건국대에 진학했지만, 그 당시 정원이 많이 나지 않던 체육교육과에 들어갔으니 나름 인정받는 선수였다. 

“딱 중학교 때, 중학교 때까지가 정말 재밌게 농구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대학교에 올라가니까 내가 재밌게 했던 농구, 하고 싶은 농구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선배도 있고, 그 당시 특유의 체육계 문화도 있었고. 그때부터 생각했던 게 ‘나는 지도자가 되면 꼭 선수들에게 코트 위에서 스스로 풀어갈 수 있게 두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저는 가드였잖아요. 경기를 조립하는 가드에게는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해요. 벤치나 선배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턴오버요? 괜찮아요. 턴오버 없이 경기하는 가드는 NBA에도 없어요.”

“저는 화려한 패스도 좋아합니다. 남자농구는 호쾌한 덩크슛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여자농구는 덩크를 할 수 없잖아요. 이런 화려한 패스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또 경기장을 뜨겁게 해서 선수들과 팬들이 더 뭉칠 수 있다고 봐요. 기본적인 체스트 패스만 하는 가드는 오히려 별로예요. 비하인드 백패스를 하든 노룩 패스를 하든 저는 아무 상관 안 해요. 오히려 그런 패스를 하는 가드일수록 그만큼 자신의 패스 반경이 넓어지는 것이니 더 장려합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턴오버? 전 얼마든지 좋아요.”

작전판을 처음 잡은 건 29살, 온양여중에서였다. 한 선배가 학교 농구부를 이끌 후임자를 물색하던 와중에 김 감독에게까지 연락이 닿았다. 김 감독이 농구계를 떠나 부모님을 도와 사업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정말 얼떨결에 기회가 왔어요. 제의를 받고, 제가 지도자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을 했죠.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건 소통이었어요. 벤치에 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그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모두가 소외받지 않는 ‘원 팀(one team)’을 만들자. 지도자를 시작할 때 첫 마음가짐이었죠.”

 

그의 이런 지도 철학은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박신자컵 대회에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김 감독은 박신자컵 최초 3연패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직전 대회였던 2020-2021 대회에서 김 감독은 포인트가드 강계리를 MVP로 만들었다. 강계리는 당시 14.8점 6.4리바운드 6.4어시스트와 더불어 조별리그 삼성생명과 경기에서는 박신자컵 역대 1호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김 감독이 가드에게 얼마나 많은 역할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뿐만이 아니다. 김 감독은 지난 대회에서 총 12명의 선수를 기용했다. 김 감독의 하나원큐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팀의 평균 출전 선수 수는 9.0명. 모두가 소외받지 않고 기회를 주겠다는 김 감독의 의지는 로스터 운영에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여자농구계에 십수년을 코치로 지내면서 웬만한 선수들을 술술 꿰고 있는 김 감독의 장점은 당시 결승전에서도 십분 빛났다. 하나원큐는 결승전에서 삼성생명을 만났는데, 당시 삼성생명의 중심은 결승 전까지 4경기 16.8점을 기록하던 윤예빈이었다. 그러나 고교 시절부터 윤예빈을 지켜 보며 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던 김 감독은 결승전에서 가드 윤예빈의 전담 수비로 신예 포워드 강유림을 깜짝 기용했다. 김 감독에게 윤예빈의 약점을 듣고 경기에 나선 강유림은 이전 네 경기에서 한 번도 25분 이상을 뛰지 않다가 이날 경기에서 37분을 뛰었는데, 윤예빈을 단 10점으로 틀어막았다. 이날 결승전은 김 감독의 용병술이 빛난 한판 승부이자 미래 신인왕 강유림이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린 경기이기도 했다.)

 

코치

혹자는 말한다. 김완수 감독은 너무 어린 감독이라고. 1977년생 김완수 감독의 나이가 45살이니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앞선 10대 감독이었던 안덕수 전 감독이 KB의 첫 지휘봉을 잡았을 때 나이가 42살이었고, 위성우 감독이 우리은행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나이가 41살이었다. 안 전 감독과 위 감독보다 오히려 감독이 되기 전 코치 생활만 따지면 오히려 김 감독의 지도자 경력이 더 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큰 기대는 안 했어요. 면접을 보고 나와서도 그냥 ‘이 후보군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네’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와이프도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이런 면접을 또 언제 보겠느냐고. 기회 자체가 좋은 경험이니 잘 보고 오라고요. 안 되면 어떠냐고, 주눅 들지 말고 하고 오라고.(웃음) 그렇게 정말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면접부터 선임까지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차를 끌고 집에 오는데 ‘내가 정말 된 건가?’하면서 멍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어요.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나 감독 됐다’라고 말하니까 와이프가 안아주면서 울더라고요. 그동안 자기가 고생한 게 다 스쳐 지나간대요. 고생은 다 제가 했는데.(웃음) 애들이 셋인데 애들도 다 만세하면서 난리가 났죠. 코치 생활이 길긴 길었나 봐요.”

안덕수 감독이 3월 29일 사퇴하고 10여일 뒤인 4월 8일 김완수 감독이 선임됐으니, 김 감독의 말처럼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다고 졸속은 아니었다. KB의 일처리에는 빈틈이 없었다. 전·현직 지도자들로 수십 명의 후보군을 추린 뒤 총 세 차례에 걸친 심층 면접으로 감독을 선임했다. 후보자들은 면접관들 앞에서 실제 경기의 작전시간처럼 작전을 지시하기도 했다. 

