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제임스 하든의 긴 우승 도전 역사와 클리퍼스의 챔피언 프로젝트

2023-12-18     김혁 기자

제임스 하든은 드웨인 웨이드 이후 최고의 슈팅 가드로 불리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선수다. 긴 턱수염으로 캐릭터가 확실한 하든은 MVP 1회, 3년 연속 득점왕, 어시스트왕 2회, 올스타 10회, 올-NBA 퍼스트 팀 6회 등 대단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다.

하지만 화려함이 가득한 하든의 커리어에 아쉬움도 있다. 긴 선수 생활 동안 아직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그렇기에 정상 등극을 향한 하든의 마음은 매우 간절하다. 다사다난한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하든은 클리퍼스 이적으로 또 한 번 우승 도전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듀란트-웨스트브룩과 처음 밟은 파이널, 그리고 휴스턴 이적

애리조나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선수였던 하든은 PAC-12 컨퍼런스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뒤 NBA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상대로 그는 높은 순번에 지명됐고, 훗날 스타들이 쏟아졌던 2009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오클라호마시티에 뽑혔다.

당시 오클라호마시티는 성적이 그렇게 좋은 팀은 아니었지만 미래가 밝은 팀이었다. 시애틀에서 오클라호마로 연고 이전한 초기에 썬더는 하든을 제외하고도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 서지 이바카, 제프 그린 등 재능 넘치는 유망주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하든은 데뷔 초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팀이 리빌딩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플레이오프에 도전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1년 차 시즌을 맞이한 하든은 모두 벤치에서 출전, 평균 9.9점 야투율 40.3%에 그쳤다. 기대치보다는 훨씬 낮은 퍼포먼스였다.

그래도 1년 차 막바지부터 점점 효율을 끌어올리던 하든은 해가 지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3년 차인 2011-2012시즌에는 평균 16.8점 4.1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식스맨으로 자리매김했다. 리그 최고의 식스맨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식스맨도 차지했다.

하든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자 오클라호마시티도 날아올랐다. 이미 이전 시즌에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을 앞세워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던 그들은 2011-2012시즌에 더 앞으로 나아갔고, 댈러스-레이커스-샌안토니오를 차례로 꺾고 연고 이전 후 첫 파이널에 진출했다.

하든의 생애 첫 NBA 파이널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스캇 브룩스 감독은 그에게 르브론 제임스 전담 수비라는 중책을 맡겼는데,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수에서 시리즈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낸 하든은 파이널에서 30%대의 저조한 야투율에 그쳤고, 오클라호마시티는 1승 4패로 마무리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하든의 3년 차가 끝나자 그에게도 연장 계약에 대한 이슈가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오클라호마시티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 시기였고, 이 선수들이 연장 계약을 맺기 시작하면서 샐러리 캡 여유가 부족해졌다. 서지 이바카와 하든의 연장 계약을 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인사이드 자원인 이바카를 선택했고, 하든을 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데뷔 팀을 떠나게 된 하든은 케빈 마틴, 제레미 램 등의 반대급부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

이별은 언제나 아쉬운 일이지만 트레이드는 스포츠에서 선수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준다. 듀란트나 웨스트브룩 같은 선수가 있었던 이전 팀에서 하든은 벤치 에이스 역할을 주로 맡았다면, 휴스턴 이적 후에는 본격적으로 팀의 에이스가 됐다. 

연장 계약 후 날개를 단 하든은 휴스턴 데뷔전부터 37점 12어시스트로 30-10을 달성, 확실한 에이스의 등장을 알렸다. 데뷔 첫 올스타에 뽑힌 하든은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제대로 스텝업에 성공했다. 올-NBA 써드 팀까지 뽑히며 기량을 인정받기 시작한 하든이다.

