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볼 vs 빅볼' 당신의 선택은?
[루키] 강하니 기자 = 농구는 유기체다. 변하고, 또 변한다. ‘농구는 센터 놀음’이라는 말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또 그렇지 않다. 최근 NBA 우승 팀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농구는 센터가 아니라 가드, 포워드 놀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가드와 포워드가 경기를 지배하는 농구를 우리는 ‘스몰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센터가 경기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농구의 이름은 ‘빅볼’이다. 현대 농구의 두 줄기인 스몰볼과 빅볼. 당신은 어느 쪽에 서겠는가?
과거의 농구는 압도적인 체격을 지닌 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 루키 DB
# 림을 지배하는 높이의 힘
농구 선수의 프로필을 볼 때, 우리가 가장 처음 확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십중팔구는 바로 키일 것이다. 물론 농구뿐만 아니라 많은 스포츠가 선수의 체격을 중요시한다. 선수의 키를 프로필의 주요 정보로 등록하지 않는 스포츠는 없다. 하지만 농구에서 선수의 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특별하다. 키가 몇 센티 더 크냐, 작냐로 그 선수의 커리어가 달라진다. 지도자와 팬들이 그 선수를 보는 시각도 키 하나로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그만큼 농구에서 키는 특별하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유명호 감독이 변덕규에게 했던 말을 모두가 기억한다. “다른 것은 가르칠 수 있지만, 키를 크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농구에서 키는 왜 특별한 걸까? 그것은 바로 농구가 ‘거리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슛을 던지는 타점에서 림까지의 수평거리와 수직거리가 가까울수록 슛의 성공률은 올라간다. 키가 큰 농구선수는 자신의 슛 타점과 림 사이의 수직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덩달아 수비수의 슛 방해를 덜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이점은 키가 큰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간혹 말도 안 되는 점프력을 바탕으로 자신과 림의 수직거리를 아주 손쉽게 좁혀버리는 선수들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점프력의 소유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차라리 키가 큰 게 낫다. 큰 키에 점프력까지 평균 이상이면 그게 최고니까. 그래서 이런 격언이 만들어진 것이다. 농구는 센터 놀음이라고.
NBA를 지배해온 전설들의 상당수는 센터들이었다. 이제는 파이널 MVP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까지 붙어버린 빌 러셀, NBA 역사상 최고의 괴물로 꼽히는 윌트 체임벌린, 압도적인 NBA 통산 득점 1위 기록 보유자 카림 압둘-자바 모두 센터다. 이들은 키가 클수록 농구라는 경기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을 실제 코트에서 보여줬다. 1990년대의 데이비드 로빈슨,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은 물론 2000년대의 샤킬 오닐도 높이로 NBA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이다.
역대 최고의 동양인 선수로 꼽히는 야오밍의 신화를 만든 힘도 바로 비현실적인 키였다. 물론 야오밍은 탄탄한 하체와 탁월한 슛 터치 등 키 외에도 정말 좋은 재능을 많이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그런 야오밍의 다른 재능이 NBA에서 통하게 만들어준 것이 키였다. 229cm의 키로 턴어라운드 중거리슛을 펑펑 꽂아대는 선수를 제아무리 NBA 선수라 한들 어떻게 쉽게 막겠는가.
결국 농구는 림의 근처를 지배하는 자가 웃는 스포츠였다. 림 근처를 장악하면 경기가 쉬워졌고, 그러려면 키가 커야 했다. 큰 키에서 나오는 높이야말로 농구라는 경기를 작동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였던 셈이다.
# 작은 자의 역습
빅볼은 농구의 키가 클수록 유리하다는 농구의 기본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림을 장악하는 센터, 빅맨의 힘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타 재즈, 멤피스 그리즐리스 같은 팀들이 이런 원리에 충실하고 있다. 뛰어난 높이를 가진 빅맨을 코트에 2명 이상 배치해 페인트존 득점, 리바운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그들의 경기 방식이다. 공격에서는 페인트존 가까이에 있는 빅맨에게 우선적으로 볼을 투입해 확률 높은 득점을 노린다. 슛을 던진 뒤에는 빅맨들의 높이를 활용해 공격 리바운드를 노린다. 수비에서는 페인트존에서의 손쉬운 골밑 득점을 최대한 내주지 않고, 상대가 림 가까이서 슛을 시도하면 빅맨들이 적극적으로 슛을 저지해낸다. 이런 경기 방식으로 많은 팀들이 NBA의 강팀으로 군림했고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탁월한 높이를 가진 센터는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센터의 높이가 단지 키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블록슛을 위해서는 상대의 슛 타이밍을 포착하는 감각이 있어야 하며,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서는 성실한 몸싸움을 펼치면서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예측하는 감각을 지녀야 한다. 골밑 득점을 위해서도 풋워크와 유연함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바스켓 아이큐(BQ)와 연관된 것들이다. 그런데 큰 키에 이런 감각들을 모두 갖춘 선수는 드물다.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같은 선수는 10년에 한 번 혹은 몇 십 년에 한 번 나오는 재능이다. NBA 역사 속 수많은 센터 중에서도 이들이 최고로 꼽히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키만 큰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하킴 올라주원, 카림 압둘-자바, 샤킬 오닐 같은 센터를 보유했던 팀들보다 그렇지 못했던 팀들이 훨씬 더 많았다. 결국 탁월한 센터를 가지지 못한 팀들은 그들대로 생존방식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이 높이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상대 센터의 손이 닿지 못하는 먼 거리에서 슛을 던지거나, 혹은 상대 센터가 미처 백코트하기 전에 빨리 림으로 달려가 슛을 던지거나.