“학교 코치를 할 때 처음 면접을 봤고, 그 뒤로 하나은행에 코치로 갈 때 면접을 봤고, 이번이 세 번째 면접이었는데 감독 면접은 또 처음이었죠. 그런데 정말 체계적이더라고요. 면접 자체가 공부가 많이 될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3차 면접까지 갔고, 마지막 면접을 보고 나올 때 말씀드렸어요. ‘저는 선수 시절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었고, 크게 알려진 지도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선수들 덕분이었습니다. 선수들 그리고 간절함으로 버텨 왔습니다. 그 간절함, 선수들에게 주입해서 우승까지 이끌어보겠습니다’라고.”

 

 

KB스타즈 11대 감독

감독 선임이 발표되고, 당연히 김완수 감독은 주위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 그중에서 김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축하는 “고맙다”라는 인사다.

“학교에 있는 선·후배 코치님들께서 저보고 고맙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리그에 감독님, 코치님들을 보면 학교 지도자 출신이 거의 없어요. 프로에서 바로 코치 생활을 하던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학교 강당에서 땀 흘리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라고, 잘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추어부터 막내 코치 그리고 수석 코치까지 정말 밑바닥부터 감독까지 올라온 김 감독은 그만큼 이곳, 여자농구를 잘 아는 스페셜리스트다.

“WKBL, 아니 여자농구는 다른 종목과 좀 달라요. 선수들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심리가 정말 중요한 곳이거든요. 한 선수의 심리, 자신감에 따라 그날 팀의 득점과 수비가 전부 다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 하나가 좋게 혹은 나쁘게 라운드 전체, 시즌 전체로 퍼지기도 하고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심리에 따라 자신이 가진 100%를 코트에서 다 안 쏟거나 혹은 위축돼 못 쏟아내는 선수들도 있어요. 그걸 경기 시간에 다 쏟게 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또 선수 10명이 있으면 방법도 10명 다 달라요. 코치 시절에는 계속해서 면담도 해보고, 메시지도 보내 보고 훈련도 같이 해보면서 그 방법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았어요. 어느 종목보다도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하는 게 중요한 리그죠.”

하나원큐 코치 시절, 비디오를 돌려 보며 분석했던 KB의 약점은 이제 감독으로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됐다. 김 감독이 바깥에서 바라본 KB의 아쉬운 점은 어떤 부분이었을까?

“(박)지수를 막으려면 다른 팀들은 항상 협력 수비를 했어야 됐어요. 그런데 KB 공격의 기본은 지수가 골밑에 있고, 다른 선수들이 외곽에서 슛을 쏴 공간을 만든다는 게 기본 기조였거든요. 그중 (김)민정이와 (염)윤아는 컷인을 하는데, 나머지는 슛을 쏘기 위해 다 발을 맞추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지수가 문제없이 빼주면 좋겠지만, 다 빼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원큐 코치 시절에는 그 틈을 노리려고 했어요. 지수가 외곽 패스를 볼 때 어떻게든 턴오버를 유발하려 했죠. 또 수비에서는 지수를 어떻게든 외곽으로 끌어내려고 했어요. 그때 지수가 스위치를 하는 이유는 아마 체력 문제 때문였을 텐데, 저는 차라리 지수의 출전 시간을 30분 내외로 줄이고 수비에 전력을 다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구상하고 있어요.”

 

 

감독 김완수가 꿈꾸는 KB의 새 트렌드는 속도전이다. 김 감독은 자신이 이끌 2021-2022시즌 KB스타즈에 세 가지 스탯 만큼은 꼭 지난 시즌보다 올릴 것을 다짐했다.

“에너지를 좀 팀에 넣고 싶어요. 공격에서는 달리는 농구, 수비에서는 공격적인 수비. 상대가 공을 잡고 있을 때도 언제든 턴오버를 걱정하게 하는 그런 수비를 하는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턴오버가 나오기라도 하면 곧바로 속공으로 손쉽게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그런 팀. 골밑에는 지수가 있기 때문에 앞선에서 좀 더 공격적인, 도박적인 수비를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팀에 잘하는 선수가 있으면, 다른 팀원들은 그 선수를 믿고 이용하면 됩니다. 서로를 믿어야지, 믿지 못하고 도망가는 수비나 도망가는 공격은 해서는 안 돼요.”

“세 가지 스탯은 꼭 올릴 생각입니다. 먼저 리바운드. KB의 지난 시즌 리바운드가 리그 3위였어요. 지수라는 최고의 리바운더가 있음에도 3위였다는 건 나머지 선수들의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뜻이거든요. 리바운드는 무조건 1등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스틸. KB는 지난 시즌 스틸과 속공이 리그 전체 꼴찌였어요. 앞서 말한 대로 공격적인 수비로 스틸을 늘리고, 그러다 보면 마지막으로 속공 스탯도 올라가겠죠.”

그리고 마지막.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스탯을 그는 팬들과 선수단에 이식할 계획이다. 

“KB는 우승을 노리는 팀입니다. ‘우승 못하면 실패’라는 꼬리표가 재임 기간 내내 저를 따라다닐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죠. 하지만 팬들에게는 자부심을, 선수들에게는 간절함을 불어 넣어 청주 KB스타즈라는 프랜차이즈만의 팀 컬러를 만드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전임 감독님께서 좋은 문화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감독은 선수를 믿고, 선수들은 서로를 믿고 뛰는 좋은 팀, 누구나 소외받지 않는 ‘원 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직 국민은행의 노랑 넥타이가 낯설고 바뀐 주거래 통장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임 감독 김완수.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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