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으로 대동단결' 댄토니의 남자들 ③
[루키] 이승기 기자 = 마이크 댄토니 감독은 2016-17시즌 휴스턴 로케츠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휴스턴에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닥치고 공격', 일명 '닥공'은 여전했다. 올 시즌에는 제임스 하든이 '댄토니의 남자'로 낙점 받았다. 그렇다면 과거 댄토니의 수혜를 입었던(?) 애제자들은 누가 있을까.
(2부에서 이어집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린새니티’
2011-12시즌 뉴욕은 대단히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선수들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줄부상까지 이어졌다.
시즌 초, 댄토니 감독은 가시방석에 앉아있었다. 닉스가 8승 15패의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는 사이, ‘댄토니 해고설’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이때, 댄토니의 구세주로 등장한 이가 바로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린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활약을 펼치며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에서 린은 벤치 멤버로 출전했다. 36분간 25점 5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활약하며 닉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모두가 우연인 줄 알았다. 철저하게 무명이었던 린이 지금까지 이런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댄토니 감독의 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보였던 것 같다. 댄토니는 바로 다음 경기였던 유타 재즈전에서 린을 선발 포인트가드로 기용했다. 린은 45분이나 뛰며 28점 8어시스트를 올렸다. 이번에도 닉스가 승리했다.
그 다음 경기는 워싱턴 위저즈와의 원정경기. 린은 크로스오버 드리블에 이은 호쾌한 슬램덩크를 터뜨리는 등 경기장 분위기를 장악했다. 23점 10어시스트. 또 다시 뉴욕의 승리.
이미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버드 대학 출신의 동양계 선수가 NBA 무대를 휩쓸고 있다니, 그야말로 만화 같은 일이 아닌가. 외신들도 앞 다투어 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다음 경기는 LA 레이커스와의 홈경기였다. 기자들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린의 활약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코비는 “이름은 들어봤는데, 얼마나 잘하는지는 아직 못 봐서 잘 모른다”고 답했다. 경기 후, 코비는 “제레미 린은 전 세계 어린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선수”라며 극찬했다. 이날 린은 38점 7어시스트를 폭발시키며 뉴욕의 승리를 주도했다. 팬들은 린에게 ‘린크레더블’, ‘린데렐라’ 등의 별명을 붙여줬다.
린의 활약은 한동안 이어졌다.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마지막 순간 게임 위닝 3점슛까지 터뜨렸다. 린은 뉴욕의 7연승을 이끌며 해당기간 동안 평균 24.4점 4.0리바운드 9.1어시스트 FG 51.2%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냈다. 린은 농구스타를 넘어, 세계적인 신드롬이자 문화현상이 됐다. ‘린새니티(Lin + Insanity, 제레미 린 광풍)’가 지구촌을 강타한 것이었다.
하지만 댄토니는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린의 신들린 활약에도 곧 한계가 찾아왔고, 닉스는 다시 연패에 빠졌다. 구단 수뇌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댄토니를 해고했다.
린은 처음 큰 활약을 한 네츠전을 기점으로 댄토니가 해고되기 전까지 19경기 동안 평균 20.4점 8.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감독이 마이크 우드슨으로 교체된 이후에는 7경기에 나서 평균 13.3점 5.4어시스트에 그쳤다. 댄토니가 팀을 떠나자, ‘댄토니 효과’도 귀신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시즌이 끝났을 때, 린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타임』 紙가 선정한 ‘201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첫 번째로 소개되는 영예도 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