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산소 같은 남자의 전설과 허웅의 시대

2023-01-11     박진호 기자

대한민국에 농구가 보급된 것은 1907년. 어느 덧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KBL도 출범 25년이 넘었다.

한국 스포츠사에 수많은 영웅들이 자리 잡은 것처럼 농구에도 많은 별들이 뜨고 졌다. 한국 농구 역사에서 ‘스타’를 언급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스타’라는 단어를 자신의 대명사로 바꿔버린 인물, 바로 이상민 전 삼성 썬더스 감독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허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상민이라는 이름은 농구 인기의 황금기인 90년대의 농구대잔치를 관통한다.

이후 KBL의 출범까지 이어진 그의 인기는 한국의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압도적이었다. 황금기의 주역으로 한 획을 그었던 과거의 스타들 모두 당시의 인기를 언급할 때, 첨단에는 이상민 감독을 등장시킨다. 당시 인기의 척도나 다름없었던 ‘오빠부대’의 총사령관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였다.

그가 2010년 은퇴한 후 KBL은 스타 부재에 시달렸다. 많은 선수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전설로 성장했지만, 이상민의 아우라를 넘겨받은 이는 없었다.

농구 인기의 하락과 더불어 KBL 및 각 구단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를 갈구했지만, 거의 10년의 세월에 그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했다. 허웅이다. KBL은 몰라도, 그의 소속팀 KCC는 몰라도, 허웅을 아는 사람은 존재한다. 리그를 견인하는 스타파워의 주인공이 드디어 등장했다.

어마어마한 그의 인기는 전설로 잊혔던 이상민 감독을 다시 소환한다. 과연 허웅의 인기는 과거 ‘선수 이상민’과 비교해 어느 정도일까?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질문일 수 있다. NBA에서 수없이 가십으로 다루는 ‘마이클 조던 vs 르브론 제임스’의 비교만큼이나 소모적이다.

비교 자체에 절대적인 의미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농구에서 사라졌던 아이콘의 재림에, 이전의 주인공을 추억하고 새 주인공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 지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민 감독님처럼 되고 싶죠. 농구도 잘하셨고, 인기도 많으셨으니까. 나중에 은퇴한 뒤에도 팬들의 기억에 그런 선수로 남고 싶어요.”

지난 해 7월, 허웅은 궁극적으로 이상민 전 감독과 같은 길을 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 그리고 농구를 늦게 접한 이들에게 ‘이상민의 과거‘는 동화 속 전설처럼 까마득하고 현실감이 없다. 이상민의 시대를 겪었고, 허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관계자들은 이들의 인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A 국장은 “사실 누구의 인기가 더 높았냐고 절대적으로 묻는다면 이상민일 것이다. 체육관에서 보이는 팬들의 힘은 정말 압도적이었다”고 짚었다.

B 국장 역시 “당시 이상민의 인기는 서태지와 비교가 됐다. 지금으로 치면 허웅의 인기를 BTS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상민의 인기는 거의 신드롬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 잔뼈가 굵은 이들은 이상민과 허웅을 단순 비교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인다.

A 국장은 “이는 단순히 보이는 것만 갖고 평가하는 것이다. 당시의 사회 여건과 지금은 다르다. 당시 농구는 다른 종목과 경쟁을 한 반면, 지금은 다른 산업과도 경쟁을 해야 한다. 대중들이 스포츠 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어마어마한 시대다. 이상민과 허웅을 같은 조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B 국장은 농구 자체의 인기도 다르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농구의 인기가 당시와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농구 선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조건 자체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C 국장은 “이상민의 인기는 종목이나 스포츠를 초월해서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의 농구 인기가 이상민이 활약하던 시절과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허웅 역시 이상민과 비등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이들은 팬들의 성향도 과거와 지금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C 국장은 “소위 극성, 열성이라고 말하는 팬들의 수위는 과거가 훨씬 높았다. 어찌 보면 거친 팬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상민이 하는 걸 못하게 하는 상대 선수는 욕을 먹었다. 적어도 지금 허웅을 응원하는 팬들이 허웅의 상대 선수들을 욕하지는 않지 않나”고 반문한다.

A 국장도 같은 생각. 그는 “이상민이 삼성으로 이적한 첫 시즌, 전주에 처음으로 원정 경기를 갔는데, 체육관을 채운 관중의 절반이 이상민을 연호했다. KCC 선수가 이상민에게 파울을 했다고, 자기 홈구장에서 팬들에게 협박성 욕설을 들었다. 홈팀에 대한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놀라운 일”이라고 회상했다.

