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아시아쿼터 전성시대? KBL 노크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활약상은?

2024-04-23     이학철 기자

 

2020년 일본 B.리그와의 합의로 KBL에 도입된 아시아쿼터 제도.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선수들에 한해서만 적용되던 아시아쿼터는 2022-2023시즌부터 필리핀 선수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됐다. 이후 필리핀 선수들이 대거 KBL 무대에 입성했고 그 중에서는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성공적인 사례로 남게 된 선수들도 있었다. KBL 무대에 입성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 기록 및 본문 내용은 현 시점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아시아쿼터의 도입

아시아쿼터 제도는 지난 2020년 KBL과 B.리그의 합의로 처음 탄생했다. 그 결과 KBL 무대에는 일본인 선수들이 국내 선수와 동일한 조건으로 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처음으로 KBL 무대에 합류했던 선수는 나카무라 타이치다. 191cm의 장신 가드로 주목을 받은 타이치는 이상범 당시 DB 감독과의 인연으로 자신의 연봉을 깎으면서까지 KBL 무대에 도전했다. 

입단 당시 타이치는 “허훈과의 대결을 기대한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넘치는 패기를 보였다. 그러나 타이치는 KBL 무대에서 끝내 성공신화를 이루지 못했다. 첫 시즌 37경기에서 평균 15분 49초를 뛰며 4.6점 1.9어시스트를 기록했던 타이치는 2번째 시즌 25경기에서 평균 10분 36초 출전에 그쳤다. 기록은 2.7점 1.1어시스트. 

2시즌 동안 아쉬운 성적을 남긴 타이치는 결국 일본으로 유턴했다. KBL 1호 아시아쿼터 선수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타이치는 그렇게 KBL 무대를 떠났다. 현재 타이치는 B.리그 시호스 미카와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아시아쿼터 도입 초기에는 일본 선수들에게만 문호를 개방하면서 많은 팀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제도를 활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2-2023시즌을 앞두고 필리핀 선수들에게까지 아시아쿼터를 확대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가드 자원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포진한 필리핀 선수들의 영입이 가능해지자 각 팀들은 적극적으로 아시아쿼터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가드 전성시대 

필리핀 선수들의 영입이 가능해진 후 다수의 필리핀 가드 자원들이 대거 KBL 무대에 입성했다. 각 팀들의 필리핀 선수 영입을 위한 스카우팅 경쟁도 치열하게 이어졌다. 필리핀 선수들의 특성 상 포워드나 센터보다는 가드 쪽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으므로 각 팀들의 영입 대상 선수들 역시 가드 지원에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모든 팀들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몇몇 팀들은 아시아쿼터 영입과 함께 곧바로 전력 상승 효과를 누렸지만 영입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KBL 무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구단들도 있었다. 

첫 시즌에는 현대모비스가 영입한 론제이 아바리엔토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아바리엔토스는 현대모비스의 유니폼을 입고 51경기에서 평균 13.6점 4.8어시스트 2.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가드진의 고민이 컸던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준 선수가 바로 아바리엔토스였다. 아바리엔토스의 활약에 힘입은 현대모비스는 34승 20패를 기록하면서 4위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랐다. 

아바리엔토스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규리그 종료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 기자단 투표 109표 중 101표를 획득하며 신인왕에 오른 것. 아바리엔토스는 “첫 프로 시즌에서 신인왕을 수상해 영광이다. 팬들이 코트 안팎으로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받은 상이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아바리엔토스와 현대모비스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2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던 아바리엔토스가 돌연 계약 해지를 요청한 것. ‘춘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현대모비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바리엔토스가 전한 갑작스러운 이별에 구단과 팬들 모두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아바라엔토스는 일본으로 떠났다. 현재는 신슈 브레이브 워리어스로 이적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아바리엔토스다. B리그 올스타전에 참여해 한국 취재진을 만난 아바리엔토스는 “KBL의 연봉 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상했다. 고민 끝에 힘든 결정을 내렸다”라며 KBL을 떠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KBL이 아시아쿼터 선수의 연봉을 16만 달러로 제한한 것에 대한 반발심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아바리엔토스 외에도 많은 필리핀 선수들이 첫 시즌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KGC(현 정관장)에 합류한 렌즈 아반도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엄청난 탄력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DB 유니폼을 입고 뛴 이선 알바노 역시 첫 시즌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리그 적응기를 거쳤고, LG의 저스틴 구탕 역시 첫 시즌부터 자신의 자리를 잡아나갔다. 