댄토니와의 만남과 MVP 등극 

하든의 가능성을 확인한 휴스턴은 레이커스에서 실패를 맛본 드와이트 하워드를 영입, 핸들러-빅맨 원투펀치 체제를 공고히 했다. 하든은 이미 단순한 올스타급 선수가 아닌 올-NBA 급 선수이자 최고의 슈팅 가드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의 길은 너무나 멀었다. 2013-2014시즌 하든-하워드를 앞세워 정규시즌 54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데미안 릴라드에게 치명적인 위닝샷을 허용하며 다시 한번 1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하든의 성장은 계속됐다. 2014-2015시즌 평균 27.4점 7.0어시스트를 기록한 하든은 스테픈 커리와 치열한 MVP 경쟁을 펼쳤고, 오클라호마시티 시절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특히 2라운드에서 클리퍼스를 상대로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MVP 경쟁을 펼쳤던 하든과 커리의 컨퍼런스 파이널 매치. 하든은 웃지 못했다. 스플래쉬 브라더스를 앞세워 NBA에 새로운 트렌드를 몰고 온 골든스테이트는 휴스턴을 압도했고, 하든과 휴스턴은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지독했던 골든스테이트와의 악연에 대한 시작점이었다.

2015-2016시즌 휴스턴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팀의 에이스인 하든부터 크게 흔들렸고, 인사이드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하워드는 영향력이 전성기 시절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케빈 맥헤일 감독이 시즌 초반 물러나는 강수에도 팀 분위기는 정돈되지 않았고, 형편없는 수비가 시즌 내내 개선되지 않으며 5할 승률에 턱걸이한 채 1라운드 탈락을 맛봤다.

제대로 실패를 맛본 휴스턴은 2016-2017시즌을 앞두고 명장 마이크 댄토니를 영입하며 전환기를 맞았다. 하든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께한 사령탑이기도 하다.

하하 듀오로 불렸던 하워드가 팀을 떠났고, 라이언 앤더슨과 에릭 고든을 영입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든의 비중이 이전보다도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었다. 피닉스 시절 2년 연속 MVP를 차지한 스티브 내쉬와 함께 런앤건 농구로 신바람을 냈던 댄토니는 이번엔 하든을 페르소나로 삼았다.

하든은 단순 슈팅 가드가 아니라 메인 볼 핸들러로 전반적인 경기 운영에 매우 깊게 관여하며 포인트가드에 가까워졌다. 휴스턴 대부분의 공격은 하든과 연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계를 바탕으로 가져오는 효과가 적은 2점보다 3점을 노리는 모리 볼과 댄토니의 농구가 합을 맞추면서 하든은 더 높은 수준의 선수로 성장했다.

댄토니의 색깔 이식은 확실했다. 2016-2017시즌의 휴스턴은 오펜시브 레이팅 2위, 평균 득점 2위, 경기 페이스 3위로 많이 뛰고 잘 넣는 팀이 됐다. 수비는 리그 평균 이하 수준의 팀이었지만 공격에서 이를 잘 만회하면서 다시 한번 55승 이상을 기록했다. 

철저한 원맨팀 농구에 어시스트까지 눈에 띄게 늘어난 하든은 평균 29.2점 1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더블-더블 시즌을 보냈다. 강력한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평균 트리플-더블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전 팀 동료 웨스트브룩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MVP는 내줬지만 웨스트브룩의 소속팀 오클라호마시티와의 플레이오프 경쟁에서는 승리를 거둔 하든이다. 3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합류한 휴스턴은 1라운드에서 만난 오클라호마시티를 완파했다. 하든은 외곽슛에서 난조를 겪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시리즈에서 웨스트브룩에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극단적인 닥공 농구의 한계는 뚜렷했다. 이어진 샌안토니오와의 2라운드, 2승 2패로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휴스턴은 2경기 연속으로 패하며 좌절했다. 하든의 위력도 집중 견제 속에 정규시즌보다 감소했고, 패한 경기에서의 공격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 아쉬웠다.

댄토니-하든 체제에서 승부를 걸기로 한 대릴 모리 휴스턴 당시 단장은 2017년 여름, 강수를 던졌다. 클리퍼스와의 트레이드에서 선수 7명과 1라운드 지명권을 내주는 조건으로 ‘포인트 갓’ 크리스 폴을 데려왔다.

폴의 영입과 더불어 최고의 마당쇠 P.J. 터커를 영입하고 인사이드 자원 네네와 재계약을 맺은 휴스턴. 시즌에 들어가기 전 에이스 하든과도 초대형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집토끼 단속을 마쳤다.

