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의 깔깔농구] '더 빠르게!' NBA, 80년대로 회귀 중

2017-01-04     이승기 기자
NBA의 前 총재 데이비드 스턴. 그는 NBA의 부흥과 세계화를 이끈 장본인이다. 리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어 구해냈던 구세주이기도 하다 ⓒ NBA 미디어 센트럴


[루키] 이승기 기자 = NBA 농구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NBA를 오래 지켜봐 온 팬들이라면 최근 몇 시즌 동안 각종 대기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일례로, 최근 며칠 동안 아이재아 토마스, 제임스 하든, 지미 버틀러가 차례로 5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 시즌 벌써 '8명'의 각기 다른 선수가 50점을 넘겼다. 이는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1989-90시즌, 2015-16시즌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 시즌 러셀 웨스트브룩과 하든, 야니스 아데토쿤보, 르브론 제임스 등이 앞다투어 트리플-더블을 달성하고 있다.

근 몇 년 동안 갑자기 폭발적인 기록들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NBA 역대 경기 페이스와 평균득점의 변화를 살펴봤다.

 

★ 시대의 흐름

그랬다. 리그의 경기 페이스가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각종 기록이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NBA 선수들의 평균 기록도 볼륨이 커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한 경기 100득점(윌트 체임벌린)',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오스카 로버트슨)', '양 팀 합계 최다득점(370점)' 등 NBA의 각종 대기록은 대부분 1990년대 이전에 작성되었다. (※ 물론 1990년대를 지배한 마이클 조던은 예외다. '신'은 트렌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1990년대 이전의 경기는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진행됐다. 또, 수비 전술이 완벽히 갖춰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공격농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히 각종 기록이 풍성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저득점 수비농구 시대

이러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 가공할 수비를 앞세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리그에 수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1990년대 6번의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불스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팀이었다. 불스는 막강한 수비력을 토대로 수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곧 리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뉴욕 닉스, 휴스턴 로케츠, 마이애미 히트 등 강력한 수비를 무기로 하는 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 대다수의 팀들이 수비를 강조하면서 리그 전체의 경기 페이스와 평균득점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998년 NBA는 직장폐쇄 사태를 맞이한다. 이 때문에 시즌 개막이 미뤄졌고, 결국 팀당 32경기나 단축된 50경기로 치러지게 됐다. 파업의 여파로 많은 선수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1998-99시즌에 임하게 됐고, 떨어진 경기력은 리그의 평균 득점(91.6점)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 NBA는 2011-12시즌을 앞두고 비슷한 사례를 다시 겪었다. 상승하던 리그 페이스와 평균득점이 2011-12시즌에만 유독 하락한 이유다.)

2001-02시즌을 앞두고, 리그는 '지역방어의 부분적 도입' 등 여러 규정에 변화를 줬다. 당시 성행하던 아이솔레이션 위주의 단조로운 공격을 방지하고, 득점 루트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지역방어가 '수비농구' 트렌드를 더욱 심화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2003-04시즌 리그의 평균득점은 93.4점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 변화의 물결

저득점 수비농구가 근 10년 가까이 지속되자, 팬들로부터 '재미없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시청률, 상품 판매 등 각종 인기도 측정 지표가 추락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NBA의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다.

NBA 사무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리그 평균득점을 끌어올리고 공격농구를 장려하기 위해 몇 가지 룰을 개정해왔다. 노차징존을 신설(1997-98)하고, 하프코트 바이얼레이션을 10초에서 8초로 줄이고(2000-01), '핸드체킹' 규정을 강화(2004-05)해 공격자에게 유리하도록 한 것 등은 모두 그러한 일환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2000년대 중반 이후, 리그의 경기 페이스와 평균득점이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 3점슛의 고효율성이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팀들이 3점슛 시도를 늘리기 시작한 것도 평균득점이 다시 상승하게 된 원인 중 하나다. 2000년대 중반 피닉스 선즈, 시애틀 슈퍼소닉스(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전신), 워싱턴 위저즈 등이 폭발적인 3점슛을 앞세워 상대의 지역방어를 초토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08-09시즌에는 1994-95시즌 이후 처음으로 리그 평균득점 100점을 넘겼다. 이러한 경향은 2010년대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두 시즌의 증가 폭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번 시즌 NBA의 경기 페이스와 평균득점은 1990년대 초반과 맞먹는다. 무려 25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다시 1980년대의 화끈한 공격농구를 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처럼 NBA는 더욱 화려하고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팬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선수들의 각종 대기록이 쏟아지는 것은 이에 따른 부산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부임과 동시에 '다득점 공격농구'를 부르짖은 김영기 총재. 실제로 그가 부임한지 3년도 지나지 않아 리그 평균 득점이 7.5점이나 늘었다 ⓒ KBL


♣ [And 1] 조금씩 변화하는 KBL, 희망은 있다

2014년 부임한 KBL의 김영기 총재는 '다득점 공격농구'를 표방했다. 그는 프로농구가 출범했던 1990년대처럼 득점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체계적인 계획보다는 그때 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김영기 총재는 이를 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반성한 바 있다.

KBL은 속공과 빠른 농구를 장려하기 위해 로컬 규정으로 U1, U2 파울을 구분했으나,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크게 혼선을 빚기도 했다. 결국 2014-15시즌 종료 후, U1, U2 파울을 'U 파울'로 통합하고 FIBA의 규정(자유투 2개 + 공격권 부여)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김영기 총재는 외국인선수 제도도 손을 봤다. 193cm 이하의 단신 외국인선수를 선발하도록 했고, 두 외국인선수의 제한적 동시출전 제도도 만들었다.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다득점 농구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효과를 봤다. 김영기 총재가 부임하기 직전 시즌인 2013-14시즌, KBL의 평균 득점은 고작 73.4점밖에 안 됐다. 부임 세 번째 시즌인 2016-17시즌 현재, KBL의 평균 득점은 80.9점으로 껑충 뛰었다.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무려 7.5점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출장시간이 늘어난 외국인선수들은 물론, 국내선수들의 평균 기록도 상승하고 있다. 특히 안양 KGC의 이정현은 평균 17.4점(국내 1위) 2.8리바운드 5.7어시스트(전체 5위) 1.9스틸(전체 2위)이라는 '외국인선수급' 기록을 내고 있다. KGC의 지난 시즌 평균 득점은 81.4점(1위)이었는데, 올해는 무려 88.1점(1위)에 달한다. 이정현은 이러한 화끈한 농구를 이끄는 첨병이다.

2014년 부임 당시 김영기 총재는 "평균득점이 곧 팬들의 만족도"라고 말했다. 여전히 이 의견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이해하게 됐다. "국내선수 득점왕의 평균기록이 10점대 초반이어서는 관심을 끌 수 없다"거나, "KBL 평균 득점을 85점까지 끌어올리겠다"던 발언은, 결국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팬들의 관심을 환기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지나친 저득점 수비농구가 주류를 형성하자, 리그의 인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사무국 차원에서 다득점 농구를 장려했다. 여기까지는 NBA나 KBL이나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NBA는 충분한 고려와 준비 과정을 거쳐 여러 규정을 도입했다는 것이고, KBL은 늘 그렇듯 무차별적인 '선 도입'으로 인해 각종 시행착오와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D리그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NBA은 어떤 규정을 도입하기 이전에, D리그를 통해 충분한 실험을 거친 후 세상에 내놓는다. KBL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리그와 선수들, 심판, 팬들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K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