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KBL 역사에 남을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동 사례

2023-09-13     김혁 기자

원클럽맨으로 커리어를 마치는 프랜차이즈 스타는 프로 스포츠 최고 낭만 중 하나다. 하지만 한 팀에서만 오랜 시간 활약한 뒤 커리어를 끝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예상치 못하게 이적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오세근 이전에 KBL 역사에서 기억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동에 대해 돌아보자. 

*본 기사는 루키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추가/각색했습니다. 

 

이상민
(1995년 현대전자 입단 → 2007년 삼성 이적)

이 주제가 나왔을 때 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렸을 이름은 역시 ‘영원한 오빠’ 이상민이다. 연세대 시절부터 최고의 농구 스타로 인기를 끌었던 이상민은 현대전자 농구단에 입단했고, 상무에 입대한 사이 프로농구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프로 원년 7승 14패에 그치며 하위권에 처졌던 대전 현대 다이넷은 전역한 이상민, 조성원과 새롭게 영입한 외국 선수 조니 맥도웰, 제이 웹 등의 합류 효과로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성공적인 프로 첫 시즌을 보낸 이상민은 곧바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고, 현대는 허재가 이끄는 기아를 꺾고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현대 농구단이 KCC에 인수되고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멤버 교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이상민은 꾸준히 추승균과 함께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특히 KCC가 전주로 연고지를 옮긴 뒤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03-2004시즌에는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MVP를 싹쓸이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답게 스타성 또한 대단했다. 2001-2002시즌부터 올스타 선발에 팬 투표가 도입된 가운데 1위는 매년 이상민의 몫이었다. 은퇴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9-2010시즌까지 9시즌 연속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다. 다만, 그게 모두 KCC 소속으로 이뤄낸 결과는 아니었다. 

2006-2007시즌 창단 첫 최하위에 머문 KCC가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어 서장훈, 임재현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말았다. KCC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민이 서장훈의 FA 보상선수로 지목된 것이다. KCC는 이적생인 서장훈, 임재현과 더불어 추승균을 보상선수로 지정했고, 명단에서 빠진 이상민이 삼성으로 가게 됐다.

팬과 선수 모두에게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KCC 유니폼을 입은 서장훈 또한 연세대 선배 이상민의 존재를 강조했던 터였다. 그렇게 KBL 최고 인기스타였던 이상민은 전주를 떠나갔다.

이상민의 이적 후 삼성은 이상민과 강혁, 이정석, 이원수(개명 후 이시준) 등으로 가드 왕국을 구축하며 강한 전력을 선보였다. 서울로 둥지를 옮긴 컴퓨터 가드는 삼성에서 뛴 세 시즌 동안 두 번이나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고, 삼성의 인기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급부상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에서 코치를 거쳐 오랜 시간 감독 생활까지 한 이상민. 2021-2022시즌 도중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그는 한동안 휴식을 취한 뒤 이번 비시즌 친정팀인 KCC에 코치로 부임하며 컴백을 알렸다.

강혁
(1999년 삼성 입단 → 2011년 전자랜드 이적)

이상민이 KCC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다가 삼성으로 이적을 경험했다면, 강혁은 삼성을 대표하는 원클럽맨이었지만 커리어 말년에 팀을 옮기게 된 케이스다. 강혁은 1999년 삼성에 입단한 뒤 군입대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10시즌을 썬더스에서 뛰었다. 

강혁은 운동 능력이 폭발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으나 내실이 탄탄한 유형의 선수였다. 영리한 BQ가 그의 장수 비결이었고, 2대2 게임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빅맨을 살려주는 능력이 뛰어났다. 준수한 슈팅 능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강혁과 함께한 시절 썬더스는 매년 플레이오프로 향하던 팀이었다. 군에 입대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강혁이 활약한 시즌에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는 1년 후배 이규섭과 함께 ‘강호’ 삼성 썬더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규섭과 강혁의 운명은 커리어 막판에 갈렸다. 이규섭이 삼성에서 은퇴하며 영원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게 된 반면, 강혁은 타 팀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변화에 착수한 삼성은 2011년 FA 자격을 얻은 강혁을 붙잡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를 이병석-김태형과 맞바꾸는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자랜드에 보냈다.

운명의 장난처럼 강혁과의 이별 후 농구 명가 삼성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강혁이 떠난 직후 치른 2011-2012시즌 삼성은 9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이 깨지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후의 행보도 오랜 시간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 중 하나로 삼성이 보여왔던 모습에 미치지 못하는 중이다.

반면 강혁은 전자랜드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내며 현역 생활 막바지를 불태웠다. 30대 중반에 도달했지만 강혁은 여전히 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베테랑이었고, 그를 데려간 전자랜드는 가드진을 더욱 튼튼히 하며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조성민
(2006년 KTF 입단 → 2017년 LG 이적)

조성민은 KT의 부산 연고 시절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신인 시절이었던 2006-2007시즌 챔피언결정전 무대에서 양동근의 전담 수비수로 나서며 제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상무 시절을 제외하면 총 9시즌 동안 KT에서 활약했다. 

특히 모션 오펜스 중심의 전창진 감독 체제에서 조성민은 리그 정상급 슈팅 가드로 이름을 날렸다. 2013-2014시즌에는 54경기에 모두 출전,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평균 15.0점에 3점 성공률 45.4%를 기록하며 역대급 슈터 반열에 올랐다. 국가대표팀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며 ‘조선의 슈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KT의 상징과도 같았던 조성민도 KT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하락세를 겪던 KT는 리빌딩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고, 조성민을 LG에 내주고 김영환과 1라운드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당연히 프랜차이즈 스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을 접한 KT 팬들은 당연하게도 엄청난 아쉬움을 표했다.

KT로선 조성민과의 이별은 뼈를 깎는 결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트레이드 승자가 됐다. 조성민과 트레이드된 김영환은 KT의 주축 포워드로 오랜 시간 코트를 누볐고,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코치로 부임했다. 결정적으로 KT가 LG로부터 받아왔던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은 특급 포워드 유망주 양홍석 지명으로 연결됐다. 

미래 지명권까지 내주며 올인에 나섰던 LG의 선택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시래의 전역과 조성민 영입으로 대반전을 노렸던 LG는 2016-2017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던 조성민은 기대만큼의 영입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허일영
(2009년 오리온스 입단 → 2021년 SK 이적)

위의 선수들이 모두 본인이 아닌 구단의 선택으로 원클럽맨 생활을 마감한 반면, 허일영은 본인의 결정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생활이 마무리됐다. 그는 FA 이적을 통해 변화를 선택한 케이스다.

건국대 출신의 장신 슈터 허일영은 오리온의 대구 시절 막바지인 2009년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했다. 이때 허일영과 같이 오리온에 입단했던 드래프트 동기 중 한 명이 데이원을 거쳐 소노 소속으로 뛰며 원클럽맨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김강선이다.

허일영은 오리온에서 최하위와 정상을 모두 경험해본 선수다. 데뷔 초에는 김승현의 전성기가 지난 뒤 흔들리며 팀이 하위권을 전전했지만, 상무 전역 후 오리온은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으로 도약했다. 당연히 허일영 또한 추일승 감독의 포워드 농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허물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오리온 프랜차이즈 스타 허일영은 2021년,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결단을 내렸다. FA 이적을 통해 오리온을 떠나 SK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허일영은 당시 인터뷰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한 끝에 이적을 결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원소속팀에서도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변화를 택한 것이다.

이적 후 허일영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경쟁력을 잃지 않으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적 첫해 SK는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며 강팀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돌아오는 시즌 또한 이적생 오세근의 가세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중이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