스몰볼은 센터의 수비 범위가 페인트존 근처로 한정돼 있고, 센터의 기동성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평균적으로 떨어진다는 허점을 노린다. 농구가 단지 높이로만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재빨리 프런트코트와 백코트를 오가는 기동성과 먼 거리에서의 슛을 통한 공간 활용, 이 두 가지는 ‘스몰볼’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다.
1979-80시즌 NBA에 처음 도입된 3점슛은 스몰볼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도입 첫 시즌에는 리그 평균 경기당 시도 개수가 0.8개에 그쳤다. 이후 점점 더 많은 팀들의 신뢰를 받기 시작하더니, 1994-95시즌에는 처음으로 리그 평균 3점슛 시도 개수가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급기야 2012-13시즌에는 처음으로 20개를 돌파했다. 매 경기 던지는 전체 슛의 4분의 1 이상이 3점슛이 된 셈. 도입 초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간혹 던지는 특별한 슛으로 여겨졌던 3점슛은 이제 어느 팀이든 반드시 던져야 하는 필수 무기로 발전했다.
3점슛 시도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선수들의 3점슛 능력까지 발전하면서 스몰볼은 리그의 중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큰 키에 좋은 슛 터치를 지닌 ‘스트레치형 빅맨’ 유형의 선수들이 주목받았고, 최근에는 큰 키에 기동성을 갖추고 있고 3점슛도 던질 줄 알는 장신 포워드들이 스몰볼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직접 리바운드를 잡은 뒤 바로 반대편 림으로 돌진해 속공 득점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빠르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야니스 아테토쿤포 등이 여기에 속하는 선수들이다. 지난 6월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캘리포니아 대학 출신의 제일런 브라운이 전체 3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돼 세간을 놀라게 했는데, 브라운 역시 스피드와 신장을 겸비한 전형적인 장신 포워드다.
스몰볼 열풍의 최전선에 서 있는 스테픈 커리 ⓒ NBA 미디어 센트럴
# 스몰볼, 대세로 자리잡다
최근에는 스몰볼을 앞세운 팀이 NBA를 지배하고 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속공과 3점슛을 중시하는 농구로 골든스테이트는 2014-15시즌에 정규시즌 1위와 파이널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고, 2015-16시즌에는 정규시즌 73승을 달성하며 NBA 역대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특히 203cm에 불과한 드레이먼드 그린이 센터로 뛰는 스몰라인업은 리그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그린은 대학 시절 좋은 기량을 지녔음에도 작은 신장 때문에 NBA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받던 전형적인 트위너(두 포지션 중 어느 하나도 확실히 소화하기 힘든 애매한 선수를 가리키는 말)였다. 실제로 데뷔 첫 두 시즌 동안 그린은 언더사이즈 백업 빅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커 감독을 만나면서 그린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린은 빅맨임에도 안정적인 볼 핸들링과 탁월한 패스 감각을 지녔고 3점슛도 던질 수 있었다. 심지어 웬만한 센터에 밀리지 않는 파워까지 가지고 있었다. 커는 그런 그린의 장점을 자신이 추구하는 스몰볼에 완벽히 녹여냈다. 결국 그린은 NBA 역사에서 유래 없는 유형의 빅맨으로 성장했다.
2016년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도 스몰볼을 추구하는 팀이었다. 르브론 제임스는 마이애미 시절 자신이 파워포워드로 뛰는 스몰볼을 앞세워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클리블랜드에서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클리블랜드의 주전 파워포워드 케빈 러브와 백업 빅맨 채닝 프라이 역시 ‘스몰볼의 총아’인 스트레치형 빅맨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타이론 루 감독은 시즌 중반 부임 후 속공과 3점슛을 적극 강조하며 불과 반 시즌 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 시즌 클리블랜드는 경기당 평균 29.6개의 3점슛을 던졌는데 이는 리그에서 3번째로 높은 수치였고, 경기당 평균 3점슛 성공 개수는 10.7개로 골든스테이트, 휴스턴에 이어 리그 3위였다. 르브론과 카이리 어빙의 개인 능력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다 보니 속공 득점 생산력이 떨어졌을 뿐, 클리블랜드 역시 공간 활용을 중심으로 3점슛을 앞세운 스몰볼 팀이었던 셈이다.
# 스몰볼과 빅볼, 그 경계에서
농구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빅볼을 앞세워 태동한 농구는 이제 스몰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너무나 큰 변화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스몰볼의 시대인 지금도 빅볼의 가치를 고수하는 팀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타는 데릭 페이버스, 루디 고베어의 트윈 타워를 앞세운 느린 농구를 펼친다. 전형적인 빅볼 농구다. 마크 가솔, 잭 랜돌프를 보유한 멤피스도 마찬가지. 한때 스몰볼의 완성형 농구를 보여줬던 샌안토니오도 이제는 다시 빅볼로 회귀했다. 올시즌 샌안토니오는 라마커스 알드리지, 파우 가솔의 트윈타워와 카와이 레너드로 구성된 프런트코트를 중심으로 대권에 도전할 전망. 비록 대세는 아닐지 몰라도 빅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빅맨의 높이를 앞세운 빅볼을 여전히 신뢰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속공과 3점슛을 중시하는 화려한 스몰볼이야말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사실 정답은 없다. 지금은 스몰볼이 최고일지 몰라도, 언젠가 다시 빅볼이 농구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계속 말했듯이, 농구는 유기체이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스몰볼과 빅볼.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사진 제공 = 루키 DB, NBA 미디어 센트럴