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ach Story] "가장 중요한 건 시도에요” 수원 KT 소닉붐 박종천 코치
지난 시즌 부진을 딛고 이번 시즌 상위권으로 도약한 KT. KT에서 9년째 선수들과 땀을 흘리고 있는 박종천 코치의 바람도 당연히 우승이다. 롱런의 선수 생활을 거쳐 KT와 오랜 시간 합을 맞추고 있는 박종천 코치는 어떤 마음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을까?
*인터뷰는 2024년 1월 초에 진행했고, 본 기사는 루키 2024년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코치가 되니 느낄 수 있는 게 있었죠
2003년 드래프트로 삼성에 합류한 박종천 코치는 2015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넘게 프로에서 롱런한 선수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초기에는 탄탄한 팀의 멤버 사정상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은퇴할 뻔했던 박 코치는 극적으로 모비스(現 현대모비스)로 이적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못 뛸 때는 나중에서야 그런 마음을 이해했지만 감독님을 원망하기도 했죠. 훈련도 열심히 하고 연습경기 때도 나름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시즌에 들어가서 기회를 많이 못 받으니까 어린 마음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솔직히 지금 선수들도 아마 그런 상황에 있는 선수들이라면 조금씩 불만이 있을 거예요.”
“코치가 되고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그때 정말 부족했고 노력을 많이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남들이 하는 만큼 한 거였지, 죽기 살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삼성 멤버도 워낙 좋았고 특출난 게 없었던 저를 쓰기엔 참 애매했을 거라는 걸 지금에서야 느꼈습니다.”
“계약 기간 1년이 남았을 때 은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었어요. 그때 다른 팀을 알아봐 주실 테니 안 되면 은퇴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정도 꾸렸는데 연락을 기다리는 2주 동안 ‘정말 은퇴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고민도 심각하게 하고 위기감이 들었죠. 너무 힘들었는데 다행히 모비스에서 연락이 와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죠.”
“경기를 못 뛰는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당장 내일 은퇴하더라도 본인은 그걸 모를 수도 있어요. 그만큼 안주할 게 아니라 프로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감독님이든 눈에 띄면 빈자리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은 다 갖고 계실 것이니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모비스 입단, 그리고 조동현 감독과의 만남
모비스 입단은 박종천 코치 선수 생활의 큰 전환점이었다. 위기에 몰려보니 절박함은 커졌고, 노력은 곧 결실을 맺었다. 박 코치는 팀에서 소금 같은 역할을 하는 식스맨으로 자리 잡으며 모비스 왕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은퇴 생각까지 했던 걸 돌아보니까 기회를 받은 게 정말 감사했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적하고 첫 3년 동안은 훈련을 한 번도 쉬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훈련이 힘들어서 열이 38도가 넘어도 오전 운동 하고 링거 맞고 오후에 또 뛰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다시 찾은 기회니까 정말 절실하게 운동했죠.”
“좋은 팀에 갔고 농구를 다시 하나씩 배울 수 있는 시발점이었어요. 유재학 감독님께서 팀 문화를 워낙 잘 잡으셨고 공수 다 플랜이 있는 팀이었죠. 지금도 느끼는 게 기본기를 중시한 실전 농구라고 표현을 하거든요. 거기서 상대와의 수 싸움 같은 걸 많이 배웠고 그게 익숙해지니까 몸에서 자동적으로 나왔어요. 멤버도 좋았고 틀 안에서 각자 역할을 정말 잘했죠.”
2015년에 은퇴한 박 코치는 곧바로 조동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코치로 합류하게 됐다. 당시 KT는 판을 새롭게 짜면서 팀을 다지는 시기였는데, 박 코치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정말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제는 KT에서만 9년을 보낸 터줏대감이 됐다.
“유재학 감독님께서 제2의 농구 인생을 살게 해주셨다면 선수 말년에 코치로 만난 조동현 감독님도 제 은인이세요. 제가 나이 먹었다고 훈련을 등한시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그걸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허리 때문에 은퇴하려고 하는데 조동현 감독님께서 정말 좋은 기회를 주셨어요. 은퇴하고 바로 프로에서 코치가 되기가 힘든데 그래서 더 감사했죠.”
“말 그대로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어요. 선수 때 겪었던 게 있고 모든 선수가 저랑 똑같지는 않았던 거죠. 외국 선수 교체도 많았고 역전패가 하도 많아서 ‘3쿼터까지만 농구하면 KT가 1등한다’는 기사도 봤던 것 같아요. 역전패가 거의 반이 넘어가니까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어요.”
“올해로 KT에서만 9년 차가 됐어요. 프로농구에 뛰어들면서 가장 오래 있었던 팀인데 와서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성적이 좋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드래프트 같은 걸 통해서 멤버도 많이 데려왔고 팀이 더 좋아질 수 있는 상황까지 왔죠. 어떻게 보면 너무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어서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느끼고 있어요.”