B 국장은 “시대가 변하고 발전한 것처럼 팬들의 문화도 성숙한 게 아닐까?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허웅의 팬들은 과거의 열성적이었던 오빠부대들에 비하면 상당히 매너가 있다. 당시에도 팬레터나 선물과 같은 문화는 있었지만, 허웅의 팬들은 온라인이나 미디어, MD 상품 등을 통해서도 그 영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C 국장은 “둘 중 누구의 인기가 더 대단한지는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이상민이 톱이었다. 이상민의 인기 절정기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 후 은퇴하는 시점까지도 이상민을 대체하는 아이콘이 나오지 않았다. 은퇴하던 시즌까지도 올스타 투표 1위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약 20년을 건너 허웅이 톱으로 등장했다. 20년 만에 등장한 톱이자 아이콘이다. 과거의 거탑이었던 이상민과 비교해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락한 농구의 인기를 끄집어 올리고 있는 허웅에 대해서는 대단하다는 시점에서 해석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약 5억 년 전 고생대. 지구의 대기 중 산소 농도는 35%에 이르렀다. 산소 농도가 0.5%만 줄어도 호흡이 힘들어지는데, 당시는 현재(21%)와 비교해 엄청나게 높은 산소 농도를 자랑했다. 이러한 산소의 시대는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이어져, 지구에 다양한 생물종이 급격히 늘어나고 진화했으며 다양해졌다. 바다 생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현상도 이어졌다.

한국 농구에도 ‘산소 같은 남자’ 이상민이 존재하던 시절, 많은 인기가 존재했고, 다양한 팬들이 농구장을 호령했다. 급격한 성장의 시대였다. 눈에 보이지 않던 팬들, 이전에 없던 팬들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지구는 산소의 농도가 10%대로 하락하면서 페름기 대멸종을 맞이했다. 지구 생물의 90% 이상이 멸종했다는 시기다. 농구 역시 ‘산소 같은 남자’가 사라진 시점을 전후해 긴 암흑기를 맞았다. 그리고 허웅은 그런 시기에 새로운 희망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과거 농구 황금기 시절의 선수들보다 훨씬 팬들에게 친화적이고 미디어에도 적극적이다. 허웅으로 인한 선순환은 다른 선수들과 종목 자체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농구에는 새로운 기회다.

전창진 전주 KCC 이지스 감독
이상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프로보다는 농구대잔치 시절, 대학 때 그 인기가 정말 절정이었다. 그 인기가 프로까지 이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허)웅이가 그걸 넘어설 만큼의 인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오전 운동 끝나고 나서 팬들이 커피를 갖고 왔길래 웅이한테 "너 이런 걸 팬들에게 다 어떻게 갚느냐"고 물었더니 "농구로 갚아야죠"라고 하더라. 참 좋은 생각이다. 팬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팬들에게 성실한 선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때의 이상민, 지금의 허웅 모두 대단한 인기의 선수들인데, 누구의 인기가 더 높았을까... 글쎄?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지 않나? 아무래도 나는 지금 허웅을 데리고 있는 감독이다.(웃음)

