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의 앤드원] 작전판: KCC는 자밀 워니를 어떻게 봉쇄했나
KCC가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부산 KCC 이지스는 4일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서울 SK 나이츠와의 1차전에서 81-63으로 승리했다.
수비가 만들어낸 승리다. 이날 KCC는 SK의 득점을 단 63점으로 묶었다.
KCC의 정규리그 평균 실점(87.5점)은 물론 올 시즌 SK 상대 평균 실점(83.5점)을 한참 밑도는 기록.
이날 경기를 앞두고 전창진 감독은 "SK의 국내선수보다는 자밀 워니를 잘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니를 얼마나 잘 막느냐가 중요하다. 그걸 막다가 외곽 찬스를 내줄 수도 있다. 정상적인 매치업이라면 (워니로부터 파생되는) 외곽 찬스를 안 주겠지만, 워니의 공격력이 워낙 좋아서 도움 수비를 안할 수가 없다."
"워니에게 주는 득점이 많으면 어려워질 거라고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워니에게 줄 수 있는 득점이 있는데 그 외에 주면 안 되는 득점이 나와선 안 된다."
전창진 감독이 경기 전에 꺼낸 말이다.
자밀 워니를 제어하려는 KCC의 수비 노림수가 제대로 통했다. 이날 KCC는 워니를 14득점, 야투율 33.3%(6/18)로 묶었다.
아시다시피 워니는 리그 최고의 득점 기계다. '워니는 누가 막아'라는 밈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그런 워니를 KCC는 1차전부터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KCC의 이 같은 워니 봉쇄 뒤에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준비된 수비가 있었다.
지금부터 1차전에서 KCC가 워니를 어떻게 막아냈는지 확인하자.
워니의 픽앤팝 기반 드리블 돌파: 제3의 수비수의 체크 백(스턴트)
SK가 워니를 활용하는 공격법은 상당히 다채롭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옵션 중 하나가 워니가 핸들러와 픽앤팝 게임을 펼치며 림 정면 각도에서 볼을 잡은 후, 드리블 돌파 공격을 펼치는 것이다.
이 같은 공격 옵션을 활용할 때, 워니는 상대의 수비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공격 방향을 가지게 된다.
1) 상대가 헷지 앤드 리커버리(hedge and recovery, 워니를 막는 수비수가 핸들러를 견제한 후 워니에게 돌아가는 것)나 드랍 앤드 리커버리(drop and recovery, 워니를 막는 수비가 3점 라인 안쪽으로 처져서 핸들러의 돌파 동선을 먼저 막은 후, 워니에게 돌아가는 것)로 나올 경우, 워니에게 돌아오는 원래 수비수의 움직이는 발을 워니가 지체없이 재빠른 오프 더 캐치(off the catch, 볼을 캐치한 이후의 동작) 드리블 돌파로 공략한다.
2) 상대가 스위치(마크맨을 바꿔막는 수비)로 나올 경우, 워니가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고 미스매치를 공략한다.
이날 KCC는 워니의 픽앤팝 게임에 대해 핸들러 수비수와 라건아(혹은 알리제 존슨)이 헷지 앤드 리커버리를 하면서 마크맨을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여기서 KCC는 하나의 움직임을 더했다. 바로 워니의 픽앤팝 게임이 일어나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원 카운트)에 있는 제3의 수비수가 팝아웃 하는 워니를 체크했다가, 헷지를 나갔던 라건아가 워니에게 돌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돌아가는 것이다.
경기 장면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
위 장면에서 워니는 안영준과 오른쪽 사이드에서 픽앤팝을 시도한다.
안영준이 사이드라인을 따라 돌파를 시도하자, 워니의 마크맨인 라건아가 안영준을 우선적으로 따라가다가, 워니에게 돌아가는 수비를 한다. 드랍 앤드 리커버리 수비다.
이때 왼쪽 사이드 45도 부근에서 오재현을 마크하던 허웅(초록색 원)의 움직임을 주목하자.
안영준을 따라갔던 라건아가 워니에게 돌아올 때까지, 허웅은 오재현을 버려두고 워니에게 달라붙으며 시간을 벌어준다.
라건아가 예상보다 깊게 안영준을 따라가면서 워니에게 돌아가는 동선이 너무 길어지자, 허웅이 공을 받은 워니에게 아예 파울을 하며 상대 공격 흐름을 끊어버린다.
제3의 수비수가 워니의 팝아웃을 견제하고, 파울까지 활용해 워니의 공격 시작 작업을 저지해버리는 장면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도 비슷한 동작이 나온다.
위 장면에서 안영준과 워니가 하이 픽앤팝 게임을 펼치자, 라건아는 안영준 쪽으로 한발 들어오고, 그 타이밍에 맞춰 오른쪽 코너에 있던 허웅이 오재현을 버려두고 워니 쪽으로 뛰어갔다가 돌아온다.(라건아도 워니에게 컴백)
오재현이 베이스라인 컷으로 허웅의 수비를 카운터 어택하려고 하지만, 허웅이 재빨리 오재현에게 돌아오면서 찬스가 생기지 않는다.