크리스 폴 영입은 성공적으로 맞아가는 듯했다. 휴스턴의 색깔은 여전히 확실했다. 리그 3점슛 시도/성공 1위, 2점슛 시도/성공 꼴찌를 기록했다. 대신 2점슛 성공률 2위를 기록할 정도로 3점슛 라인 안쪽에서는 안정적인 득점만을 추구했다. 관심 포인트였던 공격에서의 하든과 폴의 롤 배분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수비였다. 이전 시즌 공격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지만 평균 이하의 수비가 문제였던 휴스턴. 하지만 클린트 카펠라가 나서는 빅 라인업, P.J. 터커를 센터로 기용하는 스몰 라인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수비에서도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2017-2018시즌은 하든이 오클라호마시티를 떠난 뒤 가장 우승에 가까웠던 팀이자 소속팀의 전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다. 휴스턴은 햄튼 5의 골든스테이트를 제치고 오펜시브 레이팅 1위를 차지했고, 65승을 따내며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거머쥐었다.

하든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었던 시즌이다. 역대 최초로 60점 동반 트리플-더블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하든은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30점 고지를 밟았고, 2전 3기 끝에 정규리그 MVP 수상에 성공했다.

정규리그에서 팀적으로 내보낸 퍼포먼스가 대단했던 만큼 플레이오프도 무난했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각각 미네소타, 유타를 큰 어려움 없이 잡아내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렇지만 우승을 위해 넘어야 할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케빈 듀란트-스테픈 커리가 버티는 골든스테이트다.

스몰볼 활용을 극대화하는 두 팀의 시리즈는 예상대로 치열했다. 미리 보는 파이널이라는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 41점 원맨쇼에도 1차전을 놓친 하든은 동료들의 지원 속에 균형을 맞추며 시리즈를 풀어갔다. 팽팽한 양상 속에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측됐던 5차전을 휴스턴이 잡아내며 파이널 진출에 1승만 남겨 놨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악재가 휴스턴을 덮쳤다. 하든과 함께 팀의 백코트를 이끌던 폴이 5차전 도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했고, 남은 시리즈에 뛰지 못하면서 휴스턴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폴의 부상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휴스턴은 석연치 않은 판정과 극악의 슈팅 난조가 겹치며 7차전 승부 끝에 파이널 진출 티켓을 잡는 데 실패했다.

굿바이 휴스턴

이후 열린 2018-2019시즌, 휴스턴은 트레버 아리자와 륵 음바무테가 이적하면서 스윙맨 전력에 누수가 생겼지만 여전히 막강했다. 4승 7패로 부진한 출발을 보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반등에 성공했고, 하든은 평균 36.1점으로 득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큰 불안 요소가 있었다. 85년생으로 적지 않는 나이인 크리스 폴의 노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시즌 전 노장 반열에 들어가는 폴과 4년 대형 계약을 맺었던 휴스턴 입장으로선 초대형 악재였다. 폴은 설상가상 백코트 파트너로 합을 맞추고 있었던 하든과도 트러블이 생겼다. 

윙 자원에서의 이탈, 크리스 폴의 노쇠화 여파가 있었던 휴스턴은 53승을 기록하며 4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합류했다. 불을 뿜은 하든이 버텼기에 공격력은 여전히 막강했지만 수비는 다시 평균 이하 수준으로 약해진 상황이었다.

2라운드에서 숙적 골든스테이트를 다시 만났고, 이번에도 시리즈는 팽팽했다. 그러던 중 대형 변수가 발생했다. 이전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휴스턴의 핵심 크리스 폴이 다쳤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는 골든스테이트의 주득점원 듀란트가 시리즈 도중에 이탈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휴스턴은 이번에도 골든스테이트를 넘지 못했다. 5년 동안 무려 4번이나 골든스테이트에 시리즈 패배. 하든 또한 정규시즌의 경이적인 퍼포먼스에 비해 플레이오프 영향력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하든이라는 슈퍼스타를 보유한 팀 사정에서 되는 데까지 해보는 게 프런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휴스턴은 노쇠화 기미가 뚜렷했던 폴과 미래 지명권을 내주고 또 하나의 MVP 출신 플레이어 웨스트브룩을 영입했다. 프로 출발을 함께했던 웨스트브룩과 재회하게 된 하든이다.