추승균 SPOTV 해설위원
(이)상민이 형의 인기는 대단했다. 말로 못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하고 가늠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KCC가 잠실 원정을 가면 상민이 형 때문에 그 큰 잠실체육관이 거의 꽉 찼다. 상민이 형 이후 그 정도까지의 스타 파워를 보여준 선수는 없다. 그런 선수와 같은 팀으로 뛰면 플러스 효과도 많다. 우리 팀 팬이 경기장에 많다보니, 경기 때 아드레날린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경기가 재밌다. 상민이 형의 팬들이 우리 팀 선수들도 응원하고, 또 그렇게 내 팬이 늘기도 한다. 지금 허웅의 인기도 상당하다. 우리 때와는 팬심이 또 다르다고 하더라. 대단한 것이다. 해설을 위해 경기장을 다녀보면 허웅이 뛰는 경기는 확실히 관중이 많다. 허웅 효과는 분명하다. 미디어에 노출도 많이 되면서 KBL 인기도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구단들이 다른 선수들도 미디어 노출의 기회가 생기면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정영삼 SPOTV 해설위원
이상민 선배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내게는 엄청난 우상이셨고, 농구대스타가 아니라 연예인 같은 느낌,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도 있었다. 신인 시절에 삼성으로 이적했던 (이상민)감독님을 막다가 파울을 한 적이 있는데, 관중석에서 여성팬들의 비난과 욕설이 정말 말도 못하게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 정도의 인기였다. 상대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부럽기도 했다. 허웅의 인기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한국가스공사 개막전에서 내가 은퇴식을 했는데 상대가 공교롭게도 KCC였다. 관중이 3층까지 찼다. 아주 잠깐 '내 은퇴식에 이렇게 많은 팬들이 와주셨구나'라고 생각했다가, 허웅의 팬들인 걸 알았다. '허웅 버프'를 제대로 받은 날이다. 그래도 은퇴식인데 많은 분들 앞에서 하는 게 좋지 않나? 허웅한테 너무 고마웠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그 시절의 이상민 선배 인기가 더 엄청났다고 느낀다. 하지만 허웅의 인기 또한 지금 농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선배 입장에서 농구 인기를 이끌고 있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허훈 국군체육부대
형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 같다. 밖에서 봤을 때랑은 또 느낌이 다르다. 부러운 것보다는 이번에 올스타전을 수원에서 하는데 뛰지 못하는 게 아쉽다. 아직까지 올스타전 현장을 방문할 계획은 없지만 생각해보겠다. 이상민 감독님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얘기는 전부터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민 감독님이 선수로 뛰시는 걸 직접 본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직접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웃음) 실감이 확 안 나서 개인적으로는 형 인기가 더 많은 것 같다. 형이나 나나 이상민 감독님이 갖고 있는 많은 기록을 넘을 수 있다면 당연히 영광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특별하게 기록을 세우지 않아도, 지금처럼 응원을 받으면서 뛰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전역하고 나서도 서로 힘을 보태면서 꾸준히 좋은 선수로 뛰고 싶다.

최현식 KBL 홍보팀장
정말 어마어마했다. 선수 이상민을 보기 위해 구름 같은 관중이 몰렸다. 적극적인 팬들도 많았고, 그로 인해 미디어에 많은 관심 받았다. 이상민은 그런 인기를 주도했다. 똑같은 잣대를 갖고 볼 수는 없지만, 허웅도 현재 트렌드로 본다면 이상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세대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레거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상민이 포커싱을 받았다면, 지금은 소셜미디어를 포함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받고 있다. 선수의 마인드도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선수는 운동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각종 미디어 채널을 활용하고 자기 PR도 하는 시대다. 성실하고 겸손하고, 농구를 열심히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점인 것 같다.

손대범 KBS N 해설위원
이상민의 연세대 전성시대에 PC 통신 농구동호회를 운영했기에 그 인기가 생생히 기억난다. 경기가 끝나면 채팅방이 바글바글 했다. '오빠 응원'부터 전문적인 분석까지 다양한 글도 올라왔다. 지금의 ‘I LOVE NBA’나 ‘NBA 마니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뜨거웠다. 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체육관 앞 열기도 뜨거웠다. 지금처럼 SNS가 있었다면 더 뜨거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허웅의 인기도 많은 곳에서 체감이 가능하다. 경기장은 당연하고, SNS에서 허웅이 태그된 게시물의 '좋아요' 횟수만 봐도 알 수 있다. 농구를 모르는 분들도 허웅은 안다. 허재 감독의 아들로든, KBL 스타로든, 혹은 예능에 나온 스포츠 선수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허웅을 ‘훈남’으로 인식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일반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언급되는 농구선수가 허웅, 허훈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새로운 종류의 인기라고 생각한다. 농구대잔치 시대보다도 더 체계적인 것 같다. 진화했다고 해야 할까. 선수 개인의 인기는 이상민 이상의 영향력이라 생각한다. 허웅, 허훈 형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농구 저변 확대로 연결되지 못해 아쉽지만, 그건 두 형제 탓은 아니다. 이상민의 경우, 무섭게 폭발적이었던 한국의 농구인기도 한몫 했고, 상호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넘어섰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긴 그렇지만, 시대적 환경을 고려해볼 때 이상민 이후 나온 그 어떤 스타와 비교해도 이런 선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농구로 보았을 때 이상민은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농구대잔치 우승, 트리플더블,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KBL의 위대한 선수’ 리스트에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중요한 인물이다. 모두 전성기에 달성한 것이다. 허웅도 득점과 슈팅에 있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만일 프라임타임에 우승까지 달성한다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사진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