위 장면처럼 볼이 없는 공격수를 마크하고 있는 수비수가 원카운트 거리에서 오픈이 된 다른 공격수에게 로테이션을 가는 척했다가 돌아가는 동작을 스턴트(stunt)라고 부른다.(국내 지도자들은 스턴트와 2대2 수비의 헷지 앤드 리커버리를 모두 헷지 백이라고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스턴트를 활용한 KCC의 수비법은 위 장면처럼 턴오버를 유발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위 장면에서 켈빈 에피스톨라는 김선형을 버려두고 팝아웃하는 워니 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스턴트 수비를 펼친다. 오재현이 이를 읽고 김선형에게 스킵 패스를 시도하자 김선형에게 재빨리 돌아간 에피스톨라가 볼을 아예 가로채는 모습이다.
이처럼 1차전에서 KCC는 제3의 수비수가 워니를 체크하는 수비법을 활용, 워니가 픽앤팝 이후 전개하는 정면 드리블 돌파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아버렸다. 그러면서 워니의 공격 옵션 하나가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워니의 1대1: 헬프 사이드 깊게 자리잡으며 존 형태 수비 구축+강한 더블 팀은 자제
워니의 로우포스트 1대1 공격에 대해서 KCC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날 KCC가 워니의 1대1에 대해 세운 원칙은 명확했다.
최준용, 이승현이 자신의 마크맨(최부경, 오세근)을 버려두고 페인트존 가운데에 위치, 헬프 사이드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단, 이때 최준용, 워니는 워니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압박을 가하는 더블 팀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저 라건아 뒤와 옆에서 RA 구역(림 아래 반원구역)을 보호하는 방식의 존 형태의 수비를 유지할 뿐이었다.
워니가 볼을 몰고 페인트존 가까이 접근하더라도, 워니에게 바짝 달라붙어 강한 프레셔를 가하는 수비를 하지 않고, 라건아의 옆 혹은 뒤에서 자리를 잡은 채로 RA 구역 진입 저지에만 신경썼다.
이 같은 KCC의 워니 1대1 수비법은 크게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1) 워니가 드리블 돌파로 RA 구역 안에서 확률 높은 슛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만듦으로써, 플로터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2) 플로터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나면서, 워니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풋백 득점(림 근처에서 공격 리바운드 후 곧바로 만들어내는 골밑 득점) 생산을 줄인다.
경기 장면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
위 장면에서 최준용(초록색 화살표)은 자신의 마크맨인 최부경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워니의 1대1을 막기 위해 RA 구역 바로 앞에 존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워니가 페인트존 안으로 밀고 들어와도 워니에게 튀어나가며 더블 팀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워니는 알리제 존슨을 밀고 들어가다가 오른손 플로터를 시도하는데, 슛이 림을 외면한다.
이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최준용(초록색 화살표)이 오른쪽 45도 엘보우에 있는 최부경과 거리를 두고, 워니가 밀고 들어올 RA 구역 앞에서 자리를 잡으며 존 형태로 수비하는 것이 보인다.
헬프 사이드 깊게 들어와 있는 최준용을 의식한 워니가 허일영에게 볼을 빼주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허일영이 가속도를 붙어 플로터성 슛을 던지지만 실패. KCC의 완벽한 수비 성공이다.
이승현(초록색 화살표)도 동일한 수비를 펼친다. 오세근을 버려두고 워니의 1대1 돌파 동선을 막기 위해 RA 구역 앞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존 형태의 수비를 만든다.
이때 워니와 가까워졌을 때 이승현의 움직임을 주목하자.
워니 바로 옆에 있을 때도 워니를 둘러싸거나 압박하지 않고, 자신의 마크맨인 오세근을 신경쓰며 워니의 RA 구역 진입을 막는 데만 신경쓴다. 앞서 설명한 헬프 사이드에 깊게 들어와 자리를 잡되, 절대 더블 팀은 하지 않는 수비가 바로 이것이다.
이승현 때문에 더 깊게 밀고 들어가지 못한 워니가 탑으로 빠져나간 오세근에게 패스하지만, 이승현이 아주 적절한 스텝으로 클로즈아웃 수비를 실행하고 오세근의 3점은 빗나간다.
SK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워니와 국내 빅맨(위 장면에서는 오세근)의 로우포스트 빅빅 픽앤롤에 대한 수비도 KCC는 동일한 방법으로 해냈다.
워니가 포스트에서 볼을 잡자 이승현(초록색 화살표)이 페인트존 한가운데에 존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오세근이 달려와 워니에게 스크린, SK가 로우포스트 빅빅 픽앤롤을 시도하자 이승현과 알리제 존슨(하늘색 화살표)은 일단 스위치를 한다.