플레이오프 무대로 다시 돌아온 서동철 감독 시절, KT는 양궁농구로 유명했던 팀이기도 하다. 외곽포로 상대를 괴롭히는 팀 컬러 구축에서 슈터 출신인 박종천 코치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일단 슛은 정말 많이 던져봐야 해요. 연습이건 시합이건 많이 던져봐야 하고 연습 때 실제 시합처럼 던져봐야 실전에서도 잘 넣을 수 있어요. 그런 쪽으로 코칭을 많이 했는데 사실 제가 가르친다고 해서 선수들이 해내지 못하면 양궁농구가 될 수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선수들의 의지가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해요.”
“기술적인 부분은 훈련할 때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결국 훈련량과 멘탈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찬스를 만들거나 던지는 방법은 기술적인 것이고 연습할 때 충분히 이야기해주고 있으니까 얼마나 의지를 갖고 경기에 임하느냐가 중요하죠.”
중요한 키워드는 ‘시도’
지난 시즌 컵대회 우승팀인 KT는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혔으나 기대에 못 미친 끝에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절치부심한 그들은 올 시즌 젊은 로스터와 함께 상위권을 달리며 반등에 성공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목표는 당연히 한마음으로 모아 우승이다.
“선수들끼리 이야기도 되게 많이 하고 코칭스태프도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고 판을 깔아주려고 해요. 그래서 선수들이 더 신나서 하고 소통하고 스틸도 흥에 겨워서 많이 나오는 거거든요. 밖에서 보기에도 분위기가 좋고 선수들이 하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서 더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주장인 (문)성곤이를 비롯해서 93년생 선수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다 중심을 잘 잡아서 밀어주고 쓴소리도 해주고 하면서 잘 끌고 가는 것 같아요. 한 살 위인 (이)현석이도 마찬가지로 정말 잘해주고 있죠.”
“SK나 DB나 LG는 기본에 입각한 평균치가 있다고 보면 저희는 평균을 섣불리 계산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패리스 배스도 마찬가지고 선수들이 젊고 분위기를 타는 선수들이라 올라오면 정말 무서운 팀이 되는 것이죠. 그래도 최소한 4강권은 유지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요. 일단 4강은 무조건 가고 거기서 분위기를 올려서 챔프전에서 딱 시원하게 우승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20년이 넘게 쉼 없이 KBL 판에 몸을 담그고 있는 박 코치. 그는 어떤 철학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을까? 중요한 키워드는 try, 시도였다. 많은 지도자와 함께한 경험도 녹아들어 있었다.
“선수 때도 그렇고 코치 때도 그렇고 꼭 시도라는 단어를 가지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해줘요. 연습했던 걸 시도해보고 잘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개인 연습으로 시도해보라는 것이죠. 계속 시도를 해봐야 본인 것이 되는 거고 뭐가 문제인지도 알 수 있잖아요. 계속 시도하다 보면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으니 거기서 자기 걸 찾아가는 거라고 말을 해주죠. 제가 만약 어떤 걸 가르쳐주고 이렇게 연습했는데 그걸 해보는 선수를 정말 이뻐할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속에 항상 시도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죠.”
“그동안 지도자분들께 배울 기회를 많이 얻었는데 전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에요. 그래서 다들 정말 감사드리죠. 유재학 감독님의 기본을 중요하시면서 상대와의 수 싸움까지 가져가는 농구 스타일.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농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어요. 감독님의 지략과 전술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말 본받을 점이 많죠.”
“서동철 감독님께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훈련을 시키세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한 번 더 배웠죠. 조동현 감독님은 제2의 은인이라고 말씀도 드렸고 많이 지기도 했지만 과정에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정말 많이 노력하시는 지도자세요.”
“송영진 감독님은 한 마디로 경상도 사나이세요. 화끈하시고 지는 걸 정말 싫어하시고 한 말씀은 무조건 지키시죠. 표현은 강하지만 속으론 선수들을 정말 아끼세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과거에 같이 코치로 계시다가 저만 남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다시 오셨을 때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감독님과 꼭 같이 힘을 합쳐서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싶습니다.”
“항상 많은 응원해주시는 KT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KT 팬들의 영원한 숙원인 우승,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해서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날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EXTRA STORY
“라건아가 벌써 이렇게 많이 넣었어?“
김도수 코치에 이어 박종천 코치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박 코치는 모비스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지금까지도 KBL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라건아를 꼽았다. 귀화 선수로 태극마크까지 단 라건아는 최근 KBL 통산 득점 2위에 등극하며 살아있는 리그의 역사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라건아에요. 모비스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는데 3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생각이나 플레이나 그렇게 묵직한 선수는 처음 봤어요. 처음에는 슛 없이 운동 능력으로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다음 시즌에 바로 슈팅력을 키워왔어요. 깜짝 놀랐죠. 저랑 3년밖에 없었지만 지금도 만나면 웃으면서 농담도 하고 그런 사이에요.”
“최근에 기록을 세운 걸 보니까 그걸 보고 벌써 라건아가 이렇게 많이 넣었나 생각이 들었죠. 폼이 잠깐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올라오는 걸 보니까 ‘역시 라건아구나’ 싶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KBL에서 뛸지는 몰랐는데 다른 선수들도 배울 게 많은 선수라고 느껴져요.”
사진 = 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