웨스트브룩이 휴스턴 이적 초기 부진에 시달리며 그의 영입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등에 성공했고, 이번에는 하든이 침묵에 빠졌음에도 휴스턴은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휴스턴의 2019-2020시즌은 파격에 파격, 그 자체였다. 웨스트브룩 영입으로 더 달리는 농구를 추구했던 휴스턴은 웨스트브룩과 스타일상 잘 맞지 않았던 센터 카펠라를 내보내고 3&D 포워드를 코빙턴을 영입, 터커를 센터로 기용하는 극단적인 스몰볼을 전면에 내세웠다. 라인업에 2m 이상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성공한다면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휴스턴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1라운드에서 오클라호마시티를 상대로 승리하긴 했지만 7차전까지 가며 힘을 너무 많이 뺐고, 웨스트브룩이 부상 여파 속에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다. 2라운드에서 거인 앤써니 데이비스가 버티는 레이커스를 만난 휴스턴은 또다시 탈락을 경험했다.

팀적으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한계가 뚜렷했던 상황. 런앤건과 스몰볼을 이끌었던 마이크 댄토니가 사령탑에서 물러났고, 트레이드 등을 주도했던 대릴 모리 단장도 휴스턴을 떠났다. 로버트 코빙턴을 시작으로 주축 선수들도 이적하며 휴스턴의 리빌딩이 본격화됐다.

하든과 웨스트브룩은 재회 1년 만에 다시 흩어졌다. 웨스트브룩이 먼저 존 월과의 트레이드로 워싱턴 유니폼을 입었고, 태업 논란까지 일으키며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었던 하든은 결국 브루클린으로 트레이드되며 휴스턴 생활을 마무리했다. 나가는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휴스턴 구단주는 하든의 13번을 영구결번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3번의 트레이드, 계속된 우승 도전 

휴스턴을 떠난 하든의 목표는 더욱 확실했다.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의 브루클린에 합류, 슈퍼팀의 일원이 됐다. 브루클린은 리빌딩으로 모았던 유망주를 하든 영입에 대거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세 선수가 같은 팀에서 뭉치면서 브루클린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우승을 한 번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나 할지가 궁금한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NBA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의 듀란트-어빙-하든 빅3의 공격 화력이다. 하지만 세 선수가 뭉친 기간이 너무 적었다. 두 시즌을 함께하면서 고작 정규시즌에서 16경기만 같이 뛰었다. 무늬만 빅3였던 셈이다.

브루클린 합류 이후 하든은 플레이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평균 30점대 중반의 리그 최고 득점 기계였던 휴스턴 시절과 달리 경기 조립과 패스에 더 신경 쓰며 어시스트가 다시 평균 두 자릿수까지 올랐다. 뛰어난 득점원인 어빙-듀란트와 공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빅3가 돌아가며 빠진 브루클린은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2번 시드로 2021 플레이오프에 합류했다. 1라운드에서 보스턴을 완파하며 완전체가 뭉쳤을 때의 저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브루클린이다. 

하지만 하든의 우승으로 가는 길은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우승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밀워키와의 2라운드. 하든은 정규시즌 때 다쳤던 햄스트링에 또 한 번 문제가 생기며 1차전에 이탈했다.

하든의 이탈에도 듀란트-어빙만으로도 충분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뽐낸 브루클린은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시리즈 리드를 잡았다. 하든도 걱정 없이 충분히 쉬고 나올 수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그러나 원정을 떠난 3차전에서 어빙이 야니스 아데토쿤보와 충돌해 부상을 입는 또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한 명의 공백은 메울 수 있었지만, 둘이나 빠진 여파는 매우 컸다. 급해진 하든은 정상이 아닌 몸 상태를 이끌고 5차전부터 무리하게 복귀했지만 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브루클린은 듀란트의 눈물겨운 원맨쇼에도 7차전을 내주며 시즌을 접었다.