워니가 이승현을 상대로 밀고 들어가자 이번엔 알리제 존슨이 적극적인 더블 팀 대신 RA 구역 앞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는 존 형태의 헬프 사이드 수비로 워니의 공격을 막아버린다.
워니가 억지로 숏 미드 점퍼를 시도하지만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슛은 실패한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다. 최준용(초록색 화살표)이 RA 구역 안으로 들어와 워니의 돌파 동선을 미리 막아버린다.
최준용을 의식한 워니가 김선형에게 볼을 빼주고 김선형이 다시 엔트리 패스를 투입, 리포스트를 실행하지만 워니의 두 번째 포스트업에 대해서도 최준용이 RA 구역 앞에서 (더블 팀은 하지 않고 헬프 사이드에 깊게 들어와 있는) 헬프 수비를 펼친다.
이때 반대 코너에서 최원혁을 막고 있는 허웅은 최준용의 마크맨인 최부경을 견제한다.
이를 발견한 워니가 최원혁에게 킥아웃 패스를 뿌리지만, 허웅이 뛰어나가 강하게 컨테스트, 최원혁의 3점은 림을 외면했다.
이처럼 KCC는 이날 경기 내내 자밀 워니의 림 어택을 최준용, 이승현의 더블 팀 없는 존 형태의 헬프 수비로 저지, 워니의 공격 효율을 완전히 낮춰버렸다.
최준용과 이승현의 수비를 의식한 워니는 플로터에 결국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이날 워니의 플로터 감각이 좋지 못했다. 동시에 RA 구역 밖에서 슛을 던진 워니가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 이를 풋백 득점으로 마무리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으면서(이날 워니는 공격 리바운드 1개를 잡는 데 그쳤다. 정규리그에서는 평균 3.4개를 잡아냈다.) 워니의 득점을 20점 아래로 틀어 막아버렸다.
경기 후 전창진 감독은 자밀 워니를 봉쇄한 KCC 선수들의 수비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수비를 잘해서 이겼다. 수비가 잘 됐다. 워니를 막는 수비, 앞선에 대한 수비가 잘 풀렸다." 전창진 감독의 말이다.
SK의 2차전 대응은?
1차전을 앞두고 전희철 감독은 KCC의 트랜지션 공격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이날 SK의 목표 실점대에 대해 80점 초반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1차전에서 KCC는 81점을 기록했다. 즉, 이날 SK는 적어도 수비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공격을 풀어갔다고 해도 될 것이다. KCC의 속공 득점을 단 6점으로 틀어막았고(속공 득점 12-6 우위) 90점을 가볍게 넘는 KCC의 최근 득점력을 평균 10점 가까이 줄였다.
문제는 공격이었다. 자밀 워니에 대한 KCC의 매우 조직적이고 끈끈한 수비에 1옵션 워니의 공격 효율과 볼륨이 모두 바닥을 쳤고, 설상가상으로 다른 국내선수들마저 공격에서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SK는 2차전부터 공격력을 반드시 반등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전희철 감독은 1차전이 끝난 후 "워니에 대해서 상대가 수비를 타이트하게 잘하더라. 파생되는 게 나와야 한다. 오늘은 워니가 욕심을 부리는 것도 있었다. 이상하게 선수들이 꼬이는 공격이 느낌도 있었다. 그 부분은 제가 공격 세팅을 잘못한 부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SK가 어떤 방법으로 KCC의 조직적인 워니 견제 수비를 뚫느냐가 될 것이다.
KCC는 최준용과 이승현(초록색 네모)이 워니의 1대1을 상대로 존 형태의 수비를 펼칠 경우, 위 장면들처럼 반대 코너 수비수가 덩커스팟(페인트존의 세로 라인과 베이스 라인 사이의 구역)의 최부경과 오세근을 체크하고(하늘색 네모), 반대 코너는 비워두 는 수비(노란색 네모)를 펼치고 있다.
최부경과 오세근이 엘보우나 탑으로 빠질 때는, 최준용과 이승현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면서 탑에서의 오프 더 볼 공격을 적절한 클로즈아웃과 로테이션 수비로 막아내고 있다.
사실 이번 칼럼에서 소개한 KCC의 수비법이 완전히 새로운 수비법은 아니다.
정규리그 동안 KCC는 워니를 비롯한 타팀의 빅맨 공격수에 대해 자주 이런 수비를 시도했었고, SK 역시 워니에 대한 KCC 같은 형태의 수비법을 자주 상대했다.
다만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KCC의 약속된 수비 이행 능력이 너무 좋았고, 여기에 워니를 비롯한 SK 선수들의 대응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KCC가 수비로 승리를 거두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전희철 감독은 2차전에서 SK 국내 자원들의 코트 밸런스를 맞추면서 공격에 대한 준비를 다시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1차전 종료 후에 꺼냈다.
SK는 과연 2차전에서 어떤 반격을 펼칠까? KCC-SK의 6강 플레이오프 빅매치가 시작부터 매우 흥미로운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사진 = KBL 제공, SPOTV 중계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