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냐 명예냐' 슈퍼 팀의 역설 ①
[루키] 강하니 기자 =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상적인 라인업을 꿈꿔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혹은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한 팀에서 뛸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즐거움. 스포츠 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그런데 최근 NBA에서는 상상만 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우승 반지를 노리고 스타들이 한 팀에 뭉친 ‘슈퍼 팀’이 꾸준히 결성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같은 슈퍼 팀의 등장에 환호하지만, 누군가는 씁쓸해 하기도 한다. 어느새 NBA의 트렌드가 돼버린 슈퍼 팀의 결성. 과연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 도화선 그리고 우승제일주의
사실 최초를 따지는 것은 어렵다. 과거에도 스타 군단은 많았고, 누가 처음이냐고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다만 어떤 팀이 슈퍼 팀 결성의 도화선이 됐는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도화선이라는 표현은 시작점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부정적 뉘앙스는 최대한 배제하고 싶다.)
사실 찰스 바클리와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휴스턴 로케츠로 갔던 9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그들의 선택을 비판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바클리와 드렉슬러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한 팀의 에이스였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승 반지를 차지하지 못한 채 커리어 말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스타가 우승을 위해 이적하는 것은 ‘배신’, ‘영합’보다는 아름다운 최후의 도전처럼 여겨졌다.
2007년 보스턴 셀틱스에서 폴 피어스, 케빈 가넷, 레이 알렌이 뭉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어스, 가넷, 알렌이 처한 상황은 10년 전 바클리와 드렉슬러가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우승을 위해 수없이 노력하다 뭉친 ‘정의로운’ 반지 원정대였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 ‘빅 3’의 결성에 환호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우승에 성공했을 때, 빅 3의 이야기는 멋진 시나리오 한 편이 됐다.
문제는 보스턴의 빅 3 결성이 만든 도미노 효과였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는 보스턴에 막혀 두 차례나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드와이트 하워드를 중심으로 탄탄한 로스터를 구축한 올랜도 매직도 르브론을 무릎 꿇게 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연이어 우승에 실패하자 르브론은 비판에 직면했다. ‘큰 경기에 약하다’, ‘득점 본능이 부족하다’ 등의 말이 나왔다. 결국 르브론은 재도전 대신 빅 3 결성을 선택했다. 2010년 여름, 르브론은 TV 쇼에 출연해 너무나 유명한 그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 “남쪽 해안가로 저의 재능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르브론은 자신의 선택이 바클리나 드렉슬러처럼 혹은 가넷, 알렌, 피어스처럼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르브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아니 싸늘하기 보다는 무서울 정도로 분노했고 그를 경멸했다. ‘더 디시젼 쇼’를 열였던 2010년 여름, 르브론의 나이는 겨우 만 25살이었다. 르브론과 함께 마이애미에서 뭉친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역시 르브론과 비슷한 나이였다. 르브론이 처한 상황은 선배들과 너무나 달랐던 셈이다. 르브론을 좋아하던 팬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포스트 조던’을 기대했던 팬들은 르브론이 너무나 쉬운 길을 선택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르브론의 마이애미 이적은 도전이 아닌 영합으로 받아들여졌다.
르브론과 마이애미는 이후 4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리그 2연패에도 성공했다. 그러자 르브론에 대한 비난 여론도 약해졌다. 결국 아무리 많은 비판을 받아도 우승하면 모든 걸 희석시킬 수 있다는 통념이 알게 모르게 리그에 퍼졌다. ‘우승제일주의’혹은 ‘우승만능주의’라는 표현을 쓰면 적합할까. 르브론의 이적 이후 카멜로 앤써니, 드와이트 하워드가 만든 ‘FA 드라마’의 원인도 결국엔 우승을 위해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슈퍼스타들의 ‘우승제일주의’였다.
# 그들이 집착하는 이유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선수들은 왜 우승에 집착할까? 사실 NBA와 더불어 북미 4대 스포츠로 꼽히는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 트레이드를 요청하고 이적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NBA처럼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 프랜차이즈를 포기하고 비난 여론에 맞서면서까지 팀을 옮기진 않는다. NFL, NHL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미스포츠 리그 중 유독 NBA만 선수들이 우승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찰스 바클리, 클라이드 드렉슬러, 케빈 가넷, 레이 알렌은 사실 커리어만 놓고 보면 우승을 하지 못해도 전설로 남을 수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오직 우승을 위해 그들은 커리어 말년에 새 팀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렇다면 NBA 선수들은 왜 우승을 간절히 원하는 걸까?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징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농구는 엄연한 팀 스포츠다. 코트 위의 5명이, 로스터의 12명이 함께 승리를 만든다. 하지만 농구는 야구, 미식축구와 달리 ‘팀의 승리’와 ‘개인의 승리’가 겹치는 지점이 유난히 많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한 경기에 뛰는 선수가 적은 농구는 1명의 선수가 경기를 장악할 수 있는 스포츠다. 접전 상황에서 특정 선수 1명에게 슛 기회를 몰아줄 수도 있다. 자신의 타석이 아니면 적시타를 때릴 수 없는 야구, 자신의 포지션이 리시버가 아니면 극적인 터치다운을 성공할 수 없는 미식축구와 너무나 다른 경기 구조다.
결국 농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선수의 승리 = 팀의 승리’라는 공식이 잘 성립하는 편이다. 특히 한 팀을 이끄는 슈퍼스타의 경우 자신이 못하면 팀이 지고, 자신이 잘하면 팀이 이기는 경우가 한 시즌에도 수없이 나온다.
이런 농구의 특징은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를 바꿔놓았다. 자신이 잘하면, 팀도 승리할 수 있는 스포츠이니, 팀의 승리가 개인의 커리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NBA 파이널 우승은 한 선수가 커리어에서 이룩할 수 있는, ‘개인의 승리’의 정점에 있는 업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90년대부터 많은 선수들의 커리어가 우승 반지가 없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폄하되기 시작했다. 마이클 조던에 밀려 우승 반지를 거머쥐지 못했던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칼 말론, 레지 밀러 등은 각자의 팀에서 위대한 커리어를 보냈던 선수였음에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바클리와 말론은 말년에 우승을 위해 팀을 옮겼고, 레지 밀러는 2008년에 보스턴에서 복귀한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게리 페이튼은 레이커스, 마이애미로 이적하면서 결국 우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90년대는 ‘우승제일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리그에 입성한 밀레니엄 스타들이 우승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댈러스와의 끈끈한 애정으로 유명한 덕 노비츠키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이적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11년에 우승한 뒤로는 댈러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3년 드래프티들을 포함해 이후에 데뷔한 선수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리그의 거의 모든 스타들이 우승에 대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2부에서 계속...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