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호] 너희는 2점씩 올리니? 우리는 3점씩 올려!

캐롯의 양궁 농구는 왜 통하는가?

2023-02-21     박진호 기자

“그저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우린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게 현실이야. 최대한 버티는 거지 뭐.”

한때 단독 2위까지 올라갔지만 김승기 캐롯 감독은 팀 전력의 한계를 강조하며 시즌 행보에 대해 쉽지 않다는 의견을 계속 피력했다. 그의 말대로 캐롯은 연패에 빠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했다. 여전히 5할 승률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단독 5위를 지키고 있다.

5라운드 중반을 넘어선 상황에서 4위와 3.5경기 차로 벌어져 있지만 치열하게 6위 싸움을 벌이는 팀들에게는 4.5경기 차로 앞서 있다. 플레이오프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문법과는 다르다
캐롯의 농구는 다른 팀들과는 다르다. 아니, 우리가 그동안 ‘농구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상식과 다른 형태의 농구를 취하고 있다.

우선 리바운드가 약하다. 캐롯의 이번 시즌 리바운드는 평균 30.8개로 리그 최하위다. 9위 한국가스공사와 평균 2.4개나 차이가 난다. 압도적인 꼴찌다.

리바운드는 오랫동안 농구에서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공식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있는 슬램덩크의 무수한 명언 중 가장 먼저 등장한 말도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였다.

슈터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근 NBA에서는 야투율이 리바운드보다 승리 기여도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결과도 나왔지만, 기능과 신체능력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한국 농구에서는 제공권의 장악이 승리를 위한 가장 필수요소였다.

실제로 이번 시즌도 5할 이상의 승률을 올리고 있는 팀 중 캐롯을 제외한 팀들은 모두 리바운드가 평균 35개 이상이다. 경기당 3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고도 승률 5할에 미치지 못한 팀은 DB가 유일하다.

김승기 캐롯 감독은 리바운드 문제에 대해 특별히 고민을 나타내지 않는다.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리바운드에서 투지, 의지, 기술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신장과 높이를 갖추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인사이드가 상대보다 약하고, 4번 자원이 취약하다. 전력구성상 기본적인 출발점에서 상대보다 떨어지는 데, 그걸 더 잘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많이 못 잡지만, 많이 뺏으니까 괜찮다”고 덧붙인다. 현재 캐롯의 경기당 스틸은 7.5개로 리그 1위다.

기록만으로 단순화했을 때 캐롯의 수비를 ‘리바운드 대신 스틸’로 정의한다면, 공격은 ‘양궁농구’라고 할 수 있다. 캐롯은 이번 시즌 경기당 34.8개의 3점슛을 시도했다. 2점슛은 32.4개다. KBL 역사에서 3점슛이 2점슛보다 시도가 많았던 팀은 없었다. 이번 시즌 캐롯이 최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뺏는 수비’와 많은 3점슛은 사실 ‘김승기 농구’의 DNA와도 같다.

캐롯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KGC인삼공사를 맡아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김승기 감독은 오랫동안 KGC에서 이런 색깔의 농구를 보여줬다. 김승기 감독이 KGC를 맡았던 2015-2016시즌부터 지난해까지 KGC는 평균 26.6개의 3점슛을 시도해 리그에서 가장 3점슛을 많이 던진 팀이었다. 2위와 평균 2.4개의 차이를 보인다.

KGC는 김승기 감독이 이끌었던 7시즌 중 3점슛을 가장 많이 던진 팀으로 시즌을 마친 것이 5번이며, 특히 2018-2019시즌부터는 4년 연속으로 최다 3점슛 시도 팀이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2018-2019시즌 KBL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3점슛을 30개 이상 시도한 팀(30.5개)으로 이름을 남겼고, 지난 시즌에는 이를 넘어 32.7개의 3점슛을 시도했다.

수치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KGC는 이번 시즌에도 경기당 26.7개의 3점슛을 던지며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 외곽 주포 전성현의 이적을 고려하면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캐롯은 김승기 감독 부임 후, 이러한 KGC의 수치를 훌쩍 넘었다. 난사로 끝나지 않는다. 많이 던지는 만큼 많이 넣기도 한다.

지난해 KGC는 경기당 11.2개의 3점슛을 성공해 2000-2001시즌의 LG(11.4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점슛을 넣는 팀이 됐다. 그리고 올해 캐롯은 이를 뛰어 넘었다. 평균 12.0개의 3점슛을 적중시키고 있다. 팀 득점 4위인 캐롯의 총 득점에서 3점슛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44.3%. 리그 평균이 29.2%임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치다. 이 비율 2위인 KGC보다 무려 10% 이상 높다.

지난 시즌 캐롯(오리온 시절)이 경기당 21.1개의 3점슛을 시도(8위)했고, 전체 득점에서 3점슛 비율이 27.1%였다는 것을 볼 때, 전성현 영입이라는 변수를 대입해도 완전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으로 대표되는 NBA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도 3점슛 비율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다. 휴스턴 로케츠가 2017-2018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2점슛보다 3점슛을 많이 던졌는데, 이는 ‘페인트 존 안에서 2점슛을 던지고, 그 외에는 3점슛으로 공략할 때가 확률상 기대 득점이 가장 높다’는 대릴 모리 전 단장의 이른바 ‘모리볼’이 가져온 효과였다.