그럼에도 브루클린을 향한 기대치는 여전했다. 듀란트-하든-어빙 트리오가 건재하고, 비시즌 영입을 탄탄하게 이루면서 우승 후보 1순위로 불릴만한 전력을 다졌다. 이전 시즌의 아픔을 충분히 씻어낼 수 있는 전력 구성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균열이 생겼다. 이전 시즌 무단 이탈로 구설에 올랐던 어빙이 이번에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며 시즌 초반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여기에 주축 선수들의 부상, 코로나 프로토콜 등까지 겹친 브루클린은 우승 후보 1순위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백신 미접종자 어빙이 원정 경기만 뛰는 조건으로 합류했지만 팀 분위기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듀란트의 장기 부상 여파가 컸고, 팀 상황에 불만이 생긴 하든은 결국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트레이드를 요청하던 시점에 하든의 경기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든을 품은 팀은 필라델피아였다. 태업 논란을 일으킨 벤 시몬스를 중심으로 패키지를 구성한 필라델피아는 하든을 영입하며 조엘 엠비드와의 콤비를 완성했다.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인 엠비드와 빅맨을 가장 잘 살리는 하든의 만남에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에서도 하든의 우승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든이 오기 전에도 2라운드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던 필라델피아는 엠비드-하든 듀오 결성에도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이뤄내지 못했다. 2022년엔 마이애미, 2023년엔 보스턴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지난 시즌 종료 후 플레이어 옵션을 획득한 하든은 옵트아웃 후 팀과 연장 계약을 맺을 확률이 높게 예상됐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측에서 하든의 연장 계약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전년도에 이미 팀 전력 구성을 위해 상당한 페이컷까지 감행했던 하든이 폭발했다.

휴스턴 시절부터 연을 맺으며 NBA 대표 절친으로 불렸던 모리 사장과 하든의 관계는 금이 갔다. 하든은 옵트아웃 대신 옵트인 선택으로 길어야 1년만 필라델피아에 남기로 결정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리를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강력하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하든의 입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든의 커리어 4번째 트레이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클리퍼스행을 강하게 요구한 하든은 결국 시즌 개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했던 바를 이뤘고, 필라델피아는 니콜라 바툼, 로버트 코빙턴, 마커스 모리스와 미래 지명권을 받고 그를 P.J. 터커와 함께 클리퍼스에 넘겼다. 카와이 레너드-폴 조지-러셀 웨스트브룩-제임스 하든의 슈퍼스타 라인업이 탄생했다. 

恨의 세월 보낸 클리퍼스와 하든, 그들의 꿈은 이뤄질까?

클리퍼스와 하든의 공통점은 우승이 없다는 것이다. 1970년 창단 이후 NBA의 대표 약체 중 하나였던 클리퍼스는 2010년대부터 강호로 거듭났고, 2020-2021시즌에 구단 역사상 첫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50년이 넘는 역사에서 아직 파이널 진출이 없는 클리퍼스다.

스티븐 발머 구단주 아래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클리퍼스는 2019년 여름 카와이 레너드를 FA로 영입하고 미래 드래프트 지명권을 파격적으로 쏟으며 폴 조지까지 데려갔다. 하지만 부상을 비롯한 여러 악재 속에 우승의 꿈은 번번이 빗나갔다.

지난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클리퍼스 합류 이후 건강하지 못한 시기를 보낸 레너드가 또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으로 이탈하며 우승 도전을 거부당했다. 하든의 영입은 레너드-조지 ERA에서 그들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와도 같다.

이름값은 확실하지만, 1+1=2라는 수식이 스포츠에서 항상 성립하지 않듯 결국 중요한 것은 조합이다. 하든과 레너드, 조지라는 슈퍼스타들이 조화를 이뤘을 때 클리퍼스의 우승 도전이 가능하다. 단순히 스타들의 이름값만으로 우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하든은 클리퍼스에서도 득점보다는 경기 운영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그의 부족한 수비력과 활동량, 오프 볼 무브를 메워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클리퍼스의 활동량 문제는 시즌 내내 그들이 안고 가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하든 합류 이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6연패에 빠졌던 원인도 활동량 부족으로 인한 병장 농구의 반복이었다. 에이스급 선수들은 물론 테렌스 맨이나 P.J. 터커 등의 활약도 중요하다. 

클리퍼스와 하든, NBA의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들이 뭉쳤다. 화려한 커리어와 뛰어난 실력에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하든. 클리퍼스행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에게 올스타급 기량을 유지하면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하든과 클리퍼스의 동행은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을까?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