필리핀 선수들이 KBL 무대에 입성한 후 2번째 시즌인 2023-2024시즌에도 이들의 활약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우선 DB의 유니폼을 입고 2번째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알바노가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첫 시즌 평균 13.3점 5.1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알바노는 2번째 시즌 15.9점 6.6어시스트로 기록을 상승시키면서 디드릭 로슨과 함께 DB의 확실한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야투율이 41.5%에서 49.7%로 증가했으며 이번 시즌 3점슛 성공률은 40.6%를 기록했다. 클러치 상황에서의 해결사 본능도 뽐내면서 알바노는 MVP까지 거머쥐면서 자신의 성공시대를 열었다. KBL 무대에서는 탑클래스 가드에 속하는 능력을 뽐내는 중인 알바노다. 

이러한 알바노의 성장으로 인해 DB는 한층 더 강력해진 전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시즌 개막 후 7연승을 기록하면서 질주를 시작한 DB는 한 차례도 1위 자리를 내려놓지 않으며 와이어-투-와이어 정규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많은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일군 우승이지만 그 중에서도 알바노의 지분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첫 시즌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한국가스공사의 샘조세프 벨란겔은 2번째 시즌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환골탈태했다. 첫 시즌 52경기를 뛰며 평균 7.0점 2.0어시스트를 기록했던 벨란겔은 강혁 감독 체제로 개편된 이번 시즌 한국가스공사 가드진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낙현과 함께 한국가스공사의 가드진을 이끌고 있는 벨란겔은 평균 12.6점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한국가스공사가 후반기 대반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벨란겔이 존재감을 발휘한 덕이 컸다. 

 

정관장의 아반도 역시 남다른 존재감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특유의 탄력을 활용한 화려한 덩크와 공중으로 솟구쳐 잡아내는 리바운드, 블록슛 등은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양산하고 있다. 

아반도에 대한 필리핀 팬들의 관심 역시 상당히 뜨겁다. 이번 시즌 아반도가 큰 부상을 입었을 당시, 필리핀 언론 역시 이에 크게 주목했다.

아반도는 소노와의 경기 도중 공중에 뜬 상태에서 치나누 오누아쿠에게 더티 파울을 당했다. 공중에 뜬 아반도를 오누아쿠가 그대로 뒤에서 밀어버렸고, 중심을 잃은 아반도는 코트에 크게 쓰러지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검사 결과 아반도는 요추가 골절됐고, 경추 인대에도 염좌가 발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손목 인대 손상과 뇌진탕 역시 의심됐다. 자칫 신경을 건드렸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후 KBL이 오누아쿠에게 300만원 벌금 징계를 결정하면서 솜방망이 징계라는 논란이 일었다. 필리핀 언론 역시 이에 대해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LG의 저스틴 구탕 역시 팀의 로테이션에 확실히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첫 시즌 4.5점 2.5어시스트 2.3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구탕은 이번 시즌 8.5점 2.4어시스트 3.1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팀의 에너자이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구탕이다. 

많은 필리핀 선수들이 KBL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각 팀들이 전력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팀들이 필리핀 선수들의 영입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된 선수들 외에도 많은 필리핀 선수들이 KBL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는 언급된 선수들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시아쿼터의 확대 가능성

KBL은 필리핀 선수들의 합류와 함께 아시아쿼터 제도의 경쟁력을 충분히 확인했다. 이에 아시아쿼터 제도의 확대 가능성 역시 충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우선 현재 최대 16만 달러로 제한되어 있는 연봉 상한선이 올라갔다. 다음 시즌은 19만 5000달러, 2025-2026시즌은 23만 5000달러가 된다. 지난 시즌 아바리엔토스 사태와 같이 KBL 무대에서 활약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적은 연봉으로 인해 해외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조치다.

또한 아시아쿼터가 동남아시아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역시 KBL 무대에 입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만약 아시아쿼터가 확대된다면 구단들 입장에서는 더욱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으며 팬들에게도 볼거리가 풍부하게 제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KBL의 성공사례 이후 WKBL 역시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을 확정했다. WKBL은 갈수록 줄어드는 인재풀로 인해 경기력이 꾸준히 저하되고 있는 중이다. 아시아쿼터 제도를 활용하게 된다면 이러한 고민이 해결될 수 있다.

최근 결정된 사안에 따르면 첫 아시아쿼터 선발 대상자는 일본 여자 프로농구 W리그 소속 선수를 포함한 일본 국적자로 제한된다. 선발 방식은 드래프트로 하며, 구단마다 최대 2명을 보유해 경기마다 1명씩 출전시킬 수 있다. 아시아쿼터 선수의 급여는 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에 포함하지 않고, 한화로 월 1000만원을 지급한다. WKBL은 6월 중 트라이아웃을 통해 아시아쿼터 선수를 선발할 예정이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