캐롯의 농구는 이때의 휴스턴과 같은 맥락일까? 김승기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몰라. 사기 쳐서 이기는 거지. 우리가 그런 게 어딨어?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지. 상황이 안 된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죠.”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농구

이규섭 SPOTV 해설위원은 캐롯이 보여주고 있는 농구에 대해 “최종적인 결과를 떠나 KBL에 확실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감독의 성향과 팀 구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나타나는 NBA에 비해 한국 농구는 전체적으로 모든 팀들이 비슷한 흐름을 추종한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대부분의 팀들이 ‘강한 수비’와 ‘빠른 트렌지션’을 강조했고, KBL의 핵심 키워드는 ‘빠른 농구’가 됐다.

이 위원은 “적어도 캐롯이 획일화 된 KBL 흐름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트렌드를 만들었다는 부분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캐롯의 ‘양궁농구’에 대해 “단순히 3점슛을 많이 던지기만 하는 농구가 아니다. 무작정 3점슛을 던지란다고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특정 선수한테 그냥 3점슛을 계속 던지라고 해도 못 던진다. 던지는 것 자체도 기술이다. 그냥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농구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구성했고, 그 선수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캐롯은 스페이싱이 좋다. 김승기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시스템을 잘 사용한다. 누구도 캐롯이 지금만큼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이 자체로 돌풍”이라고 덧붙였다.

정영삼 해설위원도 “3점슛 위주의 농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잘 만들었고,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들의 구성이 핵심”이라며 이 위원과 같은 생각을 전했다. 캐롯의 농구가 통하는 이유다.

그 핵심에는 이번 시즌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슈터 전성현이 있다. 최근에는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 매 경기 이어가던 연속 3점슛 기록도 중단 됐다. 그러나 경기 당 3.8개의 3점슛을 39.5%의 확률로 적중시키고 있다. 올스타전 휴식기 무렵까지는 매 경기 4개 이상을 성공하며 야투율도 40%가 넘었다.

전성현은 찬스를 기다리다가 받아서 던지는 선수가 아니다. 수비를 달고도 거침없이 3점슛을 성공시킨다. 터프슛도 거침이 없고, 심지어 거리에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

단순히 슛만 잘 던지는 선수도 아니다. 상대가 슛을 막는데 집중하면 허점을 파고들어 돌파를 하거나 미드레인지 점퍼로 득점을 올린다. 때로는 상대 수비를 끌어 모은 후 반대편의 찬스를 봐주기도 한다. 지난 시즌에도 이미 리그를 대표하는 슈터였지만, 이번 시즌에는 더 진화한 모습이다.

여기에 이정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선수들에게 칭찬이 인색한 김승기 감독마저 이정현의 슈팅 능력을 인정했다.

김 감독은 “우리가 꾸준히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전성현 혼자 해서는 안 된다. 전성현이 끌면, 이정현이 밀어주면서 다른 선수들도 자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규섭 해설위원은 “캐롯의 잘 구성된 선수들의 핵심은 역시 전성현과 이정현이다. 여기에 내외곽이 모두 가능한 디드릭 로슨도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짚었다.

캐롯이 펼치는 색다른 농구는 팬들에게도 확실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이번 시즌 4라운드를 기준으로 캐롯은 작년 대비 평균 관중에 151%나 증가했다. KCC에 이어 관중 증가율 2위다.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아...
그렇다면 캐롯의 돌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극단적으로 색깔이 뚜렷한 캐롯의 상승세에 대해 이규섭 위원과 정영삼 위원은 ‘어느 선에서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두 위원 모두 리바운드의 문제는 간과할 수 없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높이의 약점과 4번 포지션의 부재, 얇은 선수층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캐롯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부분에 동의하며 현재 캐롯의 농구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맞지만, 마지막까지 상위권을 위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정영삼 위원은 “캐롯의 농구는 재미있다. 수비 로테이션이 좋고, 스틸과 블록도 좋다. 곧 수비가 된다는 것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바운드 열세로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더 줄 수밖에 없고, 반대로 속공을 나갈 기회도 줄어든다. 잘 버티고는 있지만 리바운드는 결국 상위권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무릎 연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데이비드 사이먼의 부재가 아쉽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정 위원은 “사이먼과 로슨은 전체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사이먼은 때에 따라서는 골밑에서 트랩 없이 혼자서도 버텨줄 수가 있다는 점에서 로슨과 차이가 있다. 사이먼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로테이션을 가동해야 하는 것은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캐롯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이먼의 부재는 이규섭 위원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위원은 “김승기 감독이 말한 것처럼 로슨이 필요할 때가 있고, 사이먼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이먼이 없다. 조나단 알렛지가 캐롯 농구와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사이먼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캐롯과 같은 농구를 하기 위해서는 영리한 4번 선수가 필요하다. 최현민이 이번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김승기 감독도 이를 인정하면서도 꾸준히 4번이 부족하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NBA에서 외곽 농구를 펼쳤던 휴스턴에는 PJ 터커가 있었고, 골든스테이트에는 드레이먼드 그린이 있었다. 하지만 캐롯은 이 부분에서 솔직히 약점이 존재한다. 결국 캐롯의 돌풍은 어느 지점에서는 한계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승기 감독의 말처럼 전력을 더 다지고 4번 포지션을 보완한다면 지금의 농구에서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영삼 위원은 빅맨들의 분전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정 위원은 “결국 높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리바운드를 센터가 혼자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높이를 어느 정도 상쇄하고 리바운드 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빅맨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서 대안을 발견하는 게 단기적으로는 현재 캐롯의 약점을 상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루키 2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현 시점의 결과로 스탯을 수정